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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

안견

작성자터프가이|작성시간12.01.29|조회수184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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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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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팔경 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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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팔경 만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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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팔경 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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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팔경 초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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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석조




연사모중



적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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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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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경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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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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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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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도 (부분확대)

초기 산수화 풍을 창출한 한국화의 대가로 신라의 솔거, 고려시대 이녕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화가로 손꼽힌다. 현존하는 선생의 대표적인 작품은 조선 초 회화에 큰 영향을 주었던 곽희파 서풍을 바탕으로 안평대군의 부탁을 받고 단 3 일만에 그린 몽유도원도. 광해군 11년에 기록한 서산의 지방지 호산록에 안견 출신지가 서산군지곡면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서산 문화의 뿌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자 서산시는 4천7백만원을 들여 안견의 출신지인 지곡면에 몽유도원도를 실측 크기로 조각한 기념비를 건립했다. 이어 한국화인 창출자인 안견의 자연애호사상을 현창하고 미술 학도의 정신적 지주로 승화시킴은 물론 국민 정서 순화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키 위해 91년 10월 기념관도 건립한 것. 기념관은 사업비 2억2천 여만 원을 들여 지곡면화천리 대지 4백 평에 한, 양식 절충형 건물(건평80평) 로 세웠는데 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안견 유작품인 적벽도 소상팔경도 사시팔경도 등 18점의 전작품과 이 지역 출신 선현 및 향토 출향 작가의 작품을 전시해 후세들을 위한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서산시지곡면 안견선생의 고향에 건립된 안견 기념관. 사시팔경도 등 18점의 전작품과 향토작가 작품등을 전시하고 있다 안견은 서산시 지곡면 사람으로 세종 때 호군 4품에 올랐다. 성품이 총명하고 민첩하여 매사에 정밀하고 박식하였으며 옛 그림을 많이 섭렵하고 이를 소화해 화법에 대한 요령을 스스로 깨우쳤다. 또 여러 계파의 장점을 절충하여 통하지 않은 바가 없었는데 특히 산수화가 뛰어났다. 조선을 대표하는 산수화가인 안견은 중국 원,명 시대에서도 볼 수 없는 유수한 화법을 발휘하였는데, 그가 구사한 회화양식은 기본적으로 북송시대 수묵 산수화의 두 거장 이성과 곽희에 의해 성립된 소위 이곽파 양식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서풍을 개척하여 조선시대 회화에 크게 공헌 하였다. 안견은 태고 난 재주 외에도 당대 최고의 송설체 서예가이며 최대의 중국화 소장가인 안평대군과 친교, 그의 소장 명품들을 깊이 연구하여 높은 경지를 체득한 후 여러 화가들의 장점을 수용, 적벽도 동경산수도 몽유도원도 청산백운도 등 무수한 명작을 남겼다. 같은 시대 성견은 청산백운도를 최고의 작품이라고 격찬했다. 현존하는 확실한 진품은 몽유도원도(일본 천리시 천리대학 보관) 안견과 세종조의 문예계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안평대군과의 만남에서 태어난 이 그림은 [도원]이라는 중국문학의 이상향을 [몽유]를 통해 재해석해 독특한 경지를 보여주는 걸작품이다. 안평대군은 자신이 꿈에서 거닐었던 도원을 당대의 최고화가인 안견으로 하여금 그리게 했으며 안견은 자신의 상상력의 한계에 도전하여 단 사흘만에 신비에 가득찬 도원의 형상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아냈다. 동양의 다른 두루마리 그림들이 어깨너비만큼 펼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진행하며 보도록 돼 있는 것이 보통인데 이 그림은 두루마리를 완전히 다 펼쳐놓은 상태에서 왼쪽으로부터 오른쪽으로 진행하면서 보도록 돼 있다. 도원은 단지 몇 채의 집이 보일 뿐 대부분 만발한 복숭아꽃과 짙은 안개 속에 휩싸여 있고 주위의 산들은 기암절벽 형태이지만 부드러운 질감과 적절한 명암 효과를 통해 속세와는 동떨어진 신비의 세계를 연상케한다. 그림 못지 않게 이 작품의 미술사적 가치를 높여주는 부분은 현재 별개의 두루마리로 표구 돼 있는 안평대군의 발문과 신숙주 박팽년 등 당대의 현인 21인의 찬시이다. 이들은 대부분 조선조 초기의 명시인 명필들로 이 그림을 단연 우리 역사상 빛나는 시서화 삼절로 만들었다. 조감 도법을 활용하여 험준한 산속의 도원을 생생하게 표현한 이 작품, 오른 쪽 하단에는 [지곡가도작] 그 밑에 [가도]라는 방장형 도장이 찍혀 있다. 작품 크기는 가로 1m6.5cm 세로 38.7cm <안견의 미술 세계 > 안견 (安堅 ?∼?) 조선 초기 화가. 자는 가도(可度)·득수(得守), 호는 현동자(玄洞子)·주경(朱耕). 본관은 지곡(池谷). 세종 때 도화원(圖畵院)의 종6품 벼슬인 선화(善畵)에서 체아직(遞兒職)인 정4품 호군으로 승진되었다. 1447년(세종 29) 안평대군(安平大君)을 위하여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그렸고, 다음해에 《의장도(儀仗圖)》를 그렸다. 신숙주(申叔舟)의 《보한재집(保閑齋集)》에 의하면 안견은 안평대군을 가까이 섬기면서 안평대군이 소장하고 있던 고화(古畵)들을 섭렵함으로써 독특한 화풍을 이루었다. 산수화에 가장 뛰어났으며, 그 밖에 초상(肖像)·화훼(花卉)·매죽(梅竹)·노안·누각(樓閣)·말〔馬〕·의장도 등 다양한 소재를 그렸다 안견은 북송의 곽희 계통의 화풍을 지닌 산수화가로서, 그의 작품 몽유도원도에는 북송의 원체화풍이 반영되어 있다. 다만, 안견의 그림은 북송의 그림에 비하여 그 색감이 온아하며,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데, 이것은 당시 조선 산수화의 한 특색으로 볼 수 있다. 지금, 안견의 스승이나 그의 화력을 자세하게 밝힐 수 있는 자료는 없으나, 그가 안평대군의 문하에 드나들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어서, 안견이 안평 대군의 수많은 소장품을 통해서 중국 역대의 화풍을 익히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으리라 보여진다. 따라서, 안견은 북송의 곽희의 화풍을 토대로 자신의 화풍을 형성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한쪽에 치우친 편파 구도, 몇 개의 흩어진 경물(景物)들로 이루어졌으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구도, 그리고 개성이 강한 필묵법 등은 그의 독자적인 화풍의 특색을 잘 나타낸다. 안견과 안견파 앞에서는 조선 초기에 수용되었던 주요 화풍들에 관해서 대강 살펴보았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이 시대 화풍의 특색을 작품들에 의거해서 가능한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겠다. 조선 초기중에서도 회화가 특히 발전하였던 때는 세종대왕의 재위기간(1419∼1450)을 전후했던 시기이다. 물론 산수화도 마찬가지이다. 안견과 강희안은 이 시기에 활약했던 대표적 산수화가들 이다. 그 후에 산수와 인물을 함께 잘 그렸던 최경(崔涇), 배연(裵連), 안귀생(安貴生), 이상좌 등 이 속속 배출되었던 것이다. 특히 안견은 조선 초기와 중기의 산수화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와 그의 추 종자들, 즉 안견파화가들의 작품들에 한국적 특색이 특히 뚜렷이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안견의 화풍을 우선 살펴보고 그 화파의 양식적 특색을 추적해 볼 필요가 있다. 안견은, 세종대왕의 셋째 왕자이며 당시의 최대의 중국화 소장가이자 송설체(宋雪體)-조맹부체(趙 孟 體)-서예의 대가였던 안평대군(安平大君)의 비호 아래 대성한 조선 초기의 대표적 산수화가이 다. 그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곽파 또는 곽희파화풍을 수용하여 독자적 세계를 형성한 화원이 었는데 그의 화풍상의 특색은 그의 진작(眞作)인 [몽유도원도]<도 4>와 전칭작품인 [사시팔경 도]<도 > 등에 잘 나타나 있다. 1447年 4月 20日에 시작하여 3日만에 완성을 본 [몽유도원도]는 그의 후원자인 안평대군이 꿈 속에 거닌 도원을 묘사한 것인데, 좌측의 자연스러운 현실세계와 우측의 환상적인 도원의 세계가 현저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圖 4∼6>. 사방을 둘러싼 岩山들이 도원을 외계로부터 분리하고 있 다. 왼쪽에 치우친 현실세계의 산들은 낮으막하고 부드러운 데 비하여 도원을 둘러싼 암산(岩山) 들은 끝없이 다양하고 또 지극히 환상적이다. 이러한 대조적인 두 요소의 결합이 극도의 환상적 인 느낌을 자아낸다. 그런데 [몽유도원도]는 몇 무더기의 산과 언덕들이 서로 어울려 하나의 총체적인 산수화를 이 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각 산과 언덕들은 파고드는 안개 때문에 서로 분리된 채 하나의 조 화된 산수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전체의 경관(景觀)은, 간극없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기보 다는 거의 독립성을 띤 산군(山群)들이 함께 결합되어 이루어진 종합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색은 조선 초기의 산수화에서 종종 엿볼 수 있다. [몽유도원도]에서 엿볼 수 있는 또 한가지 특색은 상이한 시각의 적용과 넓은 공간에 대한 관 심이다. 즉 이 작품의 왼쪽 반은 정면에서 본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 데 반하여 오른쪽 반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듯 조감도법(鳥瞰圖法)을 기용하여 넓은 공간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몽유도원도]는 좌측으로부터 우측을 향해 점차 상승하는 운동세(運動勢)를 보이고 있으 며, 수직적인 요소와 수평적인 요소가 큰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사선운동과, 수직과 수평의 현저한 대조가 이 작품을 웅장한 자연의 세계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처럼 안견은 그의 [몽유도원도]에서 흩어진 듯 조화를 이루는 구도, 확대된 공간의 시사, 수 직과 수평의 대조 및 사선운동에 의해 교묘하게 달성된 웅장감, 환상세계의 효율적인 구현 등 독 자적 양식을 형성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그의 화풍상의 특색은 부분적으로 그의 전칭작품들에도 나타나고 있다. 그의 작품으 로 전해지고 있는 산수화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사시팔경도]<도 >이다. [이른 봄]과 [늦은 봄]의 장면부터 [이른 겨울], [늦은 겨울]의 장면까지 사계(四季)의 팔경(八景)을 묘사한 이 [사시팔경도]의 작품 하나 하나는 한쪽 종반부(縱半部)에 치우친 이른바 편파구도(偏頗構圖)를 보여준다. 따라서 두 폭이 합쳐져야만 좌우가 안정된 대칭을 이루게 된다. 또한 하나의 작품은 몇 개의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경군(景群)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경군들 사이에는 대개 넓은 수면이나 안개로 채워져 있다. 이렇게 흩어져 있는 경군들은 그러나 교묘하 게 결합된 듯이 조화되어 있다. [만춘(晩春)]<도 >이란 작품에서 보듯이 근경의 경물은 안개에 의해 원경의 주산(主山)과 분 리되어 있으나, 그림의 왼쪽 구석에서 45도 각도로 솟아오른 비스듬한 언덕과 그 위에 서있는 소 나무에 의해 서로 시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또한 건너편 강안의 사구(沙丘)도 이 두 개의 경군 들과 조화를 이루는 지점에 놓여 있다. 이처럼 실제로는 경물들이 서로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서 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듯 표현된 것이 이 [사시팔경도]의 구도상의 큰 특색이다. 또한 이 흩어진 경군들 사이에는 넓은 수면과 안개의 바다가 있어서 확 트인 공간을 시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공간개념과 건너편 강안 및 사구의 묘사는 아무래도 남송원체화풍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뭏든 [만춘]의 그림에 보이는 이러한 구도상의 특색과 공간개념은 [초동(初冬)]<圖 >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그림도 역시 한쪽 종반부에 무게가 주어진 편파구도를 이루 고 있고 또 몇 개의 흩어진 경군들로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근경의 언덕은 원거(遠距)를 향해 물 러나고 있고 원경의 주산(主山)은 압도할 듯이 근경을 향해 기울어져 있어, 실질적으로는 따로따 로 떨어져 있는 근경과 원경이 느낌에 있어서는 서로 결합되어 있는 듯하다. 그밖의 경군들도 이 근경과 원경의 경군들과 조화를 이루는 위치에 배치되어 있어 산재하는 모든 경군들이 서로 어우 러져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들 경군들 사이에 펼쳐지는 공간은 수면을 따라 끝 없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사시팔경도]에 보이는 이러한 구도상의 특색과 공간개념은 앞에 논의한 [몽 유도원도]에도 나타나는 것으로 후대의 화가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전(傳) 안견 필의 [사시팔경도]에 보이는 구도상의 특색과 공간개념은 15세기는 물론 다음 세 기인 16세기 전반기의 화가들에 의해서 계승 발전되었다. 우선 [사시팔경도]의 구도는 16세기 전 반기에 이르러 두 가지 계열로 나뉘어진다. 그 하나는 [사시팔경도]의 구도를 토대로 하면서 중 경에 경군을 삽입하여 근경, 후경의 삼단구도(三段構圖)를 이룬 것이며, 또 하나는 [사시팔경도] 의 구도를 큰 변화없이 그대로 따르면서 공간의 확대에 보다 역점을 둔 것이다. 전자에 속하는 것의 대표적인 예는 양팽손(梁彭孫)의 [산수도(山水圖)]<도 >와 필자미상(筆者未詳)의 일본 대 원사(大願寺) 소장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도 > 병풍 등이며, 후자의 대표적인 예는 국립중 앙박물관 소장의 [소상팔경도] 화첩과 [연방동년일시조사계회도(蓮榜同年一時曹司契會圖] 등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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