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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한 정치인가?

작성자안재오|작성시간03.10.16|조회수50 목록 댓글 0
안재오 : 교육개혁가 『교육공화국』저자 2003.10.14(화)
교육공화국(cafe.daum.net/edurepublic) 편지 63

제목 : 무엇을 위한 정치인가?


독일의 위대한 철학가 임마뉴엘 칸트(I. Kant)는 그의 주저 『순수이성비판』에서 우리의 인식의 두 요소를 감각과 개념으로 규정하고서 '감각 없는 개념은 공허하다, 개념 없는 감각은 맹목적이다' 라고 두 요소의 불가분리성을 정리했다. 여기서 감각이란 수동적으로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이며 개념이란 능동적인 나의 사유기능을 말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인식이란 나의 생각이나 의지와는 무관하게 밖에서 쳐들어오는 현실과 또 이를 받아서 정리하는 나의 주관적인 판단이나 결정이 서로 잘 결합될 때 올바른 인식이 생성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는 객관과 주관의 종합을 의미하는 것이다.

(1) 정치개혁 구호 이제 그만 두어라!

요즘 우리의 정치적 현실을 바라볼 때 위의 칸트의 공식이 새삼 귀중하게 여겨진다. 필자는 칸트의 공식을 정치와 경제에 대입시켜 본다. 즉 "경제 없는 정치는 공허하다, 정치 없는 경제는 맹목적이다".
여기서 경제란 국민들의 생존 활동의 총체이며, 보통은 민생이라는 말로 대변한다. 한국의 정치와 정치인들은 위민(爲民) 혹은 민본(民本)이라는 정치의 목적을 망각하고 오직 정치 자체를 위한 정치라는 공허한 이념에 빠져있다. 즉 신용불량자, 청년실업자, 빈익빈 부익부, 서울-지방의 격차 그리고 망국적 사교육비 등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는 별로 없는 사람들이 오직 "나 아니면 안 된다" 라는 개인적 명예와 권력 그리고 부(富)를 축적하기 위해 다들 정계로 투신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 없는 경제란 인간이 소외되는 극단적 자본주의의 병폐를 말한다.

요즘 흔히 입에 오르내리는 정치개혁이라는 말도 한번 반성해 보아야 한다. 물론 정치인들의 부정부패를 막고 지역감정을 극복하며 또 공정한 선거를 하겠다는 생각에는 누구나 동의하지만 이는 고통과 절망에 빠져있는 국민과 사회의 엄청난 문제에 비하면 미미한 문제일지 모른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런 순수한 정치적인 문제만 따로 떼어놓고 이것들만을 고치거나 개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가령 지역감정 문제도 그렇다, 노무현의 정치 출사표라고 할 수 있는 지역주의 극복의 문제를 보자. 그는 경상도인으로서 자기 고향이 아니라 전라도에서 극히 높은 지지율을 얻고 지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 혹자는 그를 위장된 호남인 이라고 불렀다.
근래에 생긴 개혁신당이나 최근 새로 민주당에서 탈당해 나온 통합신당 모두 지역주의 극복과 정치개혁을 목적으로 하고 탄생했다.
그러나 필자는 이들에게 더 이상 지역감정 혹은 그 극복을 볼모로 정치에 나서지 말라고 충고한다, 왜냐하면 호남지역에 가서 한나라당 찍자고 해봤자 소용없는 짓이며 경상도에서 민주당 찍을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지역감정 극복을 통한 국민통합이라는 문제는 이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점점 더 벌어지는 지방과 중앙의 차이이다. 지방대학 학생들은 취업이 안 된다, 따라서 지방의 대학들은 정원미달이고 다니는 학생들은 모두 수도권 대학으로 편입하기를 원한다. 지방에 인재가 없다. 그러니 자연히 지방은 죽는 것이다.
다년간의 지방자치 경험이나 정부의 국토 균형개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방은 점점 더 비참하게 몰락한다.
따라서 동서 화합보다는 중앙-지방의 화합이 시급한 이 시대의 화두이다.
중앙-지방의 대립이 사라지면 영호남 갈등의 문제는 자동적으로 사라진다. 왜냐하면 영호남 차이 내지 대립이라는 문제는 근본적으로는 두 지역 간의 경제 발전의 차이에서 기인했었다, 그러나 오늘날 영남이 호남보다 더 잘산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한 때 잘나갔던 부산이나 대구 같은 영남 지역 도시들은 현재 처참한 상태에 빠져있다.
그리고 지난 김대중 정부 5 년간 호남인들도 정부의 요직에 많이 올랐었기 때문에 이제는 호남 소외론 같은 말은 불필요할 것이다. 이제는 호남 소외가 아니라 비수도권 지역 소외가 문제이다.

(2) 노무현 대장, 재신임 받으면, 능력이 생겨 지금까지 못 풀던 문제를 풀 수 있는가?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갑자기 정치적 재신임을 물어보겠는 깜짝 쇼를 연출한 뒤 가뜩이나 어지러운 한국의 사정은 더욱 혼미해 지려한다. 노무현 그는 문제를 풀지는 못하고 계속 새로운 문제만을 일으키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어제 여론조사의 결과 그를 재신임하겠다는 비율이 그렇지 않는 의견보다 약간 높아 집권층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아니 그 기세를 몰아 야당과 언론을 비판하는 정치적 공세로 국면전환을 꾀하고 있다. 그러면 최도술 비서관의 금품수수 문제로 불거졌던 노대통령의 양심선언적 재신임 투표의 결단은 정치의 도덕성 문제를 떠나 결국 정국돌파를 위한 벼랑끝 전술이라는 당리당략으로 낙찰되는 것일까?

그런데 필자는 정치에서 권모술수, 당리당략을 배척할 수 없다고 본다. 어차피 민주정치란 정당정치 내지 당파정치를 통해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국가와 국민이라는 가치개념도 현실에서는 항상 분열되고 갈등하는 이익집단들의 혼합으로 나타난다. 이런 국민적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국민의 통합된 의지를 도출하는 과정이 정치이며 민주정치인 것이다.
양심과 도덕성을 앞세운 노무현과 그 지지자들의 새로운 정치라는 구호는 부정한 금품수수와 친척 측근 비리라는 낡은 정치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노무현 대통령이 자가발전시킨 재신임 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위에서 제시한 칸트의 원칙에 비추어 되물어 보아야 한다, 무엇을 위한 재신임인가? 그간 노무현 정부 하에서 발생한 국정의 혼란과 비참한 상태가 과연 국민들이 그를 신임하지 않아서 였는가 하는 물음이다.
국민들의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하락이 실업증가와 기업투자 부진을 초래했다는 말인가?
국민의 지지도가 약해 부동산은 계속 폭등했다는 말인가?
야당이 발목을 잡아서 물류대란이 일어났단 말인가?
보수언론이 조지고 밟아서 측근들이 불법, 부정했다는 말인가?
나는 말하고 싶다, 정치가 아니라 경제를 보라. 정치가 아니라 현실을 보라. 정치 이는 이런 시대적 사회적 문제를 풀기 위한 수단이요 도구에 불과하다. 정치개혁이 아니라 교육개혁, 사회개혁이 문제이다. 이제 한국 정치의 이념은 정치개혁에서 사회개혁으로의 패러다임을 교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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