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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흥군15世

석흥군 휘

작성자이 용갑|작성시간12.09.22|조회수374 목록 댓글 0

조상님의 휘자에 대한 오해로 한 할아버지의 후손임에도 서로 다른 후손으로 잘못 알고 계시는 종친

님을 보았습니다.

파세지보에는(탕)자로  일부 문헌에는  자로 기록되어 다른 인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조상님의 휘자를 논하는 것이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후손들이 더이상 오해 하지 않도록  족보 제작시 참고하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몇자 적어 봅니다.   * (

 

 愓 자로 기록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데 이는 기록한

사람에 따라 속자(俗字)로 기록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속자俗字 : 관습적으로 본래의 글자로부터 획을 달리하여 쓰는 글자

그러나 대부분 자로 기록 되어 있어 몸가짐이나 언행을 삼가 하여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긴  두려워할 척(惕) 으로 보는것이 후손의 입장에서는 맞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왕조실록  碩興君 李

선조실록(宣祖實錄)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인조실록(仁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연려실기술(燃藜室紀述)

 

 

석흥군 할아버지 삼형제분 모두볓양(昜)을 쓰신것처럼 보이나 석흥군 할아버지만 易자를 사용 했다고 하며. 첨사공파 대동보에도 척 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석흥군 파세지보  愓 =

愓   빠를상,방자할탕, 두려워할  

1. 빠르다 2. 빨리가다 3. 곧바로 가다 4. 방자하다(--) 5. 평평하다(--) 6. 태평하다 a. 방자하다(--) (탕) b. 두려워하다 (척) c. 근심하다 (척) d. 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부수](심방변)  [총획]12

 

 

여러 참고문헌에 사용한 석흥군 휘.

  두려워할

1. 두려워하다 2. 근심하다, 걱정하다 3. 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4. 빠르다, 신속하다 5. 놀라다, 깜짝 놀라다 6. 사랑하는 모양  [부수](심방변)  [총획]11획

 

 

                                                         대전 시조 묘비에뒷면  분파지도

 

 

대전 현충원 의 묘비석 뒷면 지파도 기록에도 석흥군 휘는 속자인 (愓)자로 조각 되어 있어 족보에 서도

  두자로 사용 되어져 왔으나 여러가지 배경요인을 참고하여 생각해 보면 몸가짐이나 언행

을 조심해야 한다는 두려워할 척 으로 읽는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며  불손한 의미로 읽는 일

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고창군의 석흥군 안내문         .

 

 

[정의]

이무를 시조로 하고 이척·이여상·이유징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 세거 성씨.

[연원]

연안이씨는 당나라 장군 이무(李茂)를 시조로 한다. 이무는 660년(무열왕 7) 소정방(蘇定方)이 신라의 동맹군으로 백제를 침공했을 때 중랑장(中郞將)으로 따라왔다가 신라에 귀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입향경위]

연안이씨 고창군 입향조인 이탕(李湯)은 좌의정을 지낸 이원발(李元發)의 9대손이자 이대승(李大升)의 증손으로 1569년(선조 2) 서울에서 태어났다. 정국공신으로 석흥군(碩興君)에 봉해지고 조천부사(朝天副使)로 중국에 가서 ‘황극전(皇極殿)’ 액자를 써서 황제에게 영정·관대·필연·옥동자·교인갑 등을 받아 왔다.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서궁(西宮)에 유폐할 때 사헌부대사헌으로 있으면서 강상(綱常)을 바로잡기 위해 극간하다가 남원으로 유배되었다. 인조반정 후에 풀려났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산수가 아름다운 곳을 찾아 고창군 부안면 오산리에 정착하였다.

이여상(李汝相)은 중종반정공신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 이곤(李坤)의 5대손으로 1634년(인조 12) 서울 와우방(臥牛坊)[지금의 종로구 명륜동]에서 태어났다. 병자호란 때 어머니를 모시고 남하하여 고수면 부곡리 연동에 정착하였다. 이유징(李悠懲)은 연령부원군(延靈府院君) 이주(李澍)의 증손으로 1644년(인조 22)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에서 태어났다. 벼슬살이를 하다가 화를 피해 남하하여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에 은거하다가 아들 이장(李漳)이 고창군 해리면에 살던 언양김씨 찰방 김명석(金命錫)의 사위가 된 것을 계기로 해리면 평지리(平地里)로 옮겨 와 정착하였다.

[현황]

2009년 현재 이척의 후손들이 부안면 검산리 수사, 고창읍 등지에 살고 있으며 종가에 중국 황제에게서 받은 물건들이 보존되어 있다. 이여상의 후손들이 고수면 부곡리, 흥덕면, 부안면 등지에 살고 있다.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고창군에 살고 있는 연안이씨는 총 153가구에 349명이다.

출처

http://m.grandculture.net/contents.aspx?use=&lc=GC028&ct=B&ctid=B00016&contid=GC02800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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