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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기〉는 1913 ~ 1926 소하(小霞)시대로, 소림 조석진, 심전 안중식의 작품 모방과 재현에 충실한 시기로써 스승의 작화를 따라 숙련의 과정을 거치는 수련기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성실한 수업을 통한 작품제작 태도를 알아볼 수 있는 시기입니다. 일제의 강압에 의하여 2회(1923) 선전에 출품하였으며 3년간의 만주 체류 이후 5회에도 출품을 합니다.〈제2기〉는 1927 ~ 1930년대의 시대로써 소하시대를 바탕으로 하지만 소림과 심전의 화풍을 점점 탈피하고자 노력하며 자기 세계를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스승의 양식과 관념성에서 탈피하여 자유로운 화풍을 위해 노력합니다. 선전(鮮展)을 통하여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모색하던 이때의 향토적이고 서정적인 화풍은 6, 7, 8, 9, 10회 선전 출품의 그림에 잘 나타나며 이 때의 호를 心香으로 쓰고 있습니다. 일제치하에서도 전통화단을 지키려는 작가정신이 빛나던 시기로써 1931년(10회) 이후 줄곧 선전 출품을 거부하며 야인생활을 합니다.〈제3기〉는 1935년대 ~ 1980년의 심향(深香)시대로, 서울·가평(40 ~ 50년대)과 대전(57 ~ 80년)에서 보낸 시기입니다. 전통적 화법과 사생을 통하여 얻어진 한국적 자연을 자신의 관념에 도입하여 독자적 세계를 구축하였습니다. 근경의 산을 중심으로 하는 좌우 구도와 심향식 미점과 피마준의 작법 등 새로운 미감이 드러나는 다수의 작품들이 창작되었던 때입니다. 특히, 수직구도보다 수평구도가 많아지며 주변의 실경을 위주로 한 설경이 단연 눈에 띄게 제작되어‘설경화가’라고 지칭되는 그의 완숙기입니다. ■ 심향-박승무소고_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논문_김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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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수묵채색 | 33.5×32.5㎝
호는 심향(心香, 深香)·소하(小霞)이다. 1913년 서화미술회 강습소에 입학하여 조석진과 안중식 등에게 사사했다. 1949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가 시작되어 제1-3회 추천작가, 제4회 초대작가로 선정되었으나 국전의 문제점을 들어 한번도 출품하지 않았다. 1957년 충청남도문화상을 받았다. 화풍은 전통적 산수화로, 전통양식에 따른 부드럽고 소박한 풍경과 현실감 있는 우리 생활 주변 풍경을 주로 그렸다. 자연이 지니고 있는 가장 원형적인 것을 찾아내고 자연의 원형을 자기화함으로써 독특한 양식을 이루어 냈다.
심향 박승무는 조선말 개화기의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기 전해인 1893년 충북 옥천에서 출생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많은 문헌과 연보에서는 서울 효자동 출생으로 기록되어있으나 당시 서울의 백부에게 양자로 입적되어 이 후 출생지가 바뀌게 된 것입니다. / 주〉심향박승무소고 -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논문(김현숙) 부친은 과거에 급제한(承政院 副承旨) 양반가문이었으며 유복한 가세로 인하여 생활의 여유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심향은 어려서부터 재주가 있었던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며 한학 및 개화기 신학문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 주〉심향추모사업 심포지움 2005.11 - 1971년 6대가전 때의 심향(이구열) 심향의 나이 21세(1913년)부터는 서화미술원에 입학하여 소림 조석진과 심전 안중식 으로부터 그림을 배웠습니다. 조석진과 안중식은 오원 장승업 이후 조선말기로부터 근대동양화를 이어주는 중요 화가로써 이들이 스승으로 있던 경성서화미술원(1911년)은 최초의 근대동양화 학교라고 할 수 있으며 심향은 바로 이곳에서 전통 동양화의 작법을 익히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에 함께 한 이들이 소위 한국동양화6대가로 지칭되는 의제 허백련, 이당 김은호, 청전 이상범, 심산 노수현, 소정 변관식이며 심향은 그 중 한분으로써 미술사적 의미가 매우 큰 화가입니다. 소림 조석진과 심전 안중식의 작품계열은 추사 김정희 세력 전통인 중국 남종문인화 계열의 전통을 기반으로 하였는데, 이 때는 한국의 자생적 진경산수화와 풍속화의 단절이 심화되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심향은 남종화의 전통으로부터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당시의 개화 및 근대화의 저변은 1876년 병자수호조약 체결 이후를 기점으로 하며 이후 위로부터의 지배사상이 세를 잃고 실학의 영향 및 서구의 사상과 민중 중심의 사상 등 밑으로부터의 철학이 설득력을 형성하는 시대였습니다. / 주〉심향 박승무에 대한 연구 - 원광대학교 대학원(서일석) 이것이 우리나라 근대의 출발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회화사에서는 근대의 시점을 정선의 진경산수시대와 김홍도, 신윤복 등의 풍속화시대로부터 정의하지만 심향 당시는 조선말기 오원에서 소림과 심전으로 이어지는 화원 전통의 중국남종화 화단의 장악력에 의하여 그 단절이 심화되던 때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열강들의 압박과 그에 따른 망국의 위기상황이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통의 모방’과 근대적 가치관인 ‘독창적 새로움’ 사이에서의 갈등은 이 시대에 직면한 화가들에게는 필연이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와 회화사적 상황 위에 심향은 놓이게 됩니다. 흔히, 심향의 예술세계는 크게 세 구분으로 나뉘어 설명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