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롭게 산다는 것은? 말씀/잠언1:1-33 오늘 말씀은 잠언 말씀입니다. 잠언은 다윗의 아들이요, 지혜의 왕으로 알려진 솔로몬이 쓴 지혜서입니다. 그는 잠언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지혜롭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를 구체적으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1장은 젊은이를 위한 책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세상 악에 물들기 쉬운 다음 세대들이 지혜의 말씀을 들음으로 죄악에 빠지지 않고 귀하게 쓰임 받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잠언을 공부하면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지혜로운 삶이 시작되려면 무엇부터 갖추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기초를 잘 닦아서 지혜로운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4절은 잠언을 기록한 목적입니다. “잠언을 기록한 목적은 1)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2)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3) 지혜롭고,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한 훈계를 받게 하며 4)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5)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신중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여기에는 인간의 지혜를 의미하는 비슷한 단어들이 여러 개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혜란 지식을 올바로 사용하는 재능을 의미하고, 훈계란 훈련을 통해 습득되는 습성을 뜻합니다. 잠언은 첫째, 이런 지혜와 훈계를 얻게 합니다. 둘째로 잠언은 명철의 말씀을 잘 알아듣게 해줍니다. 명철이란 선과 악을 구별하는 능력으로 잠언을 통해 명철의 말씀을 잘 이해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지혜롭게 해주는데 지혜롭다는 말은 사려깊고 신중하다는 뜻이고, 공의롭다는 말은 올바르다는 뜻이고, 정의롭다는 말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재능이 있음을 의미하며, 정직이라는 말은 도덕적으로 바르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잠언은 사람을 사려깊고 신중하게 하고 공명정대하게 하고 올바르고 정직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어리석은 사람을 슬기롭게 해주는데 슬기롭다는 말은 사람 속에 있는 것을 간파해 내는 재능을 의미합니다. 다섯째 잠언은 젊은이들에게 건전한 지식과 근신, 즉 신중하고 절제하게 만들어 줍니다. 이 모든 말들은 지혜라는 한 마디 말로 광범위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잠언을 기록한 목적은 한마디로 우리로 이런 지혜로운 사람이 되게 하고자 함입니다. 그러면 지혜로운 사람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첫째로, 지혜로운 사람이란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7절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공경한다는 말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공경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 곧 참된 지식의 시작이요, 기초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공경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해야 합니다. 태초에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시고 우리 가운데 역사하신다는 사실이 깨달아져야 합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을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최초로 작동시키신 후, 모든 것이 저절로 운행되도록 놔두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되 이런 신념을 가진 자를 이신론자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런 분으로 생각한다면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믿는 분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공경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관념적인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3장 14절에 나온 대로 모든 것이 있기 전에 스스로 존재하신 분이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이는 하나님은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지거나, 어떤 원인에 의해서 존재하게 된 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스스로 존재하신 절대자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아무에게도 영향을 받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주가 깨어진다 할지라도, 혹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은 죽었다고 떠든다고 해서 없어지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야말로 스스로 존재하신 절대자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장 1절에 나온 대로 태초에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가 되십니다. 또한 의롭고 거룩하셔서 죄인들은 심판하시는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의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요 3:16). 우리가 이 하나님을 단지 지식적으로, 교리적으로 알고 있는 수준이라면, 하나님을 바로 알고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실제의 삶 속에서 느끼고 체험해야 합니다. 그런데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이렇게 느끼고 체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내산에서 직접 나타나시기도 하셨습니다. “셋째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출 19:16-19) 하나님께서 우레와 번개, 그리고 빽빽한 구름 사이에서 온 산이 진동하는 나팔 소리와 함께 임재하시니 백성들이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며 모세에게 부탁하였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출 20:19) 이런 그들에게 모세는 말하였습니다. “두려워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출 20:20) 하나님께서 이렇게 강림하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고자 하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로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너무 두려워하니까, 이렇게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나타나시는 경우는 없어졌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당신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께서는 계시의 말씀을 통해서 당신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말씀을 통해 전능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말씀을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말씀을 통해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체험하게 될 때, 우리는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공경하게 됩니다. 창세기 28장을 보면 야곱에게 나타난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벧엘에서 돌베게를 베고 자는 야곱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 28:15) 그러자 야곱은 잠이 깨어 일어나면서 말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창 28:16,17) 그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자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채험한 사람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공경하게 됩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만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막연하게 관념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막연하게 수염이 허옇게 난 할아버지처럼 소박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은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말씀을 통해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공경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지혜로운 사람이란 지혜의 말씀을 <듣는 사람>입니다. 20-23절을 보시면.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이르되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여기서 지혜란 의인화한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얼마나 열심히 부르고 계십니까? 길거리나 광장, 길거리나 성문 어귀나 성중이란 모든 사람에게 공개된 장소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곳에서 공개적으로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부르고, 소리를 높이고, 소리를 지르고, 소리를 발한다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람들을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고 계시는가를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들을 통해서 공개적으로 우리 인생들을 부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 11:28)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한 7:37,38)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떠했습니까? 24,25절을 보면.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지혜를 듣기 싫어하였습니다. 오히려 그의 초청을 멸시하였습니다. 지혜의 책망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습니다.
오늘날 다음세대들은 너무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거부하고 멸시합니다. 갈수록 청소년들은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갈수록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외면하고 개성이 강해져서 거부하고 거역합니다. 갈수록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멸시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는 시대입니다. 반면에 세상의 말에는 민감하고 열려있어서 세상이 홍수처럼 밀려들어옵니다. 이런 시대가운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유대인들은 반복하여 가르치고 반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들은 한번두번세번네번다섯번 끊임없이 주지시키고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부모들과 교사들은 결코 약해져서는 안됩니다. 듣지않는다고 평화를 위해 내가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계속해서 가르치면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이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33절을 보면. “오직 나를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안에서 안전하게 살게 됩니다.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이는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입니다. 지혜의 말씀을 마음으로 영접하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외면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반면에 미련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7절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미련한 자의 특징은
1)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합니다. 미련한 자는 머리가 나쁜 자가 아닙니다. 혹은 I.Q가 떨어지는 자도 아닙니다.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미련한 자는 지혜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습니다. 지혜에 가치를 두거나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특별히 훈계, 곧 훈련을 통해서 주어지는 교육을 아주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 젊은이들이 성공하려면 훈련을 통해 주어지는 교육, 훈계를 잘 받아야 합니다. 학문적으로 성공하려면 학문적인 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예술면에서 성공하려면 예술적인 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사업가로서 성공하려면 사업에서 필요한 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말씀의 종이요, 목자로서 성공하려면 그에 필요한 훈련을 적극적으로 받아야 합니다경건 훈련과 간증쓰기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방면에서 성공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이런 훈계를 싫어합니다. 이런 훈련을 받다가 조금만 어려움이 생기면 싫증을 내고 중단해 버립니다. 이런 사람은 무엇을 해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미련한 자가 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2) 미련한 자는 악인의 유혹에 잘 넘어갑니다. 10절을 보면.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 젊은이가 지혜를 배우는데 가장 방해되는 것이 악한 자의 유혹입니다. 젊은이가 악한 자의 유혹에 일단 넘어가게 되면, 아무리 가능성이 많을지라도 그가 갖고 있는 가능성과 위대성은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가능성이 많은 젊은이가 악한 친구의 유혹에 넘어가 신세를 망치는 것을 종종 봅니다. 그래서 잠언 저자는 구체적인 지혜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악한 자의 유혹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악한 자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11,12절을 보면 “그들이 네게 말하기를 우리와 함께 가자 우리가 가만히 엎드렸다가 사람의 피를 흘리자 죄 없는 자를 까닭없이 숨어 기다리다가 스올같이 그들을 산 채로 삼키며 무덤에 내려가는 자들 같이 통으로 삼키자”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우리와 함께 가자’라는 것입니다. 악한 친구의 특징 중의 하나가 동류의식을 심는 것입니다.
그들은 눈앞의 이익을 위하여 남을 헤치는 일을 도모합니다. 19절을 보면. “무릇 이익을 탐하는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리라” 젊은이들은 인생의 경험이 짧습니다. 그래서 먼 미래를 내다보고 일을 도모하기 보다는 눈앞의 이익에 전전긍긍할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눈앞의 이익을 탐하는 것은 자기 생명을 잃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17절을 보면 새도 자기를 잡으려고 그물 치는 것을 보면 그물에 뛰어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눈앞의 이익을 탐하는 자들은 새만도 못하게 눈앞의 이익을 추구합니다. 그들은 그길이 자기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극히 위험한 일인 줄 알면서도 그 길을 달려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고 경외함으로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악인의 유혹에 넘어가지 아니하고 지혜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지혜로운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혜로운 자가 누리는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