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29)
교회는 오늘, 곧 그리스도의 성체성혈대축일 다음 금요일인 오늘을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공경하며 그 마음을 본받고자 하는 뜻으로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로 지냅니다. 그러는 가운데 특별히 교회는 오늘 모든 성직자들이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본받아 교회의 참된 일꾼, 하느님의 포도밭의 성실한 일꾼으로 충실히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예수 성심 대축일인 오늘을 ‘사제 성화의 날’로 정하고 모든 성직자들의 성화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우선 오늘 제 1 독서의 신명기의 말씀은 주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고 그들을 통해 우리에게 약속하신 당신의 맹세를 지키려하였음을, 다시 말해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어떻게 베풀어졌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오늘 제 1 독서의 이 같은 하느님의 말씀 가운데 인상적인 것은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셨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십니다.
“주님께서 너희에게 마음을 주시고 너희를 선택하신 것은, 너희가 어느 민족보다 수가 많아서가 아니다. 사실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수가 가장 적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시어, 너희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시려고, 강한 손으로 너희를 이끌어 내셔서, 종살이하던 집, 이집트 임금 파라오의 손에서 너희를 구해 내셨다.”(신명 7,7-8)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신 이유는 그들이 수가 많은 강대한 민족이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민족들 가운데 수가 가장 적은 백성, 가장 보잘 것 없고 가난한 민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시어 그들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시며 당신의 맹세를 지켜주십니다.
이와 같은 오늘 제 1 독서의 신명기의 말씀은 오늘 복음과 맥을 같이 하며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이 아닌 철부지 아이들에게 당신의 지혜를 드러내시며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시는 하느님의 방식을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마태 11,25-26)
그러면서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통해 하느님의 뜻이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그리고 당신을 통해 전해지는 하느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 11,28-29)
삶의 무게로 짓눌리며, 살면서 겪게 되는 여러 어려움과 고통들로 허덕이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의 이 말씀은 무더위 속에 시원한 청량음료를 마신 듯 우리의 마음 속 어두움을 몰아내는 환한 빛과 같은 말씀으로 들립니다. 우리의 힘들고 아픈 마음을 따뜻이 위로해 주는 사랑 깊은 말씀으로 들려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를 가리켜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이, 우리의 어깨 위 무거운 멍에를 평하고 가벼운 당신의 멍에로 바꾸어 주는 이임을 말씀하십니다. 이 같은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말씀은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에 베풀어진 하느님의 사랑이 신약의 시대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어떻게 구체화되며 현실화되었는지를 말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약속의 현실화가 바로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누군가가 다른 누가 아닌 바로 나를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 목숨까지 나를 위해 내어 놓는다면, 그것만큼 우리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세상 속에 나 홀로 던져진 채, 달릴 길을 나 홀로 고독하고 외롭게 달리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내 옆 사람을 제치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고독하고 외로운 경주를 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세상사 속에서 많은 이들이 고독함을 절감하고 그 안에서 성취감이 아닌 열패감에 시달리고 있을 때, 우리의 주님이신 하느님은 우리에게 그 길이 혼자 가는 길이 아님을, 그리고 홀로 외떨어져 길을 잃고 외로움에 떨고 있는 우리에게 내가 너를 찾아 나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목숨을 내어 놓는 사랑을 그 분은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실제로 그 사랑을 몸소 보여주십니다. 바로 그 사랑이 예수님의 성심, 곧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통해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을 통해 우리의 두 눈에 직접 보여지고 체험됩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두 귀에 들려집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그 분은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시는 분이 결코 아니십니다. 모든 것을 내버려둔 채, 홀로 외로움에 신음하는 나, 고독에 몸부림치는 나를 찾아 떠나시는 분이십니다. 착한 목자처럼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온 산을 헤매이는 분, 그리고 그 양을 찾을 때까지 모든 것을 아끼지 않으시는 분이 바로 우리들의 주님, 우리의 어깨에 실려 있는 무거운 짐을 당신이 베푸시는 안식으로 위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화 작가들은 예수성심, 곧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가시관으로 둘러싸인 빨간 심장으로 묘사합니다. 이같은 묘사는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이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온 생명을 내어 놓으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가장 크게 드러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위 예수님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느끼시는 오늘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여러분 마음 안에 간직하고 여러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그 사랑을 매일매일 느끼고 체험하며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사랑이 바로 오늘 제 2 독서의 요한 1서가 선포하는 사랑 그 자체이신 하느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당신의 약속이자 맹세이며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으시며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은총의 선물로서 사랑을 선물 받은 우리들은 이제 그 사랑을 바로 우리 이웃들에게 전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것처럼 여러분 역시 여러분 곁에 있는 모든 이들, 가족과 친지, 이웃들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하느님이 우리가 행하는 사랑 안에 머무르시고 그 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오늘 말씀이 전하는 이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 사랑을 온 몸으로 체험하고 그 사랑에 깊이 물들어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 속에서 살아가시기를 언제나 기도하겠습니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그 속에서 생명의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오리라.”(요한 7,3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