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상사 제도의 기원과 발생을 찾아서
안재오 2003. 9.25
어제 K 대에서 최선생님과 대화하면서 시간강사문제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을 해 보았다. 그분은 국내에서 학위를 마치고 미국 UCLA에서 2년간 포닥을 해서 미국 대학의 사정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었다.
한국과 같은 보부상(褓負商)적 비정규직 교수는 독일에서도 미국에서도 없는 한국의 고유한 제도라는 것이 우리의 화제였었다.
어느 나라에나 비정규직 교수는 있다, 그러나 한국처럼 마음대로 고용하고 해고하는 시간제 비정규교수 제도는 세계적으로 그런 유(類)를 찾기 어렵다.
약간의 혼란이 있지만 “대학 비정교직 교수”란 시간강사가 아니라 사실은 계약직 교수를 의미해야 옳다. 따라서 시간 강사 노조를 대학 “대학 비정규직 교수 노조”라고 부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 –
제대로 교수제도를 구분한다면 이렇다:
1. 정규직 교수(보수 높고 , 고용 안정)
2. 비정규직 교수( 보수 높고, 고용 안정 안됨)
3. 일용직 교수 (보수 극히 낮고 , 고용 전혀 안정 안됨)
어제 밤 SBS와의 신뢰 파기를 경험하고 실의에 빠졌던 나는 시간강사 문제와 교육공화국 문제를 연결하는 필연적 고리를 발견하고는 감사할 수 있었다.
어제 만난 최강사 역시 시간강사로서 자신의 불투명한 앞날에 대해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그녀의 말 : “교수자리는 다 내정이 되어 있더라고요”. 나도 거기 동의했다. 나이 40이 넘어가면서 강사들은 더욱 불안해진다. 우리는 돈이, 보수가 문제가 아니라 일자리 안정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의기투합(?)했다.
또 미국 대학의 경우 교수에 대한 사회적 대우는 좋지 않지만 많은 교수, 교직원들이 치열하게 학문활동을 한다는 말도 들었다. (대학 교수, 교원에 대한 대우가 가장 좋은 곳은 독일이다. 독일 대학 교수직은 사회적, 경제적 여유를 누리는, 누구나 선망하는 직종이다. 이 역시 우리가 미국의 대학제도가 아니라 독일의 제도를 수용해야 하는 하나의 이유가 된다.)
나는 좁은 내 방에서 그런 물음, 즉 “왜 우리나라에서만 시간강사제도라는 야만적인 제도가 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추측을 했다 : 그것은 바로 역사적인 결정, 즉 해방이전 한국은 일본과 같이 독일식의( 자세히는 프로이센 식의) 대학제도를 채택하고 있다가 해방이 되면서 미국식의 제도로 바뀌는 과정에서 시간강사가 생겼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독일의 경우 고등학교(Gymnasium)에서 교양과목을 배우기 때문에 대학에서 교양과목을 배울 필요가 없이 바로 전공에 들어간다. 따라서 대학 교원의 수가 한국보다는 적게 필요하다.
그리고 대학생이 취득해야 할 이수학점도 미국과 한국의 반도 안 된다. 약간 지엽적인 예이지만 필자의 경우 박사과정에서 1과목(3학점)만 따면 박사과정(Course Work)은 이수되었다. 그러니 학위 졸업논문에 공부의 전부가 걸린 것이었다. 여기에 비해 한국이나 미국은 학위과정 (Course Work)이 상당히 많다, 보통 석 박사 과정에서 각각 2-30학점 따고 학위 논문을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독일 대학의 한 강좌가 미국에서는 세분화되어 3-4개의 강좌(Curriculum)로 나누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면 독일식의 대학을 갑자기 미국식으로 바뀔 때 강좌(Curriculum)가 갑자기 엄청 늘어난다는 말이 된다. 이는 그 만큼 교원의 수가 많아져야 함을 가리킨다.
그런 사정에 덧붙여 해방 후 정부는 교육투자의 돈이 없었고 따라서 사립 대학들이 전문교육을 맡아서 하게 된 것은 역사적 필연이라고 본다. 또한 사립대학 역시 미국처럼 대학의 자유와 독립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정부의 인허가를 받아야 했고 더 큰 문제는 한국이 독일식의 법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대학의 학사 행정은 철저히 중앙 관청과 관리의 통제를 받도록 규정된 것이다. 특히 문제는 대학 정원과 등록금 인상을 대학이 독자적으로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 자연히 모든 학사, 재정 문제는 교육부와 담합을 통해 결정된다.
이런 면에서 시간강사 문제 역시 설명된다. 이는 어중간한 미국식의 대학자치주의, 교육 시장주의와 독일식의 국가교육주의의 야합의 결과이다. 또한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산출되는 시스템 유입의 혼동에서 오는 결과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해결 방안이다.
필자는 위에서 말한 (더러운) 시스템의 혼합이 입시지옥, 신분적 학벌제도, 사교육 광풍 그리고 노예적 시간강사제도를 가져온 장본인이라고 믿는다.
이런 시스템의 오류가 한국 사회의 고질병인 정경유착, 관치 금융 그리고 정교유착(政敎癒着) 등을 초래한 장본인이라고 믿는다. 정교유착(政敎癒着) 이는 사학재단과 정부의 편의주의적인 결합을 말하며 이를 통해 피해보는 자는 국민, 학생, 그리고 교원들이다.
교육의 경우 우리는 순수한 미국식의 교육 자유주의, 시장주의를 따르든지 아니면 독일식의 교육 국가주의, 사회주의를 따르든지, 양자택일 해야 한다. 후자를 필자는 교육공화주의라고 부른다.
안재오 2003. 9.25
어제 K 대에서 최선생님과 대화하면서 시간강사문제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을 해 보았다. 그분은 국내에서 학위를 마치고 미국 UCLA에서 2년간 포닥을 해서 미국 대학의 사정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었다.
한국과 같은 보부상(褓負商)적 비정규직 교수는 독일에서도 미국에서도 없는 한국의 고유한 제도라는 것이 우리의 화제였었다.
어느 나라에나 비정규직 교수는 있다, 그러나 한국처럼 마음대로 고용하고 해고하는 시간제 비정규교수 제도는 세계적으로 그런 유(類)를 찾기 어렵다.
약간의 혼란이 있지만 “대학 비정교직 교수”란 시간강사가 아니라 사실은 계약직 교수를 의미해야 옳다. 따라서 시간 강사 노조를 대학 “대학 비정규직 교수 노조”라고 부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 –
제대로 교수제도를 구분한다면 이렇다:
1. 정규직 교수(보수 높고 , 고용 안정)
2. 비정규직 교수( 보수 높고, 고용 안정 안됨)
3. 일용직 교수 (보수 극히 낮고 , 고용 전혀 안정 안됨)
어제 밤 SBS와의 신뢰 파기를 경험하고 실의에 빠졌던 나는 시간강사 문제와 교육공화국 문제를 연결하는 필연적 고리를 발견하고는 감사할 수 있었다.
어제 만난 최강사 역시 시간강사로서 자신의 불투명한 앞날에 대해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그녀의 말 : “교수자리는 다 내정이 되어 있더라고요”. 나도 거기 동의했다. 나이 40이 넘어가면서 강사들은 더욱 불안해진다. 우리는 돈이, 보수가 문제가 아니라 일자리 안정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의기투합(?)했다.
또 미국 대학의 경우 교수에 대한 사회적 대우는 좋지 않지만 많은 교수, 교직원들이 치열하게 학문활동을 한다는 말도 들었다. (대학 교수, 교원에 대한 대우가 가장 좋은 곳은 독일이다. 독일 대학 교수직은 사회적, 경제적 여유를 누리는, 누구나 선망하는 직종이다. 이 역시 우리가 미국의 대학제도가 아니라 독일의 제도를 수용해야 하는 하나의 이유가 된다.)
나는 좁은 내 방에서 그런 물음, 즉 “왜 우리나라에서만 시간강사제도라는 야만적인 제도가 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추측을 했다 : 그것은 바로 역사적인 결정, 즉 해방이전 한국은 일본과 같이 독일식의( 자세히는 프로이센 식의) 대학제도를 채택하고 있다가 해방이 되면서 미국식의 제도로 바뀌는 과정에서 시간강사가 생겼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독일의 경우 고등학교(Gymnasium)에서 교양과목을 배우기 때문에 대학에서 교양과목을 배울 필요가 없이 바로 전공에 들어간다. 따라서 대학 교원의 수가 한국보다는 적게 필요하다.
그리고 대학생이 취득해야 할 이수학점도 미국과 한국의 반도 안 된다. 약간 지엽적인 예이지만 필자의 경우 박사과정에서 1과목(3학점)만 따면 박사과정(Course Work)은 이수되었다. 그러니 학위 졸업논문에 공부의 전부가 걸린 것이었다. 여기에 비해 한국이나 미국은 학위과정 (Course Work)이 상당히 많다, 보통 석 박사 과정에서 각각 2-30학점 따고 학위 논문을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독일 대학의 한 강좌가 미국에서는 세분화되어 3-4개의 강좌(Curriculum)로 나누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면 독일식의 대학을 갑자기 미국식으로 바뀔 때 강좌(Curriculum)가 갑자기 엄청 늘어난다는 말이 된다. 이는 그 만큼 교원의 수가 많아져야 함을 가리킨다.
그런 사정에 덧붙여 해방 후 정부는 교육투자의 돈이 없었고 따라서 사립 대학들이 전문교육을 맡아서 하게 된 것은 역사적 필연이라고 본다. 또한 사립대학 역시 미국처럼 대학의 자유와 독립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정부의 인허가를 받아야 했고 더 큰 문제는 한국이 독일식의 법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대학의 학사 행정은 철저히 중앙 관청과 관리의 통제를 받도록 규정된 것이다. 특히 문제는 대학 정원과 등록금 인상을 대학이 독자적으로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 자연히 모든 학사, 재정 문제는 교육부와 담합을 통해 결정된다.
이런 면에서 시간강사 문제 역시 설명된다. 이는 어중간한 미국식의 대학자치주의, 교육 시장주의와 독일식의 국가교육주의의 야합의 결과이다. 또한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산출되는 시스템 유입의 혼동에서 오는 결과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해결 방안이다.
필자는 위에서 말한 (더러운) 시스템의 혼합이 입시지옥, 신분적 학벌제도, 사교육 광풍 그리고 노예적 시간강사제도를 가져온 장본인이라고 믿는다.
이런 시스템의 오류가 한국 사회의 고질병인 정경유착, 관치 금융 그리고 정교유착(政敎癒着) 등을 초래한 장본인이라고 믿는다. 정교유착(政敎癒着) 이는 사학재단과 정부의 편의주의적인 결합을 말하며 이를 통해 피해보는 자는 국민, 학생, 그리고 교원들이다.
교육의 경우 우리는 순수한 미국식의 교육 자유주의, 시장주의를 따르든지 아니면 독일식의 교육 국가주의, 사회주의를 따르든지, 양자택일 해야 한다. 후자를 필자는 교육공화주의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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