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2025년의 최고작.
“현대판 고전, 기념비적인 걸작, 숭고하고 경이롭다.”
영화 <브루탈리스트> 리뷰
2025년 영화 <브루탈리스트> 총정리 리뷰
출처: yulha3exit의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yulha3exit-/223756974084
성공한 건축가가 왜 석탄을 캐고 있죠?
본 포스팅은 영화 '브루탈리스트'에 대한 이동진 평론가님의 언택트톡과 블로거의 주관적 견해를 합쳐 작성했다.
영화 브루탈리스트(Brutalist) 총정리 목차
1. 이유 있는 멈춤, '15분 인터미션'
2. 브루탈리즘과 브루탈리스트
3. 영화의 처음과 끝, 조피아
4. 밴 뷰런 해리슨, 펜실베이니아의 철근, 콘크리트와 대리석
5. 극 중 의자와 천장이 상징하는 바
6. 엘리자벳과 라즐로의 예지몽
7. 기념비적인 오프닝 크레디트와 엔딩 크레디트
8. 영화 속의 영화로서의 '밴 뷰런 센터'의 상징 (블로거의 주관적 의견)
9. 애드리언 브로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을 고스란히 영화에 녹여내다.
10. 영화 '브루탈리스트' 한줄평
1. 이유 있는 멈춤, '15분 인터미션'
3시간 35분의 러닝타임, 영화 '브루탈리스트'
영화 '브루탈리스트'의 상영 시간은 215분(3시간 35분)이다. 요즘 개봉하는 영화의 러닝타임은 2시간 내외이다. 더불어 언제든지 정지하고 재생할 수 있는 OTT 플랫폼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관객에게 3시간 35분이라는 러닝타임은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예전 3시간이 넘는 할리우드 고전 영화에는 때때로 관객을 위한 배려로 '영화 중간 휴식 시간'인 인터미션(Intermission)을 상영 시간 중간에 삽입했었다. 러닝타임이 4시간에 달하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인터미션은 1939년 당시 10분간 주어졌다.
하지만 현대 영화에서 인터미션을 주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영화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2003년, 263분), '아이리시 맨'(2019년, 298분) 모두 인터미션이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멈춤 없이 상영했다. 2021년 개봉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해피 아워'에는 10분간의 인터미션이 주어졌지만,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무려 317분(5시간 17분) 이었다.
감독이 의도적으로 인터미션을 넣다.
영화 '브루탈리스트'의 인터미션은 15분이다. 인터미션의 목적은 관객의 휴식을 위함이라기보단 감독 브래디 코베(Brady Corbet)의 의도가 가장 큰 이유이다. 주인공 라즐로 토스가 미국에서 고군분투하며 적응하는 시간을 전반부라고 한다면, 아내 엘리자벳과 조카 조피아가 미국에 도착하고 본격적으로 '밴 뷰런 인스티튜트' 건물을 지어나가는 과정을 중/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즉, 감독이 영화의 전반부와 중/후반부를 나누기 위한 영화적 장치로 의도적으로 인터미션을 넣은 것이다.
또한, 인터미션의 남은 시간이 스크린에 나타나고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사운드 배경으로 깔린다. 이는 아내 엘리자벳이 미국에 오는 동안 주인공 라즐로가 계속해서 미국 사회에 적응하는 시간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배경 사진은 라즐로와 엘리자벳의 결혼식 사진이며, 조카 조피아와의 관계를 입증시켜주는 유일한 증거이기에 인터미션도 영화의 일부로 작용한다.
나의 입장에서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극장에서 인터미션을 본 느낌은 신선했다. 전반부의 내용을 어느 정도 머릿속에 정리하고 곱씹으며 후반부의 몰입도를 높일 수 있는 휴식 시간이 되었다.
- 15분 인터미션의 이유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나누기 위해 감독이 의도하여 넣은 영화적 장치.
2. 브루탈리즘과 브루탈리스트
손가락질 받는 건축물, '브루탈리즘'
브루탈리즘(Brutalism)이란 프랑스어로 '노출 콘크리트'를 의미한다. 2차 세계대전 직후 기능에 초점을 맞춰 등장한 브루탈리즘은 장식을 배제하고 실용성을 추구하며 폐허가 된 유럽 지역을 재건하는 데 기여했다. 콘크리트 재료를 외관에 그대로 노출시켜 건설 방식이 실용적이지만 외관이 흉측하다는 혹평도 있다. 브루탈리스트(Brutalist)는 브루탈리즘을 추구하는 건축가이다.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주인공 라즐로는 건축가로서의 예술성과 천재성을 보여준다. 그가 미국에 도착하고 처음 참여한 서재 리모델링 작업은 단숨에 최고의 건축 디자인으로 칭송받으며 잡지에도 실린다.
하지만 영화는 마약과 매춘을 일삼는 그의 행실도 숨기지 않고 모두 드러낸다. 미국에 도착해 잠깐 함께 지냈던 동료에게 나중에 꼭 찾으러 간다며 호언장담하지만 이후 라즐로의 입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으며, 약속도 전혀 지키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양면성은 실용적이지만 거친 질감의 콘크리트 재료를 외관에 그대로 노출하는 브루탈리즘 방식과 일치한다.
브루탈리스트는 미국에 이민을 온 유럽 이민자 사회를 상징한다. 이는 전쟁 직후 폐허가 된 고향을 떠나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이민을 와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유럽 이민자들의 가난함, 배고픔, 슬픔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이다. 마치 콘크리트 건축물이 흉측하다며 손가락질하는 것처럼 말이다.
실례로 2024년 9월, 할리우드리포터와의 인터뷰에서 브래디 코베 감독은 "1950년대 브루탈리즘 건축물이 세워졌을 때 많은 사람이 철거하길 원했다"라며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움받기 쉬운 브루탈리즘 건축물이 이민자의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라고 설명했다.
- 브루탈리즘과 브루탈리스트의 상징적 의미
브루탈리즘: 콘크리트 재료처럼 주인공의 못난 흠까지 전부 노출(매춘, 마약, 언행불일치)
브루탈리스트: 전쟁 직후 미국에 온 유럽 이민자를 차별하고 무시한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을 상징
3. 영화의 처음과 끝, 조피아
영화는 조피아로 시작되고, 조피아로 끝이 난다.
영화의 시작은 조카 조피아가 누군가로부터 질문을 받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조피아의 어머니이자 주인공 라즐로의 친누나는 2차 세계대전 중에 사망한 것으로 추측된다. 조피아가 질문받는 장면은 오스트리아 인근 국경 근처에 외숙모(엘리자벳)가 있는 곳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는 과정에서 정부 관리자가 조피아의 신원을 확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끝은 조카 조피아가 베니스에 삼촌 라즐로의 건축물들을 설명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삼촌의 업적을 칭송하고, ‘밴 뷰런 인스티튜트’의 의미를 되새기는 조피아의 입을 통해 비로소 라즐로는 위로받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의 전반부, 정착이 불확실한 라즐로가 불안에 떨고, 궁극적으로 조피아의 입을 통해 영화의 끝에서 라즐로는 위로를 받는다.
조피아는 라즐로의 또 다른 삶이다.
조카 조피아는 삼촌 라즐로와 다르면서 동시에 같다. 라즐로는 해리슨에게 강간을 당했고, 조피아는 해리슨의 아들 해리에게 강간을 당한다. 또한, 라즐로*와 조피아는 모두 끝까지 침묵으로 고통을 견딘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 라즐로는 마약에 취해 아내에게 강간당한 사실을 고백하긴 한다.
라즐로와 조피아는 유럽 이민자로서의 고통을 침묵으로 견딘다는 점에서 같으면서 다르다. 조피아는 라즐로가 살지 못한 그의 또 다른 삶을 살아간다. 영화 중반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조피아이기에 관객은 그녀에게 언어장애가 있나 하는 의문까지 든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이스라엘에 간다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때 처음으로 말을 한다. '만약 라즐로가 이스라엘에 갔더라면?'으로 시작하는 물음에 대한 삶을 조피아가 대신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 조피아로 시작되고, 조피아로 끝이 나는 이유.
조피아로 시작되는 미국 이민의 삶 = 라즐로의 미국 이민의 삶
조피아=라즐로: 강간의 피해자, 침묵으로 고통을 인내
조피아로 끝이 나는 이스라엘의 삶 = 라즐로가 살지 못했던 이스라엘에서의 삶
4. 밴 뷰런 해리슨, 펜실베이니아의 철근, 콘크리트와 대리석
해리슨은 라즐로에게 구원자이자 파괴자이다.
극 중 밴 뷰런 해리슨은 라즐로 토스 다음으로 제2의 주인공이다. 영화는 라즐로 토스와 밴 뷰런을 구축으로 전개된다.
그는 라즐로 토스에게 은인인 동시에 악인이다. 그는 라즐로를 위해 오스트리아 국경 근처에 발이 묶여있는 아내 엘리자벳을 미국으로 데려올 수 있게 해준 장본인이며, 공사장을 연연하던 라즐로를 대규모 건축물 '밴 뷰런 인스티튜트'의 총책임자로 임명하기도 한다. 라즐로에게 해리슨은 하늘에서 떨어진 은인이다.
반면에 해리슨은 라즐로의 과거 업적을 알기 전까지 라즐로의 면전에 에서 꺼지라며 소리를 지르고, 농담 섞은 진심으로 가난하다며 구두닦이 취급을 하며 동전을 던졌으며, 이탈리아 대리석 채석장에서 그를 강간했다. 후반부에서 자신의 죄를 발설하는 엘리자벳에게 라즐로는 늙은 개인 정신병자라고 욕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해리슨은 라즐로를 처음부터 하등 계층이라며 무시했음을 알 수 있다. 애초에 전쟁을 피해 이민을 온 라즐로의 상황과는 반대로 전쟁을 통해 뗴돈(화물선 제조 시간 단축)을 벌어들인 게 밴 뷰런이다. 라즐로와 해리슨은 각각 전쟁에서 상처를 입은 유대인 이민지와 전쟁을 통해 부를 축적한 미국인을 상징한다.
해리슨은 라즐로에게 구원자인 동시에 파괴자이다. 미국 사회는 유럽 이민자에게 구원자인 동시에 파괴자이다.
라즐로와 해리슨을 영화적 연출로 묶다.
사실 해리슨은 예술적 식견도 없고 멋들어진 서재를 두고도 책도 읽지 않는 인물이다. 그가 유일하게 서재 의자에 앉는 건 면도를 받는 장면뿐이다. 더 이상 와인을 모을 필요성이 없어지자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해리슨의 말은 자신이 설계한 건물은 강물의 침식에도 견딘다는 라즐로의 말과 건축 설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 맥락은 같다. 해리슨은 인간의 삶은 유한하기에 건축물을 통해 자신을 기록하려는 것이고, 라즐로는 상처받은 자신의 삶을 건축물을 통해 위로받고자 한다.
해리슨의 조부모는 잡지를 읽고 손자가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해리슨을 찾아가고, 해리슨은 잡지를 통해 라즐로가 뛰어난 예술가임을 알게 되어 그제야 라즐로를 찾아간다.
해리슨은 '밴 뷰런 인스티튜트'를 짓는 과정에서 자신이 어릴 적에 레슬링했다며 체육관을 추가하자고 라즐로에게 요청한다. 하지만 자신이 해보지 않은 종목인 수영장 추가 건설은 거부한다. 해리슨은 어머니의 이름으로 짓는 건물에 어머니와의 추억만을 고스란히 반영하려 한다. 라즐로 또한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밴 뷰런 인스티튜트'를 건설한다.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고 건물을 세운다는 점, 잡지를 통해 관심 없던 인물을 알게 된다는 점, 자신의 감정을 건축물에 반영하려 한다는 점에서 해리슨과 라즐로는 같다.
펜실베이니아의 철근, 콘크리트와 대리석
영화의 공간적 배경인 펜실베이니아는 1776년 미국의 독립 선언문이 작성된 곳이자 미국의 헌법이 제정된 곳이다.
1800년 워싱턴 D.C.가 공식적인 미국 수도로 지정되기 전까지 펜실베이니아는 1790년부터 1800년까지 미국의 수도였다.
한때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는 1950년대 미국 전체 생산량의 절반이 넘는 철강을 생산해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인 '밴 뷰런 인스티튜트'의 주요 건축 자재는 철근, 콘크리트, 대리석이다. 철근은 미국 사회, 콘크리트는 유럽 이민자, 대리석은 전쟁 직후 유럽 상황, 라즐로의 상처를 의미한다. 영화 초반부 무료 급식을 기다리는 주인공의 옷을 훗날 친구가 되는 고든의 아들이 청색을 띤다고 언급하는 장면이 이를 상징한다. 라즐로가 이후 콘크리트를 '밴 뷰런 인스티튜트'의 건축 자재로 활용하자고 말하는 장면이 그는 펜실베이니아(철근)으로 와 유럽 이민자(콘크리트)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대리석(전쟁 직후 상황, 강간)을 겪는 일련의 과정을 상징한다.
- 밴 뷰런 해리슨은 구원자인 동시에 파괴자 / 철근, 콘크리트, 대리석의 상징
유럽 이민자를 구원하는 동시에 파괴하는 미국 사회를 상징(라즐로를 구원하고 파괴하는 해리슨)
라즐로와 해리슨의 유사성 = 유한한 인간의 삶을 예술로 승화, 잡지를 통해 서로가 연결, 밴 뷰런 인스티튜트에 삶을 반영
철근=미국 사회 / 콘크리트=유럽 이민자 / 대리석=전후 유럽 상황, 라즐로의 상처를 상징
5. 극 중 의자와 천장이 상징하는 바
가구점 의자, 서재 의자, 휠체어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나리오가 전개됨가 동시에 의자와 천장을 통해서 연결된다.
주인공 라즐로가 의자를 대하는 방식은 3가지로 나온다. 가구점 매장 정문 쇼룸의 의자, 서재용 독서용 의자, 라즐로의 휠체어이다.
영화의 전반부 가구점 매장 정문 쇼룸에 의자를 놓고, 서재에 독서용 의자를 배치한다. 가구점에 배치한 의자의 모양이 십자가 홈과 비슷하고, 서재에 배치한 독서용 의자에 천장에서 들어오는 빛이 내린다는 점이 '밴 뷰런 인스티튜트' 십자가 제단과 유사하다. 서재와 '밴 뷰런 인스티튜트'는 각각 아빠(해리슨)를 기쁘게 하기 위해 아들(해리)이 의뢰했고, 어머니를 위해 아들(해리슨)이 의뢰했다는 점, 그리고 서재를 만들 때와 센터를 만들 때 모두 사고가 일어난다는 점에서 가구점, 서재, 센터가 연결 지어진다. 가구점에 배치한 의자, 서재에 배치한 독서용 의자는 주인공 라즐로의 것이 아닌 타인의 것, 즉 미국 사회에 완벽하게 녹아들지 못하는 라즐로의 삶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극 중 차를 타고 시내로 향하는 해리슨과 엘리자벳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다. 거리의 유럽 이민자 노숙자가 건물의 일부가 된 거 같다는 해리슨의 말에 엘리자벳은 나 역시도 전쟁 직후 노숙자였다며, 노숙자들은 건물의 일부가 아닌 설치물이라고 말한다. 즉, 결국에 완벽히 미국에 동화되지 못하는 유럽 이민자를 의미한다.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밴 뷰런 인스티튜트'에 담았지만 현실에서의 라즐로는 아내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는 남편이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완성된 '밴 뷰런 인스티튜트'에 대한 건축가의 의도를 조카 조피아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이를 보고 있는 라즐로는 마침내 의자(휠체어)에 앉게 된다. 고통과 인내의 삶이었던 미국 사회에 드디어 동화되었다고 보인다.
천장에 대한 복선
주인공 라즐로에게 건설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천장이다. 그는 자신의 급여를 깎아가면서까지 천장의 높이를 고집한다. 이는 영화 극 초반부 매춘부에게 눈썹 위 이마 부분이 별로라고 언급하는 라즐로의 말에 복선이 있다. 이에 매춘부는 라즐로는 못생겼다고 말한다. 라즐로는 매춘, 마약, 상처로 얼룩지어진 미국에서의 고통스럽고 못생긴 삶을 살아간다. 매춘부의 말이 이에 대한 복선이다. 빛이 없었던 그의 삶에 천장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은 절대 포기할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것이다.
- 극 중 의자가 가지는 상징성
가구점 의자 및 서재 독서용 의자 → 라즐로가 앉을 수 없는 유럽 이민자가 동화될 수 없는 미국 사회의 삶
휠체어 → 미완성한 밴 뷰런 센터를 완성한 라즐로가 앉을 수 있는 유럽 이민자로서 정착한 미국 사회의 삶
가구점 의자=센터의 십자가 홈과 비슷한 모양 / 서재 의자=센터의 십자가 제단과 비슷한 빛줄기 / 서재를 만들 때 사고=센터를 만들 때 사고를 통해 가구점-서재-센터는 연결 지어짐
- 극 중 천장이 가지는 상징성
영화 극 초반부 매춘부 눈썹 위 이마 언급 → 라즐로에게 중요한 건 천장
하늘을 올려다볼 수 없이 땅만 파던 그의 삶 → 포기할 수 없는 삶, 천장의 높이가 중요한 라즐로
6. 엘리자벳과 라즐로의 예지몽
엘리자벳 토스의 예지몽
인터미션 이후, 비로소 엘리자벳은 남편 라즐로가 있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도착한다. 그리고 몇 년 만에 같은 침대 위에 누운 둘. 엘리자벳은 남편에게 어떤 일을 한 지 다 알고 있다며 꿈에서 다 봤다고 속삭인다. 이는 엘리자벳이 꾼 꿈은 남편 라즐로가 다른 여자(매춘부)와 섹스한 꿈일 것이다. 그 꿈을 꾼 시기가 명확하지는 않으나 실제로 라즐로는 미국에서 도착한 직후 매춘을 일삼았다.
라즐로 토스의 예지몽
라즐로 토스의 꿈에는 조카 조피아가 성인이 된 모습이 나온다. 하지만 라즐로 토스는 조카 소피아의 어릴 적 말고는 성인이 된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라즐로는 밴 뷰런 센터 건립 때 기차 사고 꿈을 꾸기도 한다. 실제로 기차 사고는 일어났다. 이러한 점에서 영화 '브루탈리스트'에서 엘리자벳과 라즐로가 꾸는 꿈은 단순한 상상 속 꿈이 아닌 실제 일어날 일에 대한 예지몽임을 짐작할 수 있다.
- 극 중 인물들이 꾸는 꿈이 예지몽인 이유
엘리자벳 토스의 예지몽 → 먼저 미국에 도착한 남편의 매춘 사실
라즐로 토스의 예지몽 → 어릴 적 모습만 봤던 조카 조피아의 성인이 된 모습, 기차 사고
7. 기념비적인 오프닝 크레디트와 엔딩 크레디트
거꾸로 뒤집힌 자유의 여신상
걸작으로 남는 영화는 대게 영화의 오프닝부터 훌륭하다.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오프닝 장면 조커의 등장 장면처럼 말이다. 영화 '브루탈리스트'의 초반, 불안한 조피아의 얼굴로 영화가 시작된다. 다음 장면에서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주인공이 침대에서 일어난다. 시놉시스를 읽고 온 관객이라면 혹시나 주인공이 현재 위치한 곳이 유대인 수용소인지, 학살장에 끌려가는 건 아닌지 하는 불안감에 둘러싸인다. 다행히 주인공이 위치한 공간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배의 선실 안이었지만, 선실을 나서는 순간 거꾸로 뒤집힌 자유의 여신상을 보게 된다. 전쟁을 피해 유럽으로 이민 온 주인공 라즐로 토스의 아메리칸드림이 거꾸로 뒤집힐 것임을 암시하는 상징적인 연출이다.
기념비적인 오프닝 크레디트와 엔딩 크레디트
보통 상업 영화의 오프닝 크레디트에는 주로 감독, 프로듀서, 배우 정도만 들어간다. 하지만 영화 '브루탈리스트'의 오프닝 크레트에는 전 스태프 이름이 모두 들어간다. 주인공 라즐로 토스가 사촌을 찾아 펜실베이니아로 떠나는 버스를 탑승하고 본격적인 오프닝 크레디트가 시작되는데, 스태프의 이름은 가로로(X축) 향하고, 버스는 세로로(Y축) 향한다. 이는 영화 후반부 완공되는 '밴 뷰런 인스티튜트'의 십자가를 상징한다.
동시에 건물을 설계하고 건설하는 라즐로 토스, 밴 뷰런, 엘리자벳 등 모든 인부의 삶이 건축물에 반영되고 녹여지듯이,
전 스태프가 본 영화의 건설에 반영되고 녹여졌다는 '브루탈리즘'을 상징화하는 오프닝 크레디트이다.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도 마찬가지로 초기부터 철근이 세워지고, 시멘트로 덮여지는 건물이 건설되는 듯이 대각석으로 비스듬히 올라가는 모양새다.
- 영화의 오프닝 크레디트와 엔딩 크레디트의 상징
오프닝 장면 → 조카 조피아의 불안한 모습, 거꾸로 뒤집힌 자유의 여신상 = 불안한 영화 분위기를 조성
오프닝 크레디트 → 스태프 이름 가로로 진행(X축, ─) + 버스는 햇빛(천장)을 향해 진행(Y축, │) = 건물이 세워지는 과정을 상징 + 밴 뷰런 센터의 십자가 제단(┼)을 상징
8. 영화 속의 영화로서의 '밴 뷰런 센터'의 상징
개인의 삶을 시나리오로 탄생한 영화 '밴 뷰런 인스티튜트'
이동진 평론가님의 해과는 별개로 영화 '브루탈리스트'의 밴 뷰런 센터 건축물이 영화 속 영화를 의미를 지닌다 생각한다.
영화 '클로즈 유어 아이즈'처럼 영화 속의 현실과 영화 속의 영화 사이의 상관관계가 매우 깊게 관련된 것처럼 말이다.
'밴 뷰런 센터'를 영화 그 자체라고 본다면, 주인공 라즐로 토스는 자금을 대주는 제작사 밴 뷰런 해리슨가 고용한 감독이다.
영화의 최초 시나리오는 밴 뷰런 해리슨의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지만 천재적인 감독 라즐로 토스는 이를 보다 각색하여 훌륭한 작품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예산을 관리하는 프로듀서인 레슬리가 예산을 삭감한다. 라즐로 토스 감독은 본인이 본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천장 소품에 대한 예산을 포기할 수 없다. 본인의 인건비를 삭감하면서까지 말이다.
영화 제작을 위해 필요한 재료들 철근(미국 사회의 자본), 콘크리트(감독의 예술성·천재성), 대리석(스태프의 노력)이 모두 첨가되었지만 결국 '밴 뷰런 인스티튜트'는 감독 라즐로와 제작자 해리슨과의 불화로 미완성된 상태로 남게 된다. 마지막에는 결국에 감독 라즐로의 노력으로 후대에서 칭송받는 탁월한 작품 '밴 뷰런 인스티튜트'가 탄생한다.
- 영화 속 영화로서의 '밴 뷰런 인스티튜트'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라는 시나리오로 영화를 완성하려는 제작사 해리슨과 천재적인 감독 라즐로
보다 탁월한 영화를 위해 시나리오를 각색하려는 데에서 발생한 감독과 제작사와의 갈등으로 영화는 미완성
후대에서 칭송받는 탁월한 작품 '밴 뷰런 인스티튜트'가 탄생
9. 애드리언 브로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을 고스란히 영화에 녹여내다.
영화를 통해 부모님의 삶을 고스란히 위로하다.
영화 이전에 애드리언 브로디(Adrien Nicholas Brody)의 삶 자체가 아버지가 폴란드계 유대인이고, 어머니인 실비아 플래시(Sylvia Plachy) 헝가리계 유대인이다.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그는 폴란드계 유대인을 연기하고, 이번 '브루탈리스트'에서 헝가리계 유대인을 연기했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홀로코스트 장르, 유대인 사회,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념비적인 영화로 기억될 것임을 확신한다.
- 애드리언 브로디의 삶이 영화에 녹아들다.
영화 '피아니스트' = 폴란드 유대인 피아니스트 이야기 = 애드리언 브로디의 아버지는 폴란드계 유대인
영화 '브루탈리스트' = 헝가리 유대인 건축가 이야기 = 애드리언 브로드의 어머니는 헝가리계 유대인
10. 영화 '브루탈리스트' 한줄평
★★★★★
하나하나 옮겨 쌓아 올린 콘크리트, 대리석, 철근의 결합체에서 오는 경이로움과 숭고함.
아직 봄이 찾아오지도 않았지만 내게 이미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2025년을 통틀어 최고작 중에 하나다.
탁월한 연기를 선보인 애드리언 브로디가 이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을 거라 예상한다.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처음 한 번은 극장 안에서, 그다음 한 번은 극장 밖에서.
영화 '브루탈리스트'를 다 보고 난 후의 여운이 눈부시게 아름답고, 그 잔상이 마음속에 짙게 남아 좀처럼 떠나질 않는다.
벌써 현대판 고전이라 칭송받는 이 영화를 글로 정리하는 건 내게는 탁월한 일상이자 영광이다.
by yulha3exit
댓글 10
댓글 리스트-
작성시간 25.02.13 캡아 보단 이게 낫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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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시간 25.02.13 존오브인터레스트에 한번 데여서 무섭네..
브로디는 믿고 볼만한데.. -
작성시간 25.02.13 너무 기대하고 가서 그런가 좋은 작품이였는데 엄청나다 까진 아니였음
1부는 개쩔었는데 2부 채석장에서부터 빨리 끝내려고 하는 감이 있어서 아쉬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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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시간 25.02.17 ㄷ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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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시간 25.03.09 최고..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