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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골통의 발생원인을 찾아서 - 객관식, 선다형 시험의 폐단

작성자안재오|작성시간03.09.10|조회수63 목록 댓글 0
한국적 골통의 발생원인을 찾아서 - 객관식, 선다형 시험의 폐단

친애하는 시민 여러분,
긴 장마로 인해 농부들의 시름이 깊어가고 부안 군수가 핵폐기물 처리장 문제로 시위대에 의해 구타를 당하여 중상을 입고 입원해서 나라가 어수선하기는 하지만 다시 추석을 맞이하여 맑은 가을 하늘이 빛납니다.
중추가절에 문안인사 합니다.

요즘 같이 불안하고 우울한 시국에 우리는 정치 지도자들의 능력과 책임감을 다시 고려해 봅니다. 우리 카페에 올린 청와대 이정우 정책 실장의 발언, 즉 프랑스대학의 평준화 기사와 그 후 이를 반박하는 상명대 박정자 교수의 기사를 저는 둘 다 비판했습니다.

전자의 경우 프랑스의 대학 평준화는 사실 별로 사회적 의미가 없다는 요지였습니다. 이를 박교수 역시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박교수의 문제는 국가 엘리트주의 교육이 프랑스를 살린다는 좀 멍청한 주장이었습니다. 저는 이를 비판했습니다. 물론 이 두 분의 주장이나 생각이 현행의 총체적 부조리와 절망에 비교하면 그렇게 중요한 사안은 아닙니다. 단 저는 이를 통해 우리 나라 지도자들의 단편적인 사고 방식을 지적한 것입니다.

플라톤이나 헤겔 같은 철학자들은 진리의 전체성을 주장했습니다. 즉 올바른 지식은 총체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단편적 지식들의 종합에서 진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부분적인 지식이나 인식은 그것만 떼어놓고 본다면 오류입니다.

즉 단편적 진리(眞理)는 실은 비진리(非眞理)라는 것입니다.

올바른 지식 혹은 객관적 지식이란 다시 말해 나의 편협한 고정관념이나, 개인적 경험, 편견 혹은 경험적 지식을 초월한 것입니다. 즉 총체적, 객관적 지식은 단편적 주관적 지식을 벗어나 사실 자체를 열린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한국의 지도자들 아니 전 국민들은 이런 극히 주관적이며 단편적인 지식이나 경험을 객관적이며 총체적인 지식으로 착각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의 모든 비극의 싹을 봅니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이 이런 단편적인 지식을 전체로 혼동할 때 바로 국정의 혼란과 파탄이 오는 것입니다. 하나의 사건이나 존재는 무수히 많은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공익 사업같은 국가적, 사회적 문제에는 서로 다투는 수십 가지의 입장이 있습니다. 새만금 사업이나 최근의 원자 폐기물 처리장 같은 경우 서로 피를 튀기는 대립과 이익의 투쟁이 있습니다. 이런 중차대한 공적 영역에서 단순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으로 사태를 처리할 때 바로 부안의 폭력 사태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멍청함이 나중에는 인신공격과 흑백논리로 발전합니다. 혹은 과도한 일반화의 오류를 초래합니다.
이런 정치인들, 지도자들의 멍청함이나 무능력에 대해서는 모두 다 아는 것이기에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문제는 그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한국적 골통의 생성 원인과 또 이를 더 이상 보지 않으려고 할 때 그 대책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를 모르고 현금의 언론처럼 맹목적으로 정치인, 지식인, 지도자만 때려 보아도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저는 이런 한국적 골통 아니 조두(鳥頭)의 발생원인을 한국의 교육제도 , 특히 시험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에는 수능시험을 비롯한 온갖 시험제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는 항상 하나의 정답을 요구합니다. 혹은 두 개라도 같습니다. 물론 수학이나 물리학 등의 계산문제에서 정답이 있습니다. 혹은 영어 단어나 문법에서도 정답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많은 인간적인 문제, 혹은 사회적인 문제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오히려 여기에는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의 주장이 서로 옳다고 주장합니다. 혹은 어떤 사안에는 여러 가지의 정답과 지식이 대두됩니다. 그래서 이런 분야에서는 논쟁이나 투쟁 혹은 토론이나 대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시험은 모든 분야에서 하나의 정답을 요구합니다.

이처럼 시험은 한 문제에 하나의 정답이 반드시 있다는 망상을 키워줍니다. 특히 이런 경향은 선다형 시험 보통 객관식이라 불리는 시험에서 강화됩니다. 따라서 객관식 시험을 많이 보는 한국인들은 자연히 두뇌가 경직화됩니다. 그들은 하나의 문제에 서로 다른 - 때로 상반적인 - 가능한 답안들이 여러 개 있다는 생각을 타부시합니다.

그래서 좀 복잡한 상태가 주어지면 한국적 골통들은 대처 불능에 빠집니다. 즉 하나의 사회문제에 A라는 대안이 있고 또 정반대의 -A라는 대안이 있을 때 정치인들, 교수들은 혼란에 빠집니다. 만약 그들이 A를 택한다면 -A는 오류이고, 따라서 -A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원수 내지 악마로 취급됩니다. 따라서 A 와 -A 모두를 부분적으로 부정하고 또 부분적으로 긍정하는 B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못합니다.

선다형 시험위주의 공부는 이렇게 사람의 창조적 지성을 마비시키고 편협한 고집쟁이를 산출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에서 공부를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고집이 세어지고 아둔하게 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선다형, 객관식 중심의 사유방식은 대학에서도 결코 극복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객관식 시험대신 레포트나 논문을 쓰더라도 항상 모범답안이 있고 이는 강의 내용이나 교과서, 원서와 일치하는 것입니다. 결국 대학에서도 주입식, 암기식 공부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교육과 학습은 어떤 문제 A에 대한 정답이 B이다 혹은 C이다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문제 A에 대해 B와 -B가 서로 대립할 경우, 어떻게 이런 대립을 조화시키고 혹은 판단할 것이지를 훈련시켜야 합니다. 이는 결국 토론식, 대화식 수업을 강화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선다형 시험은 일체 폐지하는 게 좋습니다, 단 간단한 단편 지식 테스트에는 물론 이용할 수 있습니다.
모든 시험은 논문식이나 리포트로 대체해야 합니다, 즉 대규모, 획일적으로 시험장에서 한꺼번에 보는 국가고시를 집에서 모든 참고서와 법조문을 다 보고 작성하는 숙제식 시험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현금의 사법시험의 경우 재판능력이나 법적 수사력, 추리력을 평가할 수 없고 단지 얼마나 객관적 법률 지식을 암기하고 있는지를 평가할 뿐입니다. 이는 소송인들이 1-2심 판결을 거의 신뢰하지 않고 모두 대법원의 판결을 요구하며, 또 검사의 경우 툭하면 고문 수사, 인권유린이 나오는 것을 보면 압니다. 이 경우 독일의 사법고시가 도움이 됩니다.

시험 제도, 평가제도의 개혁 그리고 교육제도의 개혁 없이 한국적 골통을 개선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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