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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이 절대 한국·일본이 될 수 없는 이유".jpg

작성자로돈타|작성시간26.06.22|조회수51,776 목록 댓글 17

https://www.fmkorea.com/9985262357

 

 

 

https://hiddenrules.substack.com/p/why-thailand-has-toyota-plants-but

 

 

<태국에는 왜 도요타 공장은 있는데 삼성은 없을까?>

 

철옹성 같은 정부·재벌·군부의 3각 기득권 동맹

한국의 혁신, 일본의 꼼꼼함은 '그림의 떡'

 

-스티븐 브라이언 개발 경제 전문가

 

태국은 1960년부터 1997년까지 연평균 7%가 넘는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어갔다. 한 세대 만에 농업 중심 경제를 제조업 수출국으로 탈바꿈시킨 엄청난 성과였다. 하지만 태국이 거둔 기적 뒤에는 어떤 진짜 목표가 숨어 있었을까. 지배 세력이 노렸던 진짜 의도는 무엇이었으며, 왜 태국의 성장은 지금 같은 독특한 기형적 모습을 띠게 됐을까.

 

1997년 7월 2일, 태국 바트화 가치가 폭락하며 변동환율제가 도입됐다. 불과 3개월 만에 태국 금융회사 58개 중 56개가 문을 닫았고 부실채권 비율은 무려 47.7%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이 아수라장 속에서도 도요타 공장은 멈추지 않았다.

 

혼다, 시게이트, 캐논도 마찬가지였다. 자동차와 전자제품 공장들은 일본 본사 이사회 계획에 따라 묵묵히 돌아갔다. 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이 공장지대의 수출량은 오히려 늘었고, 태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자동차 순수출국이 됐다.

 

당시 태국 안에서는 두 개의 경제 엔진이 동시에 돌아가고 있었다. 하나는 빌려온 달러로 부동산 투기를 벌이던 거품 경제였고, 다른 하나는 도요타의 엄격한 기술 기준 아래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은 제조업 경제였다. 1997년 위기는 이 균열을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1980년대 후반부터 이미 깊게 파여 있던 틈을 보여줬을 뿐이다.

 

많은 전문가는 태국을 '미완성의 개발 국가'라고 부른다. 한국처럼 강력한 경제 성장을 추진하려 했으나 정부 규제와 감독이 너무 허술해 실패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는 오해다. 그들이 말하는 '조건'이란 정부가 억지로 당기는 손잡이가 아니다. 기업이 통과하지 못하면 지원을 끊어버리는 엄격한 '실적 기준'이다. 이 기준은 정부가 직접 만들 수도 있지만, 치열한 야생 시장에서 경쟁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사실 태국은 실력이 부족해 실패한 국가가 아니다. 애초에 산업 구조를 완전히 개조하겠다는 장기적 목표가 없었다. 지배 세력의 합의는 그저 겉보기 좋은 성장과 품목 다변화에 묶여 있었다. 높은 성장률 덕분에 권력의 정당성을 얻었고, 진짜 구조 개혁을 가로막는 기득권 장벽만 더 단단해졌기 때문이다.

 

◇성장률이 숨기는 것

 

1960년부터 1996년까지 태국의 실질 1인당 소득은 6배 넘게 뛰었다. 하지만 이 눈부신 기록만 보고 태국 정부가 경제를 아주 잘 이끌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운 좋게 찾아온 외부 호재들을 빼고 나면, 태국 자체의 실력으로 만들어낸 진짜 성장은 3%~4%에 불과했다. 이 초라한 실력 위에 세 가지 외부 요인이 차례로 찾아와 성장을 엄청나게 부풀려 주었을 뿐이다.

 

-첫 번째 요인은 냉전 시기 미국이 쏟아부은 군사 자금이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이 태국에 쓴 군사비는 태국 국민총생산(GNP)의 4%에 달했다. 이 막대한 달러 덕분에 태국은 방콕의 서비스업 호황을 누렸고, 일본 기업의 초기 투자를 이끌어냈으며, 미군이 철수한 후에도 수출 물류에 쓰일 도로와 비행장 인프라를 얻었다.

 

-두 번째 요인은 1985년 플라자 합의였다. 엔화 가치가 50% 넘게 폭등하자, 일본 제조업체들은 생산 비용을 아끼기 위해 태국으로 대거 몰려들었다. 태국에 들어오는 전체 외국인 투자 중 일본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33%에서 69%로 수직 상승했다.

 

이 투자는 태국이 1984년 해둔 화폐 평가절하, 동부해안 산업단지 개발, 투자청(BOI)의 경험이라는 그릇 덕분에 연평균 8.6%라는 놀라운 성장을 기록했다. 하지만 남이 쏜 파도를 잘 받아내는 것과 스스로 파도를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성장의 파도 자체는 도쿄에서 밀려온 것이었다.

 

-세 번째 요인은 해외에서 빌려온 값싼 달러였다. 1993년 태국 정부가 금융 시장을 개방하자, 은행들은 단기 자금을 마음껏 빌려와 부동산과 주식 투기판에 대출해 주기 시작했다. 1993년부터 1996년 사이에 무려 500억 달러 (75조7500억원)의 해외 투기 자금이 유입됐고, 외채는 1990년 290억 달러 (43조9350억원)에서 1996년 말 900억 달러 (136조3500억원)로 세 배 넘게 늘었다. 이는 일본, 한국, 대만이 자국 기업이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금융 시장 개방을 꾹 참았던 것과 정반대의 선택이었다.

 

이 세 번째 요인은 앞선 호재들과 달리 산더미 같은 빚과 부동산 거품만 남기며 파멸적인 결과를 불러왔다. 1993년 밀물처럼 밀려들었던 해외 돈은 1997년에 한꺼번에 빠져나갔고, 태국 경제를 떠받쳐 줄 다음 호재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재미있는 점은 이 엄청난 호황기를 이끌었던 태국 정부들이 역대 가장 부패하고 무능했다는 사실이다. 1988년 출범한 차티차이 정부는 장관들이 대놓고 뒷돈을 챙겨 '뷔페 내각'이라는 조롱을 받았다. 그런데도 성장률은 매년 9%~10%를 찍었다. 정부가 잘해서가 아니라 외부 요인이 가만히 서 있는 태국 경제를 알아서 밀어주었기 때문이다.

 

결국 성장률 숫자는 정부의 진짜 정책 능력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진짜 실체를 보려면 지배 세력들이 진짜로 무엇을 원했고, 그것을 경제 현장으로 전달하는 통치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지배 연합이 대가를 치르고자 했던 것

 

정부가 비용을 감당하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진짜 목표는 무엇일까. 태국의 지배 세력은 나라 경제를 개혁하기 위해 가장 먼저 매를 들어야 할 당사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1957년 독재자 사릿 타나라트가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후, 태국 정치는 화교 재벌 가문들과 군부·관료 집단이 동업하는 구조로 굳어졌다. 경제 장관들은 정치 자금을 대는 재벌 가문의 사업을 승인해 줬고, 군부 장성들은 대기업 지분을 보장받았다. 거래의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한통속이었기에, 그 누구도 기업에 엄격한 실적 기준을 요구할 수 없었다.

 

이들이 추구한 유일한 목표는 충분한 성장을 담보로 한 '안정'뿐이었다. 사릿은 이를 군부 독재 정당화를 위한 핑계로서의 개발인 '파타나(phatthana)'라고 불렀다. 실력을 키우기 위한 성장이 아니라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한 성장이었다.

 

국내 기업의 체질을 개선하려면 재벌 가문들에 뼈를 깎는 비용을 요구해야 했고 기득권의 혜택을 포기시켜야 했으나, 온실 속의 그 어떤 기업도 그런 힘든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농민들의 삶도 외면받았다. 일본, 한국, 대만이 실시했던 토지 개혁은 태국에서 시도조차 되지 않았다. 토지 개혁을 하면 정경유착 동맹의 버팀목이 되는 대형 농업 대기업의 독점 구조가 무너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성장을 최소한이라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보인 나름의 자제력은 있었다.

 

-첫 번째는 군부 파벌들이 서로를 견제하며 지켜낸 선이었다. 어떤 독점 세력도 라이벌들의 감시를 피할 수 없었기에 젖줄인 생산 기반을 완전히 파괴할 만큼 약탈할 수는 없었다. 썩은 정치인들조차 관세 보호 혜택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 공장은 멈추지 않도록 관리했다.

 

-두 번째는 태국 중앙은행의 엄격한 돈 관리를 받아들인 점이다. 이는 수많은 쿠데타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자산 가치를 지키기 위해 화폐 가치가 안정되어야 했던 금융 재벌과 쌀 수출 대기업들이 지배 동맹의 핵심 주주였기 때문이다. 정권이 돈을 마구 찍어내서 나랏돈을 거덜 내는 짓을 자제하는 것은 이들의 지지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이었다.

 

독재자 사릿은 6년 동안 통치하며 어마어마한 부를 쌓았다. 약 28억 바트 (1299억2000만원)의 개인 재산, 자동차 50대, 방콕 빌라 30채, 그리고 국가 예산에서 빼돌린 돈 1780만 달러 (269억6700만원)가 확인됐다. 이 상상 초월의 부패는 시스템의 오류가 아니라 정권을 유지하는 데 드는 '기본 비용'으로 묵인됐다. 지배 동맹은 이 정도 부패를 허용하는 대가로 연평균 7% 성장을 유도했고, 서로 눈치 보며 나라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선만은 넘지 않도록 통제했다.

 

1984년 바트화 논쟁은 이 동맹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 어떤 비용까지 치렀는지 보여준다. 프렘 총리가 바트화 가치를 17% 낮추자, 하루아침에 군부의 F-16 전투기 수입 예산은 5분의 1이나 깎였다. 분노한 아힉 육군참모총장이 군 방송에 나와 총리를 정면 공격했으나 프렘 총리는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군부는 무릎을 꿇었다.

 

이 역사적 결단 모두 나라의 기초 실력을 키우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단지 돈은 적당히 나눠 먹되 판 전체를 깨지는 말자는 최소한의 묵계에 불과했다. 진짜 중요한 대가, 즉 국내 기업들의 체질을 바꾸는 매서운 비용은 끝내 치르지 않았다.

 

◇정부가 기업에 요구한 것

 

태국 정부는 혜택을 대가로 기업에 요구한 것이 거의 없었고, 그나마 했던 일도 얼마 가지 않아 흐지부지됐다.

 

혜택을 주는 핵심 기관이었던 태국 투자청(BOI)은 전형적인 방임주의로 일관했다. 보조금이나 세금 혜택이 결실을 맺으려면 실적 목표를 주고 감시해야 하지만, BOI는 입구에서 계획서 도장만 찍어줄 뿐 실제로 물건을 잘 만드는지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무려 13년 동안 수백 개의 승인서를 발급했으나, 실적이 나쁘다고 해서 도중에 혜택을 빼앗긴 기업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유일한 예외는 자동차 산업의 '부품 국산화율' 검사였다. 부품 중 태국산 비율을 70%까지 검사받도록 한 엄격한 규칙이었다. 하지만 국내 기업의 실력은 전혀 자라나지 않았다. 정부가 '국산 부품을 얼마나 조립했는지(투입 요소)'만 따졌지, 그 부품을 만든 국내 업체들이 경쟁력을 갖췄는지는 검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후반 부실 조립 공장들이 퇴출당했을 때 이를 주도한 것 역시 정부의 채찍이 아니라, 거대 일본 기업들이 경쟁자들을 싹 쓸어버리려고 뒤에서 지지했던 수입 금지령이었다.

 

이런 방임형 구조 안에서 태국 국내 대기업들은 정부 보호막 뒤에 숨어 덩치만 키웠다.

 

반면 외국 기업들은 똑같은 조건에서도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다. 도요타, 혼다 같은 제조 대기업들은 태국 정부가 감히 요구하지 못했던 무기인 '본사의 칼날 같은 품질 관리 기준'을 가지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도요타는 태국 공무원의 단속을 기다릴 필요 없이, 자신들이 직접 현지 하청업체들에 기술을 가르치고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가차 없이 계약을 끊었다. 엄격한 채찍은 태국 정부가 아니라 일본 본사로부터 흘러들어왔다.

 

결국 똑같은 혜택 아래에서 외국 대기업은 세계적 수출 기지를 만들었고, 태국 국내 대기업은 온실 속에서 가짜 덩치만 키웠다.

 

말레이시아와 비교해 보면 차이가 명확하다. 말레이시아는 외국 기업이 세금 감면 혜택을 받으려면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수출 실적 기준을 입구에서부터 걸었다. 말레이시아는 똑똑한 이들을 골라내서 들였고 태국은 문만 열어두고 구경만 했다. 말레이시아의 경제 구조는 철저한 기획의 결과물이었고, 태국은 어떤 착한 대기업이 우연히 들어왔는가에 의존했다.

 

◇스스로 강화되는 고리

 

왜 이토록 엉성한 구조가 수십 년 동안 무너지지 않고 버텼을까. 이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달콤한 성장의 과실 자체가 바로 이 구조를 유지하는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성장은 정경유착 동맹의 밥그릇을 채워주고 집권의 정당성을 보장해 주었다. 권력 독점자들에게 외부 견제가 없으니 시스템은 경직됐다. 시스템이 편애하는 대기업들이 덩치를 키울수록 정부에 미치는 영향력은 더 커졌고, 대기업을 혼낼 수 있는 개혁 기준은 점점 더 멀어졌다. 정경유착이 키워낸 괴물이 결국 그 정경유착을 지키는 든든한 방패막이가 된 것이다.

 

안락한 성장은 '함정이 된 성공'이었다. 한국, 대만 같은 국가들은 안보 위협, 자원 부족, 민중 폭동의 공포가 지배층을 몰아붙였기에 살기 위해 뼈를 깎는 개혁을 해야 했다. 반면 태국 지배층은 꿀물이 뚝뚝 떨어지는 온실 속에 있었다. 외부 요인들이 압박을 완화해 주는 탈출구 역할을 톡톡히 해줬기에 개혁의 정산 시간은 뒤로 미뤄졌다.

 

1997년의 금융위기조차 이 고리를 끊지 못했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이 요구한 칼날은 투기 자금으로 부풀어 올랐던 금융회사들의 목을 치는 데만 전념했고, 진짜 문제가 많았던 제조업 현장의 껍데기 지원책과 장벽은 그대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위기가 지나간 뒤 성장의 불꽃은 차갑게 식었다. 태국은 2011년 이후 연평균 2.6%라는 초라한 성장에 머물러 있다. 1980년부터 1995년까지 태국 성장의 고작 1/6만이 진짜 실력 향상(생산성 향상) 덕분이었고, 나머지는 그저 값싼 노동력과 자본을 갈아 넣은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투입 재료가 바닥나자 엔진은 그대로 멈춰 섰다.

 

태국의 정책 방향은 딱 한 단계의 생산성 고개, 즉 외국 공장을 유치해 남의 앞선 기술을 빌려 쓰는 것까지만 가능한 엔진이었다. 태국 기업 스스로 독자적인 원천 기술을 소유하는 진짜 고개는 끝내 넘지 못했다. 첫 번째 고개를 너무나 쉽게 넘었기에 그 달콤함에 취해 진짜 도전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허용적 활성화

 

이 묘한 방임 구조를 학계에서는 '허용적 활성화(Permissive enabling)'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성장률은 높이고 싶고 멋진 공장도 갖고 싶지만, 내 자식 같은 기업들을 가차 없이 혼내는 피눈물 나는 비용은 치르지 않겠다는 비겁한 태도다.

 

태국은 개발 국가의 제도와 부처를 다 갖고 있었지만, 기술 개발에 실패한 기업에 내리는 '진짜 불이익(회초리)'만은 쏙 빼놓았다.

 

한국은 정부가 직접 몽둥이를 들고 호랑이 선생님 역할을 해 채찍의 매서움을 보여주었다. 반대로 폴란드, 에스토니아 같은 자유 시장 국가들은 문을 완전히 열어젖혀 치열한 글로벌 무한 경쟁에 노출시켰고 실력 없는 기업들을 시장의 힘으로 퇴출시켰다. 태국은 이 매서운 채찍을 둘 다 피했다.

 

한국에서 기업에 준 혜택은 공짜가 아니었다. 철저하게 수출 성적표라는 객관적인 기준을 통해 성과를 검증했고, 경영을 엉망으로 해서 망해가는 대기업은 살려주지 않았다. 한때 현대자동차보다 훨씬 크고 잘 나갔던 신진자동차가 파산 위기에 몰렸을 때, 한국 정부는 신진을 구제해 주는 대신 부도 처리해 공장을 대우에 넘겨버렸다. 다른 나라가 한국으로부터 이식해야 할 것은 정권 형태가 아니라 '실력을 키우지 못해 시험에 떨어진 기업은 가차 없이 문을 닫는다'는 서슬 퍼런 규칙이다.

 

태국 역사상 가장 대단했다는 1984년 프렘 총리의 바트화 평가절하 결단을 한국의 이 칼날 같은 룰과 비교해 보자. 그는 목숨을 건 싸움에서 이긴 뒤 얻은 엄청난 에너지를 개별 기업의 체질을 바꾸는 개혁에 쓰지 않고, 그저 거시 경제의 둥지만 안전하게 지키는 데 소모해 버렸다.

 

태국은 자유 시장 모델을 따르지도 않았다. 국산 차를 보호하겠다며 수입 차에 150%의 폭탄 관세를 매겼고, 국내 대기업들은 빽을 믿고 돈을 끌어와서 덩치를 부풀리는 밥그릇 싸움만 벌였다. 1987년 무렵에는 단 4개의 재벌 가문이 이끄는 은행들이 태국 시중은행 자산의 54%를 독식했다.

 

실패한 기업의 목을 쳐본 경험이 없다는 것, 그리고 개혁을 지속할 의지 자체가 없었다는 것. 이 두 가지 한계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태국은 대기업들을 달콤한 안주의 늪으로 밀어 넣었다. 이는 설계상의 실수가 아니라 지배 동맹의 끈끈한 정경유착 때문에 해결 불가능하도록 막혀 있던 원천적인 벽이었다.

 

◇CP 그룹

 

이 방임이 실제 기업 세계에서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태국 최대 재벌 CP 그룹의 사례를 보면 명확해진다. CP 그룹은 규제 없는 따뜻한 온실 안에서 성장한 살아있는 증인이다. 1921년 차이나타운의 작은 씨앗 가게에서 출발해 사료, 양계 산업을 장악한 뒤, 정부가 관세 장벽으로 막아둔 세븐일레븐 편의점 제국, 무선 통신 사업(True) 등 노다지 시장을 모두 먹어 치웠다. 오늘날 CP 그룹은 동남아를 호령하는 거대 공룡이 됐다.

 

CP 그룹은 100년 동안 제국을 키우면서도 삼성이 해낸 '독자적인 원천 엔지니어링 기술'을 단 한 개도 갖지 못했다. 아무런 실적 검증이 없는데 굳이 엄청난 돈이 들고 성공 여부도 불확실한 기술 개발에 돈을 태울 바보 같은 기업은 없기 때문이다. CP 그룹에 모험가적 배짱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다. 다만 시스템이 그 도전 정신을 기술 개발이 아닌 덩치 확장, 좋은 몫 선점, 그리고 군부 권력에 줄 대기라는 가장 편하고 합리적인 지름길로 향하게 유도했을 뿐이다.

 

정부가 왜 그렇게 기업에 질질 끌려다녔는지도 설명된다. 한국은 정부가 대기업보다 확실하게 우위에 서서 채찍을 휘둘렀다. 반면 태국은 재벌 가문과 군부 세력을 국가 권력의 안방에 모셔놓았다. 자기 식구 아닌 남의 자식만 제대로 규제할 수 있는 법이다. 돈줄을 쥔 대기업 주주들이 나라의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구조에서는 똑바로 하라고 호통을 칠 수 있는 진짜 지배자가 존재할 수 없다.

 

외국 기술 종속성도 여기서 싹텄다. 한국과 대만은 나라의 부(GDP) 중 무려 4~5%를 기술 개발(R&D)에 쏟아부으며 대부분 자국 대기업이 조달한다. 반면 태국은 역사적인 호황기를 다 보내고 2017년이 되어서야 R&D 투자가 겨우 1%를 턱걸이했다. 태국이 수출하는 컴퓨터와 전자제품 가치의 절반 가까이는 해외에서 만들어 붙인 가치이며, 자동차 부품 1등 하청업체 중 진짜 태국인이 주인인 회사는 고작 1/4에 불과하다. 원천 기술을 소유하기 위해 필요한 뼈아픈 비용을 치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값싼 이주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비정규직 노동 구조 역시 기술 혁신 없이도 쉽게 돈을 벌 수 있도록 만드는 비즈니스 모델에 국가의 껍데기 행정이 뒷문을 열어주며 보상한 결과물이다. 대기업, 정부, 혜택, 노동이라는 복잡한 가닥은 결국 '실력을 안 키워도 돈을 벌게 해주는 비겁한 동맹'이라는 하나의 몸통을 가리킨다.

 

◇정치적 시험대와 악순환을 깨뜨릴 조건

 

태국 시스템은 1997년에 금융 위기를 맞았고, 불과 몇 년 뒤에는 더 무서운 정치의 칼날을 맞았다.

 

2001년, 통신 재벌 탁신 친나왓은 시골 농민들을 위한 무상 의료와 대출을 무기로 신흥 자본가들과 대중을 묶은 거대한 선거 동맹을 만들어냈다. 기득권층이 투표소에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무적의 군대였다. 당황한 기득권층은 판사들과 총칼을 동원해 2006년과 2014년 두 차례 쿠데타로 탁신 세력을 짓밟았다.

 

하지만 탁신이 바꾼 것은 이 썩은 동맹이 '누구의 배를 채워주는가'였을 뿐, 정작 '기업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 무엇을 요구하는가'가 아니었다. 통신 제국의 황제가 스스로 총리가 되어 규제 기관의 목을 쥔 기이한 구조 아래에서, 이 혁명의 바람조차 시스템의 비겁한 룰만은 단 한 치도 바꾸지 못하고 그저 간판만 바꾸는 데 그쳤다.

 

탁신이 도입한 마을 지원금과 농촌 대출 같은 복지 조각은 기초 체력을 키울 '개혁 채찍' 없이 대기업에 예속된 농민들의 척박한 땅 위에 던져졌기에 따로 놀았다. 결국 나라 전체가 폭동과 쿠데타로 찢어지면서도 경제 체질 개선은 조금도 나아가지 못한 허무한 정치 막장극으로 막을 내렸다.

 

이 악순환의 괴물은 세 개의 방어막을 겹겹이 두르고 스스로를 보호한다.

 

-첫째, 시스템을 고치지 않을 때 달콤한 이득을 챙기는 기득권층에게 꿀물이 계속 흘러가도록 보장해 준다.

-둘째, 개혁의 채찍을 맞아야 할 재벌들이 채찍을 휘두르는 정부의 안방에 앉아 사법부와 군대를 동원해 규제 장치를 박살 낸다.

-셋째, 태국 사회가 정의하는 성공의 기준이 땀 흘려 기술을 개발하는 장인이 아니라 덩치를 불리고 정치 인맥을 쌓아 권력자가 되는 재벌 회장에 맞춰져 있다.

 

이 악순환의 사슬을 끊어버리려면 세 개의 방패가 동시에 산산조각 나야만 한다. 실력을 키우지 않는 대기업에 가차 없이 불이익을 주는 '채찍의 규칙', 썩은 기득권의 인맥으로도 가로막을 수 없는 독립적인 '정치적 법치', 그리고 내실과 원천 실력을 다지는 노력을 가치 있게 여기는 '사회의 가치관'이 정착되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이 기적처럼 동시에 실현되는 날, 이 슬픈 분석은 비로소 틀린 것으로 판명날 것이다.

 

지옥 같은 온실을 탈출하는 진짜 비법은 대기업 재벌에 종속되지 않은 '자립 농민과 독립 중소기업의 육성', 가혹한 글로벌 야생 경쟁으로 대기업을 혹독하게 담금질하는 '산업적 채찍', 그리고 제조 현장에 돈줄을 대주는 '애국적 금융 시스템' 세 가지 주춧돌 위에 세워진다.

 

이 비법을 실행하는 것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렵다. 진짜 룰을 바꾸고 뼈를 깎아야 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질 때쯤이면, 이미 기적을 만들 수 있는 기회의 창문은 영원히 닫혀버리기 때문이다. 골든타임을 붙잡아 기적을 만드는 힘은, 결국 지배 세력 간의 합의 구조, 행정의 말단 회로, 사회의 심장과도 같은 가치관, 그리고 외부의 거대한 번개가 기적처럼 결합할 때에만 가능하다.

 

 

*스티븐 브라이언은 영국, 중동, 아프리카의 정부 기관 및 개발·전략 분야에서 '레가툼 번영 지수(Legatum Prosperity Index)'를 이끌었다. 영국 사회보장자문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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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닉PC방 | 작성시간 26.06.22 new 그래도 중진국 정도는 되죠?
  • 답댓글 작성자로돈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2 new 중진국 정도는 되는데 문제는 이제 출산율이 올해기준 한국과 비슷하거나 낮을 예정..
  • 작성자몽테스큐 | 작성시간 26.06.22 new 얄라뽕따이
  • 작성자카피바라 | 작성시간 26.06.22 new 유튭으로 봤었는데 잘만들었던 내용이구내
  • 작성자발레바 | 작성시간 26.06.22 new ㄷ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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