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16,18ㄴ)
오늘 복음의 말씀은 어제 복음의 말씀인 사랑의 계명을 이야기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바로 이어지는 내용으로서 우리가 삶을 살아감에 있어 우리 삶의 가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곧 우리 삶의 기준점이자 원칙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 말씀의 구조를 잘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에 관하여 세 번에 걸쳐 반복적으로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자선을 베풀 때에, 두 번째 기도를 할 때에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단식할 때에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일에 관하여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그 각각의 경우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그 이유에 관하여 각각의 경우, 곧 그 세 경우에 모두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 네 자선을 숨겨두어라. 골방에서 기도하여라.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주실 것이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하여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는 것을 엄하게 경계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시는 당신의 말씀 안에서 그 이유를 분명히 일러주십니다. 그 이유란 다름 아닌 우리의 말과 행동에 대한 보상은 이 세상에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달린 것이 아닌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서 그 모든 것에 대한 보상을 이루어 주신다는 것을 믿고 그에 따라 우리의 행동이 하느님께 어떻게 평가받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의 평가가 아닌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행동을 어떻게 바라보시며 평가하는지에 그 가치 기준을 두는 삶.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자 하고 그들에게서 칭찬과 격려를 받고자 노력합니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를 바라며, 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기를 원하고, 또 착하고 선한 사람으로 비쳐지기를 원하는 것이 많은 이들의 바람이자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타인으로부터 부정적 평가를 받고 싶어 하지 않으며, 누구나가 일반적으로 사랑받기를 바라며 관심 받고 긍정적 평가를 바라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우리들은 나와 함께 하는 이들, 나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들에게 좋은 평가를, 호감을 얻고자 노력하고 그것에 내 삶의 많은 부분과 가치들을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나에 대한 평가가, 그리고 그들의 나에 대한 시선이 내 삶에 그토록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것일까요?
물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있어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시선과 평가를 완전히 무시한 채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나에 행동에 대한 그들의 평가를 무시하고 살아간다면 나는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들의 선한 행동, 곧 우리가 세상 안에서 하게 되는 많은 행동들의 진정한 가치와 평가는 우리 주위의 사람들의 평가가 아닌 하늘에 계신 하느님 그 분께서 하시는 것임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사람은 결코 믿을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모두가 부족하고 나약한 본성으로 언제나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의 이익과 입장을 우선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삶 안에서 체험하는 사람으로부터 받는 많은 고통과 상처들이 이를 잘 드러내줍니다. 그래서 사람은 믿을 존재가 아닌, 다만 끊임없이 이해하고 사랑해야 할 대상일 뿐입니다. 우리가 믿을 존재, 곧 우리가 믿고 따르며 우리의 모든 것을 내어 놓을 수 있는 존재는 오직 하늘에 계신 하느님 그 분 뿐이십니다. 오직 그 분만이 우리의 삶의 모든 행동을 지켜봐 주시고 오직 그 분만이 우리의 행동의 참 가치를 평가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이 사실을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이 같은 면에서 오늘 독서의 열왕기 하권이 전하는 엘리야 예언자의 모습이야말로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 모든 것을 갚아주심을 굳게 믿는 이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늘 독서가 전하는 말씀은 예언자 엘리야가 엘리사와 함께 있는 순간, 하늘로부터 불리움을 받아 불병거를 타고 회오리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전합니다. 사실 오늘 독서가 전하는 모습만을 본다면 예언자가 겪는 영광의 순간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평일 주간 미사 안에서 계속 읽혀졌던 열왕기의 말씀을 자세히 곱씹어 본다면 예언자로서 엘리야의 삶을 그닥 평탄한 삶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바알 예언자 250명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후 여왕 이제벨 독기품은 저주로 떠돌이 방랑자의 삶을 견뎌내야만 했으며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가는 40일 동안 극심한 굶주림과 고통을 견뎌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엘리야는 그 모든 고통 속에서도 어찌보면 인간적 시선에서 실패한 삶처럼 보이는 그의 인생여정 속에서도 언제나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느님 그 분께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오늘 복음의 표현을 빌리자면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가 지금 겪고 있는 모든 고통과 시련을 모두 갚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던 그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굳게 지킨 결과, 오늘 독서가 전하는 그 영광의 모습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오늘 화답송의 시편의 말씀은 오늘 독서와 복음이 전하는 그 말씀의 핵심을 단 한 줄의 문장으로 잘 요약하여 이야기합니다. 시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 희망을 두는 모든 이들아, 마음을 굳게 가져라.”(시편 31(30),25)
시편의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언제나 되뇌이며 마음을 굳게 갖고 주님께 희망을 두려 노력해 보십시오. 그리고 세상의 평가와 시선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또 그것에 우리의 행동의 가치를 두려고도 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시선은 그저 일시적인 그리고 상황과 입장에 따라 변화될 수 있는 가변적인 것일 뿐입니다. 절대적이며 언제나 변화하지 않는 것은 오직 하느님 그 분의 우리에 대한 마음뿐입니다. 바로 그것에 우리의 모든 행동의 가치를 두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구원하는 희망의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오늘 전해들은 이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세상의 것이 아닌 하느님의 시선에 삶의 가치를 두어 하느님 그 분이 주시는 구원의 희망으로 살아가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사는 것이라네.”(시편 27(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