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바로 알기, 6월 6일 <양진명소사 추모헌공다례> 참관 후기>
어제 오후에 있었던 <양진명소사 추모헌공다례>에 다녀왔다. 날이 더웠고, 또한 오전에 현충일 추모행사의 여파인지 참석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현장에 다녀간 사람들은 한 장씩 받아보았겠지만, <양진명소와 양진명소사>라는 제목으로 탄금대와 관련된 소개 자료를 나눠줬다. 다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탄금대의 의미를 처음 알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1500년간 그곳에서 있었던 모든 것이 기록으로 전하는 것은 아니지만, 충주에서 공간의 의미가 오래된 기록에서 확인되는 몇 안되는 곳이다.
탄금대의 경우 551년(신라 진흥왕 12) 3월의 기록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조선 시대에 들아와 기록된 각종 지지류나 『경국대전』 같은 것에서 양진명소와 양진명소사에 대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1592년 6월 7일(음 4. 28)에 있었던 <탄금대 전투>를 추가하면 탄금대에 관한 이야기를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다.
다만, <탄금대 전투>가 탄금대에서 벌어진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탄금대 전투>가 벌어진 곳은 탄금대 앞 오른쪽에 테니스장, 야구장, 재활용센터 등이 있는 그 공간이다. 그곳은 <탄금대 전투> 이후 <고전장(古戰場)>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불리던 곳이다.
<다시 탄금대에서 노닐다(再遊彈琴臺)>
往事迢迢不可探 지나간 일 아득하여 찾아볼 수 없고
琴仙臺下水如藍 금선대 밑에 물이 쪽과도 같구나
文章強首無遺廟 문장으로 이름났던 강수는 남겨진 사당 없고
翰墨金生有廢菴 글씨 잘 쓰던 김생은 황폐한 암자 있다
落日上江船兩兩 지는 해에 강을 올라가는 배들 둘씩 둘씩 보이고
斜風盤陼鷺三三 빗낀 바람에 모래섬 어정거리는 백로 셋씩 셋씩 모여있다
陶辭莫遣佳人唱 도잠(陶潛)의 사(辭)일랑 가인이 노래하게 시키지 말라
太守聞來面發慙 태수가 들으면 얼굴에 부끄러움 떠오른다.
- 박상, 『눌재집』 권5, 율시-칠언
탄금대를 소재나 주제로 지은 시는 많다. 그 중에 지지류에 탄금대 제영시로 수록된 충주 목사를 지낸 박상(朴祥, 1474~1530)의 탄금대 시이다.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시에는 신립이나 배수진 등 <탄금대 전투>와 관련된 언급이 있을 수 없다.
…(전략)…
念父母之鞠育 부모 품 애지중지 자라나면서
憶兄弟之相隨 형제와 자나 깨나 어울렸었고
繄妻子之和樂 처자 얻어 오순도순 나누던 정은
蓋有甚於塤箎 형제의 화목보다 깊었건마는
何偶然而暫離 어이하여 우연히 잠시 떠난 뒤
逈死生之莫知 서로 간에 생사를 알 수 없는가
此肝腦之塗地 여기선 찢긴 주검 널려 있는데
彼飮食而猶祈 저쪽선 돌아오길 마냥 기도해
無所辜於天地 천지간에 아무런 죄가 없거늘
乃禍酷之如斯 재앙 어이 그리도 참혹했는지
孤其子而獨其父 자식은 고아 되고 아비 홀로 되었으며
寡其妻而鮮兄弟 아내는 과부 되고 형제 짝을 잃었어라
骸骨莫收於沙磧 모래밭 널린 해골 거두지 못해
心目耿耿而盈涕 그때 정경 떠올리니 눈물이 글썽
怨窮天而愈深 하늘에 사무치는 끝없는 원한
慟十年而如昨 십 년이 흘렀어도 어제 같기만
…(후략)…
- 정구, 「祭壬辰戰亡將士文 忠州彈琴臺」 부분, 『한강집』 권11, 축문
1602년에 충주 목사로 부임한 정구(鄭逑, 1543~1620)가 탄금대 양진명소사에서 지냈던 위령제 축문의 한 부분이다. <탄금대 전투>가 벌어진 10년 뒤의 충주 상황을 담고 있다. ‘모래밭 널린 해골 거두지 못해’라고 한 곳이 <고전장>이다. <탄금대 전투>가 끝나고 왜군은 전공을 증명하기 위해 그날 그곳에서 희생된 이들의 머리를 벤[首級] 것이 3,000이었다고 한다. 머리 없는 시신, 좁은 공간에 뒤엉킨 시신, 그 시신을 수습할 여력도 경황도 없던 충주였다. 그렇게 10년이 지났지만 ‘보래밭 널린 해골 거두지 못해’라며 방치되었던 상황을 그리고 있다.
<달천의 옛 전장터를 지나며 (過㺚川古戰場)>
元戎於此覆三軍 원융(元戎)이 이곳에서 삼군을 묻었다고
野老咨嗟向我云 시골 늙은이가 탄식하며 내게 말하네
十里平沙埋白骨 십 리의 모래밭에 백골이 묻혔고
千秋冤血染黃雲 천추의 억울함이 황운을 물들였네
田間雨洗槍尖露 밭 가운데 내리는 비는 창끝의 이슬을 씻어내는 듯
江上天陰鬼哭聞 강 위에 음침하여 귀신의 곡소리 들리는 듯
欲弔英靈慙句拙 영령을 조문하려는 시구 졸렬하여 부끄러운데
李華曾賦戰場文 이화(李華)가 일찍이 지었던 조고전장문(弔古戰場文)이 있구나.
- 김홍욱, 『학주집(鶴州集)』 권2, 남행록(1641)
김홍욱(金弘郁, 1602~1654)이 1641년에 탄금대를 지날 때는 임진왜란을 겪은 지 한 세대가 지난 때이다. 그 때부터 <고전장>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사람에게 <고전장>이 어디인지를 묻는다면, 대답하는 이가 거의 없을 것이다.
탄금대는 어쩌면 충주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같은 곳이 아닐까 싶다. 혹시 여러분은 역사로 확인되는 1,500년의 시간 중에 앞선 1,400년은 싹둑 잘라버리고, 탄금대에 가면 '국민학교 때 지겹게 소풍왔던 곳인데' 또는 ‘아! 경치 좋다’만 연발하는 것은 아닌가? (20260607 牛步생각)
* 어제 찍은 여러 컷 사진 중에 어른이와 어린이로 대비되는 사진이 있어서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