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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열전

윤신걸(尹莘傑)

작성자무한|작성시간26.06.17|조회수12 목록 댓글 0

 

윤신걸(尹莘傑)은 자가 이지(伊之)이며 경주(慶州) 기계현(杞溪縣) 사람이다. 충렬왕(忠烈王)때 과거에 급제하여 남경사록(南京司祿)으로 임명되었다. 당시에 박사(博士)는 경전(經典) 1종류만 시험을 보았으므로[] 적격자가 아닌 경우가 많아서 선발을 엄하게 해서 반드시 5()에 통달한 연후에 박사로 삼게 하였는데, 윤신걸은 천거를 받아 사문대학박사(四門大學博士)가 되었다. 충선왕(忠宣王)이 즉위하자 우헌납 강릉부익선(右獻納 江陵府翊善)으로 임명하여 충숙왕(忠肅王)의 사부(師傅)가 되게 하였으나, 뒤에 충선왕은 윤신걸이 충숙왕에게 총애받는 것을 미워하여, 좌천시켜서 지영해부(知寧海府)로 삼았다가 곧이어 선부의랑(選部議郞)으로 임명하였다.

 

충숙왕이 즉위하자 우부대언 보문각제학 지제교(右副代言 寶文閣提學 知製敎)로 임명하였고 밀직부사 선부전서(密直副使 選部典書)로 승진하였다. 여러 번 자리를 옮겨서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가 되었다가 예문대제학(藝文大提學)으로 승진하고 순성보리공신(純誠輔理功臣)의 칭호를 하사받았다. 그러나어떤 일로 왕에게 거슬려서 왕이 곤장을 쳐서 욕보였다. 충선왕이 윤신걸과 이제현을 시관(試官)으로 임명하였는데, 윤신걸은 선부(選部)가 정권[政柄]을 잡고 있는 것을 빌미로 주군(州郡)에서 돈과 재물을 모을 것을 청하여 학사연(學士宴)을 열려고 하였다. 충숙왕은 그 명령이 충선왕에게서 나왔으므로 그가 자기에게 딴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라고 의심하여 즉시 윤신걸을 파직시키고 박효수(朴孝修)로 대신하게 하였다.

 

윤신걸은관직이 첨의평리(僉議評理)에 이르렀으며 기성군(杞城君)으로 봉해졌다. 죽으니 나이가 72살이었으며 시호는 장명(莊明)이다. 아들은 없다. 윤신걸은사람됨이 엄격하고 말이 적었으며 두 왕 아래서 벼슬하며 오랫동안 전선(銓選)을 맡았지만 일의경중을 사사로이 판단하지 않았으므로 당시의 사람들이 어른[長者]이라고 일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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