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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금요문학마당 197: 그립습니다 송영 소설가‘ 추모행사 거행: 김종성 회고담 송영 선생님의 장편소설『금지된 시간』과의 만남

작성자dbhosu|작성시간19.09.20|조회수309 목록 댓글 0

 

금요문학마당 197: 그립습니다 송영 소설가추모행사 거행

 

 

문학의 집 서울이 주최하고 서울특별시와 유한킴벌리가 후원한 금요문학마당 197: 그립습니다 송영 소설가추모행사가 2019920(금요일) 오후 3시 서울시 남산 문학의 집에서 거행되었다.   

 이명재(문학평론가, 전 중앙대 국문과 교수)송영의 문학세계를 발표했고, 박영란(송영 작가의 아내), 송시원(송영 작가의 아들), 김종해(시인, 전 한국시인협회 회장, 문학세계사 대표), 김종성(소설가, 전 고려대 세종캠퍼스 교수) 등이 각각 회고담을 발표했다 

 김후란(문학의 집 서울 이사장, 시인, 예술원 회원), 안영(소설가, 전 황순원문학촌장), 호영송(소설가, 전기작가, 시인), 전옥주(희곡작가), 유만상(소설가), 엄광용(소설가, 아동문학가), 정승재(소설가, 장안대 교수), 정구열(성악가), 김초록(피아니스트), 성경선(연극인) 등을 비롯한 문화예술인들과 일반 독자들이 참석하였다.

 

다음은 김종성의 회고담 금지된 시간과의 만남을 정리한 것이다    

   

 

 송영 선생님의 장편소설 『금지된 시간』과의 만남

 

 

1986년 중편소설 검은 땅 비탈 위가 월간 동서문학 신인작품상 공모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와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김종성입니다.

  제가  1988년 도서출판 한벗에서 편집장으로 근무할 때 송영 선생님의 장편소설 작은 이별의 시작을 출간하게 된 것을 계기로 송영 선생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후 저는 동서문학사 편집차장으로 자리를 옮겨 가게 되었습니다. 동서문학은 지금은 폐간된 문예지로 처음에는 월간지로 발간되다가 뒤에 계간지로 발간되었습니다. 수필가이자 소설가인 전숙희 선생님이 이끌던 동서문학사는 동서문학 신인상, 동서문학 신인번역상, 동서문학상을 제정해 시행했고,  종합문예지 동서문학』과 문학단행본을 간행하여 한국문학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던  회사였습니다.  문학평론가 김윤식 선생님(전 서울대 국문과 교수) 외 4분의 선생님들이 편집위원으로 활동했고, 소설가 김주영 선생님이 편집주간으로 재직했던 동서문학은 보수문학 계열 문인뿐만 아니라 민중문학 계열 문인에게도 지면을 할애했습니다. 엄혹했던 군사정권 시대에 민중문학 계열 문인에게도 청탁을 해 작품을 실었던 동서문학은 과감하게 매월 장편소설을 연재했습니다.

  저는 70년대 대표 작가의 한 사람이었던 송영 선생님을 추천하여  김주영 선생님의 재가를 얻어 송영선생님께 장편소설 연재를 청탁했습니다. 그 당시 송영 선생님은 서울시 강남 전철역 인근의 오피스텔에 집필실을 마련해 놓고, 중앙 일간지에 장편소설을 연재하고 있었습니다. ‘금지된 시간이라고 이름붙인 신작 장편소설을 4회에 걸쳐 집중 분재하기로 약속하였지만 송영 선생님은 원고를 약속한 날짜에 약속한 분량만큼 제때제때 써주지 않아 편집자인 저로써는 난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동서문학사는 장충동 파라다이스그룹 본사 별관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편집실에서 원고를 받으러 가겠다고 전화하면 그때마다 송영 선생님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2시까지 집필실로 오라고 했습니다. 동대입구역에서 전동차를 타고 강남역에서 내려 집필실에 가면 여기저기 배달되어온 잡지와 단행본, 그리고 여러 회사의 사보가 뜯어보지도 않은 채 쌓여 있었습니다.

좀 기다리게.”  

푸스스한 얼굴의 송영 선생님이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송영 선생님은 저를 옆에 앉혀 놓고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자판을 두드려 내려가는 송영 선생님의 하얀 손가락을 바라보며, 소설가이자 시인인 이상을 떠올렸습니다. 부수수한 머리털, 창백한 얼굴, 부릅튼 입술..... 원고를 쓰느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습니다. 2시간 쯤 지났을까. 200자 원고지 30매 가량의 원고를 저에게 건네주는 송영 선생님에게 원고량이 터무니 없이 모자란다는 말을 입밖으로 꺼내지도 못하고 잡지사로 돌아왔습니다. 4개 월 집중 분재는 1년 연재로 변해버렸습니다. 연재되었던 원고는 19901125일 동서문학사출판부에서 장편소설 금지된 시간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송영 선생님은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오래 혼자 간직했던 이야기를 어느날 갑자기 쓰고 싶어졌다. 내게는 이것은 그만큼 소중한 이야기다. 뒤늦게 이것을 쓰겠다고 나선 것은 이제는 그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못하다는 걸 쓰면서 몇 번이나 깨달았다. 이제 그대와 그대의 감미롭고 고통스런 기억과도 작별할 시간이 왔다. 이제 하나의 산물이 남게 되었다는 것이 내게는 하나의 위안이다,

 

 언젠가 송영 선생님은 저에게 작가는 자신의 체험을 팔아먹고 살아가는 존재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금지된 시간은 송영 선생님이 가난하고 불우하게 지냈던 젊은 시절의 사랑의 기록으로 자전적 장편소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삶의 전체 또는 현실의 전면적 구조보다는 삶의 단면에 비친 삶의 한 기미를 포착하여 낮은 목소리로 담담하게 묘사해 놓은 금지된 시간은 바로 작가 송영 성생님 자신의 우울하고 암울했던 젊은 날의 이야기였습니다.

얼마 뒤 저는 동서문학사를 그만두고 도서출판 한벗의 편집주간으로 자리를 옮겨 송영 선생님의 장편소설 달빛 아래 어릿광대,하늘 가까운 마을에서의 출간을 도모하며 송영 선생님과의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그후 저는 집문당 출판사 기획실장으로 일하다가 국제 환란이 발생했을 무렵 출판잡지계를 떠나 대학원에 진학하여 고려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고려대 세종캠퍼스  조교수로 임용되어 서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한편 송영 선생님은 문국현 선생님이 이끄는 창조한국당에 입당하여 전당대회의장으로 활약하는 등 정치인으로 변신하여 저와는 차츰 소원해졌습니다.

  송영 선생님은 선생과 황태자, 계절, 중앙선 기차같은 중단편소설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금지된 시간같은 뛰어난 장편소설도 썼습니다.  금지된 시간은 송영 선생님의 삶의 체험과 작가적 기량이 녹아 있는 작품으로 선생과 황태자, 계절, 중앙선 기차같은 중단편소설과 함께 시간이라는 판관이 버티고 있더라도 끝까지 한국문학사의 한 봉우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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