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사 Ⅴ』
6. 해방공간의 문학
1) 해방 공간의 문학
1945년 8·15광복 후 북위 3·8도선 이남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 이데올로기의 갈등으로 문학 예술계가 좌익과 우익 진영으로 갈라져 대립하였다. 1945년 8월 18일 임화·이태준·김남천·이원조 등이 주도하여 진보적 문화운동단체인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朝鮮文化建設中央協議會)를 결성하였다. 조선문학건설본부· 조선연극건설본부, 조선영화건설본부, 조선음악건설본부, 조선미술건설본부 등 성향이 비슷한 단체들이 연합하여 결성한 단체인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의 강령은 ①문화의 해방 ②문화의 건설 ③전선의 통일 등이었다. 민족문화를 건설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었던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의는 기관지 『문화전선』을 발간하기도 했다.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에 대응하여 좌익 진영의 문화인들인 한설야· 이기영 ·윤기정 등은 1945년 9월 17일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프로 예맹)을 조직했다.
1946년 2월 8일 조선공산당의 통합 요구에 따라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은 조선문학가동맹(朝鮮文學家同盟)으로 통합되었다. 임화· 김남천 등이 주도한 조선문학가동맹은 잡지 『문학』·『신천지』·『인민』 등을 발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조선문학가동맹 주관으로 제1회 전국문학자대회가 1946년 2월 8일∼9일 양일간에 걸쳐 서울시 종로 기독청년회관에서 개최되었다. 신석정은 제1회 조선문학자전국대회장에서 「꽃덤불」을 낭송했다.
꽃덤불
태양(太陽)을 의논(議論)하는 거룩한 이야기는 항상 태양(太陽)을 등진 곳에서만 비롯하였다.
달빛이 흡사 비오듯 쏟아지는 밤에도
우리는 헐어진 성(城)터를 헤매이면서
언제 참으로 그 언제 우리 하늘에
오롯한 태양(太陽)을 모시겠느냐고
가슴을 쥐어 뜯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가슴을 쥐어 뜯지 않았느냐?
그러는 동안에 영영 잃어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멀리 떠나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몸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맘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드디어 서른 여섯 해가 지내갔다.
(--하략--)
-신석정, 「꽃덤불」, 『신문학』, 1946년 3월, pp.128∼129.
「꽃덤불」은 꽃덤불을 제재로 ‘어둠’과 ‘밝음’을 대립적 이미지로 하여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상을 전개해 주제를 형상화 하고 있다. 아직 진정한 해방과 완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했다고 고뇌하는 시적 화자의 현실 인식과 새로운 민족 국가 수립의 염원을 꽃덤불로 형상화하고 있는「꽃덤불」은 미군정이 들어서서 신탁 통치를 하고 있는 남한이 좌익 세력과 우익 세력의 힘겨루기와 이념 갈등으로 어둠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해방공간(1945년 8월 15일∼1948년 8월 15일)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회서기국 경과보고
8월 15일 역사적(歷史的) 민족해방(民族解放)을 맞아 우리 문학운동(文學運動)도 결박(結縛)되었던 철쇄(鐵鎖)를 끊고 일어났습니다.
8월 16일 조선문학건설본부(朝鮮文學建設本部)가 결성(結成)되고 9월 17일 조선(朝鮮)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文學同盟)이 결성(結成)되어 민족문학(民族文學)의 자유(自由)스럽고 건전(健全)한 발전(發展)을 위(爲)한 원대(遠大)한 전망하(展望下)에서 적극적(積極的) 활동(活動)으로 각기(各其) 노력(努力)하던 중 활동 주체(活動主體)가 분립(分立)된 것에 유감(遺感)을 느낀 양 단체(兩團體)는 성실(誠實)한 자기 비판(自己批判)을 통해 마침내 12월 6일 양 단체(兩團體) 대표(代表)로 구성(構成)한 공동위원회(共同委員會)를 열고 구체적(具體的) 방법(方法)을 의론(議論)하여 12월 6일 회동(會同)에 관한 공동 성명서(共同聲明書)를 발표(發表)하였습니다.
12월 13일 합동총회를 개최하고 조선문학동맹이란 명칭으로 통일결성하였는데 이 조선문학동맹은 기간 조선에 있어서 민족건설의 운동기관으로 과도적 역할을 하여 오는 동시에 그 조직에 있어서든지 금후 운동방침에 있어서 진보적 민주주의적 원칙에 따라 이를 승인받으며 또는 결의 책정하고자 조선문학동맹에 전국문학자대회 준비위원회를 조직설치하였던 것입니다.
이 대회 준비위원회의 성원은─
김태준, 권환, 이원조, 한효, 박세영, 이태준, 임화, 김남천, 안회남, 김기림, 김영건, 박찬모
로 구성되어 제반 준비가 진행케 되었던 것입니다.
그 요강은
1. 회기는 1946년 2월 8, 9일 양일간
2. 회장은 서울 종로 기독교청년회관
3. 대회성원은 지명 문학자로서 가맹수속이 완료한 자로 구성하기로 함. 문학자의 지명은 준비위원이 심의결정하기로 함.
4. 조선문학동맹은 대회승인에 의하여 완전한 성립을 인정케 하기로 함. 즉 조선문 학동맹은 과도기관으로 자처함을 확인함.
이라 지정하여 이에 준거하여 행하였던 것입니다.
지명 문학자 233명을 결정하고 1월 20일 각기 당해 문학자에게 소집통지서를 발송하였습니다.
이에 의하여 가맹회원은 120명이고, 당일 당회장에서 입장한 회원수 91명으로 본대회는 성립되었습니다.
이것으로 결과보고를 끝맺습니다.
─정한숙, 『해방문단사』, 고려대학교출판부, 1980, p.23.
제1회 전국문학자대회는 임화·김남천· 권환· 홍구·이동규·박세영· 한효 등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 계열의 문인들 뿐 아니라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계열이 아니었던 이태준· 이원조· 안회남 ·김기림 ·정지용 ·이병기 ·김광균 등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신석정· 곽하신 ·최태응 ·이주홍· 김용호· 김달진 ·정비석· 이봉구· 박계주 ·박영준· 피천득 ·홍효민·유치환 ·노천명 ·서정주 · 이한직· 김영수 등을 비롯한 중도파 및 우파 문인들도 대거 참석하였다.
중앙집행위원장에는 홍명희, 부위원장에는 이병기· 이태준, 서기장에는 김남천, 총무부장에는 홍구, 조직부장에는 배호, 출판부장에는 현덕, 시부위원장에는 김기림, 소설부위원장에는 안회남, 평론부위원장에는 양주동, 희곡부위원장에는 이서향, 아동문학부위원장에는 정지용, 고전문학위원장에는 이병기, 외국문학위원장에는 설정식이 각각 선출되었다.
제1회 문학자대회에서 진보적 민주주의 국가의 건설 과정에 있어서 조선문학의 자유스럽고 건전한 발전을 위하여 ① 일본제국주의 잔재의 소탕, ② 봉건주의 잔재의 청산, ③ 국수주의의 배격, ④ 진보적 민족문화의 건설, ⑤ 조선문학의 국제문학과의 제휴 등 5가지 강령을 채택한 조선문학가동맹은 기관지로 『문학』(1946-1948) 을 발행했다”(조선문학가동맹 엮음, 『건설기의 조선문학: 제1회 전국문학자대회 자료집 및 인명록』, 온누리, 1988, p.186 참조).
우익 진영의 문화인들인 김영랑· 변영로· 양주동ㆍ오상순 서항석ㆍ김진섭 ·유치진 등은 1945년 9월 18일 중앙문화협회(中央文化協會)를 조직했다. 중앙문화협회는 순간(旬刊)「중앙순보(中央旬報)」와 단행본 『해방기념시집(解放紀念詩集)』(중앙문화협회, 1945년) 등을 출판하는 등 출판사업에 주력하였으나 문화 활동보다는 신탁통치반대운동과 이승만의 정치 활동에 협력하는 등 정치적 활동에 더 주력하였다. 1946년 4월 4일, 김동리· 조연현· 서정주· 조지훈·최태응· 박두진· 박목월· 곽종원 등이 중심이 되어 조선청년문학가협회(朝鮮靑年文學家協會)를 창립했다. 조지훈은 창립대회에서 「해방시단(解放詩壇)의 과제(課題)」라는 주제로 연설을 하였다.
(---전략---)
우리 시단(詩壇)은 해방 전(解放前)까지는 일제(日帝)의 검열(檢閱) 때문에 사상(思想)의 자유(自由)가 크게 제약(制約)돠었습니다. 그러나, 시(詩)에 있어서는 그러한 제약(制約)이 도리어 사상(思想)의 표현(表現)이라든지 언어 구사(言語驅使)의 기술(技術)을 절로 심화(深化)하게 한 일면(一面)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가 기다리던 민족(民族)의 해방(解放)은 시단(詩壇)에도 자유(自由)의 열락(悅樂)을 가져왔으나 그와 함께 한 우려(憂慮)할 현상(現象)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곧 시(詩)의 본질(本質)에 대한 아무런 비판(批判)과 내성(內省)과 연구(硏究) 없이 정치적(政治的) 해방(解放)을 그대로 시(詩)의 해방(解放)과 혼동(混同)하여 아무렇게 써도 시(詩)가 된다는 엄청난 자유(自由)를 획득(獲得)한 것입니다. 원래(原來) 시(詩)는 영원(永遠)히 해방(解放)된 것으로 새삼스레 해방(解放)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시(詩)가 되었는가 안 되었는가 하는 엄정(嚴正)한 자율(自律)의 밸런스 위에서 규정(規定)될 것이므로 참혹한 검열(檢閱)의 질곡(桎梏)도 우리의 시정신(詩精神)만은 구속(拘束)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다만 우리의 선배(先輩)와 벗들이 황민문학(皇民文學)이란 허망(虛妄)한 논리(論理)를 부르짖을 때 타협(妥協)할 수 없어 비장(悲壯)한 퇴각(退却)을 결의(決意)했을 뿐 언제나 오늘이나 절대(絶對)로 순수(純粹)하고 자유(自由)로운 시정신(詩精神)을 굽히지 않을 것입니다.
어떠한 사상(思想)도 이 시(詩)의 기술적(技術的) 표현(表現)을 거치지 않고는 시(詩)의 소재(素材)의 나열(羅列)은 될지언정 형상(形象)되고 창조(創造)된 시(詩)가 못 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事實)입니다. 이런 의미(意味)에서 해방 후(解放後)에 나타난 시(詩)의 대다수(大多數)가 소재(素材)의 나열(羅列), 다시 말하면 사상(思想)이 완전(完全)히 혈액화(血液化)되고 생활화(生活化)되지 못하고 미감(美感)의 사상(思想)이 물에 기름탄 것처럼 유리(遊離)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뼈다귀만 앙상한 개념적(槪念的) 사상(思想)에 격(格)에 맞지 않는 서툰 옷을 입히고 혹은 쾨쾨묵은 감탄사(感歎詞)를 연발(連發)하여 공감 이전(共感以前)에 비웃음을 사고 혹은 일편(一片)의 정서(情緖)도 없는 얇은 지성(知性)을 가장한 이들 시(詩)는 한결같이 시 이전(詩以前)의 시(詩)였습니다. 따라서, 해방 후(解放後) 시단(詩壇)은 사이비 시(似而非詩)의 범람기(氾濫期)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민족적(民族的) 감격(感激)이야 누가 막을 수 없겠지만, 오로지 감격(感激)의 안이(安易)한 배설(排泄)이 시(詩)가 아니란 정도(程度)의 제약(制約)은 어느 때 어떠한 사람에게도 제시(提示)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제(問題)인 줄 압니다. 오늘의 시인(詩人)은 마땅히 추잡한 뮤우즈에게 포옹(抱擁)되어 값 헐한 감정(感情)을 배설(排泄)하는 특권(特權)을 버리고 스스로 뮤우즈를 창조(創造)하는 새로운 권리(權利)를 획득(獲得)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혼돈(混沌)한 사조(思潮) 속에서 시인(詩人)의 긍지(矜持)를 옹호(擁護)해 주는 것은 오직 순수(純粹)하려는 노력(努力)이 있을 뿐이라고 믿습니다. 모든 불순(不純)한 야심(野心)과 음모(陰謀)를 버리고 진정(眞正)한 시정신(詩精神)을 옹호(擁護)하는 것이 언제나 다름없는 시(詩)의 순수성(純粹性)이지만, 이때까지 우리가 가져온 ‘순수(純粹)’의 개념(槪念)은 자칫하면 무사상성(無思想性), 무정치성(無政治性)이란 이름에로 떨어질 위험성(危險性)이 다분(多分)히 내포(內包)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해방 전(解放前)에 있어서는 우리 시인(詩人)들 시(詩)에서 사상(思想)을 나타낸 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不可能)에 가까울 뿐 아니라 어떤 의미(意味)에서는 사상(思想)을 가진다는 것은 곧 일제(日帝)에 매수(買收)되고 영합(迎合)한다는 슬픈 결과(結果)가 되었기 때문에 일견(一見)해서 화조풍월(花鳥風月)을 노래하는 무사상성(無思想性)이 우리들의 민족적(民族的) 양심(良心)과 시인적(詩人的) 양심(良心)을 아울러 지키는 방편(方便)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 손으로 새로운 문화(文化)를 이룩하고 새로운 생활(生活)을 설계(設計)할 자유(自由)를 얻은 만큼 시(詩)에 있어서의 사상성 문제(思想性問題)도 재논의(再論議)되어야 하겠습니다만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상(思想)’ 이란 말에 대해서도 반성(反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술(藝術)에 나타난 사상(思想)이란 대개가 어떤 주의(主義)를 표방(標榜)함을 가리킨 적이 많았으나 시(詩)에 있어서의 사상(思想)이란 이런 좁은 곳에 국한(局限)시킬 것이 아니라 인간성(人間性)의 기미(機微)를 건드리는 것이라면 우리는 작은 서경시(敍景詩)에서도 능히 사상성(思想性)을 파악(把握)할 수 있을 줄 압니다. 그러므로, 시(詩)의 사상성(思想性)은 어떤 주의(主義)의 편당성(偏黨性)에보다도 전인간적(全人間的) 공감성(共感性)에 그 뿌리를 두어야 할 것입니다. 결국(結局) 어떠한 사상(思想)이라도 시(詩) 속에 포섭될 때 시(詩)가 되는 것이므로 주체(主體)는 시(詩)에 있는 것이요, 사상(思想)은 시(詩)를 구성(構成)하는 요소(要素)에 지나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詩)가 가진 사상(思想)이란 그 예술성(藝術性)을 무시(無視)하고는 사상(思想)으로서의 가치(價値)를 상실(喪失)하는 것이므로 기운생동(氣韻生動)이라는 동양(東洋)의 미학(美學)은 바로 이 사상성(思想性)의 예술화(藝術化)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시(詩)의 사상(思想)이란 시(詩) 속에서 절로 섭취(攝取)되는 영양소(營養素)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민족(民族)을 사랑하는 정치(政治)를 선전(宣傳)하든 그 말하고자 하는 사상(思想)이 완전(完全)히 혈액화(血液化)되어 시(詩)시 속에서 따로 유리(流離)하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사상(思想)을 예술(藝術)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계몽문학(啓蒙文學)이란 원래(元來) 순수(純粹)한 문학정신(文學精神)의 소산(所産)은 아닙니다. 오늘 같은 혁명(革命)의 단계(段階)에 계몽적(啓蒙的) 문학(文學)이 요청(要請)되니 순수문학(純粹文學)이 설 수 있느냐 하겠지만, 앞서 말한 바 같이 어떠한 사상(思想)이라도 그것이 순화(純化)될 때는 시대성(時代性), 선전성(宣傳性), 계몽성(啓蒙性)도 절로 부수(附隨)되는 것이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뜻을 작품(作品)을 통하여 실천(實踐)함으로써 진정(眞正)한 문학(文學)으로서의 시(詩) 시(詩)의 순수성(純粹性)을 계몽(啓蒙)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는 오직 우리의 애국적(愛國的) 정열(情熱)과 작가적(作家的) 성실(誠實) 여하(如何)에 달린 문제(問題)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만 우리가 순수(純粹)라는 개념(槪念)을 고쳐 가져야 할 것은 순수(純粹)는 무사상(無思想)의 것이 아니라 시(詩)를 예속(隸屬)시키는 사상(思想)이 아니고 순화(純化)된 사상(思想)이면 다 순수시(純粹詩)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후략---)
─ 조지훈, 「해방시단(解放詩壇)의 과제(課題)」, 『조지훈전집 3· 문학론』, 일지사, 1973, pp.208∼210.
순수문학을 지향한 조선청년문학가협회는 “첫째 자주독립 촉성에 문화적 헌신을 하며, 둘째 민족문학의 세계사적 사명을 완수하고, 셋째 일체의 공식적·예속적 경향을 배격하고 진정한 문학정신을 옹호함을 목적으로 한다.”(김우종,「조선청년문학가협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편찬부 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한국정신문화연구원,1997, p.523)고 표방하였다. 조선청년문학가협회는 같은 보수 단체이지만 1946년 3월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와 조선문학가동맹에 대항하여 박종화· 오상순· 김광섭 등 우익 진영의 문인들이 발족한 전조선문필가협회(全朝鮮文筆家協會)가 잡지 『백민』·『민성』·『예술조선』 등을 간행하며 문학의 우익적 정치참여를 추구한 것과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문학의 자율성과 독자성을 기치로 내세운 조선청년문학가협회는 정치와 문학은 분리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이 잘 드러나 있는 것이 조지훈의「해방시단(解放詩壇)의 과제(課題)」이다. 그는 일제 식민지배 시기에는 꽃과 새와 바람과 달과 같은 천지간의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하는 것이 순수시에 속하고 민족적ㆍ시인적 양심을 지키는 길이었지만, 해방된 국가에서는 달라야 한다는 주장하면서, 전조선문필가협회 계열의 시는 물론이요 조선문학가동맹 계열의 시도 “뼈다귀만 앙상한 개념적 사상”의 시이고, 거창한 사상을 내세우는 것에 비해 시적 형상화 능력이 ‘서투른 옷을 만드는 솜씨’ 에 불과하며, 한 조각의 정서도 없는 ‘사이비 시(似而非詩)’라고 비판했다.
해방공간의 시문학
해방공간에 발표된 시작품의 경향은 크게 혁명적 낭만주의와 진보적 리얼리즘의 경향을 띄는 것과 전통적 정서 탐구로 집약되는 순수서정시의 경향을 띄는 것으로 나눠볼 수 있다. 혁명적 낭만주의와 진보적 리얼리즘의 경향을 띄는 시집으로는 오장환의 『병든 서울』(정음사, 1946년), 이용악의 『오랑캐꽃』(아문각, 1947년) , 설정식의 『종(鐘)』(백양당, 1947년) 등이 출간돠었고, 전통적 정서 탐구로 집약되는 순수서정시의 경향을 띄는 시집으로 정인보의 『담원시조(薝園時調)』(을유문화사, 1948년), 서정주의 『귀촉도(歸蜀途)』(선문사, 1948년), 유치환의 『생명의 서(書)』(행문사, 1947년) ,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의 공동시집 『청록집(靑鹿集)』(을유문화사, 1946년) 등이 출간되었다. 그밖에 이육사의 유고시집『육사시집(陸史詩集)』(서울출판사, 1946년)과 윤동주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년)가 출간되었고, 1930년대 모더니즘 시를 계승한 김경린· 박인환 ·김수영 ·임호권· 양병식 등 후반기 동인들의 5인 공동시집인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도시문화사, 1949년) 이 출간되었다.
귀촉도
눈물 아롱 아롱
피리 불고 가신 임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리(三萬里)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임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三萬里).
신이나 삼아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미투리’의 방언. 삼이나 노 따위로 짚신처럼 삼은 신]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이러한 모습으로 줄곧]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하략---)
―『춘추(春秋)』, 1943년 10월호[서정주,「귀촉도(歸蜀道)」, 정한모·김용직 공저, 『한국현대시요람』, 박영사, 1974, p.447].
1943년 10월호『춘추(春秋)』에 실린「귀촉도(歸蜀道)」는 서정주의 제2시집 『귀촉도』(선문사, 1946)에 수록되었다.「귀촉도(歸蜀道)」는 ”그 무렵에 제작된 서정주의 다른 작품, 가령 「화사(花蛇)」나 「문둥이」, 「바다」 등과는 그 세계가 판이하게 다르다. 후자가 강렬한 육체의 몸부림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면 그런 의미에서 다분히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면 「귀촉도(歸蜀道)」의 가락에는 이미 다분히 우리 고유한 것인 슬픔이나 한, 체념들이 배어들었다“(정한모·김용직 공저, 『한국현대시요람』, 박영사, 1974, p.448). 자규(子規)· 두견(杜鵑) 또는 귀촉도(歸蜀途)라고 불리는 소쩍새는 망제혼(望帝魂)이라 하여 촉나라의 임금인 망제(望帝)가 촉나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을 슬퍼하다 죽은 혼이 새가 된 것이라고 한다. 이 소쩍새의 전설이의 전설이 한국에 전해져서 많은 시가(詩歌)의 소재가 되었다.
3연으로 짜여진 「귀촉도」는 1연에서 임의 떠남(죽음), 2연에서 시적화자가 못다한 사랑에 대한 회한과 탄식, 그리고 3연에서 임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으로 슬픔에 빠진 귀촉도의 울음으로 각각 구성되어 있다. 김소월의 「접동새」, 김영랑의 「두견」에 등장하는 귀촉도와 같이 ‘귀촉도’를 소재로 하여 ‘귀촉도’에 얽힌 설화를 바탕으로 전통적이고 7·5조의 율조로 하여 임에 대한 그리움과 정한(情恨)을 노래했다. 시적화자가 사랑하는 임은 한 번 가면 되돌아 올 수 없는 '죽음의 세계'를 나타내는 저승길, 즉 ‘서역(西域: 중국의 서쪽에 있던 여러 나라를 통틀어 이르는 말) 삼만리(三萬里) ’, ‘파촉(巴蜀: 중국의 서쪽에 있던 땅 이름) 삼만리(三萬里)’로 떠나 버렸다.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구비구비 은핫물 목이 젖은 새“의 구절에서 ‘은핫물’은 임과 나 사이의 단절된 공간을 상징한다.
이 시를 가만히 읊조리다 보면, 우리는 언어로 만들어진 황홀한 환상의 공간을 체험하게 된다. 75조의 운율과 우리말의 말맛을 살려서 이처럼 완벽한 언어구조물을 만들 수 있는 시인은 서정주 이외에 달리 없을 것이다. 그래서 미당은 ‘부족방언의 마술사’라고 불리기도 한다. 거의 모든 좋은 시가 다 그리하겠지만, 미당의 시는 번역할 수 없는 부분이 아주 크다. 우리말에 대한 깊은 감각을 지닌 자가 아니라면 미당의 시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을 것이다.
―이남호,『서정주의 ‘화사집’을 읽는다』, 열림원, 2003, p.23.
탁월한 한국어 구사력으로 한국어의 영토를 넓힌 서정주의 시들의 특징이 「귀촉도」에도 유감없이 드러나 있다. ”한국적인 애수의 미학 또는 한(恨)의 탐미주의를 제시하고 있는“(김재홍,『한국현대시인연구』, 일지사, 1999, p.324.) 「귀촉도」는 서정주의 뛰어난 “우리말 말맛 살리기” 능력으로 더욱 빛나고 있다.
해방공간의 소설문학
해방공간(1945년∼1950년)에 활동한 소설가 가운데 주목할 만한 작가로는 염상섭· 김동리· 황순원 ·채만식· 이태준· 이근영· 계용묵· 지하련· 안회남· 김동인 ·허준· 윤세중 등이 있다.
이 시기의 소설가들이 가장 고심했던 것은 무엇을 써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모든 작가들에게 있어서 무엇을 쓸 것인가 하는 문제는 소설적 대상으로서의 주제의 선택과 직결된다. 물론 이것은 작가의 세계관에 따라 그 방향이 결정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해방 직후 대부분의 작가들이 현실의 혼란에 직면하여 그것을 바르게 인식하고 소설적 세계로 형상화하여 놓을 수 있는 정신적인 여유를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세계관을 강조하고 이념적 지향을 분명히 내세운 작가라 하더라도 관념의 테두리를 배회하거나 자기 감정의 과잉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경우도 적지않다.
─권영민, 『한국현대문학사:1945∼1990』, 민음사, 1999, pp.75∼76.
해방공간에서 작가들이 발표한 소설의 전개 양상은 대체로 여섯 가지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① 일제의 식민 지배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적으로 묘사한 소설로 채만식의「논이야기」(『해방문학선집』, 1946년 4월), 계용묵의 「바람은 그냥 불고」(『백민』, 1947년 7월), 황순원의 「술 이야기」(『신천지』, 1947년 2월) ·「황소들」(『목넘이마을의 개』, 육문사, 1948년 12월) 등이 있다. ② 분단의식의 형상화와 분단 문제를 다룬 소설로 염상섭의「삼팔선」(『삼팔선』, 1948년 11월)·「이합(離合)」(『개벽』, 1948년 1월), 계용묵의「별을 헨다」(「동아일보」, 1946년 12월 24일∼12월 31일) 등이 있다. ③ 보편성에 토대를 둔 인간상과 세계상을 서정성있게 묘사한 소설로 김동리의「역마(驛馬)」(『백민』, 1948년 1월)·「달」(『문화』, 1947년 4월), 황순원의「목넘이 마을의 개」(『개벽』, 1948년 3월)·「황노인」(『신천지』, 1949년 9월)·「노새」(『문예』, 1949년 12월)·「독 짓는 늙은이」(『문예』, 1950년 4월) 등이 있다. ④해방공간에서 벌어지는 가치관의 전도(顚倒)와 혼란상을 그린 소설로 염상섭의「두 파산(破産)」(『신천지』, 1949년 8월), 채만식의「역로(歷路)」(『신문학』,1946년6월), 계용묵의「금단(禁斷)」(「민주일보」.1946년 12월 1일) 등이 있다. ⑤ 식민지 체험에 대한 지식인의 자기 비판을 문제삼고 있는 소설로 윤세중의 「십오일 후(十五日後)」(『예술운동』, 1945년 12월) , 채만식의 「민족의 죄인」(『백민』, 1948년 10월), 이태준의 「해방전후」(『문학』, 1946년 8월), 김동인의 「반역자」(『백민』, 1946년 10월), 지하련의 「도정(道程)」(『문학』, 1946년 8월), 안회남의 「폭풍의 역사」(『문학평론』, 1947년 2월), 이근영의 「탁류(濁流) 속을 가는 박교수」(『신천지』, 1948년 6월) 등이 있다. ⑥ 해외 귀향 동포들의 귀향의식을 묘사한 소설로 허준의「잔등(殘燈)」(『대조』, 1946년 1월), 김동리의 「혈거부족(穴居部族)」(『백민』, 1947년 2월), 정비석의 「귀향」(「경향신문」, 1946년 10월∼11월) 등이 있다.
해방공간에 발표된 소설 가운데 문맹계(文盟系) 정통파의 작품으로는 이태준의「해방전후」, 문협계(文協系) 정통파의 작품으로는 김동리의「역마」, 중간계(中間系)의 작품으로는 황순원의 「황소들」을 각각 대표적인 작품으로 들 수 있다.
간결한 문체를 구사하여 서사를 박진감있게 전개하고 있는「황소들」의 시간적 배경은 해방직후이고, 공간적 배경은 충청북도 충주이다. 해방은 되었으나 한국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일제가 만들어 놓은 공출 제도가 여전히 존재하고 악덕 지주가 활개를 쳤다. 해방이 되어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일본 순사가 납부할 쌀이 없어 공출을 납부하지 않은 농민들을 붙잡아 가는 등 정치적 구세력이 농민들을 억압하고 있었고, 지주들은 쌀을 창고에 감추어 놓고, 몰래 일본 등에 팔아먹으면서도 공출을 납부하지 않는 행위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마음이 안 놓인다. 이밤 안으로 아버지에게 꼭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바우는 씨돌이네집 일간에서 같은 또래의 애들과 함께 가마닛날 새끼를 꼬다 말고, 오줌누러 가는 척 밖으로 나온다.
(---중략---)
그런데, 아 큰일이다. 바우의 눈앞에는 그 무서운 총대 앞에 아버지와 동네사람들이 나가 쓰러지는 모양이 떠오르는 게 아닌가. 그러는 아버지와 동네사람들의 눈에 빛나는 게 있었다. 눈물이었다. 그리고는 모두 꿈틀거린다. 마치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거린다는 듯이. 그리고 모두 울부짖는다. 이대루 가단 아무래두 다 굶어죽을 목숨여. 누가 공출을 안하겠다는 건 아니여. 공평하게 해달라는 거지. 어떤 사람은 광 속에 쌀가마니를 가뜩 들이쌓아놓구 몰래 일본이나 다른 데루 팔아먹게 왜 내버려두느냐 말여. 밤 낮 없는 사람만 들볶아댔자 뭐가 나올 거여. 아무래도 이대루 가다간 다 죽을 목숨여. 이 울부짖음은 모두 동네사람들이 벌써부터 하던 말들이다.
바우는 어른들이 이런 말하는 걸 들을 적마다 재작년 가을 자기가 아버지를 따라 소 살 돈을 빚내러 충주 김대통영감네 집에를 가서 본, 그 광 속에 지쌓인 낟알섬이 떠오름을 어쩌지 못했다. 그리고 광문에 달린 어른들 주먹보다도 더 큰 시커면 자물쇠통도 함께.
지금도 바우의 눈앞에는 그 광 가득하던 낟알섬과 함께 광문에 달렸던 자물쇠통이 떠오른다. 좀처럼 해서는 열려지지 않을 것같은 좌물쇠통이다.
그러자 또 바우의 눈앞에는 쏜쌀같이 내리치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물쇠통을 족친 것이 아니고, 바로 꿈틀거리는 아버지의 허리를 내리친 것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허리를 잘 못 쓰는 아버지가 대번에 쓰러진다.
(---중략---)
그러나 다음 순간 이제부터다, 하는 생각에 바우는 저도 모르게 작대기 잡은 손에 힘을 준다. 그런데 웬일일까. 동네사람들은 곧장 충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고, 왼편쪽 남산으로 기어올라가는 것이다. 모를 일이다. 좌우간 바우는 동네사람들의 뒤를 따라 올라간다. 동네사람들은 한곳에 자리를 잡고 앉는 눈치다.
(---중략---)
바로 그때다. 별안간 저 아래 충주거리의 전등불이 온통 꺼진 것은. 그리고 이 전등불 꺼지기를 기다리고나 있었던 것처럼 와짝 동네사람등이 일어선 것은. 바우도 저도 모르게 제 작대기를 집어들고 일어선다. 거북이형이 무어라고 하면서 앞장을 서는 눈치더니, 동네사람들이 울울 밀려내려간다. 성난 황소들 같다. 이 성난 황소들은 바우네 동네사람들뿐만 아닌 듯했다. 아까 거북이형이 누구와 만나 수군거리던 저쪽에서도, 그리고 좀더 저쪽에서도, 아니 이 남산 전체에, 틈틈이 자기네와 같은 사람들이 앉았다가 지금 충주거리를 향해 내려가는 것으로 바우에게는 느껴졌다.
(---중략---)
바우는 큰거린 듯한 데로 들어선다. 여지껏보다 더 소란스러운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와당와당 어둠속을 달리는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숨이 차 달리는 바우에게 이 큰 거리가 그저 조용한 것같기도 하다.
별안간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큰 불빛 하나 쏜살같이 바우의 옆을 지나간다. 바우는 이 불빛 줄기 속에 적지않은 사람들의 달리는 모양과, 그 그림자들이 삽시간에 커졋다 작아졌다 다시 커지면서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때 바우는 자기가 지금 달리는 오른편에 불난 곳으로 질러갈 수 있을 듯한 골목이 하나 있는 것을 알아본다. 바우는 그 골목으로 꺽이어든다.
골목을 들어서자마자 바우는 무엇에 부딪쳐 주저앉고 만다. 순간 부딪힌 쪽에서도 어쿠쿠 소리를 지른다. 가마니를 진 사람이었다. 바우는 멍해가지고 가뜩이나 숨이 찬 몸을 일으키지도 못한다. 다행히 저쪽 사람은 고꾸라지지는 않고 어둠속에서, 눈깔이 삐었어? 한마디 소리를 꽥 지르고는 가던 길을 그냥 간다. 그제야 바우는 일어섰다.
몇발자국 떼자 또 앞으로부터 누가 바우에게 다가오는데 어둠속에 잘 보이지는 않으나 굳은힘을 쓰는 것이 이 사람도 무슨 무거운 짐을 진 것만은 분명했다. 이번에는 부딪치지 말아야지. 얼른 한쪽으로 비킨다. 그러면서 바우는 깜짝 놀란다. 지금 짐 진 사람이 나온 집은, 막다른 곳에 자리잡은 바로 김대통영감네 집이 아닌가. 내가 어떻게 여길 왔을까. 너무나 뜻밖이었다. 가까이 가 본다. 활짝 열린 대문과 중문을 지나, 안뜰에 촛불을 들고 비스듬히 광쪽을 향해 섰는 사람이 보엿다. 바우가 여지껏 두 번 자기 동네에 온 것을 먼발치로 본 김대통영감이 틀림없었다.
“빨리빨리들 해라, 빨리들 해! ......죽일놈들 경찰서에 불을 질러?”
김대통영감의 영감의 음성이긴 하나 옛날같이 위엄기있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숨죽인 다급한 음성이었다.
(---중략---)
이때 좀 전에 가마니 진 사나이들이 사라진 쪽에서 몇인가 모두 짐을 진 채 잰걸음을 쳐 오더니 황급히 바우 앞을 잇달아 지나간다. 그리고 김대통영감 촛불 가까이 이르자 앞선 사람이 숨찬 소리로, 큰일났세유, 이주임 나릿댁으루 한 무리 몰려 왔습니다, 하고는 김대통영감의 말도 기다리지 않고 비틀비틀 광 쪽 어둠 속으로들 사라진다.
“아니 그댁에두?”
이런 입안 소리와 함께 김대통영감의 저고리 소매가 자르르 떨린다. 그 크디큰 대통이 몇 번 촛불에 번뜩인다. 그러는 김대통영감은 지금 자기가 들고 있는 촛불을 어떻게 처치해야 좋을지 몰라하는 것같았다.
김대통영감은 비로소 생각난 듯 촛불을 잊 앞에 당기어다가 헉헉거리는 입김으로 분다. 늘어진 코끝이 마지막으로 빛나고 껌벅 불빛과 함께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거기에는 다시는 그 흔들거리는 손도 그 크디큰 대통도 없었다.
―황순원, 「황소들」,『목넘이 마을의 개/곡예사 황순원전집 2』, 문학과지성사, 2013, pp.89∼108. passim.
13세 소년인 바우의 눈을 통해서 다른 인물들과 사건을 서술하고 있는「황소들」에서 농민들이 경찰서에 불을 지르는 장면 , 농민들이 ‘이 주임 집’을 습격하는 장면 , 장차 지주인 김대통 집으로 갈 것으로 예상되는 장면 등의 서사구조를 살펴보면 농민들을 억압하는 자와 속이는 자가 정치 권력과 지주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농촌문제가 자기 자신들 아닌 다른 누구의 손으로도 올바르게 해결될 수 없음을 깨달은 농민의 궐기를 그리고 있는”(염무웅, 「8·15직후의 한국문학:소설에 나타난 시대상(時代相)과 시대의식(時代意識)의 고찰(考察)」, 『민중시대의 문학』, 창작과비평사, 1984, p.268.)「황소들」은 A → B→ C→ D의 순서로 시간이 배열되어 있고, 소설의 각 장면 속에 회상하는 삽화(episode)가 삽입되어 현재와 과거의 사건을 교차시키고 있다.
제한적 전지적 작가 시점(selective omniscience)으로 씌어진「황소들」의 갈등(conflict)은 선량한 농민들과 공출을 미납했다고 농민을 잡아가는 자들, 즉 정치권력과 지주 등 위선적인 세력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
작가 황순원은 정치 권력과 지주에 의한 농민수탈이 해방된 지금에도 그대로 지속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농민의 생계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에까지 이르고 있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모순의 극복을 위해 감연히 떨쳐나선 한 떼 이름 없는 농민들을, 그들의 황소처럼 건강하고 씩씩한 모습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염무웅, 「8·15 직후의 한국문학:소설에 나타난 시대상(時代相)과 시대의식(時代意識)의 고찰(考察)」, 『민중시대의 문학』, 창작과비평사, 1984, p.268.
현재형 서술을 통해 해방 직후의 시대상을 핍진하게 묘사하고 있는「황소들」의 주제는 “광 속에 쌀가마니를 가뜩 들이쌓아놓구 몰래 일본이나 다른 데루 팔아먹는” 악덕 지주와 선량한 농민들을 괴롭히는 정치 권력에 대한 농민들의 분노와 반항의 정신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몇 가지 문학적 장치(literary device)를 사용했다.
「황소들」은 이 작품의 주인공인 농민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제목은 작품의 인물을 암시해주고 있다. 본문에 있는 ‘성난’이란 수식어를 앞에 붙이면 그대로 이 작품의 주제와 직결된다. 그런데 작자는 이 황소들의 성격을 ‘황소의 삽화’를 통하여 제시한다. 삽화 속의 황소는 충직하면서도 무서운 힘을 지닌 동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이 작품의 황소들의 성격이나 상징적인 이미지를 지닌 제목이다.
―신춘호, 「황순원의 ‘황소들’론」, 황순원 학회 편, 『황순원 연구총서 3』, 국학자료원, 2013, pp. 420∼421.
“외연적인 어법에 간단한 상징을 사용하여 비장한 토운(tone)을 살려내어 주제를 한층 효과적으로 드러낸”(신춘호, 「황순원의 ‘황소들’론」, p.432) 「황소들」은 채만식의 「논이야기」와 함께 “우리 신문학사상 가장 진지한 업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작품”(염무웅, 「8·15직후의 한국문학:소설에 나타난 시대상(時代相)과 시대의식(時代意識)의 고찰(考察)」, p.263)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전략---)
버스 속엔 아는 사람도 하나 없다. 대부분이 국민복들인데 한 사람도 그럴 듯한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한 사십 리 나와 저쪽에서 들어오는 버스와 마주치게 되었다. 이쪽 운전사가 팔을 내밀어 저쪽 차를 같이 세운다.
“어떻게 된 거야?”
“무에 어떻게 돼?”
“철원은 신문이 왔겠지?”
“어제 방송대루지 뭐.”
“잡음 때문에 자세들 못 들었어. 그런데 무조건 정전이라지?”
두 운전사의 문답이 이에 이를 때, 누구보다도 현은 좁은 틈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게 무슨 소리들이오?”
“전쟁이 끝났답니다.”
“뭐요? 전쟁이?”
“인전 끝이 났어요.”
“끝! 어떻게요?”
“글쎄, 그걸 잘 몰라 묻습니다.”
하는데 저쪽 운전대에서,
“결국 일본이 지구 만 거죠. 철원 가면 신문을 보십니다.”
하고 차를 달려 버린다. 이쪽 차도 갑자기 구르는 바람에 현은 펄석 주저앉았다.
“옳구나! 올 것이 왔구나! 그 지리하던 것이…….”
현은 코허리가 찌르르해 눈을 섬벅거리며 좌우를 둘러보았다. 확실히 일본 사람은 아닌 얼굴들인데 하나같이 무심들 하다.
“여러분은 운전수들의 대활 못 들었습니까?”
서로 두리번 거릴 뿐, 한 사,람도 응하지 않는다.
“일본이 지고 말었다면 우리 조선이 어떻게 된 걸 짐작을 허시겠어요?”
그제야 그것도 조선옷 입은 영감 한 분이,
“어떻게든 되는 거야 어디 가겠소? 어떤 세상이라고 똑똑히 모르는 걸 입을 놀리겠소?”
한다. 아까는 다소 흥미를 가지고 지껄이던 운전수까지,
“그렇지요 정말인지 물어보기만도 무시무시헌걸요.”
하고, 그 피곤한 주름살, 그 움푹 들어간 눈으로 운전하는 표정뿐이었다.
현은 고개를 푹 수그렸다. 조선이 독립된다는 감격보다도 이 불행한 동포들의 얼빠진 분이 우선 울고 싶게 슬펐다.
“이게 나 혼자 꿈이나 아닌가?”
현은 철원에 와서야 꿈 아닌 ‘경성일보’를 보았고 찾을 만한 사람들을 만나 굳은 악수와 소리나는 웃음을 울었다. 하늘은 맑아 박꽃 같은 구름송이, 땅에는 무럭무럭 자라는 곡식들, 우거진 녹음들, 어느 것이고 우러러 절하고 소리지르고 날뛰고 싶었다.(---후략---)
─이태준,「해방전후」,『이태준 전집 3·중·단편』, 깊은샘, 1988, pp.181∼182.
발표 당시 ‘한 작가의 수기’라는 부제(副題)가 붙어 있는「해방전후」는 이태준이 월북하기 직전인 1946년 8월 문학가 동맹의 기관지였던 『문학』 창간호에 발표한 작품으로 작가가 “소위 순수문학과 결별하고, 문학가동맹에 가담한 자기의 심리적인 과정을 매우 교묘히 합리화 하고 있는” (김윤식, 『한국현대문학사:1945∼1980』, 일지사, 1987, p.28) 단편소설이다. 조선문학가동맹이 제정한 해방 기념 조선 문학상의 제1회 수상작인 「해방전후」는 해방을전후한 1~2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가 자신이 투영된 인물인‘현(玄)’은 서울에서 철원으로 소개되어 있다가 급히 상경하라는 친구의 전보를 받고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온다. 서울→철원 →서울로 옮겨가는 공간적 배경을 가진「해방전후」는 해방 전후 젊은 세대 지식인과 나이든 세대 지식인의 이념적 갈등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묘사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현’(젊은 세대의 지식인)과 구시대적 가치를 추구하는 선비 김 직원(나이든 세대의 지식인)과의 만남과 이별을통해 해방 전후의 상황과 시대정신을 그렸다.「해방전후」를 통해 해방 전후의 철원(농촌)과 서울(도시)의 상황과 격동의 시기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내면풍경를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다.
김동리
해방공간에서 구(舊) 카프계를 중심으로 한 문인이 조직한 문학가동맹(文學家同盟)에 맞서기 위해 조직된 것이 청년문학가협회였다. 문학의 정치에 대한 예속화를 반대한 청년문학가협회의 지향(指向)은 김동리의 「순수문학의 진의(眞義)」와 조지훈의 「해방시단(解放詩壇)의 과제」 등을 통해 잘 드러나 있다. “한국인으로서의 자기정체 유지를 지상과제로 삼는 전통지향적 보수주의 입장을 대표한 작가인”(이동하, 『현대소설의 정신사적 연구』, 일지사, 1989, p.42) 김동리는 「순수문학(純粹文學)의 진의(眞義)-민족문학(民族文學)의 당면과제(當面課題)로서」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순수문학(純粹文學)의 진의(眞義)
-민족문학(民族文學)의 당면과제(當面課題)로서
최근 문단(文壇) 일부와 일반 사회 인사(人士) 속에는 순수문학(純粹文學)이란 것을 그 소극적 일면에서만 보고 마치 탐미주의(眈美主義)나 상아탑류(流)의 문학(文學)인 것같이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나는 그 진(眞義)를 밝힘으로써 이러한 오류(誤謬)와 편견(偏見)을 수정(修正)하려 한다.
순수문학이란 한 마디로 말하면 문학정신의 본령(本領) 정계(正系)의 문학이다. 문학정신의 본령(本領)이란 무론 인간성 옹호에 있으며 인간성 옹호가 요청되는 것은 개성향유(個性享有)를 전제(前提)한 인간성의 창조의식(創造意識)이 신장(伸張)되는 때이니만큼 순수문학(純粹文學)의 본질(本質)은 언제나 휴머니즘이 기조(基調)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오늘날 내가 말하는 순수문학(純粹文學)의 본질적(本質的) 기조(基調)가 될 휴머니즘이란 어떠한 역사적 필연성(必然性)과 위치에 서는 것인가. 간단히 요약(要約)해 보면 우선 서양적(西洋的)인 범주(範疇)에 제한하여 다음의 3기(三期)로 나눌 수 있다. 즉 제1기(第一期)는 고대(古代)의 휴머니즘이니 희랍계(系)로는 소클라테스, 플라톤을 대표로 하는 이성적(理性的) 인간 정신이 그것이며 헤브라이계(系)로는 기독(基督)을 대표로 하는 고차원적(高次元的) 영혼 생장(生長)의 인간확립이 그것인데, 이 시기의 내용적 특징은 신화적(神話的) 미신적 (迷信的) 궤변(詭辯)과 계율(戒律)에 대한 항거(抗拒)와 타파(打破)로써 가장 원본적(原本的)인 인간성(人間性)의 기초가 확립되었던 것이요, 제2기(第二期)는 르네상스로서 표현된 소위 신본주의(神本主義)에 대한 인본주의(人本主義)의 승리(勝利)가 그것이다. 이 제2기(第二期) 휴머니즘의 특징은 신본주의(神本主義)에 대한 반발(反撥)로써 시작되었으니만큼 제1기적(第一期的) 휴머니즘의 부흥(復興)이라고 는 해도 특히 헬레니즘계(系)의 이성적(理性的) 인간정신(人間精神)이 위주(僞主)되었던 것이며, 이 이성적(理性的) 인간정신(人間精神)의 개화(開花)로써 과연 오늘날의 난만한 과학 시대로 초래(招來)한 것도 사실이나 현대 과학정신의 구경적(究竟的) 발달과 발화(發花)의 난숙(爛熟)은 다시 공식주의적(公式主義的) 번쇄 이론(煩瑣理論)과 과학주의적 기계관(器械觀)을 산출(産出)하게 된 것이니 고대(古代)의 신화적(神話的) 우상(偶像), 중세(中世)의 계율화(戒律化)한 신성(神性) 등에 대치(代置)된 새로운 현대적 우상(偶像)이 즉 '과학(科學)'이란 이름으로 불리어지게 된 것이요, 특히 과학주의의 기계관의 결정체(結晶體)인 유물사관(唯物史觀)이 그것이다. 이리하여 철학(哲學)에 있어 니이체, 하이데거, 딜타이, 문학에 있어 헤세, 만, 지이드, 헉슬리 등으로써 제3기(第三期) 휴머니즘에의 지향(志向)이 선명(宣明)되었고 오늘날 세계적으로 팽배(澎湃)한 데모크라시의 조류(潮流)도 개성(個性)의 자유와 인간성의 존엄(尊嚴)을 목적하는 휴머니즘의 세계사적(世界史的) 의욕(意欲)의 일면으로서 간주(看做)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하(現下) 한국에는 정치적 사회적 특수성과 이에 대한 부자연한 관련에서 지금 바야흐로 과학주의적 기계관이 성행(盛行)하는 후진사회 특유(特有)의 증상(症狀)을 정출(呈出)하고 있는 바 과거의 경향파(傾向派) 계열(系列)의 문학인(文學人)을 중심으로 한 문학동맹(文學同盟) 산하(傘下)의 다수(多數) 문학인(文學人)들에 의하여 ‘과학적 세계관’‘새로운 리얼리즘’‘과학적 창작방법(創作方法)’ 등등 하는 일련의 공식론(公式論)이 유물사관(唯物史觀) 체계(體系)에서 연속적으로 추출(抽出)되고 있는 현상(現象)이 그것이다.(---하략---)
-김동리, 「순수문학(純粹文學)의 진의(眞義)-민족문학(民族文學)의 당면과제(當面課題)로서」,『김동리 대표작 선집 6 시·평론·수필·자전기』, 삼성출판사, 1978, pp. 70∼71.
김동리는 니이체· 하이데거· 헤세· 토마스 만, 그리고 지드 등이 지향한 ‘제3기(第三期) 휴머니즘’이란 과학이라는 우상에 대한 숭배열로 황폐해진 인간가치의 회복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 김동리는 “이 제3기 휴뮤머니즘의 민족 단위의 발현이 곧 순수문학이라 주장하고 이 제3기 휴머니즘은 ‘동서정신(東西情神)의 창조적 지양’에서 출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김윤식,『한국현대문학사:1945∼1980』, 일지사, 1987, p.36). 이것은 깅동리가한국적 입장에서 말하는 '생명주의'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동리의 「순수문학의 진의-민족문학의 당면과제로서」등 우파민족주의(右派民族主義) 문학이론을 대변하는 일련의 순수문학론에 대해 좌파민족주의(左派民族主義) 계열의 김병규 등이 비판하고 나섰다.
순수문제와 휴머니즘
김병규
(---전략--)
나는 이것[순수문학]을 한 개의 문학관으로 보려 한다. 만일 이만한 나의 허용까지 거부하고, 이러한 순수문학을 문학의 전부라고 우긴다면 그것은 문학도 아무것도 아닌 멍청한 고집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문학관이 ―문학유파라도 좋다―어찌하여 19세기 말엽을 휩쓸 수 있었고 오늘날에 와서는 아무리 우겨도 차라리 한 개의 넌센스처럼 보일 뿐 도저히 현실적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인가.
나는 누구나 다 아는 이런 의문에 헛되이 장황한 해설을 붙일 필요도 없을 듯하다. 다만 김동리씨가 이상 말라르메, 발레리 조류의 문학사조를 한 개 문학관으로서 검토하고 구명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문학에 섭취해온 것은 캐보려 하지 않고 덮어놓고 그것을 전적으로 오늘날 조선문단의 주류로서 따오려는데, 오히려 순수문학에 대한 씨의 이해를 의심케 하는 동시에 씨의 논리가 엉뚱한 비약을 보이고 있는 것같이 생각된다. 씨는 확실히 문학과 순수문학을 동일시하려고 들지만 순수문학은 말라르메, 발레리에서 보는 바와 같이 문학 가운데 한 개 문학으로서의 자리를 가질 수는 있을지언정, 결코 문학 전체가 아니며 또한 전체가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러할 때 비로소 현실적 과제로서 제시된 오늘날의 조선 민족문학 가운데 그러한 문학관이 주장될 수 없나가 옳게 비판될 것이며, 이미 어느 분도 지적한 바와 같이 구체적 역사적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한낱 습속대로 구두선(口頭禪)을 되풀이 하는 비현실적 고집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일제의 압정 아래서는 정당성을 가졌더라도 일제가 물러갔다는 전환된 이 현실 아래서는 그대로 정당성을 요구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실 자체가 전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영원불변성의 문학관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아무런 생명도 가질 수 없는 형이상학에 떨어지고 마는 때문이다. (---하략---)
―김병규, 「순수문제와 휴머니즘」, 신형기 엮음, 『해방 3년의 비평문학』, 세계, 1988, pp.334∼335.
김동리는 “문학작품의 의의(義意)와 가치(價値)에 수억 수만의 등차(等差)가 있을 것과 같이 '문학하는 것'의 단계와 등차도 수억 수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가장 높고 참된 의미(意味)에 있어 '문학하는 것'이란 구경적(究竟的) 생(生)의 형식(形式)이라 한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바 '문학하는 것'의 최고 지향(指向)을 말한 데 불과한 것이다”(김동리, 「문학하는 것에 대(對)한 소고(小考)」(『백민』 13집, 1948년 3월, p.45)라고 주장했다.이에 대해 김윤식은 “'생의 구경'이란 운명과 동의어다. 즉 운명의 탐구 형식이 참된 문학으로 된다. 그리고 생의 긍정(肯定)에서 출발하는 이상, 그 운명이 아무리 비참한 것일지라도 극복의 의지를 포함하는 것, 그것이 김동리에겐 참된 문학인 셈이다”. (김윤식,『한국현대문학사:1945∼1980』, 일지사, 1987, p.39)라고 말했다. 김동리의 운명의 탐구 형식이 작품으로 형상화 된 것이 「역마(驛馬)」이다.
'화개장터'의 냇물은 길과 함께 흘러서 세 갈래로 나 있었다. 한 줄기는 전라도 구례(求禮) 쪽에서 오고 한 줄기는 경상도 쪽 화개협(花開峽)에서 흘러 내려, 여기서 합쳐서, 푸른 산과 검은 고목 그림자를 거꾸로 비치인 채, 호수같이 조용히 돌아, 경상 전라 양도의 경계를 그어 주며, 다시 남으로 남으로 흘러내리는 것이, 섬진강(蟾津江) 본류(本流)였다.
하동(河東), 구례, 쌍계사(雙磎寺)의 세 갈래 길목이라 오고가는 나그네로 하여, '화개장터'엔 장날이 아니라도 언제나 흥성거리는 날이 많았다. 지리산(智異山) 들어가는 길이 고래로 허다하지만, 쌍계사 세이암(洗耳岩)의 화개협 시오 리를 끼고 앉은 '화개장터'의 이름이 높았다. 경상 전라 양 도 접경이 한두 군데일 리 없지만 또한 이 '화개장터'를 두고 일렀다. 장날이면 지리산 화전민(火田民)들의 더덕, 도라지, 두릅, 고사리들이 화갯골에서 내려오고 전라도 황아 장수들의 실, 바늘, 면경, 가위, 허리끈, 주머니끈, 족집게 골백분 들이 또한 구렛길에서 넘어오고 하동길에서는 섬진강 하류의 해물 장수들이 김, 미역, 청각, 명태, 자반 조기, 자반 고등어들이 올라오곤 하여 산협(山峽)치고는 꽤 성한 장이 서는 것이기도 했으나, 그러나 '화개장터'의 이름은 장으로 하여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중략---)
"천성 제 애비 팔자를 따라갈려는 게지."
할머니가 어머니를 좀 비꼬아 하는 말이었으나 거기 깊은 원망이 든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말엔 각별나게 신경을 쓰는 옥화는,
"부모 안 닮는 자식 없단다. 근본은 다 엄마 탓이지."
도리어 어머니에게 오금을 박고 들었다.
"이년아 에미한테 너무 오금박지 마라. 남사당을 붙었음, 너를 버리고 내가 그놈을 찾아갔냐, 너더러 찾아 달라 성화를 댔냐?"
그러나 서른 여섯 해 전에 꼭 하룻밤 놀다 갔다는 젊은 남사당의 진양조 가락에 반하여 옥화를 배게 된 할머니나, 구름같이 떠돌아다니는 중과 인연을 맺어 성기를 가지게 된 옥화나 다같이 '화개장터'주막에 태어났던 그녀들로서는 별로 누구를 원망할 턱도 없는 어미 딸이었다. 성기에게 역마살이 든 것은 어머니가 중 서방을 정한 탓이요, 어머니가 중 서방을 정한 것은 할머니가 남사당에게 반했던 때문이라면 성기의 역마 운도 결국은 할머니가 장본이라, 이에 할머니는 성기에게 중질을 시켜서 살을 때우려고도 서둘러 보았던 것이고, 중질에서 못다푼 살을, 이번에는 옥화가 그에게 책장사라도 시켜서 풀어 보려는 속셈인 것이었다. 성기로서도 불경(佛經)보다는 암만해도 이야기 책에 끌리는 눈치요, 중질보다는 차라리 장사라도 해보고 싶다는 소청이기도 하여, 그러나 옥화는 꼭 화개장만 보기로 다짐까지 받은 뒤, 그에게 책전을 내어주기로 했던 것이었다.
(---중략---)
"오빠, 편히 사시오."
이렇게 두 번째 하직을 하는 순간까지도, 계연의 그 시뻘건 두 눈은 역시 성기의 얼굴에서 그 어떤 기적과도 같은 구원만을 기다리는 것이었고 그러나, 성기는 그 자리에 그냥 주저앉아 버릴 뻔하던 것을 겨우 버드나무 가지를 움켜잡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
계연의 시뻘겋게 상기된 얼굴은, 옥화와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잊은 듯이 성기의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으나, 버드나무에 몸을 기대인 성기의 두 눈엔 다만 불꽃이 활활 타오를 뿐, 아무런 새로운 명령도 기적도 나타나지 않았다.
"오빠, 편히 사시오."
하고, 거의 울음이 다 된, 마지막 목소리를 남기고 돌아선 계연의 저만치 가고 있는 항라 적삼을, 고운 햇빛과 늘어진 버들가지와 산울림처럼 울려 오는 뻐꾸기 울음 속에, 성기는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성기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게 된 것은 이듬해 우수(雨水) 경칩(驚蟄)도 다 지나, 청명(淸明) 무렵의 비가 질금거릴 즈음이었다. 주막 앞에 늘어선 버들가지는 다시 실같이 푸르러지고 살구, 복숭아, 진달래들이 골목 사이로 산기슭으로 울긋불긋 피고 지고 하는 날이었다.
아들의 미음 상을 차려 들고 들어온 옥화는 성기가 미음 그릇을 비우는 것을 보자, 이렇게 물었다.
"아직도 너, 강원도 쪽으로 가 보고 싶냐?"
"……"
성기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장가들이 나랑 같이 살겠냐?"
"……"
성기는 역시 고개를 돌렸다.
―그해 아직 봄이 오기 전, 보는 사람마다 성기의 회춘을 거의 다 단념하곤 하였을 때, 옥화는 이왕 죽고 말 것이라면, 어미의 맘속이나 알고 가라고 그래, 그 체장수 영감은, 서른 여섯 해 전 남사당을 꾸며 와 이 '화개장터'에 하룻밤을 놀고 갔다는 자기의 아버지임에 틀림이 없었다는 것과, 계연은 그 왼쪽 귓바퀴 위의 사마귀로 보아 자기의 동생임이 분명하더라는 것을, 통정하노라면서, 자기의 왼쪽 귓바퀴 위의 같은 검정 사마귀까지를 그에게 보여 주었다.
"나도 처음부터 영감이 '서른 여섯 해 전'이라고 했을 때 가슴이 섬짓하긴 했다. 그렇지만 설마 했지, 그렇게 남의 간을 뒤집어 놀 줄이야 알았나. 하도 아슬해서 이튿날 악양으로 가 명도까지 불러봤더니 요것도 남의 속을 빤히 듸려다나 보는 드키 재줄대는구나, 차라리 망신을 했지."
옥화는 잠깐 말을 그쳤다. 성기는 두 눈에 불을 켜듯 한 형형한 광채를 띠고, 그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차라리 몰랐으면 또 모르지만 한 번 알고 나서야 인륜이 있는듸 어찌겠냐."
그리고 부디 에미 야속타고나 생각지 말라고 옥화는 아들의 뼈만 남은 손을 눈물로 씻었다. 옥화의 이 마지막 하직같이 하는 통정 이야기에 의외로도 성기는 도로 힘을 얻은 모양이었다. 그 불타는 듯한 형형한 두 눈으로 천장을 한참 바라보고 있던 성기는 무슨 새로운 결심이나 하듯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있었다.
아버지를 찾아 강원도 쪽으로 가 볼 생각도 없다. 집에서 장가들어 살림을 할 생각도 없다, 하는 아들에게, 그러나, 옥화는 이제 전과 같이 고지식한 미련을 두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어쩔랴냐? 너 졸 대로 해라."
"……"
성기는 아무런 말도 없이 도로 자리에 드러 누워 버렸다.
그리고 나서 한 달포나 넘어 지난 뒤였다.
성기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 산나물이 화갯골에서 연달아 자꾸 내려오는 이른 여름의 어느 장날 아침이었다. 두릅회에 막걸리 한 사발을 쭉 들이키고 난 성기는 옥화더러,
"어머니 나 엿판 하나만 마춰 주."
하였다.
"……"
옥화는 갑자기 무엇으로 머리를 얻어 맞은 듯이 성기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지도 다시 한 보름이나 지나, 뻐꾸기는 또다시 산울림처럼 건드러지게 울고, 늘어진 버들가지엔 햇빛이 젖어 흐르는 아침이었다. 새벽녘에 잠깐 가는비가 지나가고, 날은 다시 유달리 맑게 개인 '화개장터'삼거리길 위에서, 성기는 그 어머니와 하직을 하고 있었다. 갈아입은 옥양목 고의 적삼에, 명주수건까지 머리에 질끈 동여매고 난 성기는, 새로 마춘 새하얀 나무 엿판을 걸빵해서 느직하게 엉덩이 즈음에다 걸었다. 윗목판에는 새하얀 가락엿이 반 넘어 들어 있었고, 아랫 목판에는 팔다 남은 이야기책 몇 권과 간단한 방물이 좀 들어 있었다.
그의 발 앞에는, 물과 함께 갈리어 길도 세 갈래로 나 있었으나, 화갯골 쪽엔 처음부터 등을 지고 있었고, 동남으로 난 길은 하동, 서남으로 난 길이 구례, 작년 이맘 때도 지나 그녀가 울음 섞인 하직을 남기고 체장수 영감과 함께 넘어간 산모퉁이 고갯길은 퍼붓는 햇빛 속에 지금도 환히 장터 위를 굽이 돌아 구례 쪽을 향했으나, 성기는 한참 뒤 몸을 돌렸다. 그리하여 그의 발은 구례 쪽을 등지고 하동 쪽을 향해 천천히 옮겨졌다.
한 걸음, 한 걸음, 이 발을 옮겨 놓을수록 그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어. 멀리 버드나무 사이에서 그의 뒷모양을 바라보고서 있을 어머니의 주막이 그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갈 무렵 하여서는, 육자배기 가락으로 제법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가고 있는 것이었다.
―김동리, 「역마」, 『김동리대표작선집 1·단편선집』, 삼성출판사, 1978, pp. 214∼231 passim.
한곳에 머물러 지내지 못하고 늘 분주하게 떠돌아다니도록 된 액운(厄運)인 ‘역마살(驛馬煞)’로 표상되는 토속적인 운명관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김동리의 운명론적 세계관을 잘 보여주는「역마(驛馬)」(『백민』, 1948년 1월) 의 발단 부분에서 그는‘화개장터’라는 공간의 위치와 그 인상을 개괄적으로 묘사한 후 그곳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 등을 묘사하고 있다. ‘역마(驛馬)’란 당사주(唐四柱)에서 말하는 역마살을 뜻한다. 공간의 묘사와‘역마’라는 제목이 서로 연결되어 작품 전체를 통어(統御)하고 있는 「역마」에서 작가가 형상화한 인물들의 삶은 한결같이 자신의 의지나 선택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역마살에 매여 있다. 주막을 하는 어머니 옥화가 떠돌이중과 눈이 맞아 낳은 자식인 성기와 어머니가 떠돌이 남사당을 보아 낳았던 딸인 계연과의 만남과 헤어짐의 장소인 화개장터는 역마살이 낀 장돌뱅이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이 작품의 주제적 배경이 되고 있다.
역마살에 매여 있는 성기와 계연이 운명을 벗어나는 길은 둘이 결혼을 하여 일정한 곳에 정착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성기와 계연이 이복 형제지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김윤식은 「역마」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팔자소관이라는 동양적 혹은 한국적 운명관을 보여 주는 작품인 바, 운명에 패배당하는 것같이 보이지만 한국인의 의식 속에 깊이 잠긴 어둠의 측면과 전통이 하나의 질서관으로 형상화된 것이 그것이다. 즉 성기로 하여금 운명관에 순종케 함으로써 구제를 제시하려 함인 것이다. 그것은 개성과 생명의 여율(呂律)을 말한다.
-김윤식,『한국현대문학 명작 사전』, 일지사, 1979, p.231.
역마살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새하얀 나무 엿판을 걸빵해서 느직하게 엉덩이 즈음에다 걸고 유랑의 길을 떠나는 성기의 묘사를 통해 김동리는 운명에 순응함으로써 구원에 이른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한국인들의 운명관을 해명하고 있는 것이다.
(---전략---)
어느 해 봄철이었다. 이 목넘이 마을 서쪽 산밑 간난이네 집 옆 방앗간에 웬 개 한 마리가 언제 방아를 찧어 보았는지 모르게, 겨 아닌 뽀얀 먼지만이 앉은 풍구[바람을 일으켜 곡물에 섞인 먼 지나 겨, 쭉정이 등을 제거하는 농기구] 밑을 혓바닥으로 핥고 있었다. 작지 않은 중암캐였다. 그리고 본시는 꽤 고운 흰 털이었을 것 같은, 지금은 황톳물이 들어 누르칙칙하게 더러워진 이 개는, 몹시 배가 고파 있는 듯했다. 뒷다리께로 달라붙은 배는 숨쉴 때마다 할딱할딱 뛰었다. 무슨 먼 길을 걸어온 것도 같았다. 그러고 보면 목에 무슨 긴 끈 같은 것을 맸던 자리가 나 있었다. 이렇게 끈에 목을 매여 가지고 머나먼 길을 왔다는 듯이.
전에도 간혹 서북간도 이사꾼이 이런 개의 목에다 끈을 매 가지고 데리고 지나간 일이 있은 것처럼, 이 개의 주인도 이런 서북간도 나그네의 하나가 아닐까. 원래 변변치 않은 가구 중에서나마 먼 길을 갖고 가지 못할 것은 팔아서 노자로 보태고, 그래도 짐이라고 꾸려가지고 나설 때 식구의 하나인 양 따라나서는 개를 데리고 떠난 것이리라. 애가 있어 개를 기어코 자기네가 가는 곳까지 데리고 가자고 졸라 대어 데리고 나섰대도 그만이다. 그래 이런 신둥이개를 데리고 나서기는 했지만, 전라도면 전라도, 경상도면 경상도 같은 데서 이 평안도까지 오는 새에, 해가지고 떠나온 기울떡 같은 것도 다 떨어져, 오는 길에서 빌어먹으며 굶으며 하는 동안, 이 신둥이에게까지 먹일 것은 없어, 생각다 못해 길가 나무 같은 데 매놓았었는지도 모른다. 누가 먹일 수 있는 사람은 풀어다가 잘 기르도록 바라서. 그래 신둥이는 주인을 찾아 울 대로 울고, 있는 힘대로 버두룩거리고 하여 미처 누구에게 주워지기 전에 목에 맸던 끈이 끊어져 나갔는지도 모른다. 이래서 주인을 찾아 헤매다가 이 목넘이마을로 흘러 들어왔는지도.
혹은 서북간도 나그네가 예까지 오는 동안 자기네가 가는 목적지까지 데리고 갈 수 없음을 깨닫고 어느 동네를 지나다 팔아 버렸는지도 모른다. 혹은 또 끼니를 얻어 먹은 집의 신세 갚음으로 잘 기르라고 주고 갔는지도. 그것을 신둥이가 옛주인을 못 잊어 따라 나섰다가 이 마을로 흘러 들어왔는지도.
그러고 보면 또 신둥이 몸에 든 황톳물도 어쩐지 평안도 땅의 황토와는 다른 빛깔 같았다. 그리고 지금 방앗간 풍구 밑을 아무리 핥아도 먼지뿐인 것을 안 듯 연자맷돌께로 코를 끌며 걸어가는 뒷다리 하나가 사실 먼 길을 걸어온 듯 쩔룩거렸다.
신둥이는 연자맷돌도 짤짤 핥아 보았으나 거기에도 덮여 있는 건 뽀얀 먼지뿐이었다. 그래도 신둥이는 그냥 한참이나 그것을 핥고 나서야 핥기를 그만두고, 다시 코를 끌고 다리를 쩔룩이며, 어쩌면 서북간도 나그네인 자기 주인이 어지러운 꿈과 함께 하룻밤을 머물고 갔을지도 모르는, 그러니까 어쩌면 이 방앗간에서들 자기네의 가련한 신세와 더불어 길가에 버려두고 온 이 신둥이의 일을 걱정했을지도 모르는, 이 방앗간 안을 이리저리 다 돌고 나서 그 곳을 나오는 것이었다.
방앗간을 나온 신둥이는 바로 옆인 간난이네 집 수수깡바잣문 틈으로 들어갔다. 토방 밑에 엎디어 있던 간난이네 누렁이가 고개를 들고 일어서더니 낯설다는 눈치로 마주 나왔다. 신둥이는 저를 물려고 나오는 줄로 안 듯 꼬리를 찰싹 올라붙은 배 밑으로 껴 넣고는 쩔룩거리는 걸음으로 달아나오고 말았다.
게딱지 같은 오막살이들이 끝난 곳에는 채전이었다. 신둥이는 채전 옆을 지나면서 누렁이가 뒤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을 안 다음에도 그냥 쩔룩거리는 반 뜀걸음으로 달렸다. 채전이 끝 난 곳은 판이 고르지 못한 조각뙈기 밭이었다. 조각뙈기 밭들이 끝난 곳은, 가물에는 물 한 방울 남지 않고 조약돌이 그냥 드러나는, 지금은 군데군데 끊긴 물이 괴어 있는 도랑이었다. 신둥이는 여기서 괴어 있는 물을 찰딱찰딱 핥아먹었다.
(---중략---)
밤이 되기를 기다려 크고 작은 동장은 서쪽 산밑 동네로 와, 차손이네 마당에 사람들을 모아 가지고 제각기 몽둥이 하나씩을 장만해 들게 했다. 그 속에 간난이 할아버지도 끼어 있었다. 간난이 할아버지는 물론 그 신둥이 개가 전과 달라졌다고는 생각지 않았으나 이 개가 그동안도 자기네 집 옆 방앗간에 와 자곤 했으면 으레 자기네 귀한 뒷간의 거름을 축냈을 것만은 틀림없는 일이니,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이 기회에 때려 잡아버리리라는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한편 동네 사람 누구나가 그렇듯이 이런 때 비린 것이라도 좀 입에 대어 보리라는 생각도 없지 않아서.
밤이 퍼그나[퍽이나] 깊어 망을 보러 갔던 차손이아버지가 지금 막 산개가 방앗간으로 들어갔다는 걸 알렸다. 동네사람들은 벌써 제각기 입안에 비린내 맛까지 느끼며 발소리를 죽여 방앗간으로 갔다. 크고 작은 동장은 이 동네 사람들과는 꽤 먼 사이를 두고 떨어져 서서 방앗간 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동네사람들이 방앗간의 터진 두 면을 둘러쌌다. 그리고 방앗간 속을 들여다보았다. 과연 어둠 속에 움직이는 게 있었다. 그리고 그게 어둠 속에서도 흰 짐승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분명히 그놈의 신둥이개다. 동네사람들은 한 걸음 한 걸음 죄어들었다. 점점 뒤로 움직여 쫓기는 짐승의 어느 한 부분에 불이 켜졌다. 저게 산개의 눈이다. 동네사람들은 몽둥이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이 속에서 간난이할아버지도 몽둥이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한 걸음 더 죄어들었다. 눈앞의 새파란 불이 빠져 나갈 틈을 엿보듯이 휙 한 바퀴 돌았다. 별나게 새파란 불이었다. 문득 간 난이할아버지는 이런 새파란 불이란 눈앞에 있는 신둥이개 한 마리의 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여럿의 몸에서 나오는 것이 합쳐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지금 이 신둥이개의 뱃속에 든 새끼의 몫까지 합쳐진 것이라는. 그러자 간난이할아버지의 가슴속을 흘러 지나가는 게 있었다. 짐승이라도 새끼 밴 것을 차마?
이때에 누구의 입에선가, 때레라! 하는 고함소리가 나왔다. 다음 순간 간난이할아버지의 양 옆 사람들이 욱 개를 향해 달려들며 몽둥이를 내리쳤다. 그와 동시에 간난이할아버지는 푸른 불꽃 이 자기 다리 곁을 빠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뒤이어 누구의 입에선가, 누가 빈틈을 냈어? 하는 흥분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저마다, 거 누구야? 거 누구야? 하고 못마땅해 하는 말소리 속에 간난이할아버지의 턱밑으로 디미는 얼굴이 있어,
"아주반이웨다레[아주버님이시군요]."
하는 것은 동장네 절가였다.
그러자 저편 어둠 속에서 궁금한 듯 큰 동장의,
"어떻게들 됐노?"
하는 소리가 들렸다.
"파투웨다."
절가의 말에 크고 작은 동장이 한꺼번에 지르는 목소리로,
"파투라니?"
하는 소리에 이어 큰 동장이 이리로 걸어오는 목소리로,
"틈새를 낸 놈이 누구야?"
하는 결난[성난] 소리가 들려 왔다.
간난이할아버지는 옆의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좀 뒤에 역시 큰 동장의 결난 목소리로,
"늙은 것은 뒈데야[뒈져야] 해, 뒈데야 해."
하는 소리가 집안까지 들려 왔다.
이런 일이 있은 지 한 달쯤 뒤, 가을도 다 끝나고 이제 곧 겨울 나무 준비로 바쁜 어느 날, 간난이할아버지는 서산 너머의 옛날부터 험한 곳이라고 해서 좀처럼 나무꾼들이 드나들지 않는, 따라서 거기만 가면 쉽게 나무 한 짐을 해 올 수 있는 여웃골로 나무를 하러 갔다. 손쉽게 나무 한 짐을 해 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무심코 길 한옆에 눈을 준 간난이할아버지는 거기 웬 짐승의 새끼가 뭉켜 있는 걸 보았다. 이게 범의 새끼나 아닌가 하고 놀라 자세히 보니, 그것은 다른 것 아닌 잠든 강아지들이었다. 그리고 저만큼에 바로 신둥이개가 이쪽을 지키고 서 있는 것이었다. 앙상하니 뼈만 남아 가지고.
간난이할아버지가 강아지께로 가까이 갔다. 다섯 마린가 되는 강아지는 벌써 한 스무 날은 넉넉히 됐을 성싶었다. 그러자 간난이할아버지는 다시 한 번 속으로 놀라고 말았다. 잠이 들어 있는 다섯 마리 강아지 속에는 틀림없는 누렁이가, 검둥이가, 바둑이가 섞여 있는 게 아닌가. 그러나 다음 순간, 이건 놀랄 일이 아니라 응당 그럴 일이라고, 그 일견 험상궂어 뵈는 반백의 텁석부리 속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었다. 좀만에 그곳을 떠나는 간난이 할아버지는 오늘 예서[여기서] 본 일은 아무한테나, 집안 사람한테도 이야길 말리라 마음먹었다.
이것은 내 중학 이삼 년 시절, 여름방학 때 내 외가가 있는 목넘이마을에 가서 들은 이야기로, 그 때 간난이할아버지와 김선달과 차손이아버지가 서산 앞 우물가 능수버들 아래에 일손을 쉬며 와 앉아,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끝에 한 이야기다. 간난이할아버지가 주가 되어 이야기를 해 나가는 도중 벌써 수삼 년 전 일이라, 이야기의 앞뒤가 바뀐다든가 착오가 있으면 서로 바로잡고 빠지는 대목은 서로 보태 가며 하는 것이었다.
간난이할아버지는 여웃골에서 강아지를 본 뒤로부터는 한층 조심해서, 누가 눈치 채지 못하게 나무하러 가서는 이 강아지들을 보는 게 한 재미였다. 사람이 먹기에도 부족한 보리범벅이었으나, 그 부스러기를 집안 사람 몰래 가져다 주기도 했다. 아주 강아지가 밥을 먹게쯤 됐을 때, 간난이할아버지는 집안 사람들 보고 아무곳 아무개한테서 얻어 오는 것이라 하며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내려왔다. 한동네 곱단이네도 어디서 얻어 준다고 하고 한 마리 안아다 주었다. 그리고 여웃골에서 그냥 갈 수 있는 절골 사는 아무개네도 한 마리, 서젯골 사는 아무개네도 한 마리, 이렇게 한 마리씩 다섯 마리를 다 안아다 주었다.
이런 이야기 끝에, 간난이할아버지는 지금 자기네 집에 기르는 개가 그 신둥이의 증손녀라는 말과 원체 종자가 좋아서 지금 목넘이마을에서 기르는 개란 개는 거의 다 이 신둥이의 증손이 아니면 고손이라고 했다. 크고 작은 동장네 두 집에서까지도 요새 자기네 개가 낳은 신둥이개의 고손자를 얻어 갔다는 말도 했다. 이런 말을 하는 간난이할아버지는 이제는 아주 흰서릿발이 된 텁석부리 속에서 미소를 띄우는 것이었다.
내가, 그 신둥이 개는 그 뒤에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더니, 간난이할아버지는 금세 미소를 거두며, 그 해 첫겨울 어느 사냥꾼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사실 그 후로는 통 보지를 못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공연한 것을 물어 보았구나 했다.
―황순원, 「목넘이 마을의 개」, 『목넘이 마을의 개/ 곡예사 황순원전집 2』, 문학과지성사, 2013, pp.131∼154. passim.
“혼탁한 세상 속에서 따뜻한 시각으로 생명의 외경스러움을 응대하는 작가의 태도를 반영하고 있는”「목넘이 마을의 개」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그 서술 시점이 더 효율적인 것은 주로 ‘신둥이’라는 흰색개의 생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는 데 있다.”(김종회, 「단단한 서정성과 문학적 완전주의:황순원과 그의 단편들」,『문학과 전환기의 시대정신』, 민음사, 1997, p.213.)
어느 날, 동서남북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어디를 가려 해도 거쳐야만 하는 평안도의 목넘이마을에 누런 황토물이 들고 뼈만 앙상한 신둥이[‘흰둥이’의 평안도 방언]개가 나타난다. 오랜 굶주림에 지친 신둥이는 먹을 것을 구하려 간난이네집 옆 방앗간에 머물면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쌀겨를 핥고, 동네 개들의 구유에 남은 밥으로 간신히 기운을 차린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에 띄어 미친개로 몰려 동네에서 내쫓기는 신세가 된다.
평안도 어느 산간 목넘이 마을을 공간적 배경으로 한 단편소설「목넘이 마을의 개」(『개벽』, 1948년 12월)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씌어졌으나 작품의 결말 부분의 에필로그는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씌어진 액자소설이다. 다시 말해 바깥이야기는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씌어졌고, 안이야기는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씌어졌다고 볼 수 있다.「목넘이 마을의 개」에는 생명을 중시하는 인물인 간난이할아버지와 생명을 경시하는 인물인 동장이 등장한다. 이 대조적인 인물들을 통해 작가는 생명에 대한 외경심과 한민족의 강인한 생명력을 주제화하고 있다. “이야기의 본질적인 특성인 구술성과 공동체적 특징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목넘이 마을의 개」에서 “이야기를 통한 알레고리는 현실에 대한 인식을 숨기는 동시에 드러내는 이중적인 의도를 반영하는 방법이다.”(서재원, 「황순원의 ‘목넘이마을의 개’와 ‘이리도’ 연구」, 황순원 학회 편, 『황순원 연구 총서 4』, 국학자료원, 2013, p.338.)
「목넘이 마을의 개」는 일제 강점기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여 신둥이라는 서북간도로 이주하는 유랑민이 버리고 간 개가 수많은 고난을 이기고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가며 번식하는 암캐 신둥이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민족의 고난과 그 극복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알레고리 소설이다.
필자 소개
김종성(金鍾星)
강원도 평창 출생.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졸업.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졸업(문학박사, 2004).
1984년 제8회 방송대문학상에 단편소설 「괴탄」 당선.
1986년 제1회 월간 『동서문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검은 땅 비탈 위」 당선.
2006년 중단편집 『연리지가 있는 풍경』(문이당, 2005)으로 제9회 경희문학상 소설 부문 수상.
2024년 연작소설집 『가야를 찾아서』(서연비람, 2024)로 이병주 국제문학상 대상 수상.
연작소설집 『마을』(실천문학사, 2009), 『탄(炭)』(미래사, 1988), 『가야를 찾아서』(서연비람, 2024) 출간. 중단편집 『연리지가 있는 풍경』(문이당, 2005), 『말 없는 놀이꾼들』(풀빛, 1996), 『금지된 문』(풀빛, 1993) 등 출간. 『한국환경생태소설연구』(서정시학, 2012), 『글쓰기와 서사의 방법』(서정시학, 2016), 『한국어어휘와표현Ⅰ:파생어ㆍ합성어ㆍ신체어ㆍ친족어ㆍ속담』(서정시학, 2014), 『한국어 어휘와 표현Ⅱ:관용어ㆍ한자성어ㆍ산업어』(서정시학, 2015), 『한국어 어휘와 표현Ⅲ:고유어』(서정시학, 2015), 『한국어 어휘와 표현Ⅳ:한자어』(서정시학, 2016), 『글쓰기의 원리와 방법』(서연비람, 2018) 등 출간. 『인물한국사 이야기 전 8권』(문예마당, 2004년) 출간.
'김종성 한국사총서 전 5권' 『한국고대사』(미출간), 『고려시대사』(미출간), 『조선시대사Ⅰ』(미출간), 『조선시대사Ⅱ』(미출간), 『한국근현대사』(미출간), ‘김종성 한국문학사 총서 전 5권’ 『한국문학사 Ⅰ』(미출간),『한국문학사 Ⅱ』(미출간), 『한국문학사 Ⅲ』(미출간), 『한국문학사 Ⅳ』(미출간), 『한국문학사 Ⅴ』(미출간).
도서출판 한벗 편집주간, 도서출판 집문당 기획실장 , 고려대출판부 소설어사전편찬실장, 고려대 국문과 강사, 경희대 국문과 겸임교수, 경기대 문예창작과 및 동 대학원 강사, 고려대 문화창의학부 교수 및 동 인문정보대학원 강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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