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전북 고창군 부안면 수앙리 247
시 대 조선시대
연안이씨 이우락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자라 부모 봉양을 해보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소급해서 3년 상기를 치렀다. 여막에서 정성을 들여 시묘하면서 통곡하는 정성은 보는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선산에 벌레가 생기자 까마귀나 까치가 와서 쪼아 호위하여 주었다고 전한다.
이우락은 계모를 친어머니와 같이 모셨으며 상을 당해서는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예제에 따라 거상했으며, 말이 부모에 미치면 눈물을 흘리곤 하면서 종신토록 삼가하였다. 고종 때에 정려가 내려졌고, 동몽교관조봉대부에 증직되었다.
이우락의 아들 이집구의 처 의성김씨는 충강공 김제민의 후손인 김영수의 딸이다. 시집 온 지 4개월이 못 되어 남편이 병을 얻어 눕자 혼신을 다해 간호하였으나 백약이 무효하자 대신 죽으려 하느님께 기도하고, 손가락을 깨물어 남편 입에 피를 넣어 3일간 연명하게 하였다. 그러나 끝내 남편은 죽고 말았다.
의성김씨는 남편을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주위에서 말려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의성김씨는 살면서 송죽 같은 절개를 지켰다. 주위에 살고 있는 권세 있는 사람이 남편의 묘소를 강점하고 도장하자 김씨는 손가락을 끊어 혈서로 관에 호소하여 끝내 승리하였다. 고종 때에 정려가 내려져 한 정려에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정려되었다.
비교적 널찍한 흙돌담장이 둘려진 대지에 지반보다 조금 높은 콘크리트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의 아랫부분은 돌로 만들었고, 윗부분은 나무로 만들어 창방과 결구하였다. 벽체는 홍살로 처리하였고 공포는 익공양식이다. 홑처마에 팔작지붕이다. 정면 2칸, 측면 1칸이다. 연안이씨 정려 앞 담장 정문에 ‘효열문’이라는 편액이 있다. 비석은 정려각 앞에 있다. 비석의 규모는 높이 151㎝, 너비 54㎝, 두께 21㎝이다.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는 좋은 편이다. 담장은 근래에 보수하였다.
어려서 죽은 부모를 위해 늦게나마 3년여 시묘살이를 하고 계모의 상을 당해서도 3년을 여묘하는 이우락의 효행은 보기 드문 일이었다. 게다가 며느리는 불과 4개월여밖에 혼인 생활을 하지 않았음에도 남편의 죽음을 따라갔다는 사실 또한 드문 열행이다.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함께 정려된 사실 또한 드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