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25. 1. 18 (토)
2025년 1월 중순에 쌀쌀한 아침날씨를 뒤로하고 오늘은 여주 신륵사에 다녀왔어요..
찬바람이 얼굴을 때리는 가만히 서 있어도 손이 시려 두 손을 호주머니 속에 넣고 꼼짝 하기 싫은 오늘
산에 나무들 앙상한 가지에 소복한 눈을 이고 앉아 무심한 눈빛을 뒤로하고 떠난 여주..
여주 신륵사는 도도하게 흐르는 남한강을 벗 삼아 천년의 흐름을 견딘 고찰로 알려져 있다
경기도 여주 신륵사를 둘러본다.
사실 신륵사는 그동안 몇번 왔었지만 예전보다 정비가 잘 되어 있어
이렇게 여유를 갖고 천천히 둘러 본건 처음인것 같다.
사찰로 들어서자 뎅뎅 울리는 풍경소리도 정겨워 한쪽 눈을 찡긋 하며 바라본 하늘은 푸르기만 한데
바람 한 점 없이 고즈넉한 산사에는 스님의 목탁소리가 세파에 찌든 나의 영혼을 맑게 한다
신륵사에는
중요문화재 다층석탑, 보제존자석종, 석등, 보제존석종비, 대장각비등 보물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고
유형문화재 극락보전(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구룡루, 명부전, 조사당(지공화상 좌우에 무학대사와
나옹화상의 영정이 있음), 산신당, 강월헌과 삼층석탑들이 중요한 사찰임을 증명하는것 같다.
널찍한 마당에는 오랜 세월을 견디어 온 600년 된 은행나무와 보호종인 향나무까지 어느 것 하나 문화제 아닌 게 없다.
이곳저곳을 거닐며 가느다랗게 헤엄치는 남한강 물속의 물고기까지도 추위에 숨었지만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는 영혼의 씻김을 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오랜 역사의 속살을 조금 느껴본 하루였다.
여주 신륵사는 여러 모로 독특한 사찰이었지요.
남한강 가에 세워진 풍광도 아름답고, 가람의 구성이며 전각과 여백의 조화까지 감탄을 자아내던 곳입니다.
그럼 다녀온 그 흔적들을 사진으로 남기며...
정말 그런지 한 번 둘러 보실까요? ^.^
여주는 경기도의 동남에 위치하고,
여주시를 관통하여 흐르는 남한강을 '여강'이라 부르며 여강 동북 지역은 산지가 많고
강남지역은 여주평야로 넓은 들과 야산이 잘 발달해 있다.
이 여강이 흐르는 봉미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사찰 '신륵사'를 둘러보았다.
주차장에서 절까지의 진입로가 꽤 길다. 그러나 지루할 틈이 없이 좌우엔 볼거리가 많다.
넓은 공원이 조성돼 있고, 여주 자랑거리의 하나인 도자기와 관련된 제품이며 박물관,
전통 장작가마까지 볼 수 있다.
강변공원에 물레방아가 있어서 운치가 좋다.
원호장군 전승비
원호장군(1533~1592)은 원주 원씨로 여주에서 태어난 조선 중기 무신이다.
그가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 머물고 있던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그는 분연히 일어나
패주하는 관병과 민병 등 300여명을 규합하여 신륵사 판대숲 일대에서 도강을 기도하는 왜병을 섬멸하고,
구미포(龜尾浦)에 집결한 왜적을 새벽에 기습하여 몰살시키는 등 대승을 거두었다.
이같은 여강일대에서의 전투는 무인지경으로 북진하던 왜적을 육전(陸戰)에서 격파한 최초의 대승이었으며
국위를 선양하고 실추된 국민의 사기를 진작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 후 그는 여주목사겸 경기, 강원 양도 방어사로 임명되었고 강원도로 전임하여 금화에서 분전하다 전사하였다,
후에 좌의정에 추증(追贈)되었고, 시호(諡號)는 충장(忠壯)이다.
경기둘레길 34코스, 한강문화관 >, < 경기둘레길 33코스, 강찬면사무소
경기둘레길하고 같이 붙어 있어서 운동하기도 좋은것 같았어요..
신륵사와 여주8경
여주의 빼어난 경관을 일컬어 여주 8경이라 하는데
그 중 1경으로 신륵사에 우려 퍼지는 저녁 종소리라는 뜻의 '신륵오종'을 꼽는다.
제2경, 마암 앞 강가에 고기잡이 배의 등불 '마암어등'
제3경 학동의 저녁밥 짓는 연기 '학동오연'
제4경 강가에서 귀가하는 돛단배의 모습 '연탄귀범'
제5경, 양섬에 기러기떼 내리는 모습 '양도낙안'
제6경, 오학리 강변 숲이 강에 비치는 전경 '팔수장림'
제7경 세종 영릉과 효종 영릉에서 두견새 우는 소리 '이릉두견'
제8경 파사성에 내리는 소나기 '파사과후'
지금에 와서는 여주 8경 중에 볼 수 없는 모습들도 많다.
하지만 신륵사의 저녁 풍경만은 전설과 역사를 간직한 채 1400여 년을 한결같이 이어져오고 있다.
여주시관광안내도
세종대왕릉 / 신륵사 / 고달사지 / 여주시립폰박물관 / 황학산 수목원 / 금은모래유원지&캠핑장
명성황후 생가 / 파사성 / 여주박물관 / 목아박물관 / 이포보 / 강천보
여강길 종합안내
여주 여강길 앱을 이용하면 편하다.
01 코스 옛나루터길 ( 총길이 17.5km, 소요시간 5-6시간 ):
▶여주역 (0km)- 여주종합터미널(1.4km)- 영월루(3km) - 강변유원지(4.7km) - 금은모래강변공원(5.8km) - 강천보(7.2km) -
부라우나루터(8.3km) - 우만리 나루터(10.5km) - 흔암리선사주거지(12.5km)- 아홉사리과거길(14km)- 도리마을 (17.5km)
02 코스 세물머리길 ( 총길이 21.0km, 소요시간 7-8시간 ):
▶영월루(0km) - 신선바위 (1.4km) - 청미천 (2.7km) -삼합교 (5.3km) - 삼합2리마을회관 (7.3km) - 소너미고개 (8.2km) -
남한강대교 (9.2km) - 개치나루터 (9.7km) - 흥원창 (12.1km) - 섬강교 (14km) - 자산 (16.5km) - 해돋이산길 (18.7km) -
강천마을 (21km)
03 코스 바위늪구비길 ( 총길이 13.7km, 소요시간 4-5시간 ):
▶강천마을 (0km)- 비위늪구비 (0.6km)- 남한교밑 (3.5km)- 가야1리 마을회관, 대순진리회 (6km)- 목아박물관 (8km)-
금당교 (10.6km)- 신륵사 (13.7km).
04 코스 5일장터길 ( 총길이 13.0km, 소요시간 5-6시간 ):
▶신륵사 (0km)- 여주도서관 (0.8km)- 연인교 (1.2km)- 여주시청 (2.4km)- 여주5일장 (2.8km)- 대로사 (3.6km)-
세종산림욕장 (5.5km)- 효종대왕릉 (6.7km)- 세종대왕릉 (7.4km)- 번도5리마을 (9.6km)- 세종왕릉역 (13km).
05 코스 황학산길 ( 총길이 6.5km, 소요시간 3시간):
▶여주역 (0km)- 세종초등학교 (1.0km)- 황학산산림욕장 (3.2km)- 자영쉼터 (3.9km)- 황학산정상 (5.0km)- 약수터 (5.4km)-
명성황후생가 6.5km).
06 코스 왕터쌀길 ( 총길이 10.2km, 소요시간 3-4시간 ):
▶세종대왕역사문화관 (0km)- 세종산림욕장 (0.6km)- 입암 (1.5km) - 여주문화관 (3.4km) - 양화나루 (7.6km) -
청보리밭(9.3km) - 상백2리마을회관 (10.2km).
07 코스 부처울습지길 ( 총길이 9.3km, 소요시간 3-4시간 ):
▶상백2리마을회관 (0km) - 상백2리선착장 (0.6km) - 부처울습지 (1.2km) - 상백교 (1.8km) - 계신리마을회관 (3.3km) -
삼신당 (6km) - 이포나루터 (6.5km) - 이포보홍보관 (7.5km) - 당남리섬 입구 (9.3km)
08 코스 파사성길 ( 총길이 5.4km, 소요시간2-3시간 ):
▶당남리섬입구 (0km)- 파사성도보현수교 (0.9km)- 파사성 정상 (2.3km)- 수호사 (2.8km)- 신내천 (3.3km)-
느네마을 (4.4km)- 당남리섬입구 (5.47km).
09 코스 너른들길 ( 총길이 11.8km, 소요시간 4-5시간):
▶당남리섬입구 ( 0km)- 당남리섬 (0.4km)- 피넛교 (1.5km)- 이포보오토캠핑장 (2.4km)- 여주저류지 (5.2km)-
후포교 (9.0km)- 어랑진나루터 (11km)- 천남공원 (11.8km)
10 코스 천년도자기길 (총길이 7.2km, 소요시간 3-4시간):
▶천남공원 (0km)- 싸리등산로입구 (1.4km)- 싸리산팔각정 (2.9km)- 현암강변공원 (3.9km)- 오학동행정복지센터 (5.4km)-
여주대교 (6.6km)- 여주박물관 ( 7km)- 여주시종합관광안내소 (7.2km).
10-1 코스 싸리산길 (총길이 3.2km/ 왕복 6.4km, 소요시간 1시간 30분):
▶ 싸리산주차장 (0km)- 생태등산로갈림길 (0.5km)- 고령토광산 (1.7km)- 싸리산정상 (1.8km)- 하림리입구 (3.2km)
여강길 코스는 1코스부터 11코스까지 있어서 둘레길 돌기에는 최적이군요..
주위를 둘러보고 이제 좌측에 이정표가 보이는 신륵사로 가본다.
신륵사 (神勒寺) 는 천년의 역사가 살아 있는 곳이다.
창건년대는 확실치 않으나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정확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고, 고려 말 나옹화상의 입적 후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그리고 조선시대 세종의 영릉을 여주로 천장한 1469년부터 조선왕실에서 신륵사를 원찰로 중수하고,
성종(1472), 현종(1671), 영조(1726), 철종(1858)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화재로는
보물 제 180호 조사당(祖師堂), 보물 제225호 다층석탑(多層石塔),
보물 제226호 다층전탑(多層塼塔), 보물 제228호 보제존자 석종부도(普濟尊者石鐘浮圖),
보물 제229호 보제존자 석종비(普濟尊者石鐘碑), 보물 제230호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
보물 제231호 석등(石燈), 보물 제1791호 신륵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神勒寺木造阿彌陀如來三尊像)이 있으며,
그밖에 극락보전(極樂寶殿), 범종각(梵鐘閣), 강월헌(江月軒)이 있다
봉미산 신륵사(鳳尾山神勒寺) 일주문(一柱門)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 3일간 짧은 기간의 마음 수양이라도 천년의 보배요
백년탐욕일조진(百年貪欲一朝塵)- 백년의 탐욕은 하루아침의 티끌이로다
신륵사 입구 좌측옆 불교문화유산 안내소가 보이고
우측에는 여주문화관광안내
신륵사 절 이름이 신륵이라 한 것은 미륵(彌勒)께서 신기한 굴레로써 사납게 날뛰는 용마를 잡았다는
전설에서 생겨났다는 설과 고려 고종 때 절 건너편 마을에 나타난 용마가 걷잡을 수 없이 사나웠으므로
사람들이 겁을 먹고 잡을 수 없었는데,
그때 인당대사(印塘大師)가 고삐를 잡으니 말이 순순히 따랐으므로 신력(神力)에 의해서 잡았다 하여
절 이름을 신륵사(神勒寺)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봉미산 신륵사 일주문
봉미산 신륵사, 강가에 있는 사찰이지만 봉미산을 앞에 붙였다.
봉미산은 멀지않는 곳에 있는데 해발 156m의 산으로 형태가 봉황꼬리 같아 이름 붙였다고 한다.
'삼일동안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가 되고, 백년 동안 탐내어 모은 재물은 하루아침의
티끌이 된다'는 말이 써있다. 차분한 마음으로 들어간다.
일주문을 지나면 흙길이 나오고 길 좌우로 템플스테이와 한옥 건물이 주변
소나무 숲과 어우러져 조성되어 있다.
여주신륵사사적비(驪州神勒寺事蹟碑), 인류화합공생기원비(人類和合共生祈願碑), 및 공적비(功績碑) 등...
일주문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면 신륵사 법당으로 가기전 불이문을 통과해야 한다
불이문
불이문은 해탈문, 극락문이라고도 한다
불이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부처님의 세계가 둘이 아니라는 뜻이 담겨 있는 문이다.
그 문을 통해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간다. 신륵사는 다른 사찰과는 다르게 천왕문의 없어선지
불이문의 문에 금강역사를 그려서 금강문 역할을 대신하는 거 같다.
불이문 금강역사 불화
마지막 화장실..
불이문을 지나니 오른쪽에 '보제루'가 있다
불이문을 통과하면 오른쪽으로 여강이 보이고 그곳에 누각이 있다.
단청이 없어 수수하게 보인다. 그곳에 올라 보면 양방향으로 소나무 마당과
시원하게 흐르는 여강의 경치가 일품이다.
잠시 정자에서 쉬었다 가기로 한다.
다른 절에서는 사찰의 중심으로 이동하다 '보제루'를 만나거나 지나치게 되는데
이곳에서는 주 경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어 사찰 건물이라기 보다는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은
옛 정자를 보는것 같은 느낌이다
여주 금은모래강변공원 방향
문화재 경비초소
신륵사 전경..
갈림길..
<- 극락보전, 조사당, 명부전, 관음전, ↑ 강월헌, 대장각기비, 다층석탑
신륵사 앞마당에 세심정(약수물)
돌에 이름이 새겨져 있네요~
신륵사
범종각 아래 불교용품 팔고 있다.
범종각
신륵사 범종각은 나무 들보와 종이 걸려있는 높은 단이 있는 개방형 누각이다
종 자체는 종종 불교 상징, 만트라, 때로는 보살이나 용의 묘사로 복잡하게 장식돼요
관음전..
관음전은 자비보살 관음보살을 모시는 전당이다.
관음보살은 한국불교에서 가장 존경받는 보살중 하나이며 종종 자비, 연민, 고통의 구제와 관련이 있다
신륵사 관음전은 한국 전통 불교 건축양식을 반영하고 있고 구조 자체는 단순하면서도 우아하며, 정교한
지붕 선과 조각이 영적인 분위기를 더해줘요.
관음보살을 모신 관음전에서는 각종 법회와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관음전 내부..
명부전..
명부전은 한국불교전통에서 죽은 자를 심판하는 야마왕(염나, 염라대왕)을 모시는 저승의 전당이다
명부전은 중생의 사후 세계를 주관하는 지장보살과 십대왕을 모셔놓은 전각이다.
무서운 조각상들이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재미있는 표정으로 앉아 있다.
명부전 옆 지장보살을 작은 전각에 따로 모신 점이 특이하다.
시왕님이 계시니 시왕전 이라고도 하고 지장보살님을 주불로 모심으로 지장전 이라고도 한다.
지장보살
석가모니불의 열반 후 미륵보살님이 성불할 때까지의 무불 시대(말법시대)에 육도중생(六道衆生)을
교화하겠다는 큰 대원을 세운 보살 마하살(대비 보살)이다.(대비보살)이다.
나옹선사가 심었다는 은행나무 뒤로 보이는 구룡루(九龍樓).
나옹선사 (懶翁禪師 1320 ~ 1376)
고려 말기의 고승으로 휘는 혜근(慧勤), 호는 나옹(懶翁), 본 이름은 원혜(元慧)이다.
속성은 아(牙)씨인데 고려 말 예주부(지금의 경북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원나라 유학을 했고 인도의 고승 지공스님의 제자로서 인도불교를 한국불교로 승화시킨
역사적 인물로서 조선태조(朝鮮太祖)의 왕사였던 무학대사(無學大師)의 스승 이었다,
경기도 양주군 회암사 절터가 있는데 우리나라 최대의 사찰로 중창했고,
그의 출생지 부근 경북 영덕군 창수면 운서산(雲捿山) (해발520m)기슭에 장육사(莊陸寺)를 창건 하고
오랫동안 머물며 참선했다고 전하며,
나옹선사가 입적한 뒤에는 많은 승려들이 모여들어 수도한 수도 사찰로 유명했다 한다.
회암사 터의 뒤쪽에는 나옹, 지공, 무학, 세분의 부도와 비석이 현존하고 있는데,
비석은 조선왕조 유학사상의 지주였던 목은 이색이 찬하여 지금도 비문이 남아있다.
장륙사(莊陸寺)에는 고려 공민왕 때 건물과 건물 내벽에 그의 초상화가 남아있다.
그가 입적한 남한강변 여주 신륵사에도 사리를 봉안한 부도와 비문이 남아 있다.
그의 가송집과 비문을 한글로 해석한 서적으로 나옹록이 있고 연구서도 있다.
구룡루
신륵사 구룡루는 1858년 판돈영부사判敦寧府事 김병기(金炳冀, 1818~1875)의 지원으로 중창된 건물이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인데 본래는 1층 앞부분이 트여 있었으나 지금은 벽으로 막아 2층만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이 구룡루는 누대 밑의 공간이 아주 낮다. 이유는 출입문으로서의 기능보다는 의식 집행의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구룡루라는 이름은 석가부처님이 탄생하실 때 성수(聖水)를 뿜어 부처님을 목욕시켰다는 아홉마리 용에 대한 이야기와,
신륵사 창건설화에 등장하는 아홉 마리 용의 승천과 관계있을 것으로 보인다.
누각 앞뒤로 '구룡루', '봉미산신륵사' 편액이 각각 걸려 있다.
누각에 올라가면 내부에 많은 편액이 걸려있다. 단청은 많이 퇴색되어 있었는데
새로 칠한 말끔한 것보다 어느정도 색 바랜 단청이 편안하게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보기종다.
구룡루 편액.
구룡루릐 의미는 아홉마리 용이 머문다는 의미로 모든 의식의 접전 장소로 사용되었다.
구룡루 안쪽에 걸린 봉미산신륵사 편액.
고색창연한 구룡루 목구조.
구룡루 주련 九龍樓 柱聯
梵王帝釋四天王(범왕, 제석천, 그리고 사천왕)
佛法門中誓願堅(부처의 법문가운데 서원도 굳건하시라)
自然神用護金仙(자연스런 신용으로 금선부처님를 호위하네)
列立招提千萬歲(가람을 벌려 세워 천만 년을 수호하네)
범종각 뒷편
신륵사 보호수
600년된 향나무
무학대사가 심었다는 약 600년이 된 보호수는 5m 높이에 나무둘레가 1.3m나 되는 향나무가 아름다운 향기를 품고 있다.
보호수는 사찰 근처에 서 있는 보호수를 뜻한다.
이 나무들은 신성한 것으로 간주되며 한국문화, 특히 사원 경내에서 큰 존경을 받는 경우가 많아요
보호수 나무는 일반적으로 수 세기동안 장수, 보호 및 영적 활력을 상징해요
신륵사의 맥락에서 보호수는 사찰과 방문객을 보호한다고 믿어지고, 나무 근처에서 보호와 축복을 위해
기도할 수 있어요~~
신륵사 조사당 보물 제180호 .
조사당(祖師堂)은 신륵사에서 가장 모래된 건물로
지공(指空), 나옹(懶翁), 무학(無學)대사의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보물 제180호.
조사당은 정면 1칸 측면 2칸의 대들보가 없는 팔작지붕으로 조선 초기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내부에는 나옹 스님과 스승 인도승 지공 및 제자 무학대사 세 분의 영정을 한자리에 모시고 있다.
불교 역사의 획을 긋는 세 분을 한자리에 볼 수 있는 전각이라 큰 의미가 있다.
내부 영정은 중앙에 지공스님, 좌우에 무학스님과 나옹스님이십니다.
나옹은 원나라에 건너가 인도승 지공으로 부터 지도를 받았고 무학대사는 나옹의 법맥을 이어 받았다고..
조사당 앞에서 바라본 신륵사.
석종과 석등가는길...
보제존자석종과 석등
보제존자석종은 나옹스님의 사리탑을 모셔 놓은 고려시대의 화강암으로 된
화려한 모양으로 되어있으며, 그 앞에는 보제존자석등이 놓여 있다.
보제존자석종비는 나옹 스님의 업적이 새겨 있다
나옹화상의 사리를 봉안한 보제존자 석종부도.
종을 닮은 모양으로 고려 우왕 5년(1379) 조성되었으며 보물 제228호.
높이 190cm. 1376년 나옹이 경기도 양주의 회암사에서 경상남도 밀양으로 돌아가던 중
신륵사에서 입적하자 1379년 각신과 각주가 절의 뒤편에 있는 봉미산 중턱에 묘역을 마련하고
나옹의 사리를 봉안한 것이다. 넓은 묘역을 마련하고 전면에 박석을 깔았으며, 그 위에 넓은 기단을 마련하고
그 위에 놓여 있는 2매의 판석 중앙에 석종형 부도를 안치했다.
나옹화상의 보제존자 석종비는 보물 제229호.
선교 양종의 통합에 힘쓰던 여말의 고승 나옹화상은 1376년 양주 회암사에서 밀양 영원사로 가던 도중
이곳 신륵사에서 입적하였는데 비석에는 보제존자가 살다간 내력과 사상이 기록되어 있다고.
나옹선사는 고려말의 명승으로 본명은 혜근(慧勤, 1320~1376), 법호는 나옹(懶翁), 당호는 강월헌(江月軒).
보제존자(普濟尊者)는 홍건적이 쳐들어와도 오직 설법과 참선지도로 절을 지키니 이에 감탄한 공민왕이 내린 벼슬.
극락보전, 다층석탑(보물 제225호), 은행나무, 심검당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8호인 신륵사 극락보전과 보물제225호인 신륵사 다층석탑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건립되었고,
나옹선사가 이곳에서 세상을 더난 후 고려 우왕2년 (1376)에 크게 중창된 유서 깊은 절이다.
영릉이 여주로 이장된 예종 1년(1469) 부터 왕실에서 신륵사를 영릉의 원찰로 삼았고,
성종3년(1472)부터 대규모 중창이 이루어졌다.
극락보전은 숙종4년(1678)에 다시 크게 지어진 후에 정조 21년(1797) 중수되었다.
절의 중앙에 있는 법당인 극락보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지어진 다포계 팔작집이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28호.
신륵사 극락보전을 배경으로~~
극락보전은 1797년 중수된 작지만 균형이 잘 잡힌 아담한 전각이다.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지붕의 무게를 지탱해 주는 기둥 활주를 사용해 화려하고 위용이 있어 보인다.
신륵사 극락보전(경기도 유형문화재 128호)과 다층석탑(보물제 225호)이다.
극락보전은 아미타불을 주존(主尊)으로 모시는 사찰의 중심전각이다.
극락보전 앞에 있는 다층석탑은 흰 대리석을 재료로 사용하였으며, 조형 감각이 매우 뛰어난 우아한 석탑이다.
현재 탑의 원형이 많이 훼손되어 정확한 층수는 알 수 없으나 탑의 아래 부분에 새겨진
용과 구름 문양의 세부 조각은 우수한 기량을 보인다고 한다.
보물 제225호 신륵사 다층석탑
극락보전 앞마당에 있는 아담한 3미터 높이의 다층석탑이다.
비룡문, 구름무늬 등이 섬세하게 조각된 극락보전 앞 다층석탑.
여기저기 깨어지고 금이 갔지만 섬세한 모양으로 구름과 용이 조각되어 우아하고 웅장해 보인다.
여주 신륵사 다층석탑, 대리석(驪州 神勒寺 多層石塔,大理石)
보물 제225호,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길 73(천송동 산113-1)
이 탑은 우리나라에 있는 대부분의 석탑이 화강암으로 만들어진데 비하여
특이하게도 흰색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높이는 3m에 이른다. 이 탑은 기단에서 몸돌에 이루기까지 각각 하나의 돌로 조립되었다.
4각형의 지대석 위에 2층 기단을 놓았다. 하층 기단의 하대석에는 연꽃문양이, 중대석의 각 면에는 파도 문양이,
모서리에는 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상층 기단 각 면에는 용과 구름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탑 몸돌에는 각 층마다 모서리 기둥[隅柱우주]이 새겨져 있으며, 각 층의 줄어드는 비율이 완만하다.
지붕돌의 추녀는 수평으로 흐르다가 전각(轉角)에 이르러 반전(反轉)을 보인다.
팔층 지붕돌 위에 작은 탑몸돌이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 더 많은 층수를 이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륵사가 세워진 시기는 신라시대까지 올라간다고 진해지고 있으나 현존하는 유물이 모두 고려 중엽 이후의 것이고
조선 성종 3년(1472)에 여러 건물이 다시 건립된 것으로 보아 이 석탑도 같은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보물 제225호. 높이 300cm. 이 석탑은 2층의 기단부 위에 다층의 탑신부가 있어
기본적인 구조는 신라나 고려의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각 부재의 세부조형은 전혀 다르다.
극락보전 편액.
신륵사 극락보전은 아미타불을 모시는 법당으로 경내에서 가장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 보물제1791호 신륵사 소조아미타여래삼존상 -
목조 아미타여래삼존상을 봉안한 극락보전.
중앙에 아미타불, 우측에 관세음보살, 좌측에 대세지보살
극락보전 안에 봉안된 목조 아미타여래삼존불은 이국적인 얼굴과 독창적인 주름 등
개성 있는 조형미를 보여주는 예술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보통 삼존불상은 좌상인데 이곳의 좌우 불상은 입상이라 독특하고 화려해 보인다.
신륵사가 세종대왕 영릉을 지키고 명복을 비는 영릉의 원찰이기에 죽은 이의
극락왕생과 중생의 장수, 안녕을 도와주는 부처인 아미타불을 모신 것으로 보인다.
극락보전 삼장보살도
가운데에 천장 보살과 천선 중이 자리하고 향우측에 지지보살과 지기중, 향좌측에 지장보살과 명부중이 있으시다.
대웅전 신장탱화
극락보전 앞 서쪽에 있는 적묵실(寂默室).
극락보전 앞 동쪽에 있는 심검당(尋劍堂). 요사채로 사용
극락보전 오른쪽으로 아름다운 모양의 향나무와 단아한 전각 조사당이 소나무 숲 안쪽에 있다.
아담하고 예쁘다.
다층전탑으로~~go go
천년의 세월을 한자리에서 한때 여강을 오가던 뱃사람들에게는 등대와도 같은 역할을 했다.
현존 유일의 고려시대 벽돌로 쌓은 중국식 전탑이라 한다.
법당이 아닌 전망 좋은 강변에 자리 잡고 있어 특이하고, 탑의 너비의 체감이나 비율이 일정하지 않아
기형적으로 키가 높고 길쭉한 모양이다. 벽돌의 무질서한 배열은 후세의 무지한 수리로 인한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여주 신륵사 다층전탑 (驪州 神勒寺 多層塼塔. 보물 제226호)...
구운 벽돌로 쌓은 탑으로 우리나라에는 경기도와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 멏 기 남아있다.
화강암으로 2단의 기단과 3단의 계단을 두고 6층의 탑신을 쌓았고, 그 위에 다시 몸돌이 있어 6층 또는 7층으로 보인다
다른 통일신라 전탑과 달리 지붕돌이 매우 얇다. 1726년(영조2) 수리하면서 세운 비가 있고, 여러차례 수리되는 과정에서
전체 형태가 다소 변형된것으로 보인다 (현지 안내판)
보물 제226호. 높이 940cm. 한강변에 있는 암벽 위에 건립된 것으로,
지대석 위에 화강석으로 된 7층의 기단이 있고 그 위에 높은 6층의 탑신부가 있다.
기단 위에 탑신부의 받침을 마련한 것은 신라시대의 전탑 양식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탑신부는 6층 부분만 높이와 너비가 급격히 줄어들었을 뿐 각 층의 체감률이 낮아 전체적으로 고준해 보인다.
강 절벽에 세워진 탑은 강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등대와 같은 구실을 한것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벽돌에 반원형의 무늬가 새겨있다.
이정한 배열은 아니다. 삼층석탑과 함께 사찰중심이 아닌 강변바위 위에 세워진것도 특이하다
각층의 옥개는 옥신에 비해서 극히 간략화되어 있다.
상륜부는 전으로 된 노반 위에 화강석으로 된 복발·앙화·보륜·보개 등이 얹혀 있다.
탑 북쪽에 있는 이 탑의 수리비에 "崇禎紀元之再丙午仲秋日立"(숭정기원지재병오중추일립)이라고 씌어 있어서
1726년(영조 2)에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려시대의 전탑이다.
관세음보살님이 오신 신륵사 은행나무
600년이 넘은 은행나무는 높이가 무려 22m로 은행나무에서 관세움보살님을 찾을 수 있다.
햇빛사이로 나무사이에 서있는 관세음보살이 보이시나요?
관세음보살은 소워을 이루어주는 보살이라 많은 분들이 나무 주변에 소원을 써서 걸어두었다.
참고로 소원지는 1장에 5,000원이었다.
은행나무 종류의 "보호수"
구룡루 오른쪽으로는 수령 600년 이상의 보호수 은행나무가 소원지를 매단 울타리로 둘러져 있다.
가지 하나가 죽어 옆으로 달려 있는 실루엣이 관세음보살을 닮았다고 쓰여 있어 살펴보니
정말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관세음보살님은 가운데 계시다
소원지함 (소원지는 한장당 5천원 ... 펜으로 적어서 소원지함에 넣으시면 됩니다)
구룡루 중수비(九龍樓重修碑) &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 보물 230호)
다층전탑 위에는 오랜 시간의 흐름을 지낸 대장각비가 잘 쌓은 돌계단 위에 위치한다.
고려 우왕 9년(1382)에 목은 이색이 공민왕과 부모의 명복을 빌고자 세운 비이다.
위치가 높고 한적해 돌계단에 앉아 다층전탑과 여강을 감상하기 좋은 장소이다.
신륵사 대장각기비각(보물 제230호)과 대장각기비 이다.
이색과 나옹의 제자들이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대장각을 세운 연유를 기록하고 있다.
고려말, 목은 이색이 만든 이 비에는 대장경에서 발췌한 문장을 새겨 놓았다
1382년 2층의 대장각(大藏閣)을 건립하고 간행한 대장경을 봉안하였으나 대장각은 언젠가 사라지고 비석만 남아 있네요.
강월헌과 삼층석탑..
나옹화상의 화장터에 건립된 석탑과 인접해 건립된 6각형의 정자이다.
강월헌은 나옹화상의 당호로 그를 추념하기 위해 건립했던 정자로 생각된다.
이 정자는 본래 석탑과 거의 붙어 있었으나. 1972년 대홍수시 파괴되는 바람에 현재의 위치에 콘크리트로 건립했다.
이 정자는 신륵사를 감아 흐르는 여강의 암반 위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백사장과 강물 그리고 멀리 보이는 여주평야 등은 가히 일품이라 하겠다.
신륵사 내 남한강 언덕위에 위치한 강월헌 정자
강월헌
신륵사에서 입적한 고려말 나옹선사로 더 알려진 혜근(慧勤, 1320~1376) 의 다비 장소였는데
이곳에 정자를 세우고 그의 당호인 강월헌이라 이름 붙였다
원래 삼층석탑과 거의 붙여 있었는데 1972년 홍수로 떠내려가 1974년 철근 콘크리트로 다시 세웠다
정자 자체의 모습보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남한강의 정취가 좋다.
난간에 따라 의자가 마련되어 있어 잠시 앉아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여주신륵사 삼층석탑
신륵사 삼층석탑(三層石塔)은 다층전탑 근처의 강변 암반위에 화강암을 깍아서 만든 탑이다.
신륵사 삼층석탑은 화강암을 깍아 만든 3층탑으로 고려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 ...
나옹선사가 노닐던 여주 강월헌(江月軒)에서...
신륵사 삼층석탑 바로 옆에는 남한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정자 (신륵사 강월헌: 江月軒)가 있으며,
그 아래로 황포돛대가 있는 나룻배는 옛정취를 그대로 느끼게하고 있다.
강 건너에는 금은모래 유원지가 있고, 남한강에는 가끔 황포돛배와 수상레저 보트가 다니기도 한다.
남한강의 풍경을 보기좋은 일출명소 강월헌
나옹 스님의 <선시> 한수를 조용히 마음속으로 음미해본다.
靑山兮要我 - 청산은 나를 보고 나옹선사 (懶翁禪師)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憎兮 (료무애이무증혜)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그래요
세상을 아름답게 살려면 꽃처럼 살면되고
세상을 편안하게 살려면 바람처럼 살면 된다 헸지요
꽃은 자신을 자랑하지도 남을 미워하지도 않고
바람은 그물에도 걸리지 않고 험한 산도 아무 생각없이 오른다 했어요
잔잔한 여주강을 보고 있으니
나옹 스님의 가르침이 마음속으로 다가온다.
정자에 걸터 앉아 유유히 흘러가는 남한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모든 시름과 근심이 강물과 함께 사라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더없이 평화롭고 조용하며 잔잔한 강물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도듬어준다
강가에 조용히 떠있는 황포돛배를 보니 이배를 타고 청록색의 강물을 가르고 싶은 마음이다
잔잔히 흐르는 강물위를 가르는 황포돛배..
차분한 강과 산의 경관을 보니 더없이 좋은 목가적인 분위기라 느즈막한 나이에 낭만에 취해본다..ㅎ
은행나무와 참나무..
주변에는 여주 목아박물관, 천서리막국수촌, 이포보,화담숲 등이 있다.
신륵사는 남한강을 따라 위치하며 고려와 조선시대의 건축물이 잘 보전되어 있다는 점에서 독특해요
경내를 돌아보다보면 탑, 정자, 고대 나무 등 평화로운 분위기와 함께 숨겨진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요
다층전탑이 유명하지만 남한강과 어울리는 풍경도 멋진 곳이었다. 아름답고 평화롭게 여겨지는 곳에 위치한 신륵사 인것 같다
강물처럼 유구한 역사를 품고 있는 여주에서 문화재들을 보며 미처 몰랐던 역사적인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하루였어요
이것으로 일일 나들이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