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혼의 존재 사람이 죽어서 영육이 분리되었을 때 우리의 영혼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질문과 같이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었을 때를 말한다. 이를 불교에서는 사유(死有)라 한다. 사유라는 말은 죽는 순간의 존재를 뜻하는데 이는 생명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면 진실한 생명체는 영원하고 불멸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영원히 불멸하는 생명체는 곧 아라야식이라고 한다. 이 아라야식은 윤회의 주체로서 업력에 따라 인연이 화합하는 세계에 가서 태어났다가 만약 인연이 다 되면 또 그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이 출생하고 사망하는 것을 겉으로만 보고 몸이 무에서 출생하고 또 그 몸은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사라져 없어진다고 하는 단절된 견해를 갖기 쉽다. 그러나 내면의 생명체는 몸의 출생과 사망에 관계없이 영원한 것이다. 다만 선업과 악업 등의 업력과 이승에 사는 부모의 연과 화합하여 나타나는 과보, 즉 인간의 몸을 나투고 동시에 그 몸에 의탁하여 일생을 이승에 머물어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아라야식이 의탁하고 있는 이승의 몸은 생·노·병·사 등 무상한 진리에 의하여 변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몸에 의탁할 수 없는 시기가 오면 아라야식은 곧 몸에서 이탈하여 또 다른 인연처를 만나러 떠나게 된다. 이와 같이 아라야식이 몸에서 떠나는 순간을 사유라 하고 또 세속적으로는 죽음이라 표현한다. 그러므로 아라야식의 체성은 「몸이 있고 없고」에 관계 없이 영원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사람이 죽으면 영원히 없어져버린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며 여기에 허무감을 갖게 된다. 이러한 허무감과 생명의 단절 사상을 없애주는 윤회사상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몸에서 벗어난 아라야식<영혼>은 어떤 상태로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어서 다음 세상에 태어날 때까지를 중유(中有)라고 한다. 중유라는 말은 다른 인연처를 만나기 전까지의 중간 생명체를 뜻하는 것인데 이 중유의 존재시기설은 다양하다. 그것은 중생들의 업력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인간의 영혼에 업력이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죽자마자 즉시 저승에 가서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경우는 영혼이 중유기간을 갖지 않고 사후 즉시 지옥이나 색계 이상 무색계에 태어나는 경우를 말한다. 물론 아미타불 염불수행자는 임종 직후 불,보살님의 내영중에 생사윤회를 초월한 극락세계에 왕생한다 왜냐면 지옥에 가는 영혼은 악업이 너무나도 강하고, 또 무색계 등에 태어날 중유는 선업이 너무나도 강하기 때문이다. 최고로 강한 업력은 즉시 힘을 발휘하여 또 다른 과보를 즉시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밖의 영혼은 우주공간에 머물러 있다가 저승에 태어나게 된다. 저승에 태어날 때까지의 머무르는 기간은 매우 다양한 것으로서 어떤 영혼은 1주일 또는 2주일만 머물다가 인연을 만나 태어나게 된다. 그래도 인연을 마난지 못하면 3주일, 4주일 , 5주일 내지 7주일을 공간에 머무르게 된다. 7주일이 되면 거의 저승의 인연을 마난 각양각색의 몸을 받고 또 환경을 만나 출생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7주일이 되어도 인연을 만나지 못한 혼이 있으면, 그 후로도 계속 우주의 고혼으로서 기약없이 헤매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저승에 태어나기 이전의 중유는 업력에 의하여 윤회하는 것이 잠시도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다만 내생의 몸만 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윤회하고 있는 모습은 이승과 똑 같다는 것이다. 그 주유의 모습들은 이승의 사람들 만큼이나 다양하다고 하며 그것은 각자가 지은 업력이 천태만상으로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도장으로 어떤 장소에 다 찍으면 그 장소는 도장과 같이 인쇄되듯이 중유의 업력도 마치 도장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중유는 금생의 업력에 의하여 허공에 존재하게 되며 크기는 인간의 5, 6세 정도의 몸을 가지고 생활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 중유들 가운데 악업을 많이 지은 중유는 흑색의 광명을 나투며 살고 또 항상 암흑세계에서 사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러나 만약 선업을 많이 지은 중유는 백색의 광명을 나투며 광명의 세계에서 별로 구애없이 자유롭게 거주한다고 한다. 이 흑색의 광명설은 흑은 악을 뜻하고 또 백은 선을 의미한다는 경전의 말씀과 일치한다. 그리고 악은 무지이면서 고와 연결되고, 선은 지혜로우면서 낙과 연결되기 때문에 중유의 기간에 있는 중생들도 비록 다른 세상에서 다른 몸은 받지 안했다고 하더라도 이승에서 지은 선악의 업력에 의하여 찰나 찰나 고락의 과보를 받으면서 생활한다. 그러므로 이들 중유의 영혼은 이승의 중생들과 같이 몸이 사망하고 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업력에 의한 생과 사가 있게 된다. 업력이란, 습기(習氣)가 본질인 것이며 습기는 각자가 습관적으로 익힌 기운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중유의 중생들도 이승에서 습관을 익힌 대로 생활하게 되는데, 선업을 가진 중유의 영혼들은 그들끼리 함께 인연을 맺으며 살고, 또 악업을 가진 중유들은 역시 악업을 가진 중유들끼리 모여 산다고 한다 . 그러나 이들은 제각기 업력대로 관찰하기는 하지만 모든 장애물의 구애를 받지 않고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천안을 갖고 있으며 동시에 서로 보고 구별할 수 있는 눈을 갖고 있다. 그리고 식사는 냄새만을 먹고 산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공간에 있는 냄새를 식사한다고 해서 중유를 건달바라고 이름한다. 또 다른 이름을 보면 다음의 생을 구하려 한다는 뜻에서 구유(求有)라 하고, 또 정신적인 체성이라는 뜻에서 의성(意成)이라고도 별명을 붙인다. 이들 이름들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중유 기간에 있는 영혼들도 자신의 생의 애착이 강하다. 동시에 중유들은 선도와 악도에 태어날 가능성을 뜻하는 표시로 업력에 따라 그 태도가 다르다고 한다. 예를 들면, 색계와 같은 선도에 가서 태어날 중유들은 머리를 위로 쳐다보며 행동하고, 반대로 지옥과 같은 악도에 가서 태어날 중생들은 머리를 아래로 쳐다보며 행동하는 등 여러 가지 태도를 나타내며 생활을 한다. 이는 이승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익히고 배운 습관에 의하여 언어와 행동 등을 서로 다르게 행동하는 것과 같이 미루어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들 중유 기간에 있는 영혼들은 의성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바와 같이 뜻이 매우 예민하여 색다른 인연을 만나면 즉각 변화를 일으키는 가능성이 가장 많다고 한다. 예를 들면, 천도식을 거행할 때 그 천도의식에 나타난 독경의 진리가 곧 중유에게 전달될 수 있고 또 영혼의 악업을 없애주고 극락세계로 천도할 수 있는 기회는 곧 중유의 기간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중유가 멀리 볼 수 잇는 천안(天眼)도 가지고 있지만 먼 곳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천이(天耳)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천이와 천안은 멀리 보고 듣고 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일 뿐이며 천국의 천인들과 같은 청정무구한 천안과 천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유는 업의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그 업을 정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존재임을 생각의 예민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사망하고 있는 도중은 물론 사망 직후와 적어도 49일까지는 천도의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 그 사망자에게 매우 필요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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