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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의 꿈

5월, 봄 향기(3)

작성자gionex(12윤선호)|작성시간17.05.20|조회수100 목록 댓글 1

해가 넘어갈 무렵 우리는 주섬주섬 가방을 챙겼다. 

점점 짙은 색으로 변해가는 바다를 보면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자니 

좀 전의 그 뻥 뚫린 가슴 속으로 무언가 아련한 한줄기 바람이 스쳐지나가는 것 같았다.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다가올 시간에 대한 두려움, 뭐 그런 것들이었는지 모르겠다. 

다들 그런 기분이었을까, 누군가가 다 같이 정호의 하숙방으로 가자고 말했고 

나머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했다.


우리가 정호의 하숙방에 들어가자 정호가 밖으로 나갔다가 한참 만에 비닐봉지와 사발 몇 개를 들고 들어왔다. 

술이었다.

“우리 인생에서 마지막 봄 소풍날인데 우리끼리 기념이라도 해야 되지 않겠냐?”

우리는 말없이 술을 따랐다. 

어릴 때 아버지 심부름으로 막걸리를 사오다 한 모금 맛보던 것 말고 제대로 술을 마시는 것은 처음이었다.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과 두려움이 교차하면서 입술이 바짝 마르고 손이 떨렸다. 

하지만 한 잔을 마시고, 그 뜨거운 느낌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 위에 안착을 하고, 

이어서 얼굴과 온몸이 따뜻해지면서 욕망도 두려움도 사라져버렸다. 

술을 몇 잔 더 마시자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는 정호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처음에는 작은 목소리로 낮게 부르기 시작했지만 

술이 몇 순배 더 돌고 기분이 더 좋아지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들 목청을 높여 소리를 질러댔다. 

한참을 놀고 있는데 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렸다. 

우리는 일순간 조용해졌고 정호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였다.

“하이고, 담배 연기 좀 봐. 

내 오늘만 특별히 봐줄 텐데 인석들아, 술 마시고 노는 건 좋지만 다른 방에서 공부하는 네 친구들, 후배들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좀 조용히 놀아. 알았지?”

우리는 노래를 멈추고 말없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우리 젊음이 이렇게 가는구나.”


호진이가 사발에 남은 술을 입에 털어 넣고 쓰게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하늘엔 조각 구름 무정한 세월이여.......(6)

정호가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숙연한 표정으로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꽃잎이 떨어지니 젊음도 곧 가겠지. 

머물 수 없는 시절, 시절, 시절들. 

루루루루 세월이 가네. 루루루루 젊음도 가네.(6)


“야, 나가자. 나가서 어디 가서 한잔 더 하자.”

노래를 부른 후 점점 가라앉는 기분을 추스르기 위해 내가 소리쳤다.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다들 말없이 주섬주섬 주변을 정리하고 일어섰다. 

우리는 뭐에 홀린 듯이 발길 가는대로 걸음을 옮겼다.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우리는 어느새 학교 앞 단골 분식집 앞에 이르렀다. 

불 꺼진 가게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봤지만 

우리들이 가끔 아지트로 사용하던 안채 골방엔 이미 한 무리의 녀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남수가 그들에게 잠시 아는 체 인사를 하느라 지체하는 동안 

먼저 밖으로 나온 우리는 서로만 멀뚱히 쳐다보며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 채 어두운 거리에 서있었다. 


그 때였다. 

커다란 그림자가 우리를 향해 빠르게 달려오며 소리쳤다.

“너희들 뭐야! 너희들 거기 기다려봐!”

소리가 들리는 곳을 쳐다보니 한 사람이 달려오고 있었는데, 

어두워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그 목소리나 몸짓으로 봐서 우리 학교 선생님이 틀림없었다. 

우리는 순식간에 서로 눈짓을 교환하고 냅다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각자 다른 골목으로 나뉘어 도망을 쳤다. 

나는 술기운 때문에 다리에 힘도 없고 숨도 너무 가빠서 빨리 달릴 수가 없었다. 

나는 작은 골목 한 귀퉁이에 몸을 숨기고 앉아 상황이 끝나기를 숨죽여 기다렸다. 

얼마 후 달리는 발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점점 잦아들며 주변이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일단 정호네 하숙집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떼어놓았다.

“요놈, 잡았다.”

그 때 한 소리와 함께 커다란 손이 내 목덜미를 잡았다. 

아까 그 선생님이었다. 


나는 선생님께 붙잡힌 채로 학교 당직실로 끌려갔다. 

나는 선생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너, 3학년이지? 몇 반 누구야?”

밝은 불빛 아래서 내 얼굴을 유심히 살피던 선생님이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3학년 8반 박영빈입니다.”

“그래, 맞아 맞아. 그래, 이놈아. 이게 무슨 꼴이냐? 

술에 취해 도망도 못 가고. 얌전한 놈인 줄 알았더니....... 

나는 네 놈들 잡을 생각이 없었는데 네가 잡힌 거야. 알아? 

오늘같은 날 적당히 스트레스 풀다 일찍 들어가야 내일부터 또 공부할 거 아니냐? 

부모님은 또 얼마나 걱정하시겠냐?”


부모님 이야기에 갑자기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올랐다. 

얼굴까지 벌겋게 열이 오르더니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내 갑작스런 울음에 선생님은 당황한 듯했지만 아무런 움직임 없이 나를 지켜보기만 했다. 

내 몸속에 이렇게 많은 물이 숨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눈물을 쏟아내면서 나는 횡설수설 떠들기 시작했다.

“선생님, 엉엉 저는 꼭 의대 가야 합니다. 고생하시는 부모님 생각해서라도 꼭 가야 합니다. 가고야 말겁니다. 엉엉.”

“엉엉. 선생님, 근데 공부가 안 됩니다. 아무리 해도 성적이 오르질 않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엉엉.”

“도대체 꿈이란 건 뭡니까? 엉엉. 인생의 목표란 건 또 뭡니까? 선생님, 공부는 왜 해야 합니까? 엉엉.”

훨씬 많은 말들을 눈물과 함께 쏟아냈지만 나 스스로도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들이었다. 

선생님은 그저 기가 막힌다는 듯이, 안쓰럽다는 듯이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 볼 뿐이었다.

 ***

나는 월요일 등교하자마자 소풍날 나를 잡았던 선생님께 불려갔다.

“이제 좀 괜찮으냐? 학생 놈이 말이야 선생님 앞에서 술주정이나 해대고.......”

선생님은 피식 웃으며 말하고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정색을 하고 말을 이었다.

“내가 주말 내내 그냥 모른 척하고 넘어가야 하나 어쩌나 고민을 해봤는데 말이다,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내가 이번에 그냥 넘어가면 네가 또 실수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너를 위해서 벌을 받게 해야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난 너희 담임선생님과 학생주임 선생님께 이야기할 생각이다. 

그러니 너도 이번에 벌 받으면서 허물어지는 마음을 단단히 다시 세우길 바란다. 

알겠지? 그럼 이제 가봐.”


나는 그날 하루 종일 교무실과 교련실로 불려 다녔다. 

교련실에서는 엎드려뻗쳐를 하고 엉덩이에 ‘빳다’를 맞기도 했다. 

학생주임 선생님과 교련 선생님은 그날 같이 있었던 친구들을 다 말하라고 다그쳤다. 

하지만 결코 친구들의 이름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더 맞았고, 오기가 생긴 나는 더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날 하루가 다 지나갔을 때 선생님들은 내 공범 찾기를 포기했고 나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정규 수업이 끝나고 야간자율학습을 하기 전 저녁 시간에 우리는 정호의 하숙집으로 갔다. 

정호는 나를 엎드리게 하고 엉덩이에 안티푸라민을 발라주었다.

“야, 의리의 사나이 박영빈! 난 네가 혹시라도 우리 이름 댈까봐 조마조마했다.”

남수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기특하다는 듯이 말했다. 

호진이는 빵과 우유를 내 앞으로 내밀었다.

“많이 먹어. 먹고 기운내서 빨리 나아야지.”


그러면서도 친구 녀석들은 억지로 웃음을 참는 듯 얼굴까지 벌게지며 작은 소리로 킥킥거렸다. 

그러다 남수가 못 참겠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우하하! 아이고, 미친 놈. 선생님 앞에서 술주정하는 걸 상상만 해도 웃겨 죽겠다.”

참 내가 생각해도 우스운 상황이었다. 

그날 그런 상황이 아니었어도 나는 그렇게 울며불며 술주정을 했을까? 

내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여있던 응어리들이 술기운을 틈타 한꺼번에 밖으로 뛰쳐나온 것일 텐데, 

그것이 그날의 그런 상황과 절묘하게 만나면서 그렇게 폭발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어쨌든 그날 이후 학교에서의 내 별명은 ‘박주정’이 되어버렸다.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모두 나를 그렇게 부르며 킬킬거렸다.


(6)날이 갈수록 - 송창식(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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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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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gionex(12윤선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5.20 우와~~
    지난 주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조회수가 80을 넘었네요! ^^;
    아무튼 계속 재미 있게 봐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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