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22년 을유(1885) 4월 19일(정해) 맑음
○ 병비에, 판서 민종묵(閔種默)은 나왔고, 참판 이호익(李鎬翼)은 병이고, 참의 강찬(姜𧄽)은 병이고, 참지 정현영(鄭顯英)은 입직하였고, 우부승지 이용직(李容稙)은 나왔다.
안규진(安奎鎭)을 동지로, 민긍식(閔肯植)을 동지훈련원사로, 이규성(李奎性)을 훈련원 도정으로, 조동훈(趙東勳)을 선전관으로, 조재항(趙載恒)을 내금위장으로, 이긍한(李肯漢)을 겸사복장으로, 이철상(李轍相)ㆍ황낙용(黃樂鏞)ㆍ신재근(申在根)ㆍ박영환(朴永煥)을 오위장으로, 김영제(金寧濟)를 충익위장으로, 전도진(全道鎭)을 충장위장으로, 박만인(朴萬仁)ㆍ성재영(成載榮)을 창덕궁 위장으로, 김재봉(金在鳳)을 경희궁 위장으로, 하석락(河錫洛)을 훈련원 주부로, 서병선(徐丙善)을 문신겸선전관으로, 권응섭(權應燮)을 전라 병사로, 이순기(李舜器)를 성진 첨사(城津僉使)로, 정기만(鄭基晚)을 황해 중군(黃海中軍)으로, 민유세(閔瑜世)를 통제 우후(統制虞候)로 삼았다. 김인근(金仁根)- 원문 빠짐 - 가설에 이윤용(李允用)을 단부하였다. 선전관 여섯 자리에 심형택(沈馨澤)ㆍ오은영(吳殷泳)ㆍ오찬영(吳瓚泳)ㆍ심하택(沈夏澤)ㆍ이철순(李徹純)ㆍ김범구(金範求)를 단부하였다. 호군에 이기호(李起鎬), 부호군에 정원화(鄭元和)ㆍ이계복(李啓宓)ㆍ이창렴(李昌濂)ㆍ조명하(趙明夏)ㆍ김동운(金東韻), 부사과에 윤용식(尹容植)ㆍ이근우(李謹禹)ㆍ이승원(李承遠)ㆍ염효근(廉孝根)ㆍ오용진(吳龍鎭)ㆍ최기정(崔琦貞)ㆍ박영수(朴永秀)ㆍ이순영(李淳榮)ㆍ전세덕(全世德)ㆍ김규식(金奎植)ㆍ김정욱(金正旭), 부사정에 김교헌(金敎獻)ㆍ김익수(金翊洙)ㆍ김흥집(金興集)ㆍ백남철(白南喆), 부사맹에 심능겸(沈能謙)ㆍ한상빈(韓尙斌)ㆍ김도근(金都根)ㆍ김준필(金準弼)ㆍ서효순(徐效淳), 이상을 아울러 단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