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수원(水原)답사기
주제: 늘 물이란 뜻이 담긴 고장, 수원(벌물) 역사 기행
입동이 지났지만 가을 끝자락 햇살은 여전히 따사롭고 공기도 맑았다. 답사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날씨는 없을 터, 모두들 발걸음이 가볍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참가 인원이 40명을 밑도는 38명이 되었는데, 그동안 꽉 찬 버스로 장거리 이동하며 불편했던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여유가 생겨 좋다는 의견이 많다. 더욱이 이번 답사지는 충주에서 그리 멀지 않은 수원. 여러 번 찾았던 곳이지만, 널리 알려진 명소 대신 그동안 잘 살펴보지 못했던 숨은 유적과 의미 깊은 공간들을 중심으로 일정을 꾸렸다.
버스로 두 시간도 채 안되어서 수원에 입성하였다.
수원은 연유해, 볼물 · 벌물. 물벌이라는 뜻으로 지금까지 내려온다. 통일신라 때인 757년(경덕왕 16) 9주를 두고 군현으로 명칭을 고칠 때 수성군(水城郡)이라고 개칭하였다고 한다.
오늘 그런 역사가 깃든 수원의 길잡이는 임순이 수원 문화관광해설사이다. 안동에서 문화재청(국가유산청) 행사에서 인연을 맺은 지 어언 15년, 서로 문화관굉해설사로 활동하기 전이었다. 그때 첫인상은 털털하고 시원시원해서 ‘여장부’ 같다는 느낌이 강했다. 오늘 세월이 흘러 만났다. 예전에 짦은 느낌 하고는 달랐다. 이렇게 현장을 꿰뚫는 섬세한 시선과 일행을 배려하는 넉넉한 마음씨에서 품격이 느껴졌다. 심지어 미리 현장을 확인하고, 버스 주차부터 ‘수원역사박물관 환영 문자 전광 게시판’ 설치와 평소 개방하지 않는 구역의 출입 허가, 점심 장소 섭외와 시간 배분까지 꼼꼼히 챙겨주어, 짧은 가을 해에 모든 일정을 여유롭게 소화할 수 있었다.
참 ! 이리 인연이 소중하다. 고맙고 감사하다.
'수원역사박물관: 시간이 쌓여 온 도시의 이야기'
첫 행선지는 수원역사박물관이다. 수원의 과거부터 현재까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곳이지만, 이날 특히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근대사 전시 공간이었다. 개항과 함께 도시가 변화하던 시기의 거리 모습과 상점 풍경, 사람들의 생활상을 재현해 놓은 모형은 마치 과거로 건너간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전시장 한쪽에는 수원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의 흔적과 함께 서예, 회화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필선에 담긴 정신과 예술혼이 고스란히 느껴져 오래도록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눈에 띄는 점은 박물관 자체에서 운영하는 순환 버스 시스템이었다. 주변 학교와 마을을 연결하며 문화 공간을 생활 속으로 끌어들이는 모습이 참 부러웠다. 우리 충주에도 이런 연결 고리가 생긴다면, 지역 문화유산이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와 호흡하는 살아있는 자산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보았다.
'봉녕사: 현대에 꽃핀 전통, 섬세함과 대범함의 조화'
다음은 회원의 추천으로 찾은 봉녕사이다. 비구니 스님들의 정진 도량으로, 경내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과 고요한 기운이 먼저 다가온다. 1208년 원각국사가 세운 이래 오랜 역사를 이어온 이곳은, 최근까지 이어진 중건 과정에서 전통 양식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현대적인 건축 기법과 예술적 감각이 더해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대적광전과 용화각은 묵직한 석조 기단 위에 지어진 목조 건축으로, 기와의 곡선이 부드럽고 단청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색과 선의 조화가 탁월했다. 법당 외벽에 그려진 불화는 석가모니 부처의 설법 장면과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한 보살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했는데, 붓 자국 하나하나에 정성이 느껴지고 색감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선명하게 살아있어 감탄스러웠다.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석조삼존불상은 고려시대 작품으로, 부드러운 얼굴 윤곽과 편안한 자세가 마치 살아 호흡하는 듯 생동감이 넘쳤다. 마당 한가운데 우뚝 선 수령 800년이 넘은 향나무는 사찰의 긴 역사를 조용히 이야기하는 듯했고, 법당 문짝과 창호지 문양에는 연꽃, 구름, 불교적 상징들이 정교하게 새겨져,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하나하나가 예술 작품이었다.
봉녕사 승가대학장 의천 스님께서 직접 해설을 맡아주셨는데, 목소리는 맑고 고왔으나 이야기 속에는 불법을 향한 확고한 의지와 깊은 통찰이 묻어났다. 특히 사진 촬영을 아무런 제한 없이 허락하시며, 보는 이가 편안하게 감상하도록 배려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비구니 사찰답게 모든 것이 섬세하게 관리되면서도, 스님의 품격처럼 전체적으로 넉넉하고 대범한 느낌이 공간 전체에 배어있었다.
심온선생묘·혜령군묘: 숲길에 잠긴 두 분의 삶과 역사
길을 이어 우리는 조선 초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두 인물의 묘역을 찾았다. 심온 선생 묘와 고개 너머 이웃처럼 자리한 혜령군 묘는 울창한 숲과 잘 어우러져,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인문학적 산책로였다.
심온 선생은 태종과 세종을 섬긴 문신이자 학자로, 훈민정음이 만들어지고 학문이 진흥하던 시기에 집현전에서 활동하며 큰 역할을 했다. 청렴하고 학식이 높아 존경받았던 그의 묘역은, 조선 초기 상류 사회의 장묘 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묘비와 문인석, 석양 등 석조물들은 당시의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불필요한 치장 없이 소박하고 품위 있는 모습이 선비의 삶을 닮아있었다.
가까운 곳에 자리한 혜령군 이구는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이다. 왕자로서의 권위를 갖추고 있었지만, 정치보다는 학문과 예술에 힘쓰며 조용한 삶을 살았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묘역은 왕가의 격식에 맞춰 규모가 있고 위엄이 있었으며,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며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두 묘역을 함께 둘러보며,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다른 위치와 삶의 궤적을 가진 두 인물을 통해 조선 초기 역사의 다양한 면모를 읽어내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점심: 참새와 방앗간, 기대 이상의 만족
답사로 허기가 진 몸을 이끌고 찾은 곳은 '참새와 방앗간'이라는 한식 뷔페 식당이었다. 이름은 정겹지만 뷔페라는 말에 처음에는 기대 반, 걱정 반이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데 막상 식탁에 앉아 음식을 마주하자 모두 표정이 풀어졌다. 가격은 부담 없이 저렴했지만, 갖가지 제철 나물과 젓갈, 구수한 찌개와 정갈한 전통 반찬들이 깔끔하게 차려졌고 맛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먹고 싶은 만큼 덜어 먹는 방식이라 불편함도 없었고, 오히려 수원의 맛을 다양하게 경험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예상 밖의 만족스러운 식사로 오후 일정을 위한 에너지를 듬뿍 채웠다.
스미스기념관: 교육으로 민족의 얼을 심다.
오후 첫 방문지는 수원 삼일중학교 교정 안에 자리한 '스미스기념관'이다. 1920년대 미국 선교사 스미스 부부가 세운 삼일학교의 본관 건물로, 일제강점기 어려운 시절에 민족 교육과 여성 교육의 터전이었던 근대 문화유산이다.
붉은 벽돌로 쌓은 외벽은 세월의 무게를 그대로 보여주며, 아치형 창문과 2층으로 이어지는 나무 계단, 높은 천장과 넓은 복도는 당시 서양식 학교 건축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내부 전시 공간에는 1920~30년대에 사용하던 교과서, 성적부, 졸업장, 학생들의 공책과 필기구, 선교사 일가가 쓰던 생활용품과 사진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특히 당시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민족 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썼던 강의 노트와 교육 방침 문서가 눈길을 끌었는데, 억압 속에서도 교육의 불씨를 지켜온 이들의 노력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벽에 걸린 흑백 사진 속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스미스 선교사 부부의 모습, 운동회와 소풍 가는 모습이 담겨 있어 마치 그 시절 교실에 서 있는 듯 생생하였다.
건물 관리가 조금 소홀한 점은 안타까웠지만, 우리를 안내해주신 학교 선생님의 이 유산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곳이 단순히 오래된 건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삼일중학교의 정신적 뿌리이자 수원 근대 교육사의 상징으로서 더욱 잘 보존되고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동시에 우리 충주에도 이런 근대 문화유산이 남아있는데, 관리와 활용이 부족한 현실이 떠올라 아쉬움이 남았다. 역사는 쌓아가는 것이기에, 흔적을 지워버리면 그 시대는 영원히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될 것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축만제서호: 정조의 마음이 담긴 물길, 시간을 품은 호수
다음은 수원의 대표 명소 축만제서호이다. 조선 22대 정조대왕이 1799년 직접 구상하고 명령해 만든 인공 저수지로, ‘농사는 백성의 근본이며 하늘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라는 ‘농사천하지대본’의 정신이 담긴 애민 사업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호숫가를 따라 걷자 넓고 잔잔한 물결이 햇살에 은빛으로 반짝이고, 둑길을 따라 낮은 돌담과 오래된 나무들이 운치를 더한다. 물가에는 갈대와 수련이 자라고, 가마우지, 흰뺨검둥오리, 중대백로 등 철새와 물새들이 한가롭게 물속을 오가는 모습이 평화롭다. 호수 한쪽에는 정조의 뜻과 축만제의 역사를 적은 안내판이 서 있고, 바로 옆에 항미정에서 서호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가 있었다.
이렇게 넓은 호수는 단순한 물 저장 시설이 아니라, 당시의 농업 기술과 토목 공사 수준을 보여주는 산 교육장이다. 이 물길을 기점으로 수원은 한국 근대 농업의 중심지로 성장했고, 그 정신은 이후 우장춘 박사의 연구 활동과 수원농과대학 설립으로 이어지며 우리나라 농업 발전의 뿌리가 되었다. 지금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휴식 공간이자 생태 보금자리로 거듭나,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해우재: 화장실에서 찾은 문화, 웃음과 의미가 공존하는 곳
마지막 답사지는 가장 독특하고 기억에 남을 해우재이다. 국내 유일의 화장실 박물관으로, 이름은 절에서 화장실을 일컫는 ‘해우소’에서 따와 ‘근심을 푸는 공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거대한 변기 모양의 본관 건물이다. 이곳이 고 심재덕 선생의 생가였을 당시, 그가 ‘화장실은 더러운 곳이 아니라 문화이자 삶의 일부’라는 철학을 담아 직접 설계한 모습 그대로라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화장실 모양 건물로도 알려질 만큼 독특한 외관이 사진 찍는 재미를 더한다. 건물 주변 정원에는 임금이 쓰던 휴대용 변기 ‘매화틀’을 비롯해, 제주도의 전통적인 ‘통시’ 형태 변소, 예전에 분뇨를 나르던 도구와 지게, 웃는 얼굴을 새긴 변기 조형물, 유명 조각 작품을 패러디한 듯한 익살스러운 모형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어 웃음을 자아낸다.
전시실은 1층과 2층으로 나뉘어 있는데, 1층은 시대와 지역에 따른 변기의 변천사를 보여준다. 삼국시대 토기로 만든 요강부터 조선시대 나무와 도자기로 만든 용기, 근대식 수세식 변기, 현대의 첨단 위생 설비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비교하며 볼 수 있다. 프랑스 루이 14세가 썼다는 의자형 변기, 일본과 중국 등 각국의 독특한 화장실 문화를 보는 것도 흥미롭다. 2층에는 화장실을 주제로 한 그림과 시, 글귀 등 예술 작품이 전시되고, 심재덕 선생이 1996년부터 시작한 ‘화장실 문화 운동’의 발자취가 사진과 기록으로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우리나라 화장실 문화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이야기, 세계화장실협회를 창립하기까지의 과정이 담겨있어 단순히 재미있는 것을 넘어 ‘문화’로서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전체적으로 유머와 재치가 넘치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진지해서, 일행 모두 마치 ‘뒷간에 들러 근심을 풀고 나온’ 것처럼 마음까지 홀가분하고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덧 해가 기울며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자주 못뵈니 언제 다시 만 날 기약이 없어 임순이선생에게 기념사진을 찍자고하였더니 이왕이면 불윤같이 찍어달란다.
유모도 재미있지만 그의 담백한 성격이 나온다.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우리들은 충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짧지만 알차고 의미 있었던 수원 답사이었다.
오늘 보고 느낀 것들이 마음속에 가득 차 있었지만, 몸과 마음은 해우재의 이름처럼 근심 없이 가볍고 편안했다. 버스는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리고, 창밖으로는 가을 노을이 아름답게 번지고 있었다. ‘물이 늘 흐르는 고장’ 수원의 역사처럼, 우리가 만난 이야기와 감동도 오래도록 마음속에 물들어 남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