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조선 중기의 문장가인 월사 이정구(月沙 李廷龜, 1564∼1635)의 문집인 {월사집(月沙集)}을 간행하기 위하여 새긴 목판본이다. 월사집 목판은 모두 947판으로, 77권 22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원집 63권, 부록 5권과 별집 7권, 연보 2권이다. 이 중 원집 68권을 찍기 위한 목판은 815판으로 숙종 14년(1688)에 새겼고, 별집 7권을 찍기 위한 목판은 79판으로 숙종 46년에, 연보 2권의 목판은 53판으로 1930년에 판각하였다.
이정구는 선조 23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선조 26년(1593) 명나라의 요청으로 경서(經書)를 강연하여 학자로서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선조 37년(1604) 세자책봉 주청사(世子冊封奏請使)로 명나라를 다녀온 후, 그곳 문사들의 요청에 의하여 1백여 장(章)의 기행문을 모은 {조천기행록(朝天紀行錄)}을 간행하였다.
인조 2년(1624년)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인조를 공주까지 호종하였고, 정묘호란(丁卯胡亂) 때에는 강화도로 피난하여 후금(後金, 나중의 청나라)과 화의하는 것에 반대하였다.
한문학의 대가로 글씨에도 뛰어나 신흠(申欽), 장유(張維), 이식(李植)과 함께 조선 중기의 4대 문장가로 불린다. 시호는 문충공(文忠公)이다.
[월사집]은 인조 14년, 공주에서 처음 간행되었으나, 병자호란 때 전부 사라지고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숙종 14년에 이정구의 손자인 이익상(李翊相)이 경상감영에서 원집과 부록을 판각한 것과 숙종 46년에 증손자 이희조(李喜朝)가 판각한 별집이다. 이 목판본들은 본래 대구의 용연사(龍淵寺)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1928년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이원리로 옮겨져, 없어진 300여 판을 다시 새긴 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다. 그후 1987년 후손들에 의하여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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