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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의 꿈

5월, 봄 향기(1)

작성자gionex(12윤선호)|작성시간17.05.06|조회수47 목록 댓글 1

4월 월례고사 성적이 나왔다. 

3월과 거의 같은 성적이었다. 

내가 죽자 살자 공부에만 매달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알뜰하게 시간을 활용해서 공부를 했고, 

느낌으로도 이제는 공부가 좀 되는 것 같았기 때문에 내심 어느 정도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성적표를 가방에 구겨 넣으며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다. 

아직 내 공부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아서 그래. 5월 달 시험에서 보자고. 

그렇게 마음을 편하게 먹으려고 했지만 나는 여전히 스트레스성 위염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수시로 전해지는 동생의 편지는 나로 하여금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계속 가지게 하였고, 

그로 인해 위염은 더 심해져만 갔다. 

몸이 아픈 것과 비례해서 나의 마음도 점점 더 예민해져갔다. 

친구와의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를 입고 쉽게 화를 냈다.


정호는 내 그런 기분을 맞춰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하지만 나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정호는 3학년 첫 시험에서는 나보다 뒤였는데 4월이 되어서는 나보다 앞이었다. 

나는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5월에는 초파일과 어린이날, 두 번의 공휴일이 있었는데 3일 목요일과 5일 토요일이었다. 

말하자면 샌드위치 휴일이었는데, 

학교에서는 가운데 끼인 금요일에는 교육 효과가 떨어진다고 생각했는지 금요일에 봄 소풍을 가는 것으로 정해놓았다. 

우리는 그 전 날인 초파일에 학교에 모여 공부를 하다가 소풍 계획을 세우자며 정호의 하숙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서 우리는 미리 맞추어놓았던 티셔츠를 입어보았다. 

가슴에 이름표만한 크기로 ‘한심회’라는 붉은색 글자를 수놓은 파란색 긴 팔 박스 티였다. 

우리는 모두 같은 옷을 입고 킬킬거리며 동질감과 유대감을 만끽했다. 

우리는 소풍 갈 때 입는 교련복 안에 모두 같이 이 티셔츠를 입기로 했다. 

그리고 공식 소풍이 끝나면 교련복 상의를 벗고 우리만의 유니폼으로 바닷가에 가기로 했다. 

바닷가에서는 물론 소주도 한잔 하기로 했다. 


그런 계획들을 세우고 있는데 정호가 나를 보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야, 영빈이는 공부할 때하고는 완전히 딴 사람이네.”

사실 내 목소리가 평소보다 크긴 했다. 

그리고 또 말도 많긴 했다. 

그건 내가 초파일인 목요일부터 금, 토, 일 나흘 동안 공부와 경쟁에서 해방된다는 것 때문에 들떠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따뜻한 봄기운이 가득한 야외에 나가 쉬다 보면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또한 손닿을 곳에 두고도 만날 교실에 앉아서 바라보거나 정호의 하숙방에서만 바라보던 바다에 가까이 가서 

싱싱한 파도소리를 듣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아마 내가 평소보다 조금 흥분해 있었는지도 몰랐다.


정호는 어쩌면 평상시 숨죽은 파김치처럼 쳐져있던 내가 살아있는 것 같아 보기 좋아서 그랬을 수도 있다. 

아니,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그 말이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내 청각을 통과해 뇌에 전달된 정호의 말은 이런 것이었다.

“야, 영빈이 넌 공부할 때나 그렇게 열심히 해라. 성적도 나보다 떨어졌으면서.”


정말 섭섭했다. 

나하고 가장 친하다는 친구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나는 거의 눈물이 날 정도로 서운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야, 뭐라고? 내가 열심히 공부 안 했다고 나무라는 거냐? 그래, 너 잘났다. 

너는 우리랑 놀다가 우리가 다 집에 가고 나면 혼자 밤새 공부한다며? 

그래, 나는 집에 가면 그냥 잔다. 열심히 안 해서 미안하다. XX놈아.”

정호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반박했다.

“야,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너한테 무슨 말을 했다고 이러냐? 야야, 얘들아. 내가 영빈이한테 뭐 말실수했냐?”

정호는 다른 친구들을 돌아보며 구원을 요청했지만 

다른 친구들은 그저 당황한 표정으로 나와 정호를 번갈아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가방을 챙겨들고 일어섰다. 다른 친구들이 황급히 나를 붙잡았다.

“야야, 이렇게 가면 어떡해?”

나는 친구들의 힘에 못 이기는 척 주저앉을 수도 있었다. 

나는 이미 내가 너무 지나쳤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정호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정호가 나를 붙잡아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정호는 원망과 분노와 당황스러움이 범벅된 눈빛으로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는 친구들을 뿌리치고 정호의 하숙집을 나왔다.

 ***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침에 학교에 가면서 늦게 올 거라고 말씀드렸었는데 아마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같이 어딜 가신 것 같았다. 

부엌에 아무런 음식 재료도 없는 것으로 봐서는 저녁 시간까지도 돌아오실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내 방에 가서 공부를 하려고 책을 펼쳤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를 않았다. 

나를 보던 정호의 표정이 떠올랐다. 

나에 대한 분노와 정호에 대한 서운함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감정이 폭발할 것 같이 부풀어 올랐다. 

도저히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대충 옷을 챙겨 입고 서점으로 갔다. 

서점에는 종수 형이 있었다.


“내가 준 책은 읽어봤니?”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형이 물었다.

“네, 읽어는 봤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던데요....... 나중에 다시 읽어보려고요.......”

“그래,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 좀더 잘 알 수 있을 거야. 

그렇다고 그 책이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마. 

그 책은 너나 나 같은 청춘들이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니까....... 

그 책을 통해 너를 찾으면 되는 거야.”

형은 빙그레 웃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그 책에는 내가 너에게 주는 단 하나의 문장, 네가 평생을 가지고 가도 절대 손해 보지 않을 문장이 하나 있다. 

그게 뭔지 찾아봐라.”


형은 내가 온 김에 한 시간만 데이트를 하고 오겠다며 형수와 함께 서점을 나갔다. 

나는 한 시간 동안 읽을 만한 책을 찾다가 황동규 시집 ‘삼남에 내리는 눈’을 꺼냈다. 

시인의 상상력과 언어 구사력에 감탄하며 시를 읽고 있는데 서점 문이 열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바로 그 여학생이었다. 

내가 그토록 기다렸던 바로 그. 


내 심장은 갑자기 얼어붙은 듯 멈추어버렸다. 

그 여학생은 또 다른 여학생과 함께 서점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손에는 시집이 그대로 들려 있었다. 

그 여학생이 내 손에 들린 시집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작게 웃었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도무지 제어할 수가 없었다. 

내 심장 뛰는 소리를 그 여학생이 다 들을 것만 같았다. 

그러자 얼굴에서 열도 나기 시작했다. 

나는 황급히 다시 자리에 앉아 책을 보는 척 고개를 숙였다. 

시간이 지나도 얼굴의 열기가 사라지는 것 같지 않았다.


“이 책들 포장해주세요.”

그 여학생이었다. 

나는 뜬금없이 뭐랄까, 목소리가 참 따뜻하고 안정돼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 예.”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책들을 받아 포장을 하기 시작했다. 

제발 내 얼굴을 보지 말기를....... 

책을 포장하는 시간이 아득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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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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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gionex(12윤선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5.06 벌써 5월이 되었네요.
    이제 우리 영빈이가 사랑에 눈을 뜨게 되는 걸까요?^^

    선배님들, 후배님들,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5월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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