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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관에서 온 편지

6월 11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작성자이상훈(바오로)|작성시간26.06.11|조회수82 목록 댓글 0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마태 28,19.20)

 교회는 오늘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사도 11,24) 사도 바르나바를 기억하고 기념합니다. 예수님의 12 제자 안에는 포함되지 않은 사도 바르나바는 키프로스 태생으로 요셉이라고 불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알고 난 후, 유다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성인은 그 뒤 자기 재산을 모두 팔아 사도들에게 봉헌합니다. 이에 사도들은 그에게 바르나바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 공동체에서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허락해 줍니다. 특별히 바르나바 성인은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바오로는 받아들이기 위해 공동체를 설득한 이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후 바오로와 함께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에 적극적으로 행동했던 바르나바는 61년 경 살라미스에서 돌에 맞아 순교합니다. 

 이 같은 성인을 기억하는 오늘 우리가 듣게 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알리는 사도들이 갖추어야 할 믿음의 자세에 대해 알려 주고 있습니다. 

 우선 오늘 복음 말씀은 마태오 복음의 말씀으로서, 사도들을 파견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예수님의 사명을 돕는 협조자 곧, 사도들이 갖추어야 할 외적 자세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파견되는 사도들의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의 내용에 따라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도들의 모습을 그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마태 10,9-10)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아무 것도 지니지 말고, 정말 말 그대로 빈 몸뚱이로 그 멀고도 험한 여정을 떠나라고 명령하십니다. 심지어 여벌 옷과 신발 그리고 지팡이도 지니지 말고 떠나라 명하십니다. 사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지금 그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무리한 요구로 들리지만 당시 유다의 상황을 고려해 보면 더욱 그러함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과 유다 지역은 거의 대부분의 지역이 광야지역으로서 다른 고을로 떠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광야를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광야의 특성상 해가 떨어지면 아무리 더운 계절이라 할지라도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추운 밤을 지새우기 위해선 자신의 몸을 덮을 여벌 옷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광야를 몇날 며칠 걸어가야만 했던 제자들에게 여벌의 신발은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맹수들이 시시각각 덤벼드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생명을 지켜줄 최소한의 필수품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정말 최소한의 도구들도 챙기지 않고 그저 맨몸으로 마치 삶을 포기한 사람처럼 죽음을 자초하러 가는 사람의 모습으로 그 길을 떠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그토록 사랑하던 제자들을 떠나보내시면서 이토록 모질고 매정하게 아니 좀 심하게 표현한다면 마치 제자들을 사지에 몰아넣듯이 이렇게 떠나보내셨던 것일까? 반대로 예수님이 이렇게 제자들을 떠나보내실 때, 제자들은 정말 예수님 말씀 그대로 정말 아무 것도 없이 하느님 나라를 전하기 위한 그 험한 여정을 나섰을까? 예수님의 이 같은 말씀을 담고 있는 제자들의 파견 모습을 전하는 오늘 복음이 이야기하는 제자들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 그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제자들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 그 답을 오늘 독서의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독서의 사도행전의 말씀은 예루살렘 이외의 지역에서도 주님을 믿게 되는 사람이 점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자 그곳에 바르나바를 파견하고 그의 협조자로서 바오로를 파견하는 내용을 전합니다. 이를 통해 안티오키아 교회가 생겨나고 안티오키아 신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으로 불리게 되는 사건을 전하며 동시에 독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의 자세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 사도행전은 그 부분을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그들이 주님께 예배를 드리며 단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이르셨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 그래서 그들은 단식하며 기도한 뒤 그 두 사람에게 안수하고 나서 떠나보냈다.”(사도 13,2-3)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사울을 사도로 뽑아 그를 바르나바와 함께 안수한 후 복음을 선포하도록 이방의 도시로 파견한 것은 사실 인간적인 시선으로 보았을 때 이해할 수 없는 처사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 잡아 죽일 마음을 갖고 실제 대사제의 허가장을 받고 다마스커스로 가던 사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삼는다는 것은 분명 상식을 벗어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그들 자신의 인간적인 뜻과 의지가 아닌,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 하느님의 뜻에 의지하여 복음을 선포되어야만 하며, 그 과정 중에 생겨나는 모든 시련과 고난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그 고난에 동참하여야 하는 것, 바로 그것이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한 가지임을 오늘 독서의 말씀은 분명히 말합니다. 바로 이 사실을 바르나바와 사울은 성령을 통해 깨닫게 되며 독서가 전하듯 성령께서 두 사도에게 이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하느님의 일은 오직 하느님의 뜻대로, 하느님의 원하시는 방법으로, 하느님의 원하는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일에 인간의 힘이 개입되고, 인간의 뜻이 관여될 때, 그것은 더 이상 하느님의 일이 아닌 인간의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바로 이와 같은 하느님의 일의 중대한 원칙을 잘 보여주십니다. 하느님이 전하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도들에게 하느님 그 외에 어떤 것에도 의지 하지 않으며 오직 하느님 그 분께 간절한 믿음을 두고 그 분만을 믿고 바라고 희망하는 자세, 다시 말해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하느님의 일에 하느님의 뜻이 우선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뜻은 오늘 독서의 바르나바와 바오로 사도를 통해 다시금 드러납니다.

 오늘 복음환호송의 말씀처럼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분은 언제나 항상 우리의 곁에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며 우리가 언제나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그 분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그 분의 이끄심에 따라 하느님의 뜻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선 내 뜻과 내 의지를 우선하기보다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선한 의지에 따라 나를 내어맡기는 온전한 봉헌의 자세를 필요로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오늘 말씀이 전하는 이 메시지, 곧 내 모든 것을 그 분께 맡겨드릴 수 있는 온전한 봉헌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충만히 누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마태 28,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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