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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관에서 온 편지

8월 7일 연중 제 18 주간 목요일

작성자이상훈(바오로)|작성시간25.08.07|조회수56 목록 댓글 0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오늘 독서의 말씀은 이번 주간 계속 읽게 되는 민수기의 말씀입니다. 어제 독서의 말씀에서 약속의 땅을 목전에 두고서도 전능하신 하느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은 오늘 독서의 말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광야에 진을 친 이스라엘 백성은 공동체에 마실 물이 충분치 않자 모세와 아론에게 달려가 다음과 같이 항의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 우리 형제들이 주님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어쩌자고 당신들은 주님의 공동체를 이 광야로 끌고 와서, 우리와 우리 가축을 여기에서 죽게 하시오? 어쩌자고 당신들은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고약한 곳으로 데려왔소? 여기는 곡식도 무화과도 포도도 석류도 자랄 곳이 못 되오. 마실 물도 없소.”(민수 20,3-5)

 

 이들이 하는 말이 기가 찹니다. 분명 광야의 그 긴 여정 중에 하느님이 그들에게 베풀어 주신 그 놀라운 기적들을 모두 직접 체험한 그들은 그 모든 은총에도 불구하고 조금 귀찮고 성가신 현실의 문제 상황에 당면하자 놀랍게도 언제 그런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했냐 싶을 정도로 하느님의 전능하심에 의구심을 갖고 심지어 죽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막말을 서슴지 않고 해대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들의 나약한 믿음의 모습에 하느님은 다시 한 번 그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모세의 지팡이로 바위를 쳐서 그들이 모두 먹고 마시고도 남을 충분한 양의 물이 단단한 바위에서 터져 나오게 하는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은 믿지 못하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십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믿지 않아 이스라엘 자손들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이 공동체에게 주는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지 못할 것이다.”(민수 20,12)

 

 사실 하느님이 모세와 아론에게 하시는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저주의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40년에 걸쳐 그 황량한 광야를 지나 이제 곧 하느님 약속의 땅에 들어갈 그 시점에 그들 중 그 누구도 그 땅을 밟지 못하리라는 하느님의 말씀은 그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가혹한 저주와도 같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오늘 독서의 민수기의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하느님의 권능에 의구심을 갖는 이들이 갖게 될 참혹한 불신의 결과를 냉혹하게 이야기합니다. 

 

 한편, 오늘 복음의 말씀은 새 계약의 완성을 위해 이 세상 오신 메시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 새 계약을 설명해 주는 모습을 전합니다. 언제나 예수님을 주님이자 하느님이 보내신 메시아라고 믿고 따르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십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 [...]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13.15)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믿고 있는지를 물으신 예수님은 그 이후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그렇다면 제 3자인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 말고 너희는, 나를 스승으로 믿고 따르는 너희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를 누구라고 믿고 있는지를 고백하라고 요구하십니다. 이에 베드로가 놀랍게도 예수님의 물음에 너무도 정확하고도 적확한 대답을 합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평소의 베드로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적확한 대답을 현명하게 한 후, 베드로는 역시나 그의 본래 모습, 곧 단순하고 우직하면서도 성미가 급한 자신의 성격 그대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메시아의 참된 모습에 토를 달며 예수님을 말씀을 끊고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이야기하며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뜯어말리려듭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런 베드로에게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말씀을 건네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23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의 물음에 너무도 현명하고 정확하게 대답함으로서 교회의 반석으로 삼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을 듣고,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까지도 예수님으로부터 수여받은 베드로가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졸지에 사탄에, 예수님의 걸림돌이 되는 이 상황은 분명 당황스러우며 당혹스럽기 이를 데 없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조울증 양극성 장애 환자가 아닌 이상, 이렇게 갑자기 변화하는 태도가 쉽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어떤 모습에 이토록 화를 내신 것일까? 베드로는 도대체 예수님께 어떤 잘못을 했던 것일까? 사탄이며 걸림돌이 될 정도로 베드로가 잘못한 점을 과연 무엇일까?

 

 예수님의 말씀 안에 그 답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사탄이자 걸림돌이라고 하신 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23ㄴ)

 

 베드로가 너무도 잘 대답했던 그 질문, 곧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로서 이제 곧 해야 할 일들을 설명하였을 때, 그 일들이 박해와 고난 그리고 죽음이라는 설명을 듣고 베드로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감히 예수님의 말씀을 끊고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베드로의 이 같은 행동, 곧 오늘 제 독서의 민수기의 말씀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였던 태도, 자신이 바라고 희망하는 대로 상황이 전개되지 않을 때, 쉽게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고 하느님마저도 부정하려는 믿음이 약한 자들의 태도,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표현대로 하느님의 일은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 곧 나만의 바람과 나만의 뜻 그리고 나의 인간적 의지를 하느님의 것보다 우선시 하는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두고 예수님은 베드로를 사탄이자 예수님의 걸림돌이라 이야기하십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뜻보다 나의 인간적 뜻을 우선시 할 때 우리 역시 예수님께로부터 사탄이자 걸림돌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면에서 오늘 화답송의 시편의 말씀을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십시오. 오늘 화답송의 말씀은 우리 마음을 깨끗이 하여 하느님께 드리는 우리의 제물이 부서지고 뉘우치는 마음이어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나만을 내세우고 나의 인간적인 뜻을 우선시 하는 것이 아닌 온전히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계획에 나의 모든 것을 내어 맡길 수 있는 자세, 비록 그 하느님의 뜻이 내가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나의 삶의 최우선 순위로 삼을 수 있는 마음, 곧 시편의 표현대로 부서지고 뉘우치는 마음, 순종의 영이 되어야 함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할 때에 주님은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해 주시며 우리의 힘, 우리의 반석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가 진리 그 자체이신 하느님을 굳게 믿음으로서 그 분 안에서 참된 자유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 [...]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마태 16,13.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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