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타고 오대산 1일기행- 상원사ㆍ월정사ㆍ전나무 숲
2024.8.24.토요일
특히나 유난했던 올여름 폭염에 시달리다 시원한 냉방열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오늘은 절기상 처서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름의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한낮에는 체감온도가 33도를 웃도는 기상예보에 고민하다가 지인과 당초 약속한 강원도 오대산
비로봉 등산이 아니고 선재길 트레킹이다
이번 선재길 트레킹은 상원사 ~월정사까지 걷을 계획임에 따라 월정사에 도착한 후
월정사 경내를 둘러보고 버스로 상원사로 이동하여 상원사 경내를 둘러 본 후 트레킹을 하였다.
오대산 전나무숲 길.
이번엔 인터넷 검색에서 8시55분 진부역에서 오대산까지 들어가는 농어촌 빨간 버스를 알게 되어
청량리역에서 7시22분출발, 진부역 8시46분착 KTX 예매해서 시간을 맞춰 쉽게 다녀왔다.
갈땐 일반실이 없어 우등실을, 올땐 일반실을 이용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맨 아래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진부역에서 내리니 오대산행 빨간버스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린 오대산 상원사부터 관람하고 월정사, 그리고 전나무숲을 산책하기로 하고 40여분 소요로 상원사에 도착했다.
상원사에서 얼마나 머물러야 하나 월정사로 향하는 버스시간부터 확인한다.
상원사에서 월정사까진 15분 소요로, 전나무숲 산책부터 즐기고 월정사 경내관람이다.
관람을 다 마치고 진부역으로 오려면, 상원사에서 진부역까지 1일1회 운행하는
오후 4시버스가 15분 소요로 월정사에 닿게 되어 그 버스를 이용하면 진부역까지 쉽게 올 수 있다.
오랫만에 찾아온 상원사는 서울의 폭염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시원하다니...
여기저기 경내를 둘러보다 버스를 이용해 월정사로 이동해 전나무숲부터 산책을 즐긴다.
월정사 일주문에서 사찰 입구까지 1km 구간이 전나무 숲길인데,
예전과 달리 맨발걷기를 할 수 있도록 길이 보드랍고 고와서 우리도 맨발걷기를 즐겼다.
전나무숲길 산책을 마치고 월정사 경내로 들어가 경내 우뚝 서있는 국보 9층탑 관람도 하며
여기저기 둘러보다 그늘에 쉬어가기도 하면서 상원사에서 오후4시에 내려오는 진부역행 버스를 타기로 한다.
월정사엔 4시15분에 도챡해 그 버스를 이용하면 진부역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다.
그 날의 사진들을 살펴보면서 오대산의 여러 풍광들을 즐겨 보세요.
진부역에서 오대산행 8시55분발 빨간 농어촌버스를 탑승후 오대산으로 향한다.
오대산 아래 상원사 주차장에 대기중인 버스...상원사는 이곳에서 300m 오른다.
상원사 주차장 가는길이 좋아졌어요,
선재길은 오대산월정사 에서 상원사까지 약 9km로정도 왕복 18km로 가을에 선재길 걸어도 좋겠다
선재길을 편하게 다녀오려면 오대산월정사 에서 셔틀버스타고 상원사주차장 에서 하차후
천천히 선재길 따라 오대산월정사 로 가면 여유있게 선재길을 즐길수있다
상원사 주차장 방향 말고 적멸보궁으로 올라가면 비로봉 방향이다
아쉽지만.., 비로봉 산행은 다음 기회로 오늘은 상원사로 향한다..ㅎ
상원사 경내를 구경하기 위하여 올라간다. / 세조가 타고 온 가마..
상원사는 643년(신라 선덕여왕 12년) 신라의 승려 자장대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져온
부처의 사리와 정골을 나눠 봉안한 적멸보궁이 있는 곳이다.
적멸보궁은 다섯 곳이 있는데 그곳은 경남 양산 통도사, 속초 설악산 봉정암, 태백 함백산 정암사,
영월 사자산 법흥사 그리고 상원사다.
오대서약
읽어가며 마음 다스리기
준비안된 마음은 숨이 차다
청풍루에는 천고의 지혜, 깨어있는 마음이라고 적혀 있다..
청풍루를 지나면 오층석탑 뒤에 앉은 아담한 문수전이 나온다..
상원사(上院寺)
신라 705년에 성덕왕이 창건하고, 이후 1376년에 영암이 중창했다.
1464년 세조가 이곳에 행차했다가 문수보살을 배알 한 후 고양이 덕분에 자객으로부터 목숨을 건졌다고 하는 일화가 전한다.
이로 인해 다음 해에 중창하고 전답을 하사했으며, 이것을 영산부원군 김수온에게 기록하도록 했고,
그 기록인〈평창 상원사 중창권선문〉이 월정사에 보관되어 있다.
1469년에 세조의 원찰이 되었고, 1904년에 선원을 개설하고 1907년에 수월화상이 주석하면서 선풍을 떨치게 되었다.
현존 당우로는 선원인 청량선원, 승당인 소림초당, 종각인 동정각, 영산전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 제221호),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 23점(보물 제793호),
상원사동종(국보 제36호) 등이 있다.(출처 : 다음백과)
상원사는 세조가 문수동자를 만나 괴질을 치료받고,
고양이에 의해 자객의 습격을 피하는 등의 일화가 서려 있는 세조의 원찰이기도 하다.
724년(신라 성덕왕 23년) 자장대사가 세운 상원사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문수보살을 모시고 있는데 세조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평소 피부병이 심하던 세조는 상원사 계곡의 물로 몸을 씻다 동자승을 만나 등을 밀게 했다.
세조가 “어디를 가든지 임금의 옥체를 씻었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자 동자승은 웃으면서
“어디를 가든지 문수보살을 직접 봤다고 하지 말라”며 홀연히 사라졌다.
세조는 문수보살을 친견한 뒤 피부병이 씻은 듯이 나았고 크게 감격해 화공들에게 동자승의 모습을
그리도록 했지만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느 날 노승이 세조가 본 문수보살과 똑같은 그림을 남기고 사라졌고 이에 세조의 딸 의숙공주 부부가
1466년 문수보살상을 조성했는데 바로 상원사 문수전에 있는 목조문수동자좌상이다.
청풍루를 지나 오층석탑 뒤에 앉은 아담한 문수전이 나오고 문수전 앞에 고양이가 있다.
봉황이겠죠~~
상원사 동종(上院寺 銅鍾) Bronze Bell of Sangwonsa Temple
국보
범종은 절에서 시각을 알리거나 의식을 치를 때 사용한다. 종소리가 장엄하여 종교적인 분위기를 한껏 높이며,
종소리를 듣는 자기 자신이 저지른 악한 행위를 깊이 뉘우치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이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듯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친다는 뜻도 있다.
상원사 동종은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만들어진 것으로 지금까지 확인된 한국의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본디 어느 사찰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안동 지역의 역사. 문화 등을 기록한 읍지인 「영가지」에 따르면,
안동에 있던 종을 조선 예종 원년(1469)에 왕명에 따라 상원사로 옮겨 왔다고 한다.
종의 꼭대기에 용 모양으로 장식된 부분은 용뉴라고 하며, 이곳에 쇠줄을 연결하여 종을 매단다.
용뉴 옆에는 연꽃과 덩굴무늬로 장식한 음통이 있다. 음통은 일종의 음향 조절 장치로 추정하며,
우리나라 범종에서만 볼 수 있는 독창적인 구조물이다.
종의 몸통 위아래에는 구슬 장식 테두리가 있는 넓은 띠를 둘렀고, 띠에 있는 덩굴무늬 안쪽 곳곳에는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천인(하늘에 살며 부처를 예찬하는 존재)들의 모습을 새겼다.
종을 치는 자리인 당좌에는 구슬과 연꽃무늬로 장식했으며, 당좌 좌우에는 구름 위에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을 대칭으로 새겨 놓았다.
경쾌한 모습의 비천상은 8세기 전반의 불교 조각 양식을 잘 보여준다.
몸통의 위아래가 안으로 좁아지는 항아리 같은 형태를 비롯해 한 마리의 용으로 장식한 용뉴와 음통을
갖추고 있는 등 한국 종의 고유한 특색을 보여준다. 이러한 형식은 만들어지는 범종들의 밑바탕이 되었다.
2008년 지금의 자리에 새로운 종각(종을 달아 두는 건물)을 지은 뒤 유리 안에 종을 두었으며,
옆에는 본떠 만든 종을 걸어 두었다.
*상원사에서
동종에 새겨진 문양
관대걸이
상원사 관대걸이는 세조가 문수동자를 만난 이야기가 전해진다.
피부병으로 고생하던 세조가 치료를 위해 상원사로 행차하던 중
계곡에서 혼자 목욕을 하게 되면서 숲속에서 만난 동자에게 등을 밀어달라고 부탁하였다.
목욕을 마친 세조가 "임금의 옥체를 씻었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니 동자는
"임금은 문수보살을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고 한 뒤 자취를 감추었다.
이후 병이 나은 세조가 문수동자의 초상과 조각상을 만들게 했다고 한다.
실록 등의 기록에도 세조가 병을 얻고 승려 신미의 추천을 받아 상원사를 기도처로 정하고
여러차례 거동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상원사 문수동자상의 복장에서 다양한 유물들이 발견되었는데 세조의 딸인 의숙공주가
동자상을 조성하였음이 기록된 발원문이 발견되었고 유물 중 하나인 명주적삼은 당시 병을 앓던
세조의 옷일 수 있다는 가증서이 제시되었다.
오늘날 상원사 입구의 관대걸이는 세조와 문수동자의 이야기 속 세조가
의관을 놓아두었던 곳을 기념하여 후대에 만든 표지석이다.
세조가 목욕할 때 못을 걸쳐 놓았던 관대걸이..
월정사 버스 승강장
월정사 경내로 이동한다
사천왕을 모신 천왕문을 지나 2층 누각인 금강루를 지나게 되면 월정사 경내로 들어간다..
월정사 전경으로 국보 제48-1호 팔각구층석탑과
국보 제48-2호 석조보살좌상의 모조품(진품은 성보박물관에 전시), 그리고 적광전이 나온다.
적광전(寂光殿)
적광전은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을 모신 전각이다.
백두대간의 심장부인 만월산을 진산으로 한 월정사의 가장 중심에 자리 잡고 있으며
정면 5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근대에 신축된 법당 중 가장 으뜸으로 꼽힌다.
원래 이 자리에는 과거에 나타난 일곱 분의 부처님을 모신 칠불버전(七佛寶殿)이 있었으나
6.25 전쟁 때 아군에 의해 여타 전각과 함께 전소되었다.
1969년 만화스님이 주지로 계실 때 오대산에서 자생하는 나무를 사용하여 중건하였다.
적광전에 모신 부처님은 경주 석굴암의 불상 형태를 따른 석가모니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전각은 대웅전이라 하고 적광전은 본존불로 법신 불인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시는 것이 통례이나, 월정사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전각을 적광전이라고 이름하였다.
이는 오대산이 화엄 • 문수도량이며 한암 • 탄허대종사께서 주석하시면서 불교 최고의 경전인
화엄사상을 널리 펼쳤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적 인연을 바탕으로 탄허선사께서
『화엄경』 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함께 모신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적광전'이라고 이름하신 것이다.
적광전의 외벽은 단청으로 화려하게 장엄하였고, 뒷면에는 깨달음의 과정을 표현한 심우도가 벽화로 그려져 있다.
적광전 네 개의 기둥에는 탄허선사께서 친필로 쓰신 자장율사의 불탑계가 주련으로 걸려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平昌 月精寺 八角 九層石塔): 국보 제48-1호
자장율사가 창건한 월정사 안에 있는 탑으로,
그 앞에는 공양하는 모습의 석조보살좌상이 마주보며 앉아 있다.
탑은 8각 모양의 2단 기단(基壇) 위에 9층 탑신(塔身)을 올린 뒤,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안상(眼象)을 새겨 놓았고,
아래·위층 기단 윗부분에는 받침돌을 마련하여 윗돌을 괴어주도록 하였다.
탑신부는 일반적인 석탑이 위층으로 올라 갈수록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과 달리
2층 탑신부터 거의 같은 높이를 유지하고 있으며,
1층 탑신의 4면에 작은 규모의 감실(龕室:불상을 모셔두는 방)을 마련해 두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계단 모양의 받침을 두지 않고 간략하게 마무리하였고,
가볍게 들려있는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아 놓았다.
지붕돌 위로는 머리장식이 완벽하게 남아 있는데, 아랫부분은 돌로,
윗부분은 금동으로 만들어서 화려한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고려시대가 되면 4각형 평면에서 벗어난 다각형의 다층(多層)석탑이 우리나라 북쪽지방에서 주로 유행하게 되는데,
이 탑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고려 전기 석탑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당시 불교문화 특유의 화려하고 귀족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전체적인 비례와 조각수법이 착실하여 다각다층석탑을 대표할 만하다.
또한 청동으로 만들어진 풍경과 금동으로 만들어진 머리장식을 통해
금속공예의 수법을 살필 수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새로 만든 보살상 복제품인 석조보살좌상
월정사 석조보살좌상은 팔각구층석탑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게 배치되어 있던
1.8m 크기의 석조불상이다. 원래 팔각구층석탑을 바라보게 석탑 앞에 모셔져 있었으나,
현재는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원래 석조보살좌상이 있던 자리에는 새로 만든 보살상 복제품을 모셔놨다.
머리에는 높은 관을 쓰고 있으며 앞으로는 두 손을 모으고 있다.
그리고 대좌 위에 앉아서 오른다리 무릎은 땅에 대고 왼다리 무릎은 세우고 모여 있는 손의 왼팔은
세워진 왼다리 무릎에 올려져 있다. 전면에 모인 두 손 사이로는 구멍이 뚫려 있는데,
여기에 무언가를 꽂아 보살이 이를 탑에 바치는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머리가 몸통에 비해 다소 크게 만들어져 있어서 불상의 전체적인 비례가
잘 맞는 편은 아니지만, 조각 기법은 우수하다.
희미한 미소를 띄고 있는 보살의 표정, 머리에 새겨진 머리카락과 귀걸이 또는 몸통에 새겨진
복식 같은 장식들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몸통에 비해 머리가 큼에도 불구하고
보살이 앉아 있는 자세도 안정감 있게 잘 구성되어 있다.
이 석조보살좌상은 본래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39호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2017년 1월 2일 국보 제48-2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문화재청은 국보 승격 사유로
'보살상과 세트로 조성된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은 국보 제48호로 지정되어 있고,
석조보살상은 보물 제139호로 별도로 지정되어 별개라는 느낌을 줄 수 있으므로,
이미 국보로 지정된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과 함께 묶어 국보로 지정하는 것이
조성 당시의 조형적, 신앙적 의미를 모두 찾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히고 있다.
국보 제48-2호 석조보살좌상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
청량리 오전7시22분출발, 진부(오대산) 8시46분도착
진부(오대산)역에서 8시55분 오대산행 버스가 연결되어 바로 이용가능이다.
(226번 농어촌버스-진부역에서 상원사까지 40여분소요)
만일 진부역에서 8시 55분 오대산행 버스를 놓치면 진부터미널로 가야한다.
진부터미널은 진부역에서 차량 10여분 거리로 버스 놓치면 택시를 이용해야한다.(기본요금정도)
상원사에서 진부역으로 오려면 하루 1회 운행하는 오후 4시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버스는 오전 진부역에서 상원사로 8시 55분, 상원사에서 오후 4시에 출발한 버스는
월정사(4시15분)를 거쳐 진부역까지 하루 두번 운행한다.
* 2024년 9월1일 부터 평창군 농어촌버스 천원요금제를 시행한다고
다음에 오면 승차할때마다 천원만 내면 된다고 친절히 안내까지 해 준다.
진부역에서 오대산까지 버스요금 1,000원만 내면 된다.
감사합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