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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

작성자터프가이|작성시간12.05.01|조회수360 목록 댓글 0

 

                                                                   밀짚 모자를 쓴 자화상 1782

 

 

궁정예복을 입은 마리앙트와네트의 초상 18세기경

 

 

장미를 들고 있는 마리 앙투아네트 1783

 

 

비제르브룅과 그녀의 딸 1786년 루브르 박물관

 

 

비제 르브룅  마이앙트와네트와 그녀의 아이들 1787

 

 

비제 르브룅과 그녀의 딸 1789 루브르 박물관

 

 

 

자화상 1790

 

비제 르브룅 [(Marie-Louise-)Élisabeth Vigée-Lebrun]1755. 4. 16 파리~ 1842. 3. 30 파리.

프랑스의 화가.

 

여성 미술가 중 가장 성공한 화가로 꼽히며 특히 여인 초상화로 유명하다. 파스텔 초상화가인 아버지 루이 비제에게서 처음 미술을 배웠고, 뒤에 J. B. 그뢰즈와 조제프 베르네 등 여러 유명한 화가들로부터 사사했다. 1776년에 화상 J. B. P.르브룅과 결혼했다. 1779년 베르사유 궁에 소환되어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초상화를 그리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는 왕비와 친구가 되었으며, 그뒤 다양한 자세와 옷차림을 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를 25점 이상 그렸다. 그 대부분이 현재 베르사유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783년에 왕립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프랑스를 떠나 12년 동안 로마·나폴리·빈·베를린·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모스크바 등을 여행하면서 초상화(해밀턴 부인인 엠마의 초상화는 나폴리에서 그렸음)를 그렸으며 사교계의 주요인사가 되었다. 1801년에 파리로 돌아왔으나 나폴레옹 치하의 파리 생활이 싫어 곧 런던으로 가 그곳에서 왕족과 바이런 경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뒤 스위스로 갔다가(그곳에서 스타엘 부인의 초상화를 그림) 1810년경 다시 파리로 돌아온 후 회화를 그만두었다.

재치와 매력이 풍부한 여자였으며, 그녀의 회고록인 〈나의 생애의 회고 Souvenirs de ma vie〉(1835~37)에서는 그녀의 작품뿐만 아니라 당대의 모습에 대해서도 생생하게 서술하고 있다. 당대에 가장 기교가 뛰어난 초상화가의 한 사람이었는데, 그녀의 그림들은 신선함과 매력, 섬세한 표현으로 유명하다. 화가로서 활동하는 동안 초상화 622점, 풍경화 200여 점을 포함하여 모두 877점의 그림을 그린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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