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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상고사기행11] 소림사에서 태극권을

작성자머털도사|작성시간26.06.18|조회수8 목록 댓글 0

소림사에서 태극권을

정진명(시인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20. 소림사에서 태극권을!

 

2026년 3월 15일 아침, 소림사에 갔습니다. 입구 식당가의 박대숙(朴大叔)이라는 이름이 반가워 조선족 체인점 식당에서 아침을 비빔밥으로 간단히 먹고 소림사에 들어갔습니다. 다행히 소림사는 새 건물이 아니라 천 년 전의 그 모습이었습니다. 벽돌 하나 섬돌까지 모두 고색창연했습니다. 은행나무는 1,000살이 넘은 것도 있고 많은 나무가 고승처럼 서서 밀려드는 중생들의 어깨를 다독여주었습니다.

 

공산 치하의 중국에서 절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얘기입니다. 종교는 아편이라고 한 마르크스의 말에 중국에서 중들은 모두 사라집니다. 그런데 소림사가 유명해진 것은 이연걸의 『소림사』(1982)라는 영화 때문입니다. 막 개혁개방이 시작되던 시기, 그 영화를 보고 감동한 중국의 청소년들이 소림사로 구름같이 몰려든 것입니다.

 

하지만 소림사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절도 텅텅 비었고, 중도 자릴 비웠습니다. 불교가 사라진 소림사에 무술을 하겠다는 청년들로 홍수가 난 것입니다. 결국 이들의 욕망을 채워줄 사람들이 북경에서 공수되었습니다. 북경체육대학 출신의 무술가들이 이들을 맞이한 것입니다. 사람이 모이면 돈이 몰리기 마련이어서, 숭산 골짜기에는 무술학교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섭니다.

 

무당산이니 화산이니 하는 무림 문파는 무협지의 허구이지 현실의 얘기가 아닙니다. 김용의 무협지에서나 일어나는 일입니다. 무협지의 착시 효과가 현실에서 신기루처럼 일어난 것이 숭산이고, 그곳 골짜기의 한 절에서 현실화가 이루어진 것이, 이후의 소림사 무술입니다. 하지만 이연걸이 연기한 것은 태극권이었죠. 이 영향인지 중국 정부에서도 태극권을 다듬어서 간화 24식과 42식을 만들어 온 세계에 보급했고, 1992년 북경 아시안 게임에서 1,000명의 태극권사가 하얀 옷을 입고 나와서 일사불란한 동작으로 시연했습니다. 전 세계가 그것을 보고 떠들썩했습니다. 역시 중국이구나! 하고 말이죠. 그 후 태극권은 중국을 대표하는 문화 이미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태극권을 소재로 한 영화는 수도 없이 만들어졌죠. 아시안 게임 태극권 시연에 참가한 절반의 인원이 일본의 태극권사였다는 것은 그 무렵 중국의 태극권이 이제 막 발걸음을 떼는 단계였음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태극권은 중국 공산 정권 하에서는 탄압을 받을 수밖에 없는 문화였습니다. 태극권은 진가구에서 도적 떼를 막으려고 진장흥이 마을 청년들을 가르치면서 이어온 무술이고 실제로 그 굉장한 파괴력으로 태평천국의 난 때 진가구를 치러 간 부대의 우두머리가 진가구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들리는 얘기로는 봉으로 찔렀는데, 그 봉이 가슴을 뚫고 등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이것이 진가구가 험난한 시대에 온전히 보존되는 순기능을 했지만, 나중에 공산 정권이 들어선 뒤에는 오히려 악재가 되어, 진가 태극권 장문인이 처형당하기까지 하는 결과를 불러옵니다.

 

중국 정부에서 발행한 중국 근대사를 보면, 우리가 ‘난’이라고 배운 것과는 다르게 태평천국의 난을 긍정 평가합니다. 비록 민란의 형태지만 제국주의를 무너뜨리는 출발점이 되었고, 그것이 민중봉기라는 차원에서 조명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태평천국의 난에 적대감을 보인 세력들이 이후 공산주의 이론의 역사 평가에서 비판을 받는 처지로 뒤바뀝니다. 그래서 태극권은 숨도 쉬지 못하고 30년 넘게 수련이 금기시됩니다.

 

중국이 등소평의 진두지휘하에 개혁개방을 시작함으로써 문화대혁명 시기 자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반발과 숙청이 너무 심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중화의 전통문화를 부흥하려는 운동이 일어납니다. 그 흐름을 타고 몸으로 하는 무형유산도 조명을 받기 시작하여 무술을 비롯한 모든 문화가 과거로부터 30년 이후의 현실로 퍼 올려집니다. 태극권도 그런 과정을 고스란히 겪습니다. 그래서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간화 태극권입니다. 북경체육대학의 주도로 각 문파에 전해오던 태극권의 동작을 추려서 보급형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태극권의 본고장은 숭산 소림사가 아니고, 하남성 초작시의 진가구입니다. 진가구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죠. 가 봐야 숙박업소도 제대로 없어 하룻밤 자려면 인근의 도시인 초작시로 나와야 합니다. 이 마을에 300년째 전해오는 권법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두 차례입니다. 200년 전의 양로선이 이 마을에 머슴살이를 하다가 북경으로 이사 오면서 태극권이 세상에 알려집니다. 당시 양로선은 무술에 뛰어나 생사장을 걸고 하는 대결에서 단 한 번도 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별명이 ‘양무적’이었습니다. 그 명성 덕분에 청나라의 왕실 자제와 고위 관료 자제들이 양로선에게 무술을 배웠고, 그래서 청 왕조의 묵인하에 그 무술이 생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근대로 접어들면서 태극권이 실전성을 잃고 유명무실하다가 진가구의 진발과가 북경으로 나오면서 태극권은 다시 한 번 관심을 받습니다. 당시 북경에는 많은 사람이 태극권을 배웠는데, 거의 춤으로 변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진발과는 내공이 정말 대단해서 한 번 붙으면 상대가 붕붕 날아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태극권을 하던 사람들이 진발과를 찾아와서 다시 배우게 되었죠.

 

그중에 홍균생이라는 사람이 20년 가까이 진발과에게 태극권을 배우다가 자득한 것을 글로 정리했습니다. 그 내용을 스승 진발과에게 허락을 받아서 책으로 냅니다. 제가 수많은 태극권 책을 읽었지만, 홍균생의 책이 가장 정확하고 사실에 부합했습니다. 나중에 홍균생의 제자들은 자기 스승의 이름을 붙여서 ‘홍파’라고 했는데, 사실은 홍균생이 죽으면서 ‘나의 태극권은 진가로부터 나온 것이니 진가 권이라고 하고 따로 이름을 붙이지 말라.’고 유언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의 제자들은 굳이 홍파라는 이름을 붙여서 그의 무술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소림사에 갔으니, 태극권을 한 번 해야겠지요? 둘러보니 비석 앞에 약간 한적한 자리가 있습니다. 거기서 태극권을 해봅니다. 노가1로(老架一路). 비석이 즐비하고 고색창연한 기와집이 있는 곳에서 동작을 천천히 이어갔습니다. 起势(기세)-金剛搗碓(금강도대)-攔擦衣(란찰의)-六封四閉(육봉사폐)-單鞭(단편)-제2金剛搗碓(금강도대)-白鹅亮翅(백아량시)……. 태극권은 진가에서 내려오는 무술이기에 진가 태극권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진가 태극권에서는 주어진 형식에 따라서 동작을 이어가는 훈련법이 있습니다. 그것을 투로(套路)라고 합니다. 2가지가 있는데, 각각 1로와 2로라고 합니다.

 

이러던 것을 진발과가 북경으로 오면서 새로운 투로를 만듭니다. 새로 만들었으니 신가(新架)겠지요. 그래서 그전에 내려오던 형식의 투로는 저절로 노가(老架)가 된 것입니다. 진발과가 만든 신가는 정말 대단한 내공이 아니면 따라 하기도 힘든 투로입니다. 발경이 주를 이루면서 몸 안에서 만들어내는 기운을 폭발시켜서 드러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어설프게 따라 하다가는 무슨 춤을 추는 것 같이 보입니다.

 

태극권 노가 1로는 한 과정을 하는데 7~10분 정도 걸립니다. 사람들이 오가는 소림사 경내에서 천천히 태극권을 했는데, 3분 정도 하다가 운수에서 멈추었습니다. 그 정도로도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돌아나오는데, 사람들이 어디론가 우르르 몰려가기에 뭐냐고 물으니, 무술학교 시범단의 무술 공연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얘기를 듣고 우리는 그냥 나왔습니다. 그걸 보느니 시간이 아깝다는 저의 말을 듣고 일행이 함께 돌아선 것입니다. 거기서 보여주는 것은 무술이 아니고 공연입니다. 태극권도 아니고 무술인데, 호랑이 곰 원숭이 뱀 같은 짐승의 동작을 보여줍니다. 동작은 화려하고 이론은 그럴듯하나, 그것이 진짜 무술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공연을 위해 무대로 올라간 무술은, 무술이 아니고 춤입니다. 춤꾼들이 더 잘합니다.

 

제가 중국 무술의 눈요기 행사에 대해 이렇게 야박한 평가를 하는 이유는, 30년 넘게 전통 활쏘기를 해온 한국의 무사이기 때문입니다. 전통 활쏘기는 한 초식입니다. 10초면 끝나는 동작 하나를 30년 넘게 수련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천천히 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몸의 구조가 드러나기 시작하고, 힘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 손으로 전달되어야 하는지 점차 투명해집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문파의 무술에 대한 이해도 절로 깊어져 갑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중국의 태극권 동영상을 보면 별로 건질 게 없습니다. 중국 무술도 전통 단절의 심각한 병을 앓는 중이라는 것을 담박에 눈치챘습니다. 동영상 속의 고수들도 그러한데, 저런 무대에 오른 애송이들의 몸짓이 오죽하겠어요? 젊은 날의 순발력과 혈기로 몸 쓰는 동작이 뭔가 그럴듯한 겉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뿐입니다. 진짜 몸놀림의 비밀은 맨눈으로 보아도 잘 안 보입니다. 손발의 화려한 동작에 얽매인 눈으로는 몸통 안에서 움직이는 무언가를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을 보는 것은 진짜 고수들의 날카로운 눈입니다.

 

그 눈은 스승의 가르침을 한세월 착실히 받아야 떠질까 말까 하는 그 어떤 것입니다. 떠질까 말까 하다는 것은, 스승이 제대로 가르쳐주어야 한다는 것과,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제자의 노력이 합해질 때 일어나는 마법이기 때문입니다. 둘 중의 하나가 빠지면 안 됩니다. 요즘처럼 저만 잘났다고 나부대는 시대에 이 두 가지가 만나는 일은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제가 한 30년 전통 활쏘기를 하며 겪은 일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게 태극권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는 말입니다. 인터넷의 동영상을 훑어보면 태극권한다고 자랑들을 하는데, 제 눈에는 무술이 아니라 무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무용과 무술은 갈래가 다릅니다.

 

 

21. 북망산에서

 

낙양에 왔으니 북망산을 안 가볼 수가 없겠습니다. 북망산은 사람이 죽어서 가는 저승을 뜻하는 말로 자리 잡았습니다. 망산(邙山)은 낙양의 북쪽에 있는 야트막한 산입니다. 북쪽에 있기에 북망산입니다. 장안에 사는 사람들은 죽으면 무덤을 써야 하는데, 근처에는 북망산이 가까워서 거기에 묻기 시작한 것이고, 낙양의 왕과 귀족들이 오래도록 이곳에 무덤을 썼기에, 죽어서 가는 곳을 뜻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민요에도 있죠.

 

낙양성 십 리 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냐?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

우리네 인생 한 번 가면

저기 저 무덤 될 터인데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여!

 

2026년 3월 16일 아침, 택시를 타고 북망산으로 향했습니다. 입구에 다다르고 보니 월요일이어서 박물관이 휴관입니다. 우리처럼 헛걸음한 사람이 한둘 더 있더군요. 그래서 박물관 입구에서 기념사진만 찍고 돌아나왔습니다. 그런데 망산이 생각처럼 높지 않더군요. 산이라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너른 들판에 보리싹이 초록 융단을 깔아놓았습니다. 공장이 들어선 골목길 사이를 뚫고 나와 택시가 다시 강물을 건너 시내로 되돌아옵니다. 시내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다시 뤄양룽먼역(洛阳龙門站)으로 가서 린이베이역(临沂北站)으로 가는 고속철을 탑니다. 다시 여권을 꺼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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