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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파노라마

03 인류 일반 역사 (창세기 1-11장)

작성자김문|작성시간13.04.08|조회수686 목록 댓글 0

 

 

우리가 성경을 구약과 신약으로 구분하지만 유대인들은 구약만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신약을 거부한다. 유대인들은 구약을 Tanakh라고 칭한다. 그들은 목차를 분류함에 있어서도 우리와 상이하다. 반면에 유대교와는 달리 기독교 공동체는 구약을 율법으로 읽지 않고, 율법의 마지막이요 성취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으로 읽었다(롬 10:4, 히 1:2 참고).
이상의 목차는 성경의 목차에 따른 것으로서 성경의 목차 순서는 시간의 순서와는 무관하다. 예를 들어 예언서의 경우, 성경은 부피가 큰 것을 앞에 위치시키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성경공부를 위해 될 수 있는 한 시간의 순서에 따를 것이며, 예언서를 역사서 사이에 끼워서 볼 것이다.

 

3. 창세기
 
창세기에는 주요하게 네 가지 사건과 네 인물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네 가지 사건은 창조, 타락, 홍수, 바벨탑 사건이고 네 인물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이다. 어떤 학자들은 창세기의 첫 열한 장을 고고학적으로 접근할 수 없다는 이유로 창세기에 대해 ‘역사’라는 용어 대신 ‘원역사’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창세기의 천지창조를 실제 역사로 믿지 않는다면 성경에는 믿을 만한 자료가 거의 없게 될 것이다. 반면에 하나님의 창조를 신뢰할 때, 우리는 성경의 모든 내용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될 것이다. 스파이크먼의 개혁주의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창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인간의 죄로 인해 처해진 곤경, 회개와 성화로의 부르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우리의 소망에 대한 성경의 풍부한 의미는 오직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에 굳은 기반을 두고서야 이해할 수 있다.”

1) 창조와 타락

창세기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언으로 시작하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는 무로부터의 창조였다. 창세기는 히브리어 명칭이 의미하듯이 우주와 세상의 기원, 인류의 기원, 제도의 기원, 죄의 기원, 구원과 이스라엘의 기원 등의 기원을 보여준다. 창세기 1장의 하나님의 엿새 동안의 창조와 일곱째 날의 안식은 안식일 계명의 근거가 되며, 2장의 창조 기사는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에게 주신 결혼 제도의 역사적 배경이 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으니 하나님의 창조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창조였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것은 인간이 상호보완적 존재임을 뜻하며,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함은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것, 곧 지적 능력, 자연적인 감정, 도덕적인 자유 등과 같은 요소들도 포함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에는 하나님의 영성과 불멸성도 포함되는데 이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불멸의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의 동산인 에덴을 창설하신 후 그들을 거기에 두셔서 섬기는 직책을 수여하셨다(민 3:7-8 참고). 에덴동산은 하나님나라의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겔 47:12, 계 22:1-2).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아담과 하와와 교제하기 원하셨으며, 그들이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살 수 있도록 선악과에 대한 명령을 주셨다. 더 나아가서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 하나님의 다른 피조물들을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따라 관리하는 직분을 수여받게 되었다.
그러나 하와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게 되었다. 하와가 선악과를 본 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여(창 3:6) 그것을 따먹고 자기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 하였다. 이처럼 인간의 소견에 좋아 보이는 것은 성경에 있어서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표현과 반대되는 것으로서 죄악으로 규정된다. 아담의 불순종은 생명나무를 상징으로 하는 하나님과의 행위언약에 대한 파기였으며, 하나님의 주권에 대항하는 우주적인 반역의 사건이었다. 죄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반항(롬 8:7)이요, 하나님의 법에서 떠나는 것이다(요일 3:4). 아담은 모든 피조세계 가운데서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 지음 받았으므로 그의 죄의 결과는 모든 피조세계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창 3:17-18).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에 대하여 심판을 선언하셨다. 행위 언약의 파기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의 관계성은 파괴되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인간은 하나님을 피해 스스로를 숨기게 되었고(창 3:8), 하나님께 책임을 떠밀게 되었다(창 3:12). 인간은 결국 하나님의 동산에서 추방되었다(창 3:23-24).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 아담과 하와는 서로의 앞에서 스스로를 가리게 되었다(창 3:7). 아담은 하와에게 죄책을 전가시키려고 하였고(창 3:12), 하와는 아담의 권위 아래 있어야 하는 벌을 받게 되었다(창 3:16). 자연과의 관계에 있어서 땅은 인간에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되었다(창 3:18). 무엇보다도 아담에게는 죽음이 찾아왔다(창 2:17). 먼저 영적인 죽음이(창 3:8), 다음에 육체적 죽음이 왔다(창 3:19).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룹들을 에덴동산에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다. 지키게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포함한 창조세계 즉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염두에 두셨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구원의 약속을 주셨고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창 3:21). 비록 창세기에는 구원에 해당되는 말이 없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구원을 지향하고 있다. 창세기 3:15는 ‘원복음’이라고도 한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이 구원의 약속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여자의 후손으로 보내셨다. 예수님께서는 창세기 3장 15절과 시편 22편 16절의 예언에 따라 십자가상에서 수족이 찔려 죽으셨으나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시고 승리하셨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 대한 구원을 성취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신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롬 5:17)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2) 홍수와 바벨탑

창세기의 구조적 특징에 의하면 ‘대략’, ‘계보’, ‘세대’ 등의 의미를 가진 ‘톨레도트’가 아래와 같이 11회 반복된다.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창 2:4a)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창 5:1a)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창 6:9a)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창 10:1a),
“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창 11:10a)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창 11:27a)
“이스마엘의 족보는 이러하고”(창 25:12)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는 이러하니라”(창 25:19a)
“에서 곧 에돔의 족보는 이러하니라”(창 36:1)
“세일산에 있는 에돔 족속의 조상 에서의 족보는 이러하고”(창 36:9)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창 37:2a)
이상의 구조적 특징을 염두에 둘 때, 창세기는 족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됨을 알 수 있다. 이 족보의 관심사는 그리스도께서 누구의 후손인가 라는 것이다. 아담의 죄는 그 후손들에게 영향을 끼쳐 타락한 인류를 산출했고(창 5:3), 인간의 역사에는 그 어떤 소망도 없었다. 유일한 소망이라면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 중에서 그리스도를 주시리라는 약속뿐이었다. 이 약속은 인간에게 위로의 메시지가 되었다. 노아의 부친 라멕은 아들 노아를 낳고 그에게서 여자의 후손에 대한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창 5:29)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시대에 홍수와 방주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과 더불어 구원을 보여주시기로 작정하셨다. 일부다처제가 땅 위의 관영한 죄악으로 이어지자(창 6:1-7)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고 노아와 그의 가족을 구원하셨다. 이 홍수의 심판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최후심판의 유비로 사용되기도 한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37-39)
“이로 말미암아 그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 3:6-7)
다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에 초점을 맞추어 보겠다. 노아방주를 통한 구원은 새 창조를 의미한다. 창세기 1장의 창조에서 하나님의 영(Ruah)이 수면에 운행하셨듯이(창 1:2)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8장의 새 창조에서 홍수로 덮인 땅위에 바람(Ruah)이 불게 하셨다(창 8:1).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실 때,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동물들을 각기 그 종류대로(창 1:21, 24-25) 창조하신 바와 같이 방주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실 때에도 노아와 그의 가족과 더불어 동물들을 각기 그 종류대로(창 6:20, 7:14) 한 쌍씩 방주에 불러 모으셨다.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에는 인간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지만 인간만이 아닌 하나님의 창조세계 전체가 구원의 대상이 된다. 즉 창조와 더불어 하나님의 구원의 범위는 우주적인 것이다.
노아방주를 통한 구원을 새 창조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근거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후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8)고 말씀하신 것과 동일하게 노아 가족을 구원하신 후에도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9:1)고 말씀하셨다는 점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다른 피조물들을 관리하는 직책을 주셨듯이 노아 가족에게도 동일한 직책을 주셨다. 그러나 노아와 그의 가족에게 다시 주어진 이 직책은 타락 이전에 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질 때와 같이 완전하게 회복된 상태는 아니었다. 다른 피조물들은 두려움을 통해서만 인간에게 순응하게 될 것이다. 비록 노아방주가 하나님의 구원 즉 새 창조의 일면을 보여주지만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이 오시기까지 이것은 어디까지나 모형에 불과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에 의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의 가족을 비롯하여 하나님의 전체 피조세계와 더불어 무지개를 증거로 언약을 세우셨다. 그것은 곧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든지 공의롭기에 비록 하나님께서 자신의 창조세계를 반복적으로 홍수로 심판하신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은 역시 의로우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하신 세상을 홍수로 멸하지 않으시기로, 심지어 자신의 피조물과 언약을 세우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세계를 포함하여 땅 끝까지 이르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주권을 가지고 계신다. 그러나 타락한 아담의 후손인 인류는 그 주권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인간 스스로가 주인 된 인간중심의 사회를 건설하기에 이른다. 니므롯(창 10:8-9) 같은 왕이 나타나 패권을 행사하게 되고 인류는 하나님의 법에 의해 다스려지기보다는 권력을 가진 인간 그 누군가의 희생물이 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류역사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화를 창출하며, 하나님 앞에서 교만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바벨탑 사건이다.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 11:4)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류역사를 그대로 방치해두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인류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시 60:6-8). 하나님께서는 자기 뜻에 따라 인류역사를 주관하시며 지도자를 세우시거나 폐하시는 분이시다(단 4:17, 25, 32, 5:21). 심지어 인류가 스스로의 정치적인 목적으로 전쟁을 벌일지라도 그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된다(삼상 17:47, 대하 25:8). 이집트 왕 바로가 이스라엘을 핍박하도록 허용하신 것도 하나님의 뜻이며, 이스라엘을 그 땅에서 구원하신 것도 하나님의 뜻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롬 9:17-18)
하나님께서 세상의 주관자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창조주이시고 심판주이심을 의미한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언약의 백성에게 있어서 구세주가 되신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계 2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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