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고에 서린 뜻과 이야기
정진명(시인)
제가거문고에는좀애착이있습니다. 음치에다음악에문외한인제가 유일하게배워본악기이기때문입니다. 비록6개월정도배우고그쳤지만...... 거문고는다른나라에는없는, 우리나라의악기입니다. 이게참독특합니다. 그래서언젠가한번거문고에관해서 글을써보려고작심을한적이있는데, 오늘그짓을하게되네요. 음악에관한얘기가아니라 거문고라는장비에관한얘기입니다. 거문고와거기딸린말들에대해서 시원하게설명한사람이없습니다. 그래서어원고민을좀한제가 이참에살짝그비밀을벗겨보려고합니다.
먼저<거문고>라는말. 우리나라밖에없는악기여서 말도우리말로붙었는데, 훈민정음이나오기전에는 선비들이현금(玄琴)이라고적었습니다. 고구려고분벽화에도나오는데, 이렇게현악기에끈을받치는괘가붙은악기는 전세계에서도볼수없는일이라고합니다. 이악기이름<거문고>는 무슨뜻일까요? 색깔이검다는뜻은아닐겁니다. 이에대한기록이나암시는 어디에도없습니다. 그러니저의개똥철학으로풀어볼밖에없습니다.
<삼국사기>를읽다가 재미있는글발견했습니다. 지리지에보면, 진천을옛날에는<금물노(今勿奴)>라고했는데, 경덕왕때<만노(萬弩)로바꾸었다고합니다. 그러면여기서<금물>과<만>이짝을이룹니다. 순우리말<금물>을, 한자말<만>으로바꾸었다는뜻이죠. <금물>이뭘까요? 이게<검을>의향찰표기겠죠?
우리말에서숫자를나타내는말은 100단위의위로는모두사라졌습니다. 아흔아홉다음에<백>인데, 이<백>을뜻하는우리말이<온>이라는건 다아실겁니다. 1,000을뜻하는말은 지금은사라졌지만, 조선시대까지도썼죠. <즈믄>입니다. 서정주의시에도잠시나오죠. 그렇다면10,000을뜻하는말은무엇일까요? 모릅니다. 없습니다. 그런데위의삼국사기기록을보면, 힌트를얻을수있씁니다. 오호라! 10,000을<거믄>이라고했겠구나!
왜<거믄>이라고했을까요? 너무많아서한눈에다안들어오는숫자입니다. 양을10,000마리풀어놓으면, 셀수가없습니다. 몽골유목민들은 양떼를셀때 1,000까지거뜬히셉니다. 그렇지만10,000마리라면다르겠지요. 그래서숫자중에서 가장높은단위를가리키는말은 '앞이캄캄한'뜻을지닌 <거믄>일수밖에없다고, 저는개똥철학을펼쳐보는것입니다. 이게그럴듯한게 <까마득하다>는말을보세요. 너무멀어서잘가늠이안되는것을가리키는말인데, <까>는<까맣다>입니다. 아님말고! 하하하.
개똥철학은이쯤에서거두고, 이제는비교언어학으로, 거문고의어원에접근해보겠습니다. 힌트는고구려왕산악이, 중국의칠현금을개조해서거문고를만들었다는, <삼국사기>의기록입니다. 길략어로<일곱(七)>을, <가믹>이라고하는데, 여기에<악기>를뜻하는옛말<고>가붙어서, <거문고>가된것입니다.
거문고의용어에대해서 조금더알아보겠습니다.
가야금은손가락으로시위를퉁겨서 소리를내지만, 거문고는젓가락같은대나무로퉁겨서 소리를냅니다. 이술대를옛분들이한자로시(匙)라고적었는데, 이는틀린표기입니다. <匙>는숟가락을뜻하는말입니다. 그렇게보면 거문고에서쓰는술대는 숟가락모양이아닙니다. 차라리젓가락이라면더맞겠죠. 술대는<소리대>의줄임말입니다. 소리를내는대라는 말입니다. <대>는대나무라기보다는 나무를나타내는우리말입니다. <소리>가한글자로줄어서 <솔, 술>로된것입니다. 이렇게해야훨씬더사실에가깝게 설명할수있습니다. 실제로술대는현을쳐서소리를내는도구입니다.
부들은거문고의현을 봉미에묶어두는끈을말합니다. 이것은'붙들다'와같은뿌리를지닌말로보입니다. <붙들>을그대로발음하면되죠. 부들과거의 흡사합니다. 부들은봉미쪽에서현을붙잡아주는노릇을합니다. 말그대로붙들어주는것이죠.
동양사람들의사고는 아주독특한면이있습니다. 뭐냐면, 자신들이어떤사물에대해 있는그대로묘사하지않고, 그것을그럴듯하게묘사하는버릇입니다. 그리고그것은신화의틀에담으려고한다는 특징이있습니다. 신화는원시인들이난폭한자연을이해하고 환경과화해하려는의도에서 만들어낸이야기입니다. 우주자연과어울리려는몸부림입니다.
거문고의경우도그렇습니다. 그냥머리와꼬리라고하면될것을, 전설상의동물에빗대어표현했습니다. 용과봉황이그것입니다. 머리쪽을용과연결지어 <용구>또는<용두>라고 했고, 꼬리쪽을봉황과연결지어 봉미라고했습니다. 이렇게되면 거문고를안은선비는 용의머리를쓰다듬고 봉황의꼬리를매만지는 신화속의주인공이되는것입니다. 신화속의주인공은곧신을뜻합니다. 영생불멸의주인공이되고자하는마음이 악기이름에투영된것입니다. 실제로고구려고분벽화에나타나는 여러 사람들의모습은신처럼묘사되었고, 거기에나오는악기들은지상이아니라 천상의악기들입니다. 이런이름을통해서, 옛사람들이어떤생각을했는가, 하는것을이해할수있습니다.
거문고는백악지장이라고하여 선비들이가장좋아한악기였습니다. 특히후대로내려오면서 조선시대에는유학자들이 예악을실천하고음미하는수단으로정착하여 거문고의이름조차유교화되었습니다. 문현과무현이그에적실한말입니다. 기럭발(안족)에얹힌굵은 두줄을 각기문현과무현이라고합니다.
저한테거문고를가르쳐준선생님은 이렇게설명했습니다. 선비는무보다문을 더가까이해야하기때문에 거문고를안았을때 자신에가까운쪽에있는현의이름을문현이라고했고, 멀리있는것을무현이라고했다고말이죠. 아주그럴듯한얘기입니다만, 유교화되면서붙은설명이라고 봐야죠.
거문고는아주독특한악기입니다. 괘가있기때문이죠. 괘는아주얇은나무판으로깎아만들었습니다. 그래서쓰러지기쉽습니다. 그위에는세줄이얹혀있습니다. 가운데있는것은 6줄중에서가장굵습니다. 그래서이름이대현이죠. 괘에올린현중에서 몸쪽으로는유현이있습니다. 유는<논다>는뜻입니다. 거문고연주에서가장많이쓰는것이 유현과대현입니다. 그래서가장굵은현에는 대현이라는이름이붙었지만, 대현과같이가장많이쓰이는가는현에는 유현이라는이름이붙은것입니다.
괘상청과괘하청은같은음을냅니다. 사실중복된거죠. 고구려고분벽화를보면, 네줄짜리거문고가나오는데, 후대로오면서줄이더늘어났다는얘깁니다. 그러니까이둘중의하나는 필요가없었다는얘기고 실제로그렇습니다. 괘상청은괘위에걸렸다는뜻이고, 괘하청은괘밑에있다는뜻입니다. 밑이라는표현은정확하진않죠. 괘의바깥에있다는말이더정확합니다. 그래서괘외청이라고도합니다.
<청>은한자로<淸>이라고표기하는데, 무의미한말입니다. <청>은'목청,귀청'같은말에서보듯이, 소리를나타내는순우리말입니다. 갈대나대나무속에도 얇은막이있죠. 그것도<청>이라고합니다. 그렇게얇은것이 떨려서내는소리를 <청>이라고하는 겁니다. 특히가늘고맑는소리를나타내는말이죠.
거문고를타다보면, 쉽게의문이하나생깁니다. 실제로가장많이쓰는현은 <문현, 유현, 대현>입니다. 괘상청과괘하청은 아주드물게 쓰이고, 무현은더더욱그렇습니다. 세줄만있어도충분한데, 그것의곱절이나있는것입니다. 이상합니다. 뒤집어생각해보면, 이해가빠릅니다. 괘때문입니다. 거문고에만있는독특한괘는 종잇장처럼얇게깎아서세웁니다. 현으로고정된괘는 가장큰첫번째괘뿐이고, 나머지는위태하게서있습니다. 실제로툭건드리기만하면쓰러집니다. 그걸붙이느라고애먹습니다. 그런데현이셋뿐이라고생각할경우, 유현과대현은끊임없이움직입니다. 가장많이쓰이는현이기때문입니다. 조금만세게누르면 어떻게될까요? 현전체를지탱하는첫번째괘가쓰러집니다. 이걸방지하려면어떻게해야할까요? 밑둥을굵게해야할까요? 그렇게하면 아마도소리가달라질것입니다. 오랜세월그렇게얇은모습으로서있는것은 오동나무로된울림통에맑은소리를내기위함일것입니다. 따라서방법은한가지입니다. 여벌의끈을하나더대서 다른두현이놀때 버텨주도록하면됩니다. 그렇게해서나타난것이괘상청입니다.
무현은 문현과짝을이루느라고 들어갔을것입니다. 괘외청은유현과짝을이루려는것이겠지요. 이렇게균형을유지하는것은 현이오래도록용구와봉미를 잡아당기고있기때문입니다. 오래도록그렇게잡아당기면, 어느한쪽으로거문고의몸통이기울게됩니다. 그리고이힘의작용은 소리의울림에도영향을끼칠것이라고 짐작할수있습니다. 울림은나무의재질이나긴장도와관련이있는데, 거문고몸통에작용하는현의힘은 귀에직접느낄정도는아니겠지만, 어떤영향을끼칠수있을것임을 어렵지않게헤아려볼수있습니다. 이런미세한영향은 대부분오랜세월이지난후에 발달된과학기구로밝혀지곤하는것들입니다. 거문곳줄이6개라는것은 전체의균형과관련이있다는것을짐작해볼수있고 그방향으로악기가발전해왔다는 결론을맺을수있습니다.
이상, 거문고에관한 저의개똥철학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