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공화국을 읽고....정리한 짧은 나의 소견^^;;
글쓴이: 꿈을꾸며
조회:9 날짜:2003/10/02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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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위 말하는 비평준화 지역에서 시험을 거쳐 ‘명문고’라 불리 는 곳을 다니고 그곳을 졸업했으며, 책에서 언급되었듯이 획일적인 인간을 만들어 내는 ‘대입 수능’을 세 번이나 보았다.
이러한 경험을 해서일까? 교수님이 쓰신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내가 지금까지 소리 내어 외치고 싶었던 말들과 생각들을 교수님께서 대필해 주신 것 같은 기분이들 정도로 정말 공감이 많이 갔고, 교수님이 주장하시는 ‘교육 공화국’을 이룩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내 자신을 보면서 학벌 지향적인 우리나라 교육실태에 내 자신 또한 고통 받고 있는 존재임을 느꼈다.
우선 이 책을 읽고 내 좁은 소견을 정리하기 전에 지금까지 나의 23년의 삶을 뒤돌아보고 싶다.
솔직히 애기하면 초등학교, 중학교 때 나는 공부 관해서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평준화 되었지만 내가 중학교를 다닐 당시에만 해도 비평준화 지역으로 시험을 쳐서 고등학교에 입학해야 했으며, 그 당시 나는 600명 모집에 1700명이 지원하였던 소위 ‘명문고’ 라 불리는 부천고에 입학하였다. 부천고에 합격했을 당시만 해도 내 앞날이 활짝 펼쳐진 것처럼 생각되었고 명문대에 입학하는 것은 당연한 양 생각되었었다. 그러나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나는 ‘우물 안 개구리’ 에 불과했다.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은 다 모인 학교에서 나는 점점 도태되어져 갔다. 그 과정에서 받는 내적 외적으로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 나는 세 번에 ‘수능’이라는 대입 시험을 세 번씩이나 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사치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또 내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명문대에 입학했다면 이 책을 읽고도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내 경험이 있었기에 교수님이 쓰신 이 글에 누구보다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두고 싶다.
책을 읽고 난 뒤 내 짧은 소견을 정리해 본다면 이 책에서는 한국 사회가 당면한 수없이 많은 문제 영역 중에서 교육 개혁의 문제가 가장 시급하며 근본적인 문제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문제점과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문제점-
한국 사회의 교육 개혁의 문제에 있어서 근원적인 문제로 한국의 고등교육 기관과 그 학문적 수준이 극히 저조 하다는 것이며, 인재의 양성보다는 인재 선발에 치우쳐 ‘입시 지옥’ 이라는 사회적 풍토와 이로 인한 사교육비의 증가로 교육의 불평등한 배분, 학벌주의 사회의식까지 꼬리를 물고 문제점이 나타나는 현실이다.
1. 입시 지옥
유럽인들은 일본 교육의 약점이 인재의 양성 보다는 인재의 선발에 있다고 본다. 이는 일본 특유의 입시지옥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 같은 평가는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되는데 여기에는 일본의 군사 문화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의식이 잔재하고 있어 우리 교육 역시 개성과 창의성보다는 수동적 암기와 적응만을 요구하고 수능 시험으로 인한 입시 지옥은 외부적, 획일적, 집단적 시험이 학생들과 국민들의 사고를 획일화 시키고 결국 획일적인 인간을 만들어내게 된다.
2.사교육비
흔히들 말하는 ‘치맛바람’ 이라는 소리는 한국인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다 들어 보았을법하다. 과거의 일류 중학교, 명문고가 있을 때 치맛바람이나 과외가 얼마나 극성스러웠는지 한국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최근 이런 사정도 모르고 한국 사회의 하향 평준화를 비판하고 그 대신 중등 교육의 경우 대다수의 공립학교와 극소수의 명문 자립형 사립학교를 유지하고 대학의 경우 자율적,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영미식의 자립형고교, 자율형 대학의 설립에 대한 주장은 오직 자녀교육이라면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큰 사회적 혼란의 야기와 사교육비에 대한 엄청난 재정 낭비는 막을 수 없는 현실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또한 이러한 사교육비의 지출은 사회에 필요한 인재 배출의 목적이 아닌 단순히 진학위주의 교육이므로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자본의 낭비가 아닐 수 없다.
3.교육의 불평등한 배분
지방에서 자녀들을 서울로 공부시키러 보내는 것을 “유학 보낸다 ”라고 하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교육 시설과 여건면에서 지방과 서울의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나며 이러한 차이는 지방대학교 졸업생들은 취업이 거의 불가능하고 신입생도 점차 줄어드는 현실로 반영 된다. 자녀교육이라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시골이나 지방을 떠나 서울로 모여들고 있고 인재들은 자꾸 서울로. 수도권으로 모여들고 있는 추세이다.
4.학벌주의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한다. 하물며 50년이면 모든 것이 변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경제, 식문화 그리고 패션이 변했으며, 시민들의 의식도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50년 전과 지금 한결 같이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상위권 중고생들에게 어떤 대학을 가고 싶으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대답하는 대학, 바로 서울대학교가 그 주인공이다. 매 해 수능 최상위권 학생들은 모두 서울대학교를 들어가기를 꿈꾼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무엇이 학생들에게 그토록 서울대학교를 열망하게 만드는 것일까?
사람은 누구나 성공을 꿈꾼다. 이 성공은 명예를 얻는 것일 수도 또는 부를 얻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많은 수입에 남부러울 것 없는 편안한 생활을 누리기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 성공이 보장되어 있다면 어떻게 할까?
“국장급 이상 1급 공무원 243명중의 56.4%, 18명의 장관 중 11명, 검사장급 이상 39명 가운데 69%를 서울대가 차지하고 있다. 후배들을 끌어주는 동문 선배들이 정-관계 요직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인터넷 네이버 발췌-
우리 사회에는 학벌중시 풍조가 만연해 있다. 과거 변변한 대학이 없던 시절 엄청난 수의 졸업자들을 찍어내어 현재 한 나라를 장악하고 있는 서울대 그리고 연세대, 고려대를 비롯한 소위
명문이라 자칭하는 몇몇 대학들, 그곳에 들어가는 자는 부와 명예를 얻게 된다는 말은 상당한 위력으로 널리 믿어지고 있다. 사람을 판단할 때는 가장 먼저 출신학교를 보며 대부분의 대기업
이 지방대생들에게는 면접의 기회조차 차단해버린다. 고위 공무원으로 갈수록 학벌이 중시되며
보잘 것 없는 학벌을 지닌 사람의 승진은 정체된다. 자연히 학생들은 지방대를 기피하게 되며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지방대들이 죽어가고 있다. 지방대 교수들의 연구욕은 이미 보이지 않는 바닥까지 떨어졌으며 재학생들은 더 이상 그 어떤 꿈도 꾸지 못한다. 1% 엘리트 집단의 지위는 점점 확고해지며 부익부 빈익빈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문제점들은 한국의 교육문제의 고질적 병폐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독일의 교육제도를 모델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철학자 플라톤이 말한바와 같이 한 국가의 특수한 계층만 행복하고 나머지는 슬프고 고통 받는 나라가 아니라 가능한 전 국민. 전 계층이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것을 기본 이념을 모토로 정립하고 ‘교육 공화국’운동을 추진하는 것이 우리나라 교육 개혁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교육 공화국’운동은 우선 입시 위주의 획일적인 교육이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타율적이고 비인간적인 학교생활을 시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시 위주의 교육과 학벌을 철폐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모든 교육 기관의 공립화를 주장하는 것이다. 즉, 전 교육 기관의 공립화를 바탕으로 사교육과 대학의 입시를 철폐하고 그 대신 고교 졸업시험으로 대학 입학 자격을 주며 더 나아가 대학에도 입학시험이 아니라 졸업 시험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대학생의 자질을 향상시키고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자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이러한 교육기관의 공립화의 주장에 따르는 모범적 사례로 독일의 교육제도를 들 수 있다.
독일의 경우 전 대학수준이 비슷하며 학벌이 없는 유일한 나라이다. 독일식의 교육이라 함은 교육정책과 재정을 국가가 전적으로 맡아하는 대학교육의 국가주의를 뜻 한다. 달리 말하면 교육의 평등주의 내지는 ‘기회균등주의’ 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교육 기회의 완전한 평등은 교육 공화국의 입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출발의 평등은 주장하되 결과의 평등이 아닌 즉, 차별이 없는 똑같은 교육 기회를 부여를 하고 그에 따른 결과는 각자의 개인의 역량에 맡긴다는 것으로 똑같은 분배를 해야 한다는 사회주의 이념이 아니라 교육에서만 국가주의 이념을 주장하고 있다.
또 하나의 독일식 교육의 특징은 대학 입시가 아니라 졸업이 문제시 된다는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도 등록금만 꼬박꼬박 낼 수만 있다면 누구나 졸업이 가능한 우리 사회와는 달리 입학생의 반 이상이 탈락하는 독일의 대학에서는 이름난 명문대학은 없지만 어느 대학에서건 다들 열심히 공부한다고 한다. 이 같이 독일에서처럼 졸업을 중시하는 제도는 입학시험의 필요성이 없어지게 되며 자연히 사교육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교육 정책과 제도가 독일식처럼만 되어 질 수 있다면 매년 연례행사인 입시지옥은 없어질 것이고 그로 인한 사교육비 또한 없어질 것 이다.그리고 개성과 창의성은 무시한 채 주입식, 암기식의 획일적 교육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졸업 시험제도 때문에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과 특기를 살려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분야에서 공부하고 연구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 교육기관의 공립화만 이루어 질 수 있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각하고 치유 될 수 없는 고질적인 병폐 중에 하나인 학벌주의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주장으로 생각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책에서 언급되었듯이 우리
나라 교육의 사교육비로 지출되는 연간 26조원이라는 돈을 교육기관의 공립화하는 정책으로 돌릴 수 있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이러한 정책들이 우리나라에서 시행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대학교육의 개인주의, 자율주의를 추구하는 미국식의 교육제도의 껍데기만을 추종해왔다. 이러한 미국식의 교육제도 따라가기에 발맞춰 얼마나 많은 우리나라의 학생들이 희생양이 되어 왔는가? 반복하고 반복하다가 실패하면 그건 우리에게 맞지 않다는 것이다. 왜 윗자리에 앉아있다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교수님이 쓰신 이 글을 읽고 내 가슴 한 켠에 답답한 가슴이 조금은 풀린 듯하다. 남자로 태어나 내 자신에게 있어 변변치 않다고 생각되는 대학을 다니는 나에게 학벌 없는 우리나라를 꿈꿀 수 있는 동기가 만들어졌다. 절대 불가능한일만은 아닌 것 같다. 절대 이상적이지만도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이념과 사회적 풍토에 적절히 맞춰가면서 천천히 시행한다면 ‘꿈을 꾸며’라는 내 아이디처럼 학벌이 없고 입시지옥이 사라지는 다음 세상을 꿈을 꾸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대에 한층 부풀어본다.
글쓴이: 꿈을꾸며
조회:9 날짜:2003/10/02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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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위 말하는 비평준화 지역에서 시험을 거쳐 ‘명문고’라 불리 는 곳을 다니고 그곳을 졸업했으며, 책에서 언급되었듯이 획일적인 인간을 만들어 내는 ‘대입 수능’을 세 번이나 보았다.
이러한 경험을 해서일까? 교수님이 쓰신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내가 지금까지 소리 내어 외치고 싶었던 말들과 생각들을 교수님께서 대필해 주신 것 같은 기분이들 정도로 정말 공감이 많이 갔고, 교수님이 주장하시는 ‘교육 공화국’을 이룩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내 자신을 보면서 학벌 지향적인 우리나라 교육실태에 내 자신 또한 고통 받고 있는 존재임을 느꼈다.
우선 이 책을 읽고 내 좁은 소견을 정리하기 전에 지금까지 나의 23년의 삶을 뒤돌아보고 싶다.
솔직히 애기하면 초등학교, 중학교 때 나는 공부 관해서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평준화 되었지만 내가 중학교를 다닐 당시에만 해도 비평준화 지역으로 시험을 쳐서 고등학교에 입학해야 했으며, 그 당시 나는 600명 모집에 1700명이 지원하였던 소위 ‘명문고’ 라 불리는 부천고에 입학하였다. 부천고에 합격했을 당시만 해도 내 앞날이 활짝 펼쳐진 것처럼 생각되었고 명문대에 입학하는 것은 당연한 양 생각되었었다. 그러나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나는 ‘우물 안 개구리’ 에 불과했다.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은 다 모인 학교에서 나는 점점 도태되어져 갔다. 그 과정에서 받는 내적 외적으로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 나는 세 번에 ‘수능’이라는 대입 시험을 세 번씩이나 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사치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또 내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명문대에 입학했다면 이 책을 읽고도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내 경험이 있었기에 교수님이 쓰신 이 글에 누구보다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두고 싶다.
책을 읽고 난 뒤 내 짧은 소견을 정리해 본다면 이 책에서는 한국 사회가 당면한 수없이 많은 문제 영역 중에서 교육 개혁의 문제가 가장 시급하며 근본적인 문제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문제점과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문제점-
한국 사회의 교육 개혁의 문제에 있어서 근원적인 문제로 한국의 고등교육 기관과 그 학문적 수준이 극히 저조 하다는 것이며, 인재의 양성보다는 인재 선발에 치우쳐 ‘입시 지옥’ 이라는 사회적 풍토와 이로 인한 사교육비의 증가로 교육의 불평등한 배분, 학벌주의 사회의식까지 꼬리를 물고 문제점이 나타나는 현실이다.
1. 입시 지옥
유럽인들은 일본 교육의 약점이 인재의 양성 보다는 인재의 선발에 있다고 본다. 이는 일본 특유의 입시지옥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 같은 평가는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되는데 여기에는 일본의 군사 문화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의식이 잔재하고 있어 우리 교육 역시 개성과 창의성보다는 수동적 암기와 적응만을 요구하고 수능 시험으로 인한 입시 지옥은 외부적, 획일적, 집단적 시험이 학생들과 국민들의 사고를 획일화 시키고 결국 획일적인 인간을 만들어내게 된다.
2.사교육비
흔히들 말하는 ‘치맛바람’ 이라는 소리는 한국인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다 들어 보았을법하다. 과거의 일류 중학교, 명문고가 있을 때 치맛바람이나 과외가 얼마나 극성스러웠는지 한국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최근 이런 사정도 모르고 한국 사회의 하향 평준화를 비판하고 그 대신 중등 교육의 경우 대다수의 공립학교와 극소수의 명문 자립형 사립학교를 유지하고 대학의 경우 자율적,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영미식의 자립형고교, 자율형 대학의 설립에 대한 주장은 오직 자녀교육이라면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큰 사회적 혼란의 야기와 사교육비에 대한 엄청난 재정 낭비는 막을 수 없는 현실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또한 이러한 사교육비의 지출은 사회에 필요한 인재 배출의 목적이 아닌 단순히 진학위주의 교육이므로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자본의 낭비가 아닐 수 없다.
3.교육의 불평등한 배분
지방에서 자녀들을 서울로 공부시키러 보내는 것을 “유학 보낸다 ”라고 하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교육 시설과 여건면에서 지방과 서울의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나며 이러한 차이는 지방대학교 졸업생들은 취업이 거의 불가능하고 신입생도 점차 줄어드는 현실로 반영 된다. 자녀교육이라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시골이나 지방을 떠나 서울로 모여들고 있고 인재들은 자꾸 서울로. 수도권으로 모여들고 있는 추세이다.
4.학벌주의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한다. 하물며 50년이면 모든 것이 변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경제, 식문화 그리고 패션이 변했으며, 시민들의 의식도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50년 전과 지금 한결 같이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상위권 중고생들에게 어떤 대학을 가고 싶으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대답하는 대학, 바로 서울대학교가 그 주인공이다. 매 해 수능 최상위권 학생들은 모두 서울대학교를 들어가기를 꿈꾼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무엇이 학생들에게 그토록 서울대학교를 열망하게 만드는 것일까?
사람은 누구나 성공을 꿈꾼다. 이 성공은 명예를 얻는 것일 수도 또는 부를 얻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많은 수입에 남부러울 것 없는 편안한 생활을 누리기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 성공이 보장되어 있다면 어떻게 할까?
“국장급 이상 1급 공무원 243명중의 56.4%, 18명의 장관 중 11명, 검사장급 이상 39명 가운데 69%를 서울대가 차지하고 있다. 후배들을 끌어주는 동문 선배들이 정-관계 요직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인터넷 네이버 발췌-
우리 사회에는 학벌중시 풍조가 만연해 있다. 과거 변변한 대학이 없던 시절 엄청난 수의 졸업자들을 찍어내어 현재 한 나라를 장악하고 있는 서울대 그리고 연세대, 고려대를 비롯한 소위
명문이라 자칭하는 몇몇 대학들, 그곳에 들어가는 자는 부와 명예를 얻게 된다는 말은 상당한 위력으로 널리 믿어지고 있다. 사람을 판단할 때는 가장 먼저 출신학교를 보며 대부분의 대기업
이 지방대생들에게는 면접의 기회조차 차단해버린다. 고위 공무원으로 갈수록 학벌이 중시되며
보잘 것 없는 학벌을 지닌 사람의 승진은 정체된다. 자연히 학생들은 지방대를 기피하게 되며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지방대들이 죽어가고 있다. 지방대 교수들의 연구욕은 이미 보이지 않는 바닥까지 떨어졌으며 재학생들은 더 이상 그 어떤 꿈도 꾸지 못한다. 1% 엘리트 집단의 지위는 점점 확고해지며 부익부 빈익빈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문제점들은 한국의 교육문제의 고질적 병폐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독일의 교육제도를 모델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철학자 플라톤이 말한바와 같이 한 국가의 특수한 계층만 행복하고 나머지는 슬프고 고통 받는 나라가 아니라 가능한 전 국민. 전 계층이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것을 기본 이념을 모토로 정립하고 ‘교육 공화국’운동을 추진하는 것이 우리나라 교육 개혁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교육 공화국’운동은 우선 입시 위주의 획일적인 교육이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타율적이고 비인간적인 학교생활을 시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시 위주의 교육과 학벌을 철폐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모든 교육 기관의 공립화를 주장하는 것이다. 즉, 전 교육 기관의 공립화를 바탕으로 사교육과 대학의 입시를 철폐하고 그 대신 고교 졸업시험으로 대학 입학 자격을 주며 더 나아가 대학에도 입학시험이 아니라 졸업 시험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대학생의 자질을 향상시키고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자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이러한 교육기관의 공립화의 주장에 따르는 모범적 사례로 독일의 교육제도를 들 수 있다.
독일의 경우 전 대학수준이 비슷하며 학벌이 없는 유일한 나라이다. 독일식의 교육이라 함은 교육정책과 재정을 국가가 전적으로 맡아하는 대학교육의 국가주의를 뜻 한다. 달리 말하면 교육의 평등주의 내지는 ‘기회균등주의’ 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교육 기회의 완전한 평등은 교육 공화국의 입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출발의 평등은 주장하되 결과의 평등이 아닌 즉, 차별이 없는 똑같은 교육 기회를 부여를 하고 그에 따른 결과는 각자의 개인의 역량에 맡긴다는 것으로 똑같은 분배를 해야 한다는 사회주의 이념이 아니라 교육에서만 국가주의 이념을 주장하고 있다.
또 하나의 독일식 교육의 특징은 대학 입시가 아니라 졸업이 문제시 된다는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도 등록금만 꼬박꼬박 낼 수만 있다면 누구나 졸업이 가능한 우리 사회와는 달리 입학생의 반 이상이 탈락하는 독일의 대학에서는 이름난 명문대학은 없지만 어느 대학에서건 다들 열심히 공부한다고 한다. 이 같이 독일에서처럼 졸업을 중시하는 제도는 입학시험의 필요성이 없어지게 되며 자연히 사교육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교육 정책과 제도가 독일식처럼만 되어 질 수 있다면 매년 연례행사인 입시지옥은 없어질 것이고 그로 인한 사교육비 또한 없어질 것 이다.그리고 개성과 창의성은 무시한 채 주입식, 암기식의 획일적 교육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졸업 시험제도 때문에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과 특기를 살려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분야에서 공부하고 연구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 교육기관의 공립화만 이루어 질 수 있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각하고 치유 될 수 없는 고질적인 병폐 중에 하나인 학벌주의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주장으로 생각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책에서 언급되었듯이 우리
나라 교육의 사교육비로 지출되는 연간 26조원이라는 돈을 교육기관의 공립화하는 정책으로 돌릴 수 있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이러한 정책들이 우리나라에서 시행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대학교육의 개인주의, 자율주의를 추구하는 미국식의 교육제도의 껍데기만을 추종해왔다. 이러한 미국식의 교육제도 따라가기에 발맞춰 얼마나 많은 우리나라의 학생들이 희생양이 되어 왔는가? 반복하고 반복하다가 실패하면 그건 우리에게 맞지 않다는 것이다. 왜 윗자리에 앉아있다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교수님이 쓰신 이 글을 읽고 내 가슴 한 켠에 답답한 가슴이 조금은 풀린 듯하다. 남자로 태어나 내 자신에게 있어 변변치 않다고 생각되는 대학을 다니는 나에게 학벌 없는 우리나라를 꿈꿀 수 있는 동기가 만들어졌다. 절대 불가능한일만은 아닌 것 같다. 절대 이상적이지만도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이념과 사회적 풍토에 적절히 맞춰가면서 천천히 시행한다면 ‘꿈을 꾸며’라는 내 아이디처럼 학벌이 없고 입시지옥이 사라지는 다음 세상을 꿈을 꾸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대에 한층 부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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