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이 끝나고 세상이 어수선하던 시절. 경상도 한 시골마을에 화선지와 붓만 쥐어주면 하루종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림을 그리던 어린 소년이 있었다. 전쟁 통에 부모를 모두 여의고, 왼팔마저 잘려나가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소년에겐 그림이 있어 행복했다.
그에게 스승이라곤 오직 동네 사랑방을 뒹굴던 고서가 전부였다. 그림에만 빠져 있었던 소년은 커서 화가가 됐고, 학맥과 인맥 없이는 발도 들여놓기 어려웠던 70년대 국전에 8번이나 입선하고, 79년에는 중앙미술대전에 대상을 차지하며 미술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고된 독학의 길을 걸어온 그는 겸재ㆍ변관식ㆍ이상범에 이어 실경산수의 맥을 잇는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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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으로 매우 어수선 하던 1970 년대 중반 무렵 이던가.... 박대성의 국전 특선작이 계간 미술 잡지에 올라와있었다.
당시 한국경제의 부흥과 함께 한국화에 대한 일반인 들의 관심이 커지고 그림 시장이 활성화 되었던 때라 국전에
입선한 작가들이 주목 받던 때이기도 하였다.
새로운 화풍이 인상 적이었으며 크게 발전할 작가라고 기억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모작에 키치만 생산하는 듯한 한국화의 답보상태의 벽을 넘어설 유일한 작가로 기대했었는데..좀 그런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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