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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합시다

황로학파("노자철학과도교" 중에서)-1

작성자정용미|작성시간05.09.16|조회수263 목록 댓글 0
선진시기의 전적에는 황로학이라는 명칭이 보이지 않고, 한나라 초기에 처음으로 '黃老'라는 명칭이 나타난다. "한서"<예문지>에 따르면 선진 도가류에 속하는 황제서에는 "황제사경", "황제명", "황제군신","잡황제", "역목' 등 여러가지가 있다. 이것은 선진도가 중 노자학과 장자학을 제외하고도 황학이라는 것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황제는 상고시대의 역사적 인물로 전해진다. 전국시대에 출현한 수많은 황제서는 무론 이 황제가 지은 것이 아니지만,전국시대의 도가학파 중 어떤 사람이 자기의 지위를 높이고자 황제의 이름을 가탁하여 지은 것으로 보인다.

황제서에 나타난 사상은 대부분 노자사상에서 따온 것이며, 전국시대 일련의 노자 후학의 사상과 가깝다. 그러기에 하나라 초기 사람들은 황학과 노학을 하나로 연결하여 황로학이라 불렀다. 황로학은 노자사상에서 분화된 학설이다. 사마담은 "육가요지"에서 황로학의 입장에서 도가를 정의하였다. 그에 따르면 도가는 '정신을 전일하게 하며', 거동에 고정불변의 형식이 없고 시간의 추이에 따르며 사물에 순응하여 변화하고 간략하여 하기 쉬우며 하는 일은 적으면서 거두어들이는 효과는 크다. 그뿐 아니라 도가는 음양의 변화에 순응하기 때문에 유가, 묵가, 명가, 법가의 사상적 장점을 흡수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바로 이 점에서 사마담이 말한 도가는 원래의 노자사상과도 다르고 장자의 사상과도 다르다. 그것은, 음양 유묵 명법 등 제가의 사상을 흡수한 새로운 도가요 새로운 노자학이다.

황로학은 대체로 전국 중기에 발생하였다. 그것은 노자 사상을 토대로 개조하고 발휘하여 이루어졌다. 따라서 이 황로학과 노자사상 사이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다. 황로학파가 최초로 싹튼 곳은 제나라의 직하학궁이다. "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제나라 선왕이 문인학사를 매우 좋아하여 당시의 전병, 접자, 신도, 환연, 등 76인에게 작위를 내려 사대부로 삼았는데, 이 때 조나라 사람인 신도와 전병, 제나라 사람 접자, 초나라 사람 환연이 모두 황로 도덕의 도술을 배워 황로사상을 널리 폈다고 한다. 이로써 볼 때 그 당시 황로학이 매우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저작은 대부분 유실되고, 현재 남아 있는 것으로는 단지 "관자" 속의 <내업><백심><심술> 상하 편 뿐이다.이 편들에 드러난 사상이 직하 황로학의 저작에 속한다는 사실은 오늘날 거의 대다수 학자들이 공통으로 인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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