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전(心田)안중식(安中植)
안중식(1861-1919)은 어렸을 때 이름이 종식(鍾植)이고 별명이 욱상(昱相)이었으며, 심전(心田)이라는 호 이외에도
심전경부(心田耕夫), 경묵도인(耕墨道人), 말년에는 불불옹(不不翁) 이라는 호를 쓰기도 하였다.
그는 조석진(趙錫晉)과 함께 개화파인 김윤식(金允植)이끄는 영선사(領選使)의 제도 연수생으로 선발되어 텐진(天津)에 다녀 왔다.
이때 서구의 과학적인 소묘법을 익혔고 서양 문명에 대한 지식을 얻었다.1884년 갑신정변 때는 개화파에 가담하여
일본으로 피난한 적도 있고, 그 후 상해로 건너가 그곳의 서화가들과 교류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국내외를 다니며 새로운 문물에 대한 안목을 넓혔고, 정치적인 면에서도 근대적 입장을 지녔다.
그는 장승업에 이어 산수, 인물, 화조, 영모(翎毛) 등 모든 유형의 그림을 잘 그렸다.
그래서 고종과 황태자의 초상화 제작에 발탁되기도 하는 등 궁중의 그림을 도맡아 그렸다.
따라서 그의 회화 가운데는 중국의 고사나 화보를 탈피하지 못한 그림이 많았지만,
조석진과 더불어 근대 화단을 연 화가로 주목된다.
대표작으로는 〈도원문진〉과 〈백악춘효도〉 외에 많은 수가 전한다.
안중식(1861-1919)은 어렸을 때 이름이 종식(鍾植)이고 별명이 욱상(昱相)이었으며, 심전(心田)이라는 호 이외에도
심전경부(心田耕夫), 경묵도인(耕墨道人), 말년에는 불불옹(不不翁) 이라는 호를 쓰기도 하였다.
그는 조석진(趙錫晉)과 함께 개화파인 김윤식(金允植)이끄는 영선사(領選使)의 제도 연수생으로 선발되어 텐진(天津)에 다녀 왔다.
이때 서구의 과학적인 소묘법을 익혔고 서양 문명에 대한 지식을 얻었다.1884년 갑신정변 때는 개화파에 가담하여
일본으로 피난한 적도 있고, 그 후 상해로 건너가 그곳의 서화가들과 교류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국내외를 다니며 새로운 문물에 대한 안목을 넓혔고, 정치적인 면에서도 근대적 입장을 지녔다.
그는 장승업에 이어 산수, 인물, 화조, 영모(翎毛) 등 모든 유형의 그림을 잘 그렸다.
그래서 고종과 황태자의 초상화 제작에 발탁되기도 하는 등 궁중의 그림을 도맡아 그렸다.
따라서 그의 회화 가운데는 중국의 고사나 화보를 탈피하지 못한 그림이 많았지만,
조석진과 더불어 근대 화단을 연 화가로 주목된다.
대표작으로는 〈도원문진〉과 〈백악춘효도〉 외에 많은 수가 전한다.
도원 문진도
백악 춘효도
천보 구여도
풍림 정거도
춘경 산수도
기명절지도
계산 유취
성재수간도
웅크린 삽살개
해상신선
일휘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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