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한가위 연휴는 잘 보내셨는지요? *^-^*
저는 설거지와 집안 청소의 반복으로 몸은 고달팠지만,
가족들과 오래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어서 참 좋았답니다. ^=^
과제는 조금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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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업 관리직 - 신부르주아」의 특징
서론
1. 윗세대의 경제적 자본을 기반삼아 많은 학력자본을 쌓음
이를 바탕으로 쁘띠부르주아와 비슷한 문화자본과 상징자본을 향유
따라서 부르주아와 비슷한 취향이지만 같지는 않은 ‘신부르주아’라는 이름을 가지게 됨
본론
2. 협력과 거리두기
이들은 자신들이 일반노동자들이나 전통적인 쁘띠부르주아 이 둘 중 어느 층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두 집단에 대해 협력과 거리두기를 동시에 하기 때문에, 매우 모순적 ․ 이중적이고 불확실한 양상을 띈다.
(1) 협력
- 정치적 ․ 사회적 권리의 요구와 저항에 있어서 그들이 일반 노동자들과 똑같은 상태에 있다는 인식을 가지며 연대감을 품는다. 그리고 역으로, 윗세대에 비해 교육을 통한 문화자본 증대로 인해 지배계급에 통합되고자 한다.
(2) 거리두기
- 노동자들과 정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하고, 그들을 보통 노동자들과 같이 취급하는 것을 ‘능력본위’의 입장에서 거부한다. 동시에 지배계급과도 구별성도 인정한다.
--> 예를 들면, 비싼 자동차 대신 ‘구식 푸조 404’를 타는 것은 경제적 이유가 작용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유를 지배계급과 자신을 구별 짓는 것으로 얘기하는 것. 자신의 경제적 능력 밖인 것으로 보이는 ‘새로 생긴 아동복 상점’의 의류는 비판하면서 부친의 개인 재단사과 모친의 모피외투에 대해서는 ‘지나침’이 없다고 하는 것. 저녁에 그들만 있을 때에는 아주 가볍게 식사를 한다고 하지만, 외식할 때는 고급 레스토랑만을 선호하는 것. 18세기 영국풍의 식탁을 산다거나, 집에서는 더러운 바지를 입지만 일을 할 때에는 아주 우아한 정장을 하는 것, 비싼 포도주를 마시는 것, 연극, 오페라, 영화, 고전음악 토론회를 즐기는 것 등.
3. 신부르주아들의 합리화 - ‘차별화’와 ‘살아가는 방법’
그러나 실제로는 신부르주아들도 쁘띠부르주아층을 동경하면서 그들을 따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즉, 그들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동경하면서, 또한 그들의 생활을 어느 정도 따라하면서도, 일반 노동자들의 측면에서 돈이 많은 부르주아들의 지나친 사치행위 등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인다.
- 쁘띠부르주아와 같은 취향을 갖고 문화를 즐기려 함
- 이는 쁘띠부르주아에 준하는 경제적 자본이 뒷받침되기에 가능
- 쁘띠부르주아적 취향을 지녔으나 진정 그러한 의식을 지녔다고 볼 수 없다. 이러한 취향은 이 계급에 대한 동경과 모방에서 비롯된 것이며, 또한 문화자본을 ‘투자’의 개념으로도 바라보기 때문이다.
- 또한 이들은 사기업이 제공하는 새로운 지위를 점유하고 있을 뿐인지라, 회사에 의해서 그들의 위치가 좌지우지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 따라서, 일반 노동자들의 측면에서 돈이 많은 부르주아들의 지나친 사치행위 등을 비판하는 동시에, 자신들은 ‘살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합리화
- 살아가는 방법 : 자신의 경제자본으로도 쁘띠부르주아들의 상징자본을 이용할 줄 아는 것. 그리고 자신의 직위에 맞는 생활방식을 추구하는 것.
(예를 들면, 이름 있는 값비싼 포도주를 싸게 사고 좋아하는 등과 같이, 적은 돈을 들이고도 쁘띠부르주아들의 경제패턴을 흉내낼 수 있음에 기뻐하는 것이다.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믿음.)
- ‘살아가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자신의 지위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비판. (예, 몇몇 비서들의 속물근성을 주장, ‘아주 평범한 배경을 가진 경리부장’의 옷차림 비판.)
- 자신과 쁘띠부르주아는 다르다는 구별성과 동시에, 자신이 필요한 것만을 유용하게 이용한다는 ‘살아가는 방법’을 아는 사람임을 강조한다. 즉, 합리화와 자기 포장.
결론
4. 관리직에 종사하는 이른바 신부르주아 들은 경제자본을 가진 신흥자본가 집단이지만, 기존의 엘리트 계층의 문화자본과 상징자본을 추종하는 신흥부르주아 집단이다.
이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협력과 거리두기를 동시에 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들도 사실은 쁘띠부르주아층을 동경하면서, ‘차별화’나 ‘살아가는 방법’과 같은 핑계를 대며 자신들을 합리화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