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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열전

오형(吳詗)

작성자무한|작성시간26.06.15|조회수12 목록 댓글 0

 

오형(吳詗)의 초명(初名)은 오한경(吳漢卿)이고 자는 월수(月叟)이며 해주(海州) 사람이다.

원종(元宗) 초 국자감시(國子監試)에서 1등으로 급제하고 동궁시학(東宮侍學)에 선발되었다. 과거에 급제하고 남경사록(南京司錄)으로 임명되었고 중서주서(中書注書)로 전보되었다.

 

충렬왕(忠烈王) 때 첨의사인(僉議舍人)을 거쳐 금녕부(金寧府) 수령으로 나갔다. 임기가 차서 군부총랑(軍簿摠郞)으로 임명되었는데 제서(除書)가 도착하기 전에 오형은 생각하기를, “임기가 이미 다 찼으니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다.”라고 하고 그냥 떠나버렸다. 얼마 후 안렴사(按廉使) 유현(劉顯)이 금녕부에 있다가 도적의 칼에 찔려 죽었으므로 모든 금녕부의 사람들이 국문을 당하였으나 오형만 홀로 면하였다.

 

여러 관직을 거쳐 좌사의대부 사림원학사(左司議大夫 詞林院學士)가 되었으며 중요 관직[華要]을 두루 거쳐서 첨의찬성사 감춘추관사 지선부사(僉議贊成事 監春秋館事 知選部事)에 이르러 치사(致仕)하였다. 충숙왕(忠肅王) 원년(1314)에 죽으니, 나이는 73살이었으며, 시호는 문온(文溫)이다. 오형의학문은 정밀하고 넓었는데, 조정에 있으면서 비록 현저한 공적은 없었으나 마음이 넓고 대범하였으며 꾸밈이 없었고, 일에 있어서는큰 요체를 알았고 윗사람의 풍모가 있었다. 아들은 오수(吳璲오정(吳珽오찬(吳瓚)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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