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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해석되는 유치환의 시 '수(首)'

작성자관악산|작성시간03.09.20|조회수111 목록 댓글 1
잘못 해석되는 유치환의 시 <수(首)>
- 친일작품의 해석오류를 생각하며



흔히 자신의 아내를 가리켜 ‘마누라’라 한다. 그런데 본디 이 ‘마누라’라는 단어는 조선시대 정3품 이상의 벼슬아치 부인들을 일컫는 높임말 ‘마누하’에서 온 말이다. 그러니 본래는 아주 높임말이었던 ‘마누하’가 시대가 변하며 자신의 부인을 낮추어 지칭하는 ‘마누라’로 바뀌었다.
이처럼 한 단어를 해석할 때에는 그 단어가 생겨난 시대적 배경과 의미를 잘 생각해야만 한다. 특히 그것이 문학작품일 때에는 더욱 그렇다. 조선시대의 문학작품 속에 ‘마누하’가 나오면 그것은 높임말로 쓰인 것이니 그 단어를 요즈음 식으로 낮춤말로 해석하면 커다란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문학작품을 해석할 때에는 그 작품이 생성된 시대와 사회적 배경을 잘 살펴서 작품 속의 단어 혹은 문장을 해석하여 그 의미를 파악해야만 한다.

일제강점기에 발표된 많은 작품들 중에는 그 시대와 사회적 배경을 망각한 채 오늘날의 관점으로 해석하여 작품의 의미를 훼손하거나 혹은 과대 해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유치환의 시 <수(首)>가 그렇다. 유치환은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시 <깃발>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생명파 시인이다. 우선 유치환의 <수(首)>를 읽어보자.

십이월의 북만(北滿) 눈도 안 오고
오직 만물을 가각(苛刻)하는 흑룡강 말라빠진 바람에 헐벗은
이 적은 가성(街城) 네거리에
비적(匪賊)의 머리 두 개 높이 내걸려 있나니
그 검푸른 얼굴은 말라 소년같이 적고
반쯤 뜬 눈은
먼 한천(寒天)에 모호히 저물은 삭북(朔北)의 산하를 바라고 있도다
너희 죽어 율(律)의 처단이 어떠함을 알았느뇨
이는 사악(四惡)이 아니라
질서를 보전하려면 인명(人命)도 계구(鷄狗)와 같을 수 있도다
혹은 너의 삶은 즉시
나의 죽음의 위협을 의미함이었으리니
힘으로써 힘을 제(除)함은 또한
먼 원시에서 이어온 피의 법도로다
내 이 각박한 거리를 가며
다시금 생명의 험열(險烈)함과 그 결의를 깨닫노니
끝내 다스릴 수 없던 무뢰한 넋이여 명목(暝目)하라!
아아 이 불모한 사변(思辯)의 풍경 위에
하늘이여 은혜하여 눈이라도 함빡 내리고지고

1942년 3월 <국민문학>에 발표된 이 시는 만주 어느 동네 네거리에 참수되어 걸려 있는 비적들의 머리를 보며 법의 준엄함 그리고 생명에 대한 허무 혹은 의지를 읊은 시이다.
우선 유치환이 어떤 시인인지 알아보자. 1908년 경남 충무에서 태어나 1927년 연희전문에 입학한 유치환은 학교를 중퇴하고 문학 창작에 뜻을 두어 1931년 <정적(靜寂)>이란 시를 <문예월간>에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한다. 1937년에는 부산에서 문예동인지 <생리>를 주재하여 5집까지 발간하였고, 1939년 첫시집 <청마시초>를 간행하였다. 1940년 가족과 함께 만주 연수현으로 이주 농장관리인으로 일하며 5년여에 걸쳐 있다가 해방 직전 귀국한다.
특히 1936년 발간된 <시인부락>이란 문예지를 통해 함께 활동한 오장환, 서정주, 함형수 등과 더불어 생명파 혹은 인생파라 불리운다. 이들을 이렇게 부르는 것은 시가 추구해야할 내용적 가치로서 생명 혹은 인생을 이들의 시에서 발견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 이들은 모더니즘의 서구 취향과 도시성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문명에 의해 변질되지 않은 인간 존재의 본질과 생명의 원시적 충동 등을 시로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어쨌건, 유치환은 이후 <생명의 서>, <울릉도>, <보병과 더불어> 등의 시집을 발간하며 해방 이후 서정주와 더불어 한국시단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으며 줄곧 교직에 있다가 1967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한다.

자, 처음으로 돌아가자.
유치환의 시 <수(首)>는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가. 문제는 바로 ‘이 적은 가성(街城) 네거리에 / 비적(匪賊)의 머리 두 개 높이 내걸려 있나니’라는 구절이다.
비적(匪賊).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비적이란 ‘떼를 지어 다니며 살인,약탈을 일삼는 도둑’이라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요즈음 쓰는 표준어로서 ‘비적’의 뜻일 뿐이다. 그러니 이 시에 쓰인 ‘비적’이란 단어는 이 시가 발표된 1942년의 만주라는 상황에 맞게 해석해야만 한다.
1942년. 일제강점기. 그때 우리 나라에는 ‘비적’이 없었다. 즉, ‘떼를 지어 다니며 살인,약탈을 일삼는 도둑’은 없었다. 왜냐하면 일본의 순사들이 아주 친절하게도 잘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주 일대에는 ‘비적’이 많았다. 그러나 그 ‘비적’ 또한 ‘떼를 지어 다니며 살인,약탈을 일삼는 도둑’들은 아니었다. 그 ‘비적’들은 바로 만주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소수 민족이었으며, 우리 조선독립군 단원들이었다. 조선독립군 단원들. 국제적으로 하나의 국가로 인정받지 못했던 나라의 독립을 위해 나선 독립투사들. 최악의 상황에서 싸워야만 했던 그들을 일본 경찰은 ‘비적(匪賊)’이라 불렀다. 정치적인 의도가 짙게 베어 있는 용어였다.
만주독립군 혹은 조선독립군이라 발표했다면 주민들이 그들에게 협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협조하는 것이 무섭다 하더라도 심적으로 동정과 지원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 일본 경찰은 만주국을 통치하면서 독립을 위해 무장투쟁을 벌이는 만주인과 조선인을 ‘비적’이라 하여 주민들과 차단하려 노력했다. 청산리전투로 유명한 김좌진 장군의 부대도 일본 경찰의 입장에서는 ‘비적’이었고, 홍범도, 이청천, 이범석 장군이 이끄는 대한독립단원들 모두 ‘비적’이었다. 일본은 그렇게 선전을 했으며 사로잡은 조선독립군은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참수하여 그 목을 거리에 내걸고는 ‘비적’이라 써붙였다.
그리고 만주에 거주하는 조선 문인들을 모아 <만주국 문예가협회>를 만들어서는 그들을 통해, 그들의 문학작품을 통해, 시와 소설 혹은 수필을 통해 비적들(사실은 만주독립군과 조선독립군)의 만행을 규탄하도록 조종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만주의 문인들은 협회의 지침대로 작품을 만들었으며,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은 조선어로 혹은 중국어로 발표되었다. 물론 ‘만주독립군’이나 ‘조선독립군’의 만행을 규탄하는 것이 아니라 ‘비적’이란 이름으로 규탄하는 것이다.
1942년. 유치환은 만주에 있었고, <만주국 문예가협회> 회원이었다. 그 역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치환의 시 <수(首)>에 나오는 ‘비적’의 머리는 바로 조선의 독립을 위해 무장투쟁을 벌이다 붙잡혀 참수당한 우리 독립투사들의 머리였다.
이제 다시 읽어보자.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자어는 현대어로 풀어썼고, 생략된 부분은 괄호를 넣어 해설을 곁들였다.

십이월의 북쪽 만주에는 눈도 안 오고
오직 만물을 뼛속까지 깎아내는 흑룡강 말라빠진 바람에 헐벗은
이 적은 거리의 조그만 마을 네거리에
참수당한 (조선독립군 무장투쟁 요원의) 머리 두 개 높이 내걸려 있나니
그 검푸른 얼굴은 말라 소년같이 적고
반쯤 뜬 눈은
먼 차가운 하늘에 모호히 저물은 북쪽의 산하를 바라보고 있도다
너희 죽어 (대 일본 제국의) 법에 따라 처형된 그 의미를 알았느냐
이는 네가지 악(논어에 나오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네 가지 나쁜 일 - 특히 가르치지 않고 죽이는 일)이 아니라
질서를 보전하려면 사람의 목숨도 닭이나 개와 같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혹은 (조선독립군의 무장투쟁 요원인) 너의 삶은 즉시
(친일파인) 나의 죽음의 위협을 의미함이었으리니
힘으로써 힘을 제거하는 것은 또한
먼 원시에서 이어온 피의 법도로다
내 이 각박한 거리를 가며
다시금 생명의 험하고 매운 맛과 그 결의를 깨닫노니
끝내 다스릴 수 없던 무뢰한 넋이여 똑똑히 보아라!
아아, 이 불모한 사변(思辯)의 풍경 위에
하늘이여 (대일본 제국의 천황폐하를) 은혜하여 눈이라도 함빡 내리소서

이 얼마나 끔찍한 내용인가. 그러기에 친일문학 잡지로 유명한 <국민문학>에 조선어로 실려있는 것이 아닌가. ‘비적’이란 단어의 정확한 의미만 안다면 이 시의 주제는 금방 드러난다. 일본의 법에 따라 목이 잘려 죽은 조선독립군. 차라리 조선독립군이란 이름으로 죽었다면...... 그러나 그들은 ‘비적’이란 이름으로,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이름으로 죽음을 맞는 것이다.
흔히 유치환의 시세계를 ‘생명에의 의지’, ‘허무의 의지’, ‘비정의 철학’이라 평가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형상은 ‘생명의지의 발양’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생명의지’는 무엇인가. 이는 한마디로 말해 살려는 의지이며 생명에의 애착이다. 바꿔 말하면 생명현상을 가장 원만히 발산하고, 또 연장하고픈 발원의 궁극적인 실천인 셈이다. 곧, 목숨을 지닌 생명체가 자기에게 부여된 제 조건을 극복하고 살아남으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말한다. <수(首)>를 읽으면 유치환의 생명의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살아남아야겠다는 의지, 일본 경찰이, <만주국 문예가협회>가 시키는 대로 해서라도 어떻게든 살아남아야겠다는 유치환의 생명의지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시를 요즘 대학입학 수학능력시험의 언어영역 모의고사 문제에서 볼 수 있다. 물론 ‘생명의지’ 혹은 ‘생명파’와 관련된 표현기교 혹은 이미지를 묻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유치환의 다른 시와는 달리 이 시는 일제강점기, 일제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낀 한 시인이 그저 그들이 시키는 대로 자신의 재주를 실어놓은 작품일 뿐이라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마누하’와 요즈음의 ‘마누라’가 다르듯이 1942년 만주의 ‘비적’과 2002년의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비적’은 다른 것이다. 특히 문학작품일 때에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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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안재오 | 작성시간 03.09.09 관악산님, 많이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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