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유전(許有全)은 초명(初名)이 허안(許安)이며 김해(金海) 사람이다.
원종(元宗) 말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충렬왕(忠烈王) 때 감찰시사(監察侍史)가 되었다. 왕이 총애하는 자의 참소를 믿고 그를 순마소(巡馬所)에 가둔 후 장차 저자거리에서 장을 치려고 하였으나 감히 구해줄 사람이 없었다. 순마지유(巡馬指諭) 고종수(高宗秀)가 왕의 총애를 받아 왕의 침실까지 출입하고 있었는데 왕에게 아뢰기를, “감찰(監察)은 왕의 이목(耳目)이 되어 백관(百官)들을 살피고 탄핵하는 자리입니다. 지금 소인배의 참소 때문에 그를 매질한다면 사람들이 주상을 어떤 군주라고 하겠습니까?”라고 하면서 두 번 세 번 비유를 써서 납득시켰으므로 형벌을 면할 수 있었다.
〈뒤에〉 국학사예 전조시랑(國學司藝 銓曹侍郞)으로 옮겼다가 여러 번 전임(轉任)하여 도첨의참리 지밀직사사(都僉議叅理 知密直司事)가 되었다. 충숙왕(忠肅王) 초에 가락군(駕洛君)으로 봉하고 단성수절공신(端誠守節功臣)의 호를 하사하였으며 수첨의찬성사(守僉議贊成事)로 올려서 치사(致仕)하게 하였다. 〈뒤에〉 정승(政丞)으로 임명하고 다시 가락군(駕洛君)으로 봉하였다.
충선왕(忠宣王)이 토번(吐蕃)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을 때 허유전이 민지(閔漬) 등과 함께 원(元)으로 가서 왕의 소환을 청하려고 하였다. 〈이때〉 허유전의 나이가 81살이었고 그의 아내도 늙고 병들었으므로 사람들이 만류하려고 하니, 허유전이 대답하기를, “사람은 모두 한 번은 죽는 법인데 어찌 아내가 병들고 내가 늙었다고 해서 우리 임금님을 잊어버리고 스스로 편할 수 있겠는가?” 라고 하고는, 아들인 허영(許榮)에게 병구완을 부탁하고 마지막 작별을 하고 떠났는데,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탄복하였다. 9일 뒤에 아내가 죽었다. 허유전은 원에 도착하여 반 년 동안 머물렀으나 심왕(瀋王) 일당이 저지하는 바람에 끝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