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보 고가
문화재명 : 이천보고가
지정번호 : 문화재자료 제55호
우편번호 : 477-820
소 재 지 : 경기도 가평군 상면 연하리 226
이 집은 이천보가 거처하던 곳으로 본래는 6.25때 소실 되고 현재 건물은 고종4년(1867)때 재건되었으며 구조형식
이 5채가 8작 지붕구조로 천정은 부채살형 석가래를 노출 시키며, 가운데에 보개 천정을 하고 있어 옛날 양반집의 건축양식으로 보존하고 있다.
이천보는 숙종25년(1698)에 태어나 영조12년(1739)에 문 과에 급제하여 이조,병조 판서를 거쳐 우의정,좌의정을 지
내고 1754년 영의정에 올랐다가 장헌세자의 평양 원유 사건 에 책임을 지고 이곳에서 음독자결 하였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에 기술된 이천보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 : 연안(延安)
호 : 진암(晉菴)
별칭 : 자 의숙(宜叔) 시호 문간(文簡)
주요작품 : 《진암집》
본관 연안(延安). 자 의숙(宜叔). 호 진암(晉菴). 시호 문
간(文簡).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여 내시교관(內侍敎官)이
되었으며 1739년(영조 15) 알성문과(謁聖文科)에 을과(乙科)
로 급제, 1740년 정자(正字)가 되고 교리(校理) ·헌납(獻納)
·장령(掌令)을 거쳐 1749년 이조참판이 되었다.
후에 이조 ·병조 판서를 거쳐 1752년 우의정이 되고 같은
해 좌의정을 거쳐 1754년 영의정에 승진된 후 돈령부영사(敦
寧府領事)로 전임했다. 1761년 재차 영의정이 되었으나 장헌
세자(莊獻世子)의 평양 원유사건(遠遊事件)에 책임을 지고
자결했다. 문집에 《진암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