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한민국 국기 태극기는 흰 바탕에 가운데 태극 원형과
근대까지 사용된 8괘가 아닌 4괘를 그려넣늘다
4괘는 건(하늘) 곤(땅) 강(물) 리(불)을 상징한다
대외적으로 사용된 것은 고종19년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인 것으로 알려진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은 서양과 맺은 최초의 조약으로
현 한미동맹의 시초격이다.
양국간의 우호적 외교관계 정립
양국의 영사관 설치
각 국민의 서로간의 위법행위에 대한 처벌
관세 규정
아편 등 마약 관리 규정
등
실은 태극기의 시초에 대한 논박은 오래된 논쟁거리다.
최초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조미조약에서
청나라가 조선의 어두웠던 외교관계를 돕고자 했고
배석했던 청나라 외교관 마젠중이 청나라 국기를
모방한 국기를 사용하라며 제안(강요)한 청색 바탕에
용을 그려 넣으라는 제안이 고종에게 보고되자
고종은 이를 크게 분개하며 청나라 국기를 따르지 말고
사각형의 옥색 바탕에 태극도를 적색, 청색으로 그리고,
기의 네 귀퉁이에 동서남북의 괘를 붙여서
조선의 국기로 정한다는 명령을 하교하였다
라고 전해진다.
고종이 직접 태극기 제작에 관여한 구체적인 기록도
박영효의 일기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고종은 군주를 상징하는 붉은색, 신하를 상징하는 파란색,
백성을 상징하는 흰색 등의 색 배치를 제안했다.
그러나
김홍집은 그 도안이 일장기와 비슷함을 지적하면서,
주변에 조선 8도를 상징하는 팔괘를
추가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물론 고종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태극과 8괘가 그려진것은 아니다
태극 문양은 6세기 백제에서부터 사용되었고
조선 왕실을 상징하는 어기로
태극과 8괘가 사용되어 왔다
1882년 박영효가 일본에 3차 수신사로 파견 가서
사용한 태극기가 공식적인 국기로 사용되며
널리 알려진 국기 형태가 아래의 태극기다
사실 이당시에도 괘는 8개였으나 일본으로 가는 배안에서
배에 달아야 하는 국기를 본 영국인 선장이
8괘는 너무 복잡하니 4괘로 줄이는 것을 건의하였고
고종역시 8괘보다 4괘를 지지하면서 굳어진것으로 본다
1883년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조선 외교부)의 요청에 따라
조선 왕실의 인가로 태극기가 최종 공포된다.
그러나 왕실에서 발표한 이후에도 독립문의 태극기와
민가에서 쓰인 태극기,
정부에서 쓰인 태극기가 통일되진 않았다
북한과 태극기
북한은 해방 후 한동안 북한기를 태극기로 사용했다
이후 노동당 중심 단독정부 수립에
남한과 다른 국기 필요성이 대두되자
소련이 중재하에 인공기가 만들여진다.
현 인공기는 스탈린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간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결국 1948년 태극기를 하기하고 인공기를 공식지정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대한민국 주도 통일 국가가 건립 되면
인공기는 폐기 되고 태극기가 공식 국기가 될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