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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열전

박충좌(朴忠佐)

작성자무한|작성시간26.06.20|조회수11 목록 댓글 0

 

박충좌(朴忠佐)는 자가 자화(子華)이며 함양(咸陽) 사람이다. 조부 박지빈(朴之彬)은 위위윤(衛尉尹)을 지냈으며 아들 4명을 낳아 모두 과거에 급제시켰다. 장자는 박장(朴莊)이라고 하는데, 벼슬이 군부총랑(軍簿摠郞)에 이르렀으며 그가박충좌를 낳았다.

 

박충좌는 어릴 때부터 공부하기를 좋아하여 과거에 급제하였다. 충숙왕(忠肅王)때 전라도안렴사(全羅道按廉使)가 되었는데, 왕이 총애하는 박연(朴連)이 내지(內旨)를 전하여 양민(良民)을 노예로 삼는 것을 허락하도록 하였으나 박충좌가 고집하며 허락하지 않았다. 박연이 참소하기를, “안렴사가 왕지(王旨)를 따르지 않고 헌 종잇장처럼 버렸습니다.”라고 하였으므로 왕이 노하여 곤장을 친 후 해도(海島)로 유배를 보내고 뒤에소환하여 감찰지평(監察持平)으로 임명하였는데 병을 핑계하고 나아가지 않았으므로 예문응교(藝文應敎)로 고쳐 임명하여 경상도(慶尙道)의 염세(鹽稅)를 감독하게 하였지만 역시 나가지 않았다. 곧이어 내서사인(內書舍人)으로 옮겼으며 여러 번 옮겨 밀직제학 개성윤(密直提學 開城尹)이 되었다.

 

충목왕(忠穆王) 박충좌가찬성사(贊成事)로 임명되자 서연(書筵)에 들어가 왕을 모시고 정관정요(貞觀政要)를 강의하였다. 이로 인하여 연()의 소왕(昭王)이 황금대(黃金臺)를 쌓아서 곽외(郭隗)를 맞이한 일을 말하니 왕이() 50정을 하사하였다. 곧이어 판삼사사(判三司事)가 되었고 순성보덕협찬공신(純誠輔德協贊功臣)의 칭호를 하사받았으며 함양부원군(咸陽府院君)으로 봉해졌다. 충정왕(忠定王) 원년(1349)에 죽으니, 나이는 63살이었다.

 

박충좌는성품이 온후(溫厚)하고 검약(儉約)하였으며 비록 재상이 되어서도 집과 의복을 벼슬하지 않았을 때와 같게 하였다. 주역(周易)읽는 것을 좋아하였으며 늙어서도 그만두지 않았다. 아들은 박소(朴玿), 박정(朴珽), 박경(朴瓊), 박번(朴璠), 박여(朴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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