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8월 종파 사건
2. 프룬제 군사대학 유학파 반란 모의 사건
3. 6군단 사건
1. 8월 종파사건
김일성의 갑산파가 집권을 하던 시기
이당시는 1인 치하라기 보다는 4극체제의 파벌이
권력을 나눈 상태였다.
김일성의 갑산파, 김두봉의 연안파, 허가이의 소련파
그리고 월북한 박헌영이 과두로 있던 남로당계였다.
이런 상황에서 1956년 해외일정으로 김일성이
평양을 비운 사이 연안파와 소련파는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김일성을 강도높게 비판한다.이것이 1단계였고
2단계는 주석에서 끌어내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내의 김일성의 갑산파 위원들의 강한 반발로
시간을 벌어준 사이 사태를 전달받은 김일성은
즉시 귀국하여 당을 장악후 갑산파를 제외한 3개 파벌을
실제 있던 사안, 김일성이 이건을 기화로
이들을 반동분자(정확히는 반당종파분자)로 결론 내고
당에서 출당조치 한다.
특히 한국전쟁에서 남한을 완전히 점령하지 못한 것을 두고
책임소재를 가리며 만나기만 하면 싸우던 박헌영을
숙청하면서 김일성 1극 체제가 완성되는 사건이다
(사실 남침에 대한 책임 관련 연구자료는 두 인물이
경쟁하다시피 추진 한 것이므로
서로 손가락질 하는 것은 코미디다)
이사건으로 대대적인 사상검증에 들어간 당 중앙위원회는
김일성을 제외한 실력자, 각 파벌의 과두, 그 측근들을
1956년 12월 모두 숙청하면서 사건이 마무리 된다.
2. 소련 프룬제 군사대학 유학파 반란 모의
북한은 지속적으로 소련과 군사 기술, 전략 등을 교류하며
소련 군사대학, 연구소에 장교들을 유학 보낸다
⬆️⬆️⬆️과거 프룬제 군사대학교 /
현 러시아 연방군 지휘참모대학교⬆️⬆️⬆️
1986년부터 1989/1990년 동유럽 쿠데타
소련 붕괴로 이어지던 시기 모스크바에 있는
프룬제, 쥐꼬브, 워러쉴러브 군사대학에 유학 가있던
북한 장교들을 불러들인다.
소련의 정세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파악한 김정일이
귀국 명령을 내린 것
그러나 유학 가있던 장교, 중앙군사위원회 위원들은
사회주의에 대한 의구심과 1극 독재의
생리에 대해 불만까지 생긴 상황이었다.
이들은 북으로 귀국후에도 사조직을 결성하여
자주 회합했고 급기야 김씨 일가 독재 정부를 전복 후
서방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모델로 하는 국가 건설에
의견을 통일 시킨다
여기서 연구자료와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뉘는데
어느정도로 구체적인 단계까지
모의 했는지 정확하지 않다.
어느 연구 결과로는 유학동기들간 독재 타도 필요성과
김씨일가 전복 가능성을
회의 하는 상황에서 발각 됐다고
보는 의견과
곧 예정에 있던 1992년 열병식에서 전차에 실탄을 장전 후
주석단이 가시권에 들어왔을때
주석단 자체를 날려버리자는;;
의견으로 모아진 상태였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이역시 인민무력부 보위국
(현 보위사령부)에 발각 되어
반란가담자가 얼마나 많았는지
5년에 걸쳐 총살이 집행된다.
발각된 당일에만 80여명의 고위급 장교가 체포 후
총살 됐다고 전해진다
3. 6군단 외환 및 반란 모의 사건
함경북도 북한의 최북단을 거점으로 방어,
예비전력 충원을 통해
남으로 진격하는 부대였던
6군단 전체가 반란을 모의한 사건이다.
반란이 발각된후 군단 해체, 개편으로 현재는 9군단이다
6군단은 지리 특성상 경제난이 가장 심했고
부대 보급, 운영을
평양에서 관리할 능력이 없었던(지금도 없다)
당시 고난의 행군까지 겹치며 군단 내 아사자가 속출하며
더욱 김정일에게 반감이 커지게 된다.
당 중앙으로부터 지원이 없었던 반면
국경지역에 위치한 당시 6군단은 당이 주관하던
외화벌이 외에 스스로 외화벌이에 나선다
물론 이과정에서 군단 내부엔 김씨일가의 사회주의에 대해
의구심 역시 커지며 반란을 모의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 대한민국군과 미군이 등장하는데
6군단 홀로 평양방어사령부,
각 지역에 자리한 타 군단을 상대하기
부담스러웠던 6군단 장교들은
한국군과 미군이 6군단 후미를 받쳐주면
본인들은 바로 평양으로 기습하여 평양방어사령부가
태세를 취하기 전에 김정일을 참수하는 것을 작전으로
세웠다고 알려진다
하지만 이 사건 역시 본격적으로 시도 되기전에
인민보위국에 발각 된다
더욱 주목할점은 6군단장은 해당 반란 모의를 몰랐다
6군단장 김영춘이 김정일과 친인척 관계였기 때문에
군단장 이하 장교들이 함구 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보위국에 발각 - 군단장에 통보 후
관련 있건 없건 군단 내 장교 40명 즉결처형,
가족(사돈의 6촌까지)들이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된다.
현재 함경북도를 관할하는 군단은 9군단으로 편제가
변경 되었다.
특히 이사건이 시사하는 바가 큰데
김씨일가의 초상화를 닦고 또 닦는 북한 인민들이
과연 다른 마음을 먹을 여지가 전혀 없겠는가에 대한 질문에
상황만 주어지면 북한에도 아랍에 불었던 봄기운이
얼마든지 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죽순테타 작성시간 26.06.11 ㄷㄱ
-
작성자프라우드무어 작성시간 26.06.11 그래서 실제로 북한의 군 체계는 국가를 방위하는 개념이 아니라, 쿠데타를 막는 것에 집중해 있음
게다가 서로가 서로를 밀고하도록 치밀하게 체계를 짜놔서 어떻게든 반란이 못일어나게 막고 있음
저게 나라냐.... -
작성자미르별 작성시간 26.06.11 와 북한도 반란이 있었구나....
그래서 자기 권력 공고히 하려는 몸부림이 보이는 거구나 -
답댓글 작성자엔탈피 작성시간 26.06.11 지금도 몇년전에 반체제세력 적발 사건 있었고 그 세력들이 북한 내외로 활동중이라고도 함
-
답댓글 작성자미르별 작성시간 26.06.11 엔탈피 헐 생각보다 많군여 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