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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의 꿈

7월, 아픈 여름(5)

작성자gionex(12윤선호)|작성시간17.07.31|조회수35 목록 댓글 3

마치 잔치상 같은 저녁을 먹은 후 나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서쪽 하늘의 구름이 붉게 타오르며 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붉게 타는 노을을 쳐다봤다.

서울의 집 뒷산에서 보던 하늘이 생각났다.

그리고 나의 눈물과 나의 결심과 나의 다짐이 생각났다.


나는 내 방에 가서 카세트와 헤드폰을 가지고 왔다.

나는 옥상 의자에 앉아 해지는 서쪽 하늘을 보면서 한 노래를 계속 반복해서 들었다.

도나 서머의 맥아더파크였다.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며 내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Spring was never waiting for us, dear

It ran one step ahead as we followed in the dance.

Between the parted pages we were pressed,

in love's hot, fevered iron like a striped pair of pants.

MacArthur Park is melting in the dark

All the sweet green icing flowing down

Someone left the cake out in the rain

I don't think that I can take it

'cause it took so long to bake it

And I'll never have that recipe again

Oh, No- (10)

 

그날 밤, 나는 진희에게 편지를 썼다.

그것이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진희 씨.

저는 말씀드렸던 것처럼 짧은 방학 동안 서울 집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집에 가 있는 일주일 동안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주로 부모님과 동생들, 그리고 제 자신에 대한 생각들이었습니다.

제가 참으로 부모님 보기에 철없는 자식, 동생들 보기에도 한심한 형, 오빠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저희 집이 마산에서 아주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부족함이 없는 행복한 가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서울로 이사를 간 이후 아버지의 사업은 어려움에서 벗어날 줄을 모르고,

게다가 최근에 기름 값, 전기세 등이 급등하면서 이중 삼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여태 우리 가족이 살면서 최악의 상황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버지는 거의 공장에서 숙식을 하면서 일을 하시고, 어머니와 동생들은 걱정과 근심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집안에 웃음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마산에 살 때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 우리 가족이었는데 불과 1년도 안 된 시간에 이렇게 바뀌어버린 것입니다.

 

그런 어려움 중에서도 저는 동생들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좁은 집에서 서로 부대끼면서도 동생들은 불평불만은커녕 다른 식구들을 위해 참고 양보하며,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런 동생들이 저를 많이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런 현실도 모른 채 마산에서 부모님이 보내주는 용돈으로 사고 싶은 것, 쓰고 싶은 것 마음대로 쓰면서

어떤 때는 그것도 모자라 돈을 더 보내달라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 유일한 방법은 공부를 더 잘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태까지의 제 자신을 돌아보면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한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 점이 저를 많이 부끄럽게 만들고 속상하게 만듭니다.

지난 시간들이 많이 후회됩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정말 열심히, 공부만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도 줄이고, 시를 쓴답시고 시간을 허비하는 일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공부와 상관없는 책 읽기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모든 것들은 대학 합격 후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진희 씨.

여기까지 읽고 짐작하셨겠지만 저는 이제 진희 씨를 만나는 일도 잠시 접어두려고 합니다.

진희 씨가 제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진희 씨를 아주 잊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어쩌면 제 스스로의 다짐을 외부로 표현함으로써 각오를 새롭게 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습니다.

 

진희 씨.

대입 시험을 치르고 나서 바로 진희 씨 댁으로 찾아가겠습니다.

그 때까지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럴 수 있다면 그 때는 진희 씨 부모님께 정식으로 인사드리고 우리가 사귀는 것에 대한 허락을 받겠습니다.

그럼, 몇 달 남지 않은 내년 1월까지 공부 열심히 하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나는 편지를 쓰면서도, 편지를 봉투에 넣으면서도, 편지를 가방에 챙겨 넣으면서도 계속 망설였다.

이것이 정말 필요한 일인가.

진희를 만나면서도 얼마든지 공부를 할 수 있지 않은가.

차라리 잠자는 시간이나 다른 시간을 아끼고 진희는 계속 만나는 것이 좋지 않겠나.

 

아니야, 이 정도도 결심을 못하면서 무슨 공부를 하겠다는 거냐.

공부에 대한 내 의지를 스스로에게 확인시켜 주려면 진희와 헤어지는 수밖에 없어.

부모님과 진희, 누가 더 중요하냐.

 

나는 계속 고민하고 망설이며 며칠을 보냈다.

그리고는 마침내 마음을 다시 한번 다져먹었다.

나는 편지를 서점의 우리 편지함에 집어넣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렇게 어려운 내 상황에서 진희마저 없다면 나는 도대체 무엇으로 위안을 삼고 용기를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이건 아니다.

나는 밤새 후회를 했다.

다음 날 바로 가서 다시 편지를 회수하리라 마음먹었다.

 

다음 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보충수업을 마친 후 나는 미친 듯이 서점으로 달려갔다.

나는 나를 반기는 종수 형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편지함부터 열었다.

편지가 없었다!

, 아까 진희가 와서 편지함 열어보던데?”

종수 형이 내 어깨너머로 말했다.

머릿속이 아득해지며 땅이 꺼지는 것 같았다.

다리가 휘청거려 나는 겨우 서가에 기대어 중심을 잡았다.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하지만 후회해도 이미 배는 떠난 다음이었다.


(10) McArthur Park - Donna Summer(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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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gionex(12윤선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7.31 오늘 포항시에 아주 중요한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느라 주말 동안에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기다리신 분들, 죄송합니다.
    늦었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 작성자최기석 | 작성시간 17.08.05 현실적 갈등설정이 흥미롭네요
    그 시절 한번쯤은 경험했을 듯한 풋풋한 첫사랑 같은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gionex(12윤선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8.05 선배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주 것도 재미있게 읽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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