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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의 꿈

7월, 아픈 여름(4)

작성자gionex(12윤선호)|작성시간17.07.22|조회수717 목록 댓글 1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돝섬’ 선배들은 1박2일 여행을 통해 서로 안 좋은 일들을 훌훌 털어버리자고 했다.

우리는 해마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1박2일로 선후배들이 모여

문학을 논하고 자작 작품을 돌려 읽으며 서로 평을 해주곤 했다.

그리고는 연말에 개최되는 ‘문학의 밤’ 행사 계획을 세우곤 했다.

 

선배들은 우리 방학에 맞춰 일정을 잡았지만 나는 그 1박2일 행사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우리 3학년들에게 방학은 고작 1주일이었다.

1주일의 방학이 끝나면 학교에 나와서 보충수업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나는 그 1주일을 서울의 집에 가서 보내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선배들은 혹시 내가 지난 번 일로 마음이 상해서 그런가 걱정했다.

나는 또 선배들에게 일일이 내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했다.

 

서울 집의 상황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안 좋았다.

아버지의 사업은 고생 끝에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인데

이른바 2차 석유파동으로 다시 위기를 맞게 되었다.

내가 갔을 때는 아버지의 사업 자금을 위해 서울로 이사하면서 샀던 집을 팔고

상봉동이라는 어느 동네로 세를 얻어 이사를 한 직후였다.

 

나는 터미널에 마중 나온 동생을 따라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서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집 안은 어둡고 눅눅했으며 아직 풀지 못한 이삿짐으로 어수선하기까지 했다.

이삿짐을 다 푼다고 해도 놓아둘 장소도 마땅치 않아 보였다.

우리 가족이 살았던 집 중에서 가장 좁고 열악한 환경의 집이었다.

나를 반겨 맞는 어머니와 동생들의 환한 표정 뒤로 피곤한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었다.

동생이 나를 방으로 안내했다.

“아버지는?”

“아버지는 요즘 공장에서 주무시면서 일해. 근데 오늘은 형이 온다고 이따 저녁 때 오신댔어.”

동생이 내 가방을 방 한 쪽으로 놓으며 말했다.

나는 헐렁한 반바지와 티셔츠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동생은 마루에 걸터앉아 있다가 나를 보고 말했다.

“형, 저기 뒷산에 올라가 볼래? 전망이 아주 좋아.”

“그래, 그럴까?”

 

우리는 마루를 지나 부엌으로 갔다.

어머니는 저녁 준비에 여념이 없었고 여동생은 그런 어머니를 돕고 있었다.

동생이 어머니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 형이랑 뒷산에 올라갔다 올게요.”

“그래, 대신 요 앞 가게에 가서 심부름 하나만 해주고 가라.”

“네. 형, 그럼 저 길로 해서 먼저 가고 있어봐. 난 얼른 가서 엄마 심부름 하고 따라갈 테니.”

 

나는 동생과 반대방향으로 산꼭대기를 향해 걸었다.

골목길을 지나서 조금 더 걸으니 바로 산길이 나타났다.

한참을 걷다 보니 한 쪽에 평지가 있고 앞이 탁 트인 것이 동생이 말한 장소가 여기가 아닌가 싶었다.

나는 그곳으로 가서 그늘진 곳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땀에 젖은 몸을 식혀주었다.

저 아래로 어딘지 모를 시가지가 내려다보였다.

 

나는 앉은 채로 크게 심호흡을 해보았지만 하나도 시원해지지 않았다.

나는 무릎을 세우고 팔로 무릎을 감싸 안았다.

뭔가 모를 분노와 짜증과 슬픔이 내 온몸을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온몸의 열기가 얼굴로 모여들더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부모님께 죄송하고 동생들에게 미안했다.

나는 등 뒤에 동생이 와서 서 있는 것도 모른 채,

무릎 사이로 떨어진 눈물이 흙을 적셔 얼룩이 생길 정도로 오랫동안 울고 또 울었다.

 

“형, 이제 그만 내려가자.”

동생이 젖은 목소리로 말하며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날은 아직 밝았지만 나를 덮고 있던 그늘은 더 길어져 있었다.

나는 일어나 동생을 쳐다봤다.

동생의 눈도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멋쩍게 웃었다.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와 계셨다.

아버지는 나를 보고도 별 말씀이 없으셨다.

우리는 묵묵히 저녁을 먹고 말없이 TV를 보았다.

그러다 피곤할 테니 일찍 자라는 어머니 말씀에 나는 동생과 함께 쓰는 방으로 갔다.

불을 끄고 누워도 잠이 오질 않았다.

나는 담배를 챙겨들고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오후에 올라갔던 언덕으로 다시 올라갔다.

나는 서울의 야경을 보면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어둠 속에서 담배가 타들어가고 내뿜는 연기가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

나는 집에 있는 내내 동생이 개발한 아지트에 올라가서 혼자 지냈다.

처음에는 책이라도 읽으려고 가져갔지만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다음부터는 아예 책을 가져가지도 않았다.

그 곳에서는 내 삶에 대한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나는 아버지에 대해 생각하고 어머니에 대해 생각하고 동생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나태함과 철없음에 대해 깊이깊이 후회했다.

 

나는 다시 마산으로 내려가기 전날 밤에 아버지께 편지를 썼다.

장남으로서 집안 형편도 모르고 전화나 편지로 투정을 부린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각오와 결심에 대해 말씀드려 아버지의 마음에서 조금이라도 나에 대한 걱정을 덜어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을 때에도,

아버지가 출근하시면서 잘 내려가라고 내 어깨를 토닥여주실 때에도,

어머니가 용돈하라고 봉투를 내 주머니에 넣어주실 때에도 나는 편지를 전해드리지 못했다.

도무지 쑥스러워 말이 나오질 않았다.

나는 터미널에 도착해서 따라온 동생에게 편지를 주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주신 용돈을 동생에게 나누어주었다.

 

마산에 도착해서 아저씨 집으로 갔을 때는 저녁때였다.

아저씨가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아이고, 요놈 영빈아.

집에 가서 무슨 이쁜 짓을 했기에 네 아버지가 오늘 너 도착하면 맛있는 거 많이 해주라고 전화를 했다냐?”

아마도 아버지는 내 편지를 보고 조금 감동하셨나보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내 방으로 올라가 짐을 풀고 옷을 갈아입었다.

다시 내려오니 승은이 누나가 나를 보며 웃었다.

“이야, 오늘 영빈이 덕분에 제대로 포식하게 생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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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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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최기석 | 작성시간 17.07.23 재학시절,
    여름방학 돝섬의 바다캠프 추억이 떠오르네요,
    까까머리 아이들이 바닷가에 둘러모여 찍은 당시의 흑백사진을 잠시 꺼내봅니다.
    그리고 문학의 밤, 그리고 뒷풀이.
    가난 시절이라 그런지
    그때는 그래도 문학이라는 막연한 동경과 순수가 있었지요.

    12회인 선호 후배님도 그런 시절을 살았군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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