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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제조업 1황' 말레이시아는 왜 한국이 되지 못했나"

작성시간26.05.31|조회수11,272 목록 댓글 17

https://www.fmkorea.com/9809627291

말레이시아가 한국과 운명이 갈린 이유

 

-피에트로 마시나 나폴리동양학대 교수

 

https://substack.com/home/post/p-188482989

왜 말레이시아는 한국처럼 되지 못했을까.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두 나라를 비교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두 국가 모두 수출 주도형 산업화를 추진하는 중진국이었다. 제조업을 성장의 핵심 엔진으로 삼았다. 글로벌 시장에 빠르게 통합되는 중이었다. 말레이시아의 1인당 소득은 한국과 크게 차이 나지 않았고, 특정 연도에는 거의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당시 두 나라의 운명이 이토록 크게 벌어질 것이라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이후 40년 동안 한국은 고소득 산업 강국으로 성장했다. 전자, 자동차, 조선,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을 육성했다. 오늘날 한국 기업은 전 세계 디자인, 기술, 브랜딩, 생산 네트워크를 장악했다.

 

반면 말레이시아는 여전히 중상위 소득 국가에 머물러 있다. 전자제품 중심의 주요 제조업 수출국이지만, 생산 대부분은 외국계 기업이 맡는다. 국내 기술 역량은 여전히 제한적이며, 소득이나 산업 고도화 수준에서 동북아시아 국가들을 따라잡지 못했다.

 

이런 격차는 기존 발전 이론에 의문을 제기한다.

 

주류 경제학은 수출 주도, 외국인 투자 개방, 거시경제 안정, 글로벌 시장 통합이 결국 국가 간 격차를 줄인다고 주장한다. 말레이시아는 다른 개발도상국보다 이런 정책을 일찍, 일관되게 도입했다. 다국적 기업을 환영했고, 인프라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했으며, 정치적 안정을 유지했다.

 

이런 전략만으로 충분했다면 오늘날 말레이시아는 한국과 훨씬 비슷해야 한다.

 

이 글은 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말레이시아는 산업화, 수출, 산업 정책이 부족해서 실패한 것이 아니다. 생산, 기술, 자본에 대한 자국 통제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산업화를 추진해서 선진국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요컨대, 말레이시아는 주도권(또는 독자적 통제력) 없는 산업화를 겪었다.

 

◇수출 기지형 산업화

 

말레이시아의 현대적 발전 궤적은 1970년대에 형성됐다. 정책 입안자들은 내수 중심 수입 대체 전략을 과감히 폐기하고, 외국인 투자 유치에 중점을 둔 수출 주도형 산업화로 방향을 틀었다.

 

전국 곳곳에 수출 가공 구역을 조성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페낭이다. 페낭은 동남아에서 가장 성공적인 전자제품 제조 허브로 자리 잡았다. 인텔, 모토로라, AMD, 히타치, 필립스 등 미국, 일본, 유럽 다국적 기업들이 전자 부품 조립, 테스트, 패키징에 주력하는 대규모 생산 시설을 세웠다.

 

논리는 단순했다.

 

말레이시아는 정치적 안정,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 영어 구사 능력, 고도화된 인프라를 제공했다. 그 대가로 다국적 기업은 자본, 생산 기술, 글로벌 시장 접근성을 가져왔다.

 

1980년대 초반, 말레이시아는 글로벌 전자제품 생산 네트워크에 깊숙이 편입됐다. 전자·전기 기계는 순식간에 국가 최대 수출 품목으로 떠올랐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 비중은 급격히 커졌다. 산업 일자리도 늘었다.

 

성장 측면에서 이 전략은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구조적 변화 관점에서 한계는 이미 분명했다.

 

말레이시아 산업화는 철저히 수출 기지 역할에 맞춰졌다. 글로벌 생산망의 특정 부문을 담당하는 장소로 기능했을 뿐, 전략적 통제권은 외부에 있었다.

 

다국적 기업은 제품 설계, 핵심 기술, 지식재산권을 독점했다. 제품 라인, 기술 방향, 시장 공략 결정은 해외 본사가 내렸다. 말레이시아 자회사는 본사 생산 지시를 이행하는 데 그쳤다.

 

국내 기업은 주변부에 머물렀다. 일부는 단순 부품 공급업체로 전락했다. 물류, 유지보수,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도 있었다. 제품을 직접 설계하거나, 독자 기술을 개발하거나, 자체 브랜드로 경쟁할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한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이런 패턴은 동북아시아 후발 산업 국가들의 초기 행보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한국과 대만에서는 수출 주도형 산업화가 자국 기반 생산 시스템 구축과 병행됐다. 국내 기업들은 강압적인 방식으로라도 수출, 학습, 기술 고도화에 내몰렸다. 외국 기술을 도입했지만, 이를 국내 기업 내부에 내재화해서 점차 설계, 엔지니어링, 시스템 통합 단계로 나아갔다.

 

말레이시아 모델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외국 자본을 자국 역량 강화를 위한 임시 수단으로 활용하는 대신, 산업 확장의 영구 엔진으로 삼았다. 수출 기지형 산업화는 제조업 생산량과 수출을 늘릴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산업 주권이 생기지는 않는다.

 

다국적 기업 자회사 내부 학습은 통제된 범위에서 이뤄진다. 기술은 모듈화되고 분할된다. 말레이시아 엔지니어와 기술자들은 공정 최적화, 품질 관리 등 운영 기술은 습득했지만, 제품 설계 등 전략적 지식에는 접근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기술 역량은 국가 차원에서 축적되지 않았다. 외국계 기업이라는 고립된 울타리 안에 갇혔다.

 

시간이 지나며 이는 악순환을 낳았다. 말레이시아 경쟁력은 생산 기지를 얼마나 효율적이고 저렴하게 유치하느냐에 달렸다. 정책 우선순위는 낮은 임금, 유연한 노동 시장, 안정적인 인프라, 파격적인 인센티브 등 투자 매력 유지에 맞춰졌다.

 

산업 고도화는 다국적 기업이 고부가가치 활동을 이전하느냐에 좌우됐다. 자국 산업 전략은 외국 자본 입맛에 종속됐다.

 

말레이시아에 공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공장에 대한 통제력이 없었을 뿐이다. 이런 구조적 조건이 훗날 한국과의 궤적을 가른 근본 원인이다.

 

◇규율 없는 산업 정책

 

말레이시아가 외국인 투자에 의존했다고 국가 차원의 산업 고도화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역대 정부는 중화학 공업 육성, 국가 대표 기업 양성, 고부가가치 제조업 전환을 목표로 내세웠다.

 

이런 목표는 일련의 제도적 조치로 구체화됐다.

 

가장 눈에 띄는 조치는 1980년 말레이시아 중공업공사(HICOM) 설립이다. HICOM은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기계, 자동차 제조 등 전략 산업 투자를 지휘했다. 1983년 출범한 국민차 프로젝트 '프로톤'은 말레이시아의 산업적 야망을 보여주는 상징이 됐다.

 

정부는 기술 단지, 연구소, 인센티브 제도를 마련했다. 벤더 육성 프로그램으로 국내 중소기업과 다국적 기업을 연결하려 했다. 공공 조달 정책으로 자국 생산업체를 위한 시장도 조성했다.

 

서류상 이런 정책 조합은 동아시아 발전 국가들 모델과 유사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말레이시아 산업 정책은 전혀 다른 정치 경제적 조건 아래서 작동했다.

 

결정적 차이는 규율 부재였다.

 

한국 산업 정책은 국가 금융 통제와 떼어놓을 수 없었다. 정부는 목표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고, 수출 성과와 기술 고도화를 필수 조건으로 요구했다. 목표에 미달한 기업은 자금줄이 끊기거나 구조조정을 감수해야 했다.

 

이 시스템은 국내 기업이 기술을 내재화하고 국제 무대에서 경쟁하도록 강력한 동기를 부여했다. 말레이시아에는 이런 수단이 없었다.

 

말레이시아 금융 시스템은 개방적이고 자유로웠다. 정부가 국책 은행과 공기업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한국처럼 자금 배분을 철저히 통제하지 못했다. 국내 대기업은 더 큰 자율성을 누렸다. 제조 부문 핵심인 외국 기업들은 정부의 강압적 정책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었다.

 

결과적으로 말레이시아의 국가 지원은 선심성 성격을 띠었다. 기업들은 세금 혜택, 보조금, 보호 조치를 받았다. 엄격한 성과를 요구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실패해도 체계적으로 지원이 끊기지 않았다.

 

프로톤 프로젝트가 이 패턴을 잘 보여준다.

 

프로톤은 국내 자동차 제조 기반을 다지고 한동안 높은 내수 시장 점유율을 차지했다. 하지만 엔진 설계, 변속기 시스템 등 핵심 기술은 계속 외국 파트너에 의존했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프로톤은 현대나 기아 수준의 글로벌 자동차 제조업체로 성장하지 못했다.

 

벤더 육성 프로그램 역시 성과가 제한적이었다. 현지 조달 비율은 높였지만, 국제 무대에서 경쟁할 자국 공급업체를 배출하지 못했다.

 

더 깊은 문제는 구조에 있었다.

 

말레이시아 산업 정책은 수출 기지형 산업화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정부는 산업 고도화를 장려하면서도 외국 자본에 유리한 환경을 유지해야 했다.

 

다국적 기업에 엄격한 성과를 강요하면 투자가 위축될 위험이 컸다. 자국 기업에 엄격한 규율을 적용하면 정치 연합이 흔들릴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 정책은 혁신보다 편의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말레이시아는 공장을 지었지만, 기술 선도 기업을 키우지는 못했다. 산업 정책은 존재했지만, 규율은 없었다.

 

◇민족 간 부의 재분배와 계급 형성

 

말레이시아 발전 과정을 분석하려면 1971년 도입된 신경제정책(NEP)을 살펴봐야 한다. NEP는 빈곤을 줄이고, 부미푸트라(말레이계와 원주민)의 경제 참여를 늘려 소유 구조를 재편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NEP는 엄청난 정치적 변화를 가져왔다. 소유 구조, 교육 기회, 공직 진출 패턴을 바꿨다. 깊게 분열된 사회에서 정치 안정을 다지는 핵심 요소였다.

 

하지만 이는 장기적인 경제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계급 형성과 국가-자본 관계를 재편하기도 했다.

 

정부는 주식, 인허가, 공공 계약, 대출에 특혜를 제공하며 부미푸트라 자본가의 부상을 지원했다. 국영 기업들은 자산을 재분배하고 정치적 우호 세력에게 기회를 몰아줬다.

 

정치적 관점에서 이 프로젝트는 필수였다. 하지만 경제 발전 관점에서 그 효과는 모호했다.

 

자국 자본 상당 부분은 건설, 부동산, 금융, 정부 조달 등 규제 권한과 밀접하게 연관된 부문에 축적됐다. 이들 분야는 막대한 부와 지대를 창출했지만, 기술 고도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재분배 자체를 반대하는 주장이 아니다.

 

한국과 대만 역시 국가의 강력한 개입과 재분배를 겪었다. 결정적 차이는 재분배가 경제 개발 연합 내에 어떻게 자리 잡았느냐에 있다.

 

한국의 대기업 지원은 수출 성과와 기술 고도화가 조건이었다. 국가와 기업 관계는 수직적이고 강압적이었다.

 

반면 말레이시아의 국가-기업 관계는 타협적이고 분배적이었다. 정치 안정을 위해 민족 간 대표성 균형을 맞추고 연립 정치를 유지해야 했다. 정부가 자본을 통제하려는 역량이나 의지 자체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상업적으로는 성공했으나, 기술적 위험을 감수하려는 의지는 약한 자국 자본가 계급이 형성됐다.

 

동시에 제조업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역동적인 전자 산업은 여전히 외국 기업이 장악했다. 이 분야에서 국내 자본은 변방에 머물렀다.

 

결국 이중 구조가 고착화됐다. 최첨단 분야는 외국 자본이 장악한 반면, 자국 자본은 기술 집약도가 낮은 활동에 집중됐다.

 

이런 구조로는 국가 차원 산업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없었다. 재분배는 소유 구조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산업 자본가를 키워내지는 못했다.

 

◇학습 없는 전자 산업

 

말레이시아 전자 산업은 국가 발전 모델의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다.

 

1970년대 이후 말레이시아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및 전자 부품 수출국으로 성장했다. 특히 페낭은 글로벌 반도체 생산 핵심 거점이 됐다. 다국적 기업들은 대규모 공장을 세우고 수만 명을 고용했다.

 

기존 잣대로 보면 첨단 기술 산업화의 성공 사례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부 구조를 들여다보면 현실은 다르다.

 

반도체 생산은 수직적 구조로 이뤄진다.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부문은 집적 회로 설계와 첨단 웨이퍼 제조다. 이 과정에는 막대한 자본 투자와 최첨단 연구개발(R&D)이 요구된다.

 

말레이시아는 조립, 테스트, 패키징에 압도적으로 집중했다. 이 과정은 지역 간 이동이 쉽다. 설계나 첨단 제조에 비해 부가가치도 낮고 원가 경쟁에 취약하다.

 

이런 입지는 말레이시아의 학습 궤적을 규정했다.

 

엔지니어와 기술자들은 공정 최적화, 품질 관리 등 운영 기술은 확보했다. 하지만 칩 설계나 핵심 지식재산권 통제력은 쥐지 못했다.

 

다국적 기업은 이 구조를 철저히 관리했다. 핵심 R&D는 본사에만 집중시켰다. 해외 자회사에는 특정 생산 과제만 할당했다.

 

말레이시아는 공공 연구소 설립, 교육 확대 등으로 국내 역량을 키우려 했다. 이런 노력은 점진적 개선을 가져왔다.

 

하지만 독자적인 반도체 설계 산업을 일구지는 못했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자국 전자 기업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여기서도 한국과의 대비는 극명하다.

 

한국 기업들도 저부가 조립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정부 주도의 금융 지원과 수출 규율에 등 떠밀려 설계를 내재화하고 자체 브랜드로 경쟁해야 했다.

 

반면 말레이시아 기업들은 한국과 같은 압박도, 그러한 제도적 환경도 마주하지 않았다.

 

외국 자본이 장악한 구조 속에서 고위험 기술 투자를 단행할 동기도 역량도 부족했다.

 

결과는 의존적 학습이었다. 말레이시아는 생산 기지를 유치하는 법은 배웠다. 하지만 생산을 통제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차이는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임금이 오르고 비용 우위가 사라지자 말레이시아는 혁신 성장으로 넘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산업화는 이뤄졌다. 하지만 기술 주권은 확보하지 못했다.

 

◇두 개의 국가-계급 프로젝트

 

말레이시아와 한국의 궤적이 엇갈린 것은 단순한 정책 차이가 아니다. 완전히 다른 '국가-계급 프로젝트'의 결과다.

 

한국은 자국 산업 중심의 개발 연합을 구축했다. 정부는 금융을 통제해 자본에 규율을 세웠다. 대출은 기술 고도화를 조건으로 이뤄졌다. 기업들은 R&D에 투자하고 세계 무대에서 경쟁해야 했다.

 

말레이시아는 정치 안정을 우선시한 분배 연합을 조직했다. 정부는 외국인 투자를 촉진했지만 체계적인 산업 고도화를 강제할 수단이 없었다.

 

한국은 기술 경쟁력을 갖춘 산업 자본가를 양성했다. 말레이시아는 지대 추구형 자본가를 키워냈다.

 

이런 구조적 차이는 전혀 다른 자본주의를 낳았다.

 

한국의 자본주의는 글로벌 시장에 뿌리내린 자국 기업 중심으로 형성됐다. 반면 말레이시아 자본주의는 수출 기지형 제조업과 건설, 금융 등 내수 기반 산업에 머물렀다.

 

이 격차는 우연이 아니다. 구조적으로 빚어진 결과다.

 

◇구조적 해석

 

흔히 말레이시아를 혁신 부족 사례로 평가한다. 하지만 구조적 관점에서 보면 글로벌 자본주의 아래 수출 기지형 산업화가 낳은 필연적 결과다.

 

말레이시아는 자국 모델이 약속한 바를 이뤄냈다. 지속적인 성장과 수출을 달성했다. 단지 독자적인 산업 자본주의를 이루지 못했을 뿐이다.

 

세 가지 구조적 특징이 이를 설명한다.

 

-첫째, 외국 통제 생산에 깊이 의존한 탓에 초기부터 자국 역량 축적이 제한됐다. 지식은 단절됐다.

-둘째, 산업 정책에 통제력이 부족했다. 정부는 고도화를 장려했지만 강제하지는 못했다.

-셋째, 부의 재분배가 낳은 계급 구조는 기술 혁신을 주도할 자본가를 배출하지 못했다.

 

오늘날의 경제적 종속은 첨단 제조업 및 막대한 수출 규모와도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 기술과 금융에 대한 수직적 지배구조를 통해 종속은 모습을 드러낸다.

 

말레이시아는 선진국 추격을 구조적으로 제약하는 시스템 속에서 산업화를 추진했다. 결과는 정책 실패가 아니라 의존적 성장이었다.

 

말레이시아 사례는 동남아 전역에 큰 시사점을 던진다. 수출 주도 성장이 곧바로 선진국 도약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고부가가치 부문 주도권 없이 외형적인 산업 확장만 이뤄질 수 있다.

 

산업 정책은 단순히 제도를 도입하는 문제가 아니다. 자본을 통제하는 국가 역량, 기술을 흡수할 자국 기업 존재 여부에 달렸다.

 

동남아 곳곳에서 비슷한 흐름이 감지된다.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도 말레이시아와 엇비슷한 경로를 밟았다. 베트남 역시 비슷한 제약에 직면했다.

 

이들 경제가 마주한 진짜 위협은 탈산업화가 아니다. 혁신 없는 산업화다.

 

◇결론

 

말레이시아가 한국처럼 되지 못한 이유는 독자적인 산업 자본주의에 필요한 제도적 토대를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장은 지었지만, 산업 권력을 얻지는 못했다. 공장도, 수출도, 성장도 모두 진짜였다.

 

하지만 기술과 금융 통제권은 외부에 있었다. 자국 자본은 기술 역동성이 떨어지는 부문에만 축적됐다. 산업 정책은 존재했지만, 기업을 글로벌 강자로 탈바꿈시킬 규율이 없었다.

 

여기서 얻는 교훈은 수출 주도형 산업화가 실패한다는 것이 아니다.

 

권력 없는 산업화로는 결코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점이다.

 

 

*피에트로 마시나는 동남아 전문가로 나폴리동양학대에서 아시아 역사를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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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시간 26.05.31 new ㄷㄱ
  • 작성시간 00:14 new 말레이시아
  • 작성시간 00:19 new ㄷㄱ
  • 작성시간 2시간 59분 전 new 말레이시앞ㄷㄱ
  • 작성시간 2시간 31분 전 new 흥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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