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22년 을유(1885) 4월 10일(무인) 맑음
○ 병비에, 판서 민종묵(閔種默)은 나왔고, 참판 조문영(趙文永)은 병이고, 참의 강찬(姜𧄽)은 병이고, 참지 정현영(鄭顯英)은 입직하였고, 우부승지 김승규(金昇圭)는 나왔다.
이면희(李冕熙)ㆍ김태욱(金泰郁)을 동지훈련원사로, 남숙희(南肅熙)를 첨지중추부사로, 윤영규(尹泳奎)ㆍ조의창(趙義昌)을 선전관으로, 이운년(李雲年)을 내금위장으로, 김원문(金元文)ㆍ김광석(金光錫)ㆍ이호식(李浩植)ㆍ이순학(李順學)을 오위장으로, 한경순(韓景淳)ㆍ송홍록(宋弘祿)을 창덕궁 위장으로, 정치경(鄭致涇)을 경희궁 위장으로, 김필수(金弼洙)ㆍ정규회(丁奎會)를 문신겸선전관으로, 최호영(崔浩榮)을 수문장으로, 민긍식(閔肯植)을 전라 병사로, 김명인(金命仁)을 선적 첨사(善積僉使)로 삼았다. 동지에 조준순(趙俊淳)을 단부하고, 동지 가설(同知加設)에 이소(李熽)ㆍ김형식(金亨植)ㆍ김계연(金啓淵)ㆍ조기용(趙基容)ㆍ오치운(吳致雲)을 단부하였다.
첨지에 이주영(李周永)을 단부하고, 첨지 가설에 심원택(沈遠澤)을 단부하였다.
부장(部將)에 최환익(崔煥翼)을 단부하였는데, 그 직에 그대로 유임시켜 6품으로 올리라는 전지를 받든 것이다.
대호군에 이희영(李熙永), 호군에 이원일(李源逸)ㆍ민영환(閔泳煥)ㆍ이익기(李翊奇), 부호군에 서상조(徐相祖)ㆍ심상한(沈相漢)ㆍ최덕명(崔德明)ㆍ정광연(鄭光淵)ㆍ정현석(鄭顯奭)ㆍ김윤경(金潤璟)ㆍ이성구(李聖九)ㆍ안종보(安鍾輔)ㆍ이연구(李淵九)ㆍ이창렴(李昌濂)ㆍ유지희(柳芝熙)ㆍ백낙준(白樂駿)ㆍ한진직(韓鎭稷), 이상을 모두 단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