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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 콜로세움 (Colosseo)

작성자위층아저씨|작성시간26.06.10|조회수160 목록 댓글 0

바티칸 순례자사무소에서 순례증명서를 수령하고, 즉시 성당 수도원 Ostello로 찾아 갔습니다.

바티칸 대성당에서 약30분 거리에 있는 성당의 수도원에서 입실 등록을 마치니 3시반이 넘었습니다.

여기서 콜로세움까지 30분 거리라 바쁘게 서둘러야 했습니다.

이틀 전에 콜로세움 4시30분 입장 예약을하고 입장료 18유로를 결제했습니다.
동행하기로 한 Teo는 16시 입장, 나는 16시30분 입장 시간이 정해졌습니다.
콜로세움 입장은 예약없이 현장 입장은 거의 불가능하니 사전 예약은 필수 조건입니다. 

3곳이 서로 멀지 않는 곳이였지만 2시 바티칸 도착 - 순례증수령 - Ostello 체크인 - 16시 콜로세움 입장,

낯선 거리를 찾아가느라 정신없이 뛰어야 했습니다.
콜로세움 입장 시간은 15분 단위로 되어 있습니다.
간신히 16시 콜로세움 정문에 도착하니 16시30분 나는 입장을 안 시키고 기다리라고 합니다. 

두사람이 일행임을 설명하고 부탁하니 16시15분 두사람 입장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콜로세움 : 콜로세움(Colosseum, 이탈리아어: Colosseo 콜로세오)은 고대 로마 시대의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로마 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타원형 경기장이다. 석회암, 응회암, 콘크리트, 홍예석 등으로 지어져 있고, 8만 명 이상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다. 로마의 중심지에 위치하여 있고, 현재는 로마를 대표하는 유명한 관광지로 탈바꿈하였다. 콜로세움의 이름은 근처에 있었던 네로 황제의 거대 동상인 콜로서스(巨像; kolossus)에서 유래한다. 원래 이름은 플라비우스 원형 경기장으로, 서기 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해 8년 뒤인 80년에 티투스 황제가 완공했다.

콜로세움은 수 세기 동안 계속 개축되어왔고, 로마 제국의 전성기에는 5만 명에서 8만 명의 관중들을 수용할 수 있었다. 콜로세움에서는 주로 검투사들의 결투가 이루어졌으며, 모의 해전, 동물 사냥, 신화의 재연 등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졌다. 다만 중세에 이르러 제국이 쇠퇴하고 로마가 폐허로 변하자, 콜로세움도 이와 같은 변화를 피하지 못하고 요새, 교회와 같은 용도로 사용되었다.

콜로세움은 지진과 약탈, 채석 같은 파괴 행위로 상당 부분이 손상을 입었으나, 여전히 로마의 상징과 같이 여겨지고 있다.

(위키백과)

콜로세움 입장권 : 신분증으로 본인여부 확인합니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 콘스탄티누스 개선문(Arco di Costantino)은 콘스탄티누스 1세를 기리기 위해 로마에 세워진 개선문이다. 콘스탄티누스 1세의 즉위 10년이 되는 315년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원로원이 세운 것이다. 콘스탄티누스가 312년 로마에 진군할 때, 대낮에 십자가와 "이것으로 이겨라"라는 환상을 전군(全軍)과 함께 보고 막센티우스군(軍)을 테베레강 근처에서 격파했는데, 황제의 그때 싸움 장면이 이 문의 부조(浮彫)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팔라티노 언덕 ( Colle Palatino ) :   로마의 일곱 언덕 중 하나이다. 로마의 일곱 언덕들 중 가장 핵심적인 언덕으로 꼽혔으며, 로마 왕정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을 정도로 로마 시내에서 가장 오래된 구역이다. 이 곳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지은 황궁이 있었다. 티베리우스 황제가 후에 이 황궁을 확장했으며, 후대에도 계속 로마의 정식 황궁으로 사용되었다. 팔라티노 언덕에는 황궁 외에도 부유층의 저택들이 밀집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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