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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의 꿈

5월, 봄 향기(4)

작성자gionex(12윤선호)|작성시간17.05.28|조회수164 목록 댓글 2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맞춰 학교로 가니 담임선생님이 나를 불러냈다. 

내 처벌 수위에 대한 징계회의가 있었다고 했다.

“나와 이문섭 선생님, 알지? 네 주정을 다 받아주셨던 선생님. 

그 선생님하고 둘이서 끝까지 우기고 버텨서 3일 근신으로 마무리됐다. 

이문섭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네가 술 취해 울면서도 의대 가야 한다고, 가고야 말겠다고 그랬다고. 

그러니 이번에 정신 차릴 정도만 자극을 주면 의대 갈만큼 공부하지 않겠냐고. 

그 선생님 의견이 많이 반영됐다. 

하여튼 내일부터 3일 동안 학교에 나와 조례하고 바로 도서관으로 가서 반성하면서 반성문 쓰고, 

그걸 종례 시간에 제출하고 집에 간다. 

그동안 야간자율학습은 안 해도 돼. 그리고 금요일부터는 다시 정상 생활로 복귀하는 거다. 알겠지?”


부모님이 다 서울에 계신 걸 감안해서 이번에는 부모님 면담은 안 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하지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땐 용서 없다고 했다. 

나는 선생님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제일 걱정했던 게 부모님 호출이었다. 

안 그래도 아버지의 사업 상황이 안 좋아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데 내가 학교에서 처벌을 받는다고, 

그래서 학교로 오셔야 한다는 말을 어떻게 전하겠는가. 

며칠 동안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던 바위가 치워진 느낌이었다.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교실로 돌아와 내 자리에 앉으니 친구들이 주변으로 몰려왔다.

“어떻게 됐어?”

“근신? 정학? 설마 퇴학은 아니겠지?”

그때 담임선생님이 들어왔고 친구들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선생님은 우리를 조용히 시키고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박영빈은 내일부터 3일간 근신이다. 

조례와 종례만 참석하고 도서관에서 반성문 쓰는 벌이다. 

이놈들아, 내가 다 안다. 어찌 영빈이 뿐이겠냐? 

다른 놈들도 다 그날 술 마시고 풀어졌던 거 다 안다. 

이렇게 생각해라. 영빈이가 너희들 대표해서 혼자 벌을 받는다고. 

그 덕에 너희는 죄를 씻고 다시 공부만 하면 되는 거다. 

이제 이 일을 계기로 다들 다시 마음을 다잡고 대학을 향해 돌진하는 거다. 알겠나?”

“예!”

그래, 정말 이 일을 계기로 다른 생각 없이 공부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렇게 되기를.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

나는 우리 학교에 이렇게 넓고 훌륭한 도서관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입학하고 3학년이 될 때까지 도서관에 올 일이 없었다. 

아침에 등교해서 교실에 들어가면 밤에 야간자율학습이 끝나야 나올 수 있었다. 

그러니 도서관에 간다는 것은 생각도 해볼 수 없는 일이었다. 

도대체 이렇게 좋은 도서관이 왜 필요한지 알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도서관에 앉아 있으면서 봐도 도서관에 와서 책을 보거나 빌려가는 학생은 채 열 명도 되지 않았다.


나는 아침에 도서관에 가서 속성으로 반성문 열 장을 쓰고 ‘종합영어’와 ‘해법수학’을 목표량만큼 공부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서가에 쌓여있는 책을 읽었다. 

서가에 있는 책은 주로 고전문학 책들이었다. 

내가 서점에서 주로 보는 책은 방금 나온 신간 소설이나 시집, 또는 사색에 잠길 수 있는 가벼운 철학 에세이 등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작가도 오래 되었고 출판된 지도 오래된 책들이 의외로 신선하게 느껴졌다. 

나는 한국 단편선, 오헨리 단편선 등 주로 단편집을 찾아서 읽었다. 

사서가 있었지만 별로 나에게 신경쓰는 것 같지도 않았고 나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혹시라도 선생님들이 들어 올까봐 문이 열릴 때마다 온몸의 신경이 문 쪽으로 향하곤 했다.


“박주정, 이놈! 반성 잘 하고 있냐?”

근신 첫날 점심시간에 도서관 한 구석에서 도시락을 먹고 책을 보고 있는데 문이 열리면서 저음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나는 얼른 보던 책을 덮어 밀쳐놓고 반성문 종이를 앞으로 끌어당겼다. 

문 뒤에서 나타난 얼굴은 남수, 호진이, 정호였다. 

남수가 낄낄거리며 손을 흔들었다.

“야, 도서관 좋다. 우리도 여기서 공부할까?”

“아주, 혼자서 도서관 전세냈구먼.”

친구들은 내게로 다가오며 큰 소리로 떠들었다. 


나는 한 손으로는 사서가 있는 쪽을 가리키며 다른 손으로는 손가락을 입에 대고 조용히 하라고 눈짓을 보냈다. 

친구들이 내 손가락을 따라 사서 쪽을 쳐다볼 때 사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우리들에게 말했다.

“3학년들, 여기는 도서관이야. 조용히 책만 보는 곳이야, 알아? 자꾸 떠들면 선생님께 말씀드린다.”

친구들은 얌전하게 “네.”라고 대답하고 내 주위에 앉았다.

“사서가 있었구나. 예쁘다. 난 긴 머리 여자가 좋던데. 마치 청초한 한 떨기 난초 같지 않냐? 

딱 내 스타일인데. 몇 살이래? 이름은 뭐고?”

남수가 사서 쪽을 힐긋거리며 내게 물었다.

“여보세요. 나도 우리 학교에 저런 누나가 있는 줄 오늘 아침에야 알았거든? 궁금하면 네가 직접 알아봐라.”

나의 면박에도 남수는 얼굴 가득 늑대의 미소를 머금고 계속 사서를 힐끗거렸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친구들이 돌아간 후 나는 남수가 반해버린 사서를 한동안 관찰했지만 글쎄, 내 눈에는 별로 매력적이지가 않았다. 오히려 그럴수록 서점에서 봤던 그 여학생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 다시 보면 이야기라도 붙여볼까. 내가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나는 멍하니 앉아서 마음속으로 그 여학생에게 고백을 하고 또 고백을 했다. 

말을 해도 좋을까, 사랑하고 있다고. 마음 한번 먹는데 하루 이틀 사흘....... 

돌아서서 말할까 마주 서서 말할까, 이런 저런 생각에 일주일 이주일.......(7)


남수는 그 다음 시간부터 쉬는 시간만 되면 도서관으로 왔다.

“아, 짜식들. 교실에서는 하도 시끄러워서 공부가 안 돼. 여기가 공부하기 딱 좋네.”

“야야, 그래봤자 왔다 갔다 시간 빼면 5분도 채 안되는데 뭘 그리 들락거리냐?”

“인마, 1분을 공부해도 집중력 있게! 몰라? 말 시키지 마, 나 공부할 테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남수는 가지고 온 책은 펴지도 않고 사서 쪽만 쳐다봤다.

“야, 그러다 눈치채면 어쩌려고?”

“이놈, 뭘 모르시는구만. 제발 눈치 좀 채라고 이러고 있는 거 아니냐.”


내가 도서관에 있는 사흘 동안 남수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마다 찾아왔다. 

도서관은 3학년 교실이 있는 본관 4층에 미술실, 음악실과 함께 있었는데 

우리 반 교실이 제일 끝 방이라 교실 뒷문 앞의 계단으로 올라와 미술실과 음악실을 지나면 바로 있었다. 

그러니 마음만 먹으면 교실에서 도서관까지는 1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였다. 

그렇더라도 그 전까지는 도서관이 있는지조차 몰랐던 녀석이 그렇게 뻔질나게 들락거리는 건 

사서를 향한 마음이 어떤지를 몸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내가 근신을 마치고 다시 교실로 복귀한 후에도 남수는 쉬는 시간마다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남수의 정성이 통했던 것일까. 

남수는 도서관에 갔다온 점심시간 이후로 혼자서 싱글벙글 웃으며 

주먹을 쥐어흔들기도 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부르르 떨기도 했다. 

우리는 그런 남수를 보며 머리 위로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수업을 마치고 야간자율학습이 시작되기 전 저녁 시간에 우리는 정호의 하숙방에 모여 남수를 채근했다.

“이놈들아, 이 형님이 드디어 오늘 사서 누나와 말 텄다. 

이름은 윤은영이고 도서관학과 졸업하고 작년에 우리 도서관 확장할 때 들어왔단다. 

앞으로 누나 동생으로 잘 지내기로 했다.”

우리는 남수의 끈질김과 마침내 얻어낸 승리에 아낌없는 박수를 쳐주었다.


나는 남수가 정말 부러웠다. 

나도 그 여학생을 만나면 꼭 고백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만 해도 가슴이 쿵쾅거리고 얼굴이 달아올라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나는 친구들 몰래 몇 번이나 심호흡을 했다.


(7) 맨처음 고백 - 송창식(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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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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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마리사(7회 왕혜경) | 작성시간 17.05.29 헉 !! 조회수 144회.
    선호의 작품이 드뎌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나 보네요.
    반갑고도 좋은 현상입니다.
    울 회원님들도 꾸준히 읽어 주시고 도움이 될만한 의견 많이 올려 주세요.
  • 작성자바다(13변해숙) | 작성시간 17.05.30 그때 그노래들과 함께 한 시절을 돌아보게 하는 글~
    응답하라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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