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고려사 열전

손수경(孫守卿)

작성자무한|작성시간26.06.11|조회수11 목록 댓글 0

 

손수경(孫守卿)은 집안이 단출하고 한미하였으나 충숙왕(忠肅王) 때 대호군(大護軍)이 되었다. 충혜왕(忠惠王)이 원()에 불려 갈 때 손수경이 시종(侍從)한 공로가 있었으므로 그 공로를 1등으로 기록하고 그의 부모와 처자에게 관작을 내렸으며 토지와 노비를 하사하였다.

 

충목왕(忠穆王)이 즉위하자 첨의참리(僉議叅理)로 임명되었다가 찬성사(贊成事)로 승진하였다. 충목왕(忠穆王)이 훙서(薨逝)한 후 충정왕(忠定王)을 모시고 원()으로 갔는데 충정왕이즉위하게 되자 의창군(義昌君)으로 봉하고 여러 차례 불렀으나 손수경은 병이 들었다고 사양하며 나아가지 않았는데 그러자 추성선력익대정원공신 판삼사사 의창부원군(推誠宣力翊戴定遠功臣 判三司事 義昌府院君)으로 봉하고 곧이어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으로 임명하였다.

 

고려[본국(本國)]에서는 일찍이 황제의 명령을 받아서 사신이 조서(詔書)를 받들고 오면 왕이 직접 나가서 맞이하고[出迎] 그 외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축려(丑驢)가 어향(御香)을 받들고 왔는데 신덕린(申德隣)과 안길상(安吉祥) 등이 그 위세에 겁을 집어먹고 왕에게 직접 나가서 맞이하게 하였는데, 손수경은 재상이면서도 바로잡지 못하였다. 어떤 승려가 노비 송사 문제 때문에 축려에게 욕을 하고는 도망가서 숨어버렸는데 그러자 축려가 노하여 잡으라고 하였으나 손수경은 사양하였다. 하루는 축려가 길에서 손수경을 만나자 객관의 곡식이 박하다고 채찍으로 때리려고 하자 손수경이 말을 달려서 달아났다. 헌사(憲司)에서는 그가 총재(冢宰)로서 치욕을 당했다고 탄핵하였으며 사람들도 그를 비웃었다. 공민왕(恭愍王) 때 석기(釋器)의 옥사가 일어났는데, 손수경이 연루되었다는 공술이 나와서 옥에 가두었다가 곧 참()하였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