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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역사 기록

27세 휘 현영(顯英)-경무대에서 전시를 시취할 때 행 도승지 민병석 등이 입시하였다

작성자무한|작성시간26.06.11|조회수11 목록 댓글 0

 

고종 22년 을유(1885) 416(갑신) 맑음

 

진시(辰時).

상이 왕세자와 경무대(景武臺)에 나아가 전시(殿試)를 시취하였다. 입시할 때에, 행 도승지 민병석, 행 좌승지 오익영, 행 좌부승지 강문형, 우부승지 이용직, 동부승지 윤상익, 기사관 정인섭(鄭寅燮), 가주서 김익수(金翊洙), 별겸춘추 윤명섭(尹命燮), 기사관 이정직(李貞稙), 직제학 윤용구(尹用求)ㆍ민영환(閔泳煥), 검교직각 민병석(閔丙奭)ㆍ박봉빈(朴鳳彬)ㆍ김문현(金文鉉)ㆍ정하원(鄭夏源), 직각 심상찬(沈相瓚), 검교대교 조동면(趙東冕)ㆍ김용규(金用圭)ㆍ김필수(金弼洙), 대교 정인승(鄭寅昇)이 차례로 시립하였다.

시간이 되자 통례가 꿇어앉아 외판(外辦)을 계청하였다. 상이 익선관과 곤룡포 차림으로 세자궁과 함께 여를 타고 건선문(建善門)을 나서자, 약방 부제조 민병석이 앞으로 나아가 아뢰기를,

이른 새벽부터 수고로이 거둥하셨는데, 성상의 체후는 어떠하십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한결같다.”

하였다. 이어 신무문(神武門)을 나와 경무대에 나아갔다. 통례가 꿇어앉아 여에서 내리기를 계청하자, 상이 여에서 내려 어좌(御座)로 올라갔다. 이정직이 아뢰기를,

신이 본관(本館)에 대한 일로 우러러 진달할 것이 있습니다. 한림소시(翰林召試)에서 선발된 사람을 지난번 경연에서 내린 교지를 받들어 매달 부직(付職)하였고, 상번인 검열 윤용식(尹容植)을 승륙(陞六)하였습니다. 좌우 사관이 갖추어지지 않았으니, 선발되어 차례가 된 이무로(李茂魯)를 해조로 하여금 구전으로 단부하게 하여 패초한 다음 입직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게 하라.”

하였다. - 거조를 냄 - 또 아뢰기를,

시정기(時政記)를 찬수(纂修)하는 일이 급하니, 새로 제수된 검열 이무로로 하여금 서경(署經)을 거치기 전에 공무를 보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게 하라.”

하였다. - 거조를 냄 -한림소시에서 선발되어 차례가 된 이무로를 해조로 하여금 구전으로 단부하게 하여 패초한 다음 입직하게 하는 안건에 대해 탑전정탈(榻前定奪)하였다. 찬의가 사배(四拜)’를 외치자, 문과 독권관(文科讀券官) 행 상호군 이원명(李源命)ㆍ윤자승(尹滋承), 형조 참판 조병세(趙秉世), 대독관(對讀官) 행 부호군 강찬(姜𧄽)ㆍ조종필(趙鍾弼), 부사과 김명규(金明圭), 홍문관 정자 정인승(鄭寅昇), 무과 고관(武科考官) 병조 판서 민종묵(閔種默), 친군좌영사 이규석(李奎奭), 친군별영사 이교헌(李敎獻), 참고관(參考官) 병조 참지 정현영(鄭顯英), 첨지중추부사 이항의(李恒儀), 부사과 이제승(李濟承), 훈련원 첨정 이근호(李根澔)가 문무 거자(文武擧子)를 거느리고 사배례를 행하고, 차례로 자리에 나아갔다. 오익영이 표신(標信)을 내어 유생들을 포성(布城)으로 입장시키기를 청하자, 상이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이어 시관(試官)에게 앞으로 나오라고 명하니, 이원명이 나아가 엎드렸다. 상이 부()의 제목을 쓰라고 명하였는데, 제목은 용부석궐서민(用敷錫厥庶民)’이고, 시간은 신시(申時)까지였다. 이원명이 꿇어앉아 쓴 뒤에 읽어 아뢰었다. 민병석이 표제를 걸기를 여쭙자, 상이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정인승이 표제를 받들고 나가서 걸었다. 민종묵이 꿇어앉아 여쭙기를,

무과의 기예는 무슨 기예로 하며, 설강(設講)은 어디에서 합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무과의 기예는 규구(規矩)를 따르고, 강은 대() 위에서 실시하라.”

하였다. 상이 막차(幕次)에 들어가자, 민병석이 사알을 통해 구전으로 들어와 여쭙기를,

선장(先張)이 이미 들어왔으니, 표신을 내어 포성을 열고 시권을 바친 유생들을 차례로 나가게 합니까?”

하니, 상이 이미 내린 표신으로 거행하라고 명하였다. 무과 시험이 끝나자, 선전관이 거자를 호명하고, 강론할 책을 추첨으로 선정하여 통고하였다. 민병석이 사알을 통해 구전으로 들어와 고시(考試)를 여쭙자, 상이 고시하라고 명하였다. 상이 막차를 나왔다. 선전관이 꿇어앉아 등()을 걸기를 여쭙자, 상이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이원명이 아뢰기를,

과차(科次)와 등수를 쓰는 것은 어떻게 합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모두 삼하(三下)라고 쓰라. 갑과(甲科) 3인은 등수 아래에 1, 2, 3을 쓰라.”

하였다. 이원명이 등수를 썼다. 정인승이 시권 첫째 장의 첫째 구절을 읽자, 상이 그만하라고 명하였다. 이원명이 아뢰기를,

봉미(封彌)를 뜯는 것은 어떻게 합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승지가 봉미를 뜯도록 하라.”

하였다. 민병석이 차례로 봉미를 뜯었다. 상이 이르기를,

승지들이 돌아가면서 시권을 읽으라.”

하니, 민병석 등이 시권을 읽었다. 민병석이 아뢰기를,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선전관을 보내어 광화문(光化門)을 유문(留門)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미 내린 표신으로 거행하라.”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음관(蔭官) 출신의 선전관 심하택(沈夏澤)에게 사제(賜第)를 내려 주라.”

하였다. - 전교를 냄 - 전교하기를,

직부(直赴)한 심하택에게 사악(賜樂)을 내려 주라.”

하고 - 전교를 냄 -, 전교하기를,

환궁하는 것은 자내(自內)의 예()로 할 것이니, 해방은 그리 알라.”

하였다. - 전교를 냄 -통례가 꿇어앉아 예가 끝났음을 아뢰었다. 상이 대내(大內)로 돌아가자, 여러 신하들이 차례로 물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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